(개인적으로 미행의 오르골 버전을 같이 들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https://youtu.be/TgUHclXYJug)
“켁, 으헉, 켁, 켁!”
고통스러운 신음의 뒤는 아름다웠다. 식도를 역류하고 올라왔다곤 믿기지 않는 보송보송한 노란 꽃이 혓바닥 위를 타고 내려왔다. 꽃이 목구멍을 타고 위로 역류하는 것은 아무리 지나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아픈 것은 아니었다. 그저 목구멍을 역류하였기 때문에 고통스럽게 들리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내뱉어진 것뿐이었다.
지금까지 뱉어낸 꽃의 수는 15송이. 매일 한 송이 씩 뱉어냈으니 15일 동안 쉬지 않고 꽃을 뱉어낸 샘이다. 내가 처음 뱉어낸 꽃은 붉은색의 꽃이었다. 입속에서 나오는 붉은 꽃이 당황스러웠다. 입에서 꽃이 나오는 것보다 내가 짝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이 나를 더욱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하나하키(花吐き), 주위 여학생들이 흔히 겪어 알고 있었던 ‘병’이었다. 짝사랑을 하면 입 밖으로 꽃을 뱉어내고, 그 감정의 골이 깊어질수록 꽃의 수가 많아진다는 것. 그리고 그 ‘짝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로 죽음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것. 치료하는 방법도 있다 했지만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엄청났다. 나는 ‘병’에 걸린 그들이 화장실 세면대에서 꽃을 내뱉는 모습을 보면서 그것이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몸에서 꽃이 나온다니, 이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
나는 꽃을 뱉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짝사랑하고 있는 상대를 알 수 있었다. 3분단 4번째 줄의 김태형. 말하자면, 내 짝꿍인 남학생이었다. 그저 말을 다른 남학생들보다 많이 하고, 가끔씩 고개를 돌리면 눈이 마주치고, ‘꽤나 괜찮은 아이다’ 하고 느꼈던 감정이 짝사랑이었다니.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고작 그 찰나의 감정들이 모여 짝사랑이 됐다니. 하지만 그것을 부정하진 않았다. 부정하기엔 내가 김태형을 향한 꽃을 뱉어냈고, 그 꽃 하나하나에 김태형과의 추억을, 애정을 담고 있었으니 말이다.
*
학교엔 구석진 곳이 많았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자주 오지도 않는 곳들. 나는 점심시간에 그 구석진 곳으로 가 몰래 꽃을 뱉어냈다. 누군가에게 내가 꽃을 뱉어낸다는 사실을 들키기 싫었다. 그걸 좀 더 파고든다면 김태형의 귀로 들어가는 일이 싫었다. 이름이 꽃을 뱉어냈다며? 진짜? 그렇데. 누가 봤다던데. 하는 대화들이.
돌에 앉아 손으로 입을 가리고 기침을 했다. 식도를 통해서 올라오는 꽃이 손바닥에 닿았다. 손을 입에서 때어내고 두 눈에 꽃을 담았다. 흰색과 보라색, 두 송이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저께부터 뱉어내는 꽃이 한 송이가 아닌 두 송이로 늘어났다. 감정의 골이 깊어져가고 있다는 신호였다. 나는 돌에서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꽃을 땅에 파묻었다.
*
5교시 시작 10분 전. 평소라면 밖에 나가서 다른 남학생들과 놀고 있을 김태형이 웬일로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이름아.”
“……어, 왜?”
김태형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혹시 어디 아픈 거야?”
“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지금 김태형이 한 말이 내게 한 말이 맞는 건가. 하지만 김태형은 걱정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작게 말했다.
“음, 저, 일부러 보려고 한 건 아닌데 기침을 심하게 하길래…….”
“아, 기침…….”
나는 끝까지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표정을 유지했다. 그래, 기침 정도는 감기에 걸렸다고 대충 말할 수 있으니까.
“응, 감기에 좀 걸려서. 목소리로는 티가 잘 안 나지?”
“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니까. 아무튼 다행이다!”
그리고 대화는 여기서 끝났어야 했다.
“아, 맞아! 너 땅에 꽃 묻던 모습 좀 귀엽더라.”
나는 알게 모르게 내 병을 김태형에게, 당사자에게 간접적으로 들켜버렸다.
*
여자화장실은 확실히 시끄러웠다. 1반의 누가 누구랑 싸웠네, 2반의 누구랑 5반의 누가 사귀네, 하는 소리와 꽃을 뱉는 여자아이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말들 중 내 신경을 한 번에 집중시키는 말소리가 들렸다.
“야, 김태형, 걔 입에서 꽃 뱉었다던데.”
“헐? 진짜? 누가 말해줬는데?”
“5반 애들이 봤데. 김태형이 기침했는데 그다음에 책상 위로 꽃 떨어졌다고 하더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김태형이 꽃을 뱉었다. 김태형이 짝사랑을 한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들리는 말은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근데 그것도 한 송이도 아니고 세 송인가? 그랬다던데.”
세 송이. 나는 그 말을 듣고 그저 가만히 손을 차가운 물에 적셨다.
*
“이름아.”
“응.”
“너도 들었어?”
“뭘?”
“내 이야기.”
“……꽃, 뱉어낸 거?”
“너도 알고 있구나.”
김태형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대답했다. 나는 도대체 김태형에게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걸까. 잘 되라고 응원해야 하는 걸까, 아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방관해야 하는 걸까.
“몇 송이인지도 알아?”
“세 송이라고 들었어.”
“그렇게 디테일하게 퍼졌다니.”
솔직히 말하자면 더 이상 김태형과의 대화를 지속하기 어려웠다. 한 마디씩 대화를 나눌 때마다 금방이라도 꽃이 식도를 타고 올라올 것만 같았다. 숨이 막혀왔다. 가슴이 답답했다. 울고만 싶었다. 짝사랑 상대의 짝사랑 소식을 알아버린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
-나 숙제 좀 도와주라....
저녁 6시, 뜬금없는 김태형의 톡이었다. 많은 친구들이 있는데 굳이 나한테 보내는 이유가 뭘까 생각하면서도 곧바로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
-뭔데?
-국어!
-문제 찍어서 보내줘
-좀 많은데
그냥 만나서 알려주면 안 돼?
-상관없어
아니, 무척 상관있다. 그 많은 친구는 도대체 어디다 두고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건가. 혹시 전에 내가 국어 2등급 나왔다고 자랑해서 그런가. 그런 이유라면 뭔가 앞뒤가 맞는 것 같기도. ……그냥 아무리 해도 국어 2등급 때문이라는 이유는 자기합리화인 거 같았다.
-그럼 학교 근처 카페베네로 나와
-응
나는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가방에 보조배터리와 필통, 그리고 지갑을 챙겨 집을 나섰다. 왜 거절을 못 해서 이 지랄인지…….
카페베네에서 김태형을 만나 같이 문제를 풀어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놀이터에 들렸다. 물론 김태형이 먼저 들리자고 했다. 김태형은 그네에 앉은 뒤 다리로 그네를 설렁설렁 흔들었다. 그리고 나는 김태형 옆에 있는 그네에 앉았다. 어우, 추워. 나는 몸을 살짝 부르르 떨었다.
“이름아.”
“응.”
이상하게 요즘엔 김태형이 이름을 부를 때마다 묘하게 불안했다. 설렘을 동반한 불안감. 김태형은 잠시 뜸을 들이다 내게 말했다.
“너도 꽃을 뱉지?”
역시 그날 들킨 것이 맞았다.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더 구석진 곳에 가서 뱉을걸.
“……뭐, 알고 있을 거라곤 대충 예상했지만.”
“너는 누굴 향해서 뱉었어?”
꽤나 직구로 날아오는 물음에 당황했다. 김태형과 내가 이런 말을 나눌 정도로 친할 사이는 아닌데, 같은 동지니까 서로 잘 해보자는 취지로 하는 말인 건가. 나는 그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네가 내 입장이라면 태연하게 말할 수 있겠니? 되돌아오지 않을 말을 속으로 내뱉었다.
“그럼 넌. 세 송이나 뱉었다면서.”
“어, 나? 나야……, 뭐…….”
김태형은 말을 더듬었다. 내 속은 더욱 타들어갔다. 세 송이, 정말 적지 않은 숫자인데. 김태형은 오랫동안 입을 닫고 있다 이내 결심이라도 한 듯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너를 향해서 뱉었어.”
나는 너를 향해서 뱉었어. 나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꺾어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말했다.
“꽃을 뱉은 건 좀 됐어. 음…… 두 달 정도. 오늘 아침엔 네 송이나 뱉었다?”
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멍했다. 마치 중학생 때 처음 타봤던 비행기가 이륙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김태형의 눈엔 지금 내가 조금 멍해 보일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멍해 보일 것이다.
“내 비밀을 말해줬으니까, 너도 말해줘. 너는 누구를 향해서 뱉었어?”
나는 그의 물음에 숨을 깊게 내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나는…… 너를 향해서 뱉었어, 태형아.”
내 말을 들은 김태형의 표정은 상당히 빠르게 변했다. 멍했던 표정에서 금방 다시 미소를 지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유치원생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게 계속해서 물었다.
“정말?”
“응.”
“그럼 우리 쌍방통행인 거야?”
“그런 거 같아.”
“이거 꿈 아니지? 그치?”
“꿈은 무슨.”
“진짜 너무 좋다. 이름 너도 좋고, 지금 이 상황도 좋고, 놀이터도 막…… 뭔가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
“김태형, 진짜 애가 따로 없어.”
“그래서 싫어?”
“아니. 좋아.”
그리고 그날 밤 이후 꽃을 뱉는 일은 없어졌다.
나도, 김태형도.
-
하나하키 병! 제가 좋아하는 소재!!! 그걸로 글을 쓰는 건 처음인데 장렬하게 망해버림..
역시 대사가 나오면 그 다음부터 필력이 바닥을 기기 시작하는.. 그런.. 역시 저랑 달달은 어울리지 아니해..(울뛰
は암호닉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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