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거액이 한방울씩 떨어졌다. 그것은 경수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주려 애쓰는 것 같이 보였지만, 당사자인 경수는 그저 텅빈 껍데기같은 모습을 한채 메말라 삐걱대는 눈꺼풀로 눈을 깜빡여대고 있을 뿐이었다. 왜 이 지경까지 되도록 치료 한번 안했어요? 의사의 말을 되세기며 종인이 입술을 깨문다. 병실 침대에 앉아 가만히 제 손가락을 내려다보던 경수가, 종인의 작은 움직임을 눈으로 쫓았다. 잔뜩 인상을 쓰며 앉아있는 그 모습은 마치 죄책감을 느끼는 것만 같았다. 어째서 종인이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걸까, 경수는 고개를 작게 갸웃댔다. 어째서 그런걸까, 경수는 문득 답이 떠올랐지만 그저 고개를 갸웃댔다. 어째서 김종인이 죄책감을 느끼는 걸까? 정해진 하나의 답이 경수의 머리 속을 울린다. 경수는 작게 머리를 저었다.
아마도 자신이 헛된 기대를 하고 있는 거겠지.
"경수야, 경수야…."
누군가가 경수의 이름을 부르며 병실 안으로 뛰쳐들어왔다. 경수의 입원을 위해 연락을 취해야했던 경수의 어머니였음이 틀림없었다. 닳아빠진 검은색 단화를 신고 들어온 그녀의 모습에, 종인의 눈썹이 눈에 띄게 찌푸려졌다. 알파의 세계에서만 살았던 종인이었기에, 경수를 제외한 오메가를 한번도 본 적이 없었던 그였기에, 그 모습은 종인에게 충격이었다. 거친 피부에, 각질이 부르튼 입술 끝을 덜덜 떨며, 움푹 파져 새까맣게 침식된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빗자루 같이 빳빳한 머리결을 아무렇게나 묶은 그녀는 약간의 악취를 풍기며 경수의 앞으로 다다가 섰다. 그녀는 오메가들의 인생이자, 삶의 모습이었다. 그 비참함의 단면을 가지고 있는 여자의 모습에 종인은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섰다.
"콩쿨은..? 입상은 했어? 피아노 치는 데엔 문제가 없는거지? 그 교수님은 찾아뵀었고?"
여자는 아들의 입원 소식보다는 피아노를 계속 칠 수 있는 지에 대한 여부가 더 중요해 보였다. 링거가 꽂힌 제 손을 잡으며 말하는 여자의 모습에 경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 어머니란 사람은 피아노를 계속 칠 수 있는거지,라는 말만 할 줄 아는 로봇처럼 중얼거린다. 경수의 얼굴에 체념한 표정과 화난 표정이 뒤죽박죽 섞이었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생각해보면, 이제는 너무나도 지친 것 같다. 방전이 된 몸은 힘을 잃고서 금방이라도 고꾸라질것만 같았다. 제 것이 아닌 것 같은 손가락을 작게 움직이며, 경수가 입술을 달싹댔다.
"...제발, 이제 제발 그만해."
경수의 나즈막한 말에, 여자의 동공이 눈에 띄게 커졌다. 링거를 꼽고 있는 아들의 손을 붙잡으며 여자가 소리쳤다. 너는 피아노를 쳐야 돼, 경수야. 너한텐 특별한 재능이 있어. 너는 특별해져야 해. 알파들의 세계에 들어가서 살아야 할 운명이라고, 듣고있어? 경수야. 억센 손이 마르고 하얀 손을 바득바득 긁어댄다. 경수의 손등 위에 꽂혀있던 링거에 시뻘건 피가 역류되어 올라갔다.
"할 만큼 했잖아. 엄마가 원하는 대로 알파들이 다니는 학교에도 들어왔잖아."
"경수야, 너는 피아노를 쳐야돼. 앞으로도 계속…, 너는 천재니까…"
"<천재>라는 게 나한테 해주는 게 뭔데? 그 좆같은 단어가 내 인생에서 끼친 영향을 엄마가 알고나 있어?"
경수는 제 손등에 꽂힌 링거를 집어던졌다. 날카로운 목소리가 가시가 되어 상황을 곤두서게 만든다. 분노로 인한 떨림이 경수의 작은 몸을 흔들었다. 여자는 제 욕심이 아들의 목을 조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경수는 천재인데, 능력이 있는 아이인데, 알파들과 동등해질 수 있는 그런 아이인데, 그런 아이를 절대로 오메가들의 세상에 끼워넣을 수 없었다. 여자는 아들을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욕심 가득한 그 손에 힘을 더 주었다. 그것이 아이의 숨을 막히게 하는 줄도 모른채.
"경수야. 너는 피아노를 쳐야 돼. 너는 나와 같은 삶을 살아선 안돼."
".....제발. 제발 그만해. 제발,제발,제발,..제발!!!!!!!!"
"경수야, 너는 피아노를 쳐야지만 행복해 질 수 있어. 너 피아노 칠때 행복하잖아. 그렇지? "
여자의 넋이 나간 듯한 목소리에, 경수는 결국 허탈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경수는 웃었다. 뭐가 그리도 즐거운 지 한참동안이나 깔깔대며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너는 나와 같은 삶을 살아선 안돼, 경수야. 행복해 져야 돼. 행복해야 돼. 행복하려면 피아노를 쳐야 해. 알파들의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려면, 그렇게 해야 돼.
너 피아노 칠때 행복하잖아, 응? 행복하지, 경수야?
여자는 계속 중얼댔다. 경수는 실성한 듯이 웃음을 터트리고 있을 뿐이다. 금방이라도 절벽 아래로 내다꽂혀 온몸이 산산조각 날 껏 같았다. 그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피아노를 치던 내 손,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내는 내 손, 사람들의 박수를 받던 내 손, 천재라고 칭송받던 내 손, 내 목을 조르고 있는 내 손, 나를 망가트리고 있는 내 손. 허탈한 웃음이 입가를 비집고 흘러나온다. 경수는 신경질적으로 그 손을 아무렇게나 휘저었다.
어쩌면 나는 너무나도 지쳤는지도 몰라.
경수의 시선이 창가로 닿였다. 종인은 순간 움찔했지만, 종인이 반응하기도 전에 경수가 창가에 놓인 화분을 집어들며 내던져 버렸다.
엄마, 나 있잖아. 사실 나….
화분이 처참하게 박살났다. 박살 난 날카로운 파편을 경수의 하얀 손이 집어든다.
피아노 같은 거, 치고 싶지 않았어.
경수의 하얀 손이 파르르 떨렸다. 징그러운 통증이 손가락 끝을 휘저어왔다. 한번에 손등을 통과해버린 날카로운 화분 조각을 바라보며 경수는 알 수 없는 미소를 띄었다. 제 왼손을 날카로운 파편으로 박아버리며 망가뜨린 경수는 시선을 돌려 여자를 보았다.
"엄만 내가 행복해 보여…?"
피아노를 치기를 강요받으며, 피아노 밖에 모르고 살았던 자신의 삶을 제 손으로 박살낸 그는, 그저 쓴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던 그 손에는 선율대신 지독한 냄새를 내뿜는 붉은 피 만이 생겨났다. 하얀 침대시트를 피가 더럽힌다. 울퉁불퉁한 날카로운 파편에 찔린 왼손이 덜덜 떨려왔다. 너무나도 순식간의 일이었기에 종인이 끼어들 작은 틈새조차 없었다. 종인은 그저 다리를 바삐 움직여 의사를 부르러 가야했다.
제 모든것을 망가뜨린 경수는, 웃으면서도 울고 있었다.
경수가 제 손을 찌른 뒤 이주일이나 지났다. 손은 완벽히 박살났다. 그것은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붕대로 칭칭 감겨진 제 왼손을 바라보던 경수가 작게 눈을 깜빡였다. 그토록 싫어하던 피아노 였는데, 하루에도 수십번씩 제 손을 찔러 망가뜨리는 상상을 하던 그였는데, 막상 실제로 망가지자 알수없는 감정이 목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이상했다. 도저히 개운하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서글펐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인생을 송두리째 태워버린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그러할께, 경수의 인생에서 피아노는 경수의 전부였다. 비록 싫어했고, 강요로 인해서 치긴 했지만 경수를 빛내주고 경수가 누구인지 알려주던 것이 피아노였다. 짧은 인생이지만, 그 인생을 살면서 해왔던 게 오로지 피아노였다. 그런데 이제 다시는 피아노를 칠 수 없다. 경수는 멍한 눈으로 문을 바라보았다. 의사나 간호사 외엔 아무도 열지 않는 저 문. 경수 인생의 전부였던 피아노가 사라짐에 따라서 그 누구도 경수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김종인 역시 그랬다.
"도대체 왜 그랬어."
그 말은, 왼손에 감긴 붕대를 바라보며 종인이 경수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었다. 경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망가진 제 손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오히려 종인은 울 것 같은 표정을 하며 그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울음을 참는 것이 느껴졌다. 경수는 그런 종인에게 손을 뻗었다. 시체같은 경수의 손이 종인의 뺨을 쓸자, 종인은 울음을 터트려버렸다.
도대체 왜 그랬어.
종인은 그 말을 되풀이 하며 울었다. 경수는 그런 종인을 달래주듯이 계속 뺨을 쓸어주었다. 종인의 눈가가 빨갛게 달아올라 세모꼴이 되었다. 경수는 그런 눈가를 매만졌다. 매끈한 얼굴선도, 코 끝도, 부드러운 턱선도. 이제껏 만지고 싶었던 종인의 얼굴을 그는 만지며 흘러내리는 종인의 눈물을 닦아준다. 짭짜름한 그의 감정이 경수의 손가락 끝으로 와닿았다. 종인이 왜 슬퍼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듣지 못하는 것에 대한 서러움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경수를 슬프게 했다.
"도대체 왜 그랬어."
아무도 오지 않는 병실에서, 경수는 종인이 자신에게 했던 마지막 말을 중얼거렸다. 목소리는 떨림이 없었다. 오히려 나른했다. 도대체 왜 그랬어. 경수는 계속 그 말만 할 줄 아는 인형처럼 중얼댔다.
이딴게 오메가들의 삶이니까.
멍한 상태로 중얼대던 경수가 허공에 제 손을 올려다놓았다. 발가락 끝이 멋대로 움직이며 페달을 밟아댔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진다. 경수는 자신이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아마도 종인이 저를 처음 봤던 게 그 순간이었을꺼다. 경수는 허공에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망가진 제 왼손은 자꾸만 삐그덕댔다. 덜덜 떨려왔고, 움직일때마다 근육들이 당겨와 손이 부숴질 것만 같았다. 더 이상 경수는 완벽하게 연주를 해내지 못했다. 경수는 관객석을 둘러봤다. 저 멀리서 종인이 등을 돌린채 빠져나가고 있다. 따뜻했던 등만을 보인채, 저 멀리로.
경수는 그제서야 아이같은 울음을 뱉어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병실 안은 그 울음소리로 가득찼다. 금방이라도 숨이 꺾여질 것 같이 끅끅 대며 흐느끼던 경수는 제 무릎을 세워 감싸안았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으며 그는 계속 울었다. 더 이상 피아노를 완벽하게 쳐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종인이 다시는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 꺼란 것을 의미했다.
이딴게 오메가들의 삶이니까.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알고 있었다. 종인이 관심있었던 것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연주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자신을 찾아올때마다 종인이 원했던 것은 경수의 연주였다. 아주 노골적으로 연주를 요구했기 때문에 착각할 수 조차 없었다.
이딴게 오메가들의 삶이니까.
허나 어느새 자신은 착각을 하고 있었다.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자신에게 뻗어주는 그 따뜻한 손을 보며, 경수는 어느새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해져 경수는 웃음을 뱉어냈다. 울음과 웃음이 뒤섞여있는 모양새라 그 소리는 매우 괴기스러웠다.
이딴게 오메가들의 삶이니까.
경수는 흘러내리는 제 눈물을 아무렇게나 닦았다. 예상하고 있었잖아. 알고 있었잖아. 김종인이 좋아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연주였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었잖아. 망가진 왼손이 처참하게 떨려왔다. 어차피 이 손을 망가뜨린 건 나야. 그러니 더 이상 버림받은 기분에 사로잡혀 울지말자. 내가 망가뜨린 거야. 애초에, 내가 김종인이 사랑했던 것을 부순거라고. 바보같이 난 뭘 기대했던 걸까? 알파와 오메가 사이의 벽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더 뭘 바랬던 거야? 알고 있잖아. 이딴게 오메가들의 삶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잖아. 괜찮을꺼야. 어차피 이런거 익숙하니까. 괜찮아 지겠지, 아마도.
이딴게 왜 익숙해.
숨이 꺾여질 것 같은 울음소리는 더 커졌다. 종인이 자신에게 해줬던 말을 상기하던 경수는 터져나올 것 같은 울음을 참지 못하고서 결국은 더 크게 울어버렸다. 제 무릎을 감싸안은 손에 더 힘을 주었다. 왼손이 따끔대며 아파온다. 얼굴을 무릎사이로 더 쳐박으며 경수는 운다. 온 몸에 신경을 곤두세웠던 그여서, 힘을 주어서는 안되는 왼손에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익숙해져버린 저릿한 통증이 왼손을 지배해온다. 경수는 울면서 생각했다.
모든 것이 끝났다.
맞은 뺨을 어루만지며 종인이 창가에 얼굴을 기대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차 만큼, 풍경들이 빠르게 창문을 스쳐지나갔다. 짙은 어둠이 깔린 도시를 밝히는 오렌지 색 가로등 불이 빠르게 스쳐지나가며 선을 이룬다. 창 밖의 풍경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경수의 새까만 눈동자를 볼 때마다 느꼈던 그 고요였다. 너무나도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사실은, 아무것도 담기지 않아 평화로워 보였을 뿐이었지만.
허나 그 평화로운 광경을 종인의 폰 진동소리가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발신인은 누군지 보지 않아도 뻔했다. 자신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틀림 없겠지. 종인은 전화를 받지 않은 채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맞은 뺨은 부어올라 계속 아파오는 것만 같다. 종인은 약간 딱딱한 차 시트에 몸을 기대고서 눈을 감았다. 어머니는 울었다. 아버지는 소리쳤다. 고작 오메가 따위에 네가 그런다고? 남자의 억센 손이 소년의 뺨을 후려쳤다. 아마도 아까의 제 말에 분노한 것이 틀림 없겠지. 종인은 입술을 꾹 깨물며 아려오는 뺨을 쓸었다. 경수가 제 뺨을 쓸어주며 달래던 그 때가 생각나 울컥 눈물이 맺힐 뻔 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원하시던 유학, 지금 갈께요.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요.
종인의 떨림 없는 목소리가 차근차근 그 조건에 대해 설명했다. 어머니는 울었고, 아버지는 소리쳤다. 고작 오메가 따위 때문에 네가?! 남자의 억센 손이 종인의 뺨을 후려친다. 폭언이 이어졌다. 오메가에겐 줄 동정심조차 아깝다는 내용이었다. 발정기가 되면 알파를 찾아 나서는 오메가 따위가 뭐가 좋으냐고 묻는다. 경수를 가리켜 남창이라 일컬었다. 종인은 그저 눈을 깜빡였다. 경수는 이런 상황을 겪어도 익숙하니까 괜찮다고 말을 할까? 왠지 고개를 끄덕일 것 같은 경수의 모습에 서글퍼지는 그다. 자신이 오메가가 아닌대도 화가 났다. 경수가 오메가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오메가로 살 만큼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던 것도 아니다. 오메가라는 이유로 그렇게 비참하게 살 필요는 애초에 없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라는 말을 누군가는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는 놀랍게도 오메가가 아닌 알파였다. 종인은 그 누군가가 왜 그런 말을 했는 지 그제서야 깨달았다. 종인의 흔들림 없는 눈빛이 제 아버지를 향했다. 한치 흔들림도 없는 아들의 모습에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절대 안돼. 절대. 네가 죽는다 하더라도 안 돼. 단호한 말로써 아들을 뒤흔드려 하는 아버지지만, 아들은 흔들릴 기미조차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종인은 아버지를 설득해냈다. 이주라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버지는 제 얼굴을 보려 하지 않으려 했다. 경수를 보러 병원에 가겠다는 그 말에 다시끔 제 뺨을 후려쳤다. 미국으로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마. 아버지의 단호한 말에도 종인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죽었다 깨어나도 종인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남자는 한숨 쉬며, 아들이 나간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끼익, 한참을 달리던 택시가 부드럽게 멈춰섰다.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종인이 눈을 떠 자신이 도착한 곳을 보았다. 경수가 입원해 있는 병원의 모습이 두 눈에 담긴다. 그 눈동자가 경수가 입원해 있을 병실의 창문을 쫓았다. 불이 켜져 있었다.
"감사합니다."
종인이 택시 기사에게 돈을 지불한 뒤 차문을 열고 내렸다. 발걸음은 가벼웠다. 아직도 종인의 폰은 미친 듯이 울려대며 전화가 오고 있었지만, 종인은 전화를 받지 않은 채 경수가 있던 병실로 가는 엘레베이터를 탔다. 폰은 울리다가 꺼지고, 다시 울리다가 꺼지는 것을 반복했다. 자꾸 전화가 오는 것이 귀찮고 짜증났던 나머지 종인은 결국 핸드폰에서 배터리를 빼내어 분리시켰다.
병실로 가는 걸음은, 처음에는 가벼웠지만 점점 무거워졌다. 내가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한발자국 걸을때마다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가까워졌다. 새까만 어둠에서 삐져나오는 울음소리에 종인은 울고만 싶어졌다. 경수가 우는 것이 너무나도 싫어서, 종인은 경수가 울게 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지만 어떻게든 경수는 울고 있었다. 경수가 우는 게 싫다. 괴로워하는 게 싫다. 허나, 내가 그 울음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고작 나 따위가? 내가 널 웃게 만들 수 있을까? 내가 너를? 네가 망가지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가, 그런 내가 감히 너를?
"도경.."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을때, 종인은 삐져나오려던 제 목소리를 다시 삼켰다. 웅크린 채로 경수는 울고 있었다. 저 울음의 원인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기에 차마 어떠한 말을 꺼낼 수 조차 없었다. 짙은 어둠이 깔린 창밖은 고요했다. 그 숨막히는 고요에 종인이 떨리는 손길로 울고있는 경수의 머리칼을 쓸었다. 심심찮은 위로의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저 혀로 말라비틀어진 입술만 축이며 종인은 안쓰러운 시선으로 경수를 내려다보았다. 작은 떨림을 내는 왜소한 체구가 오늘따라 더욱 더 작아보였다.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낙엽만 같았다.
누군가가 다가오자 경수는 멍청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울어서 엉망이 되어비린 얼굴이 종인의 눈가에 담긴다. 둘의 시선이 마주했다. 서로의 시선 끝에 서로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흉터처럼 지독한 잔상이 서로의 눈동자에 담겼다. 경수는 눈을 깜빡였다. 꿈이 아닌 것 같은데, 종인이 자신의 눈 앞에 서있었다. 손을 뻗어 그를 만져보려 했으나, 자신의 더러운 손이 닿이면 투명하리 만큼 깨끗한 종인이 더럽혀지진 않을까 경수는 망설였다.
허공을 멤도는 그 손길을 종인이 잡았다. 따스한 온기가 다시끔 경수의 온 몸에 퍼져나갔다. 울고 있는 그 뺨을 쓸어주며, 종인이 맞아서 터진 입술을 비죽이며 말을 꺼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
경수는 눈을 깜빡였다. 꿈이 아니었다. 멍청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갔다. 피아노를 치지 못하는 데도 종인은 자신을 찾아왔다.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랬다.
"나랑 같이 미국에 가자. 경수야."
종인의 나른한 목소리에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그곳에 가서 나랑 같이 살자. 네가 원한다면 손도 치료받고, 그곳에서 살자."
경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다시 울음을 터트릴 뿐.
"손 재활부분에서 유명한 박사님이 계시대.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재활치료를 받으면 다시 피아노를 칠 수 있을 지도 몰라."
"나한테 도대체 왜 이래..?"
울음이 비집고 나오는 목에서 겨우겨우 경수가 말했다. 종인은 울고 있는 경수의 뺨을 잡고서 대답했다.
"저번에 말했잖아."
좋아하니까,
자신을 보며 했던 종인의 말이 경수의 머리속을 헤집는다. 종인이 울고있는 경수의 입가에 제 입을 가져다댔다. 종인의 키스 때문에 막힌 입 사이로 경수는 울었다. 울고싶지 않았는데도, 그냥 눈물이 났던 것 같다.
바스락. 낙엽이 바스라지는 소리와 함께 종인이 나타났다. 단정히 옷을 챙겨입은 경수가 저를 향해 걸어오는 종인을 보고서 짧게 손을 흔든다. 흉터가 남은 손이 공간을 휘적였다. 종인은 웃으며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경수에게 다가가 경수의 손에 들린 짐가방을 들었다. 어설프게 맨 목도리를 다시 메주며, 경수의 약간 차가운 것 같은 손을 잡아 제 코트 주머니 안으로 집어 넣었다.
경수의 퇴원날이었다. 11월의 초겨울바람은 꽤나 쌀쌀하고 매서웠다. 경수의 연주처럼 날이 선 느낌도 없지 않아있었다. 이제는 피아노를 칠 수 없는 그 손을 매만지며 종인이 경수와 눈을 맞췄다. 경수는 작게 인상을 쓴다. 나 때문에 이럴 필요는 없잖아. 작게 얼버부리며 말하는 그 말에 종인은 그저 미소를 지었다. 너 때문이니까 충분해. 종인의 대답이 못마땅한 경수는 제 발에 채이는 수많은 낙엽들을 아무렇게나 걷어찼다. 바스라지는 낙엽들이 공중으로 흩어올랐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행선지는 명확했다. 경수가 작게 비틀대며 느리게 걷자, 종인이 그 보폭을 맞춘다. 그런 종인의 배려에 경수는 옅게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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