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자들의 시간 01
w. 하프
끼익, 숨이 막히도록 짙은 어둠과 정적만 가득하던 집의 문이 열리는 소리는, 유난히 더 요란스러웠다.
그리고 문이 열림과 동시에 쏟아지듯 품으로 달려오는 사람의 온기에, 민석은 오늘도 입술을 꾹 깨물었다.
“ 민석아…, 민석, 민석아……. ”
애절하게 불러오는 이름과 덜덜 떨려오는 손길은 지겹도록 변한 것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떠나갈 사람을 붙잡은 듯 불안하게 민석을 껴안은 루한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되는 일상은 언제나 숨을 조여온다. 자신에게 애처롭게 매달린 사람의 눈물로 어깨가 젖어가는 것을 느껴가면서도, 민석의 두 눈은 피곤함과 무료함을 감추지 못했다. 가슴이 답답하도록 끌어안고서도 뭐가 그렇게 불안한 지 수십번을 고쳐 안는 사람이 안타깝지도 않은 것인지, 민석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였다. 표정 없는 민석은 그 어떤 감정도 표출하지 않았다. 도무지 놓아줄 생각을 않는 루한에, 결국 민석이 짜증섞인 목소리를 꺼내들었다.
“ 이제 좀 놔,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거야. ”
불쾌함이 가득 담긴 그 목소리에 민석의 온기 하나 놓치지 않으려 양 팔 가득 힘을 주던 루한의 몸이 덜컥, 떨려왔다. 루한은 애써 못 들은척 민석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지만, 곧이어 들려온 짙은 한숨소리에 다시금 덜덜 손이 떨려올 수 밖에 없었다. 놓치고 싶지 않았고, 미움 받고 싶지 않았다. 지지 않겠다는 듯 서로 맞붙은 두 욕망은 루한의 머리 속에서 불이 붙었고, 언제나처럼 승자는 뻔히 정해져있는 싸움이였다. 미움 받고 싶지 않아. 꽁꽁 묶인 듯 자신을 감싸던 루한의 팔에 스르르 힘이 빠지는 걸 알아채는 순간, 민석은 가볍게 루한을 밀쳐내고 신발을 벗었다. 풀이 죽은 루한의 눈이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 촉촉히 젖어들었다. 품에 가득하던 온기가 사라지고 난 후에는 언제나 찾아오는 숨막히는 상실감에 루한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민석을 뒤쫓았지만, 자신을 속박하던 양 팔에서 벗어난 민석은 미련없이 목을 조르던 넥타이를 벗어던졌다. 셔츠 단추까지 두어개 풀었음에도 답답함은 풀릴 기미가 없었다. 그리고 그 답답함의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은 민석, 본인 이였다. 신경질 적인 시선의 끝에 걸린 루한은 불안한 눈초리로 자신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초조하게 흔들리는 와중에도 그 커다란 두 눈에 가득한 것이 자신 뿐이라는 것이, 오늘도 기가 막혔다.
“ 차라리 예전이 더 낫다. ”
“ ……. ”
“ 그땐 그냥 서럽게 울면서 니 욕이나 하면 살것 같았는데. ”
“ ……. ”
“ 왜 이렇게 됐냐, 넌. ”
“ ……민석…. ”
“ 사람을 어디까지 비참하게 할 수 있는 지를 몸소 보여줬던 니가, 지금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
“ ……민석아…. ”
“ 역겨우니까 부르지마. ”
“ ……. ”
“ 질린다, 정말. ”
“ ……. ”
" 예전의 너도, 지금의 너도. "
바들바들 떨며 날카롭게 날이 선 민석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받아내던 덩치 큰 강아지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보는 사람이 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저려올 만큼, 루한은 소리 한 자락 내지 못하고 서럽게 눈물만 뚝뚝 떨어트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감정없이 바라보던 민석도, 결국에는 토해내듯 뱉어내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려버렸다. 가시 돋힌 말을 서슴없이 내뱉은 후 상처받은 사람은 루한 뿐이 아니였다. 그 말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던 루한도, 감정 한자락 흘러나갈까 피도 통하지 못하게 주먹을 꽉 쥐어야 했던 민석도, 가슴이 찢겨나가고 피가 흘렀다. 치유해줄 사람 하나 없이 오로지 둘의 숨소리만 가득한 넓은 집에서, 민석은 질끈, 눈을 감았다.
우린, 도대체 왜 이렇게 돼 버렸을까.
::
루한은 이기적인 남자였다.
세상에 이렇게 불공평한 일이 더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모두 가진 채 세상에 태어났던 사람이였다. 부족할 것 하나 없이 말 한마디로 다른 사람을 눈 앞에 무릎 꿇게 할 수 있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루한이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건, 있을 수가 없었다. 태어나 처음 울음을 터트렸던 그 순간부터, 루한에게 안 되는 일이란 없었다. 모두 다 그에게 잘 보이려 꼬리를 흔들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루한은 내킬 때 손이나 한번 흔들어 주면 그만이였다.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는 여자들이 지겨워 중국을 떠난 건 고등학교를 마칠 때 쯤이였다.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보내주겠다 약속하는 자신의 아버지 앞에서, 루한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국을 골랐다. 어머니의 나라, 어릴 때 잠깐 지냈던 그 곳을 루한은 언제나 갈망했었기에.
그 곳에 살게 되었다 한들 변하는 것은 딱히 없었다. 루한은 여전히 풍족했으며,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이기적인 남자였다. 잘생긴 얼굴을 앞세워 환심을 사고 나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루한의 주위에 몰려들었고, 머지않아 알게 되는 루한의 뒷배경에 관계는 더 우호적으로 변할 뿐이였다. 대학교를 졸업하며 서툴던 한국어를 완벽히 구사하기 시작하자, 한국에서 열렸던 루한의 두번째 인생은, 더욱 더 빛을 발했다. 아버지의 입김 몇번으로 쉽사리 좋은 회사에 취직 할 수 있었고, 설렁설렁 시간만 떼워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비탈길 하나 없는 루한의 주위엔 언제나 그의 사랑을 갈망하는 여자들로 가득한 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그리고 민석은, 셀 수 조차 없는 루한의 연인 중 한명이였다. 아니, 어쩌면 그에겐 연인이라는 단어 조차 허락되지 않았던지도 모른다. 민석은 루한이 진두지휘하던 부서의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었고, 입사하는 첫날부터 루한의 눈에 띄어 은밀한 관계가 시작되었다. 루한은 주기적으로 민석을 불러들였고, 사르르 녹아버릴 만큼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섞었다. 목적을 이루고 나면 종적을 감추는 그 미소 한 자락이 그리워서라도, 민석은 그 자리를 포기하지 못했다. 잠자리를 함께 할 때마다 귓가에 속삭여준다는 사랑한다는 말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믿고 싶었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며 가슴이 철렁하도록 따뜻하게 웃어주었을 때부터 예견되있던 일이였다. 민석은, 루한을 사랑했다. 사랑했기에, 루한이 자신을 안아올때마다 풍겨오는 다른 여자의 짙은 향수 냄새도, 루한의 일부로 받아들여 참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영원할 것만 같던 둘의 관계에도, 끝은 존재했다. 여느 날처럼 수십번 거울을 확인하며 옷 매무새를 다듬고 회사에 도착한 민석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루한이, 결혼한다. 부서 사람들에게만 특별히 먼저 소개시켜준다며 뿌듯한 얼굴로 여자의 손을 꼭 잡고 따뜻하게 여자를 내려다보던 루한을 지켜보던 민석은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모든 것을 다 알면서도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가, 사라져 버렸다.
머지않아 다른 여자의 남자가 될 사람마저 품어줄 만큼, 민석은 마음이 넓지 못했다. 당연히 그 소식과 함께 두 사람의 관계는 끝이 나야했다. 자신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까지도 여자의 손을 놓지 않던 루한이였으니, 대답은 그걸로 충분했었다. 민석은 회사를 그만두었고, 핸드폰 번호를 바꾸었으며, 루한의 앞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극의 시작을 알렸다.
자신 하나 사라진다고, 세상 무서울 것 없던 루한이 변할 거라고는, 당연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마음 편하게 회사를 그만두었고, 홀로 이별여행을 떠났다. 몸을 섞고 나면 인심쓰듯 루한이 건네주었던 산더미같은 돈을 펑펑 낭비하려 무작정 떠났고, 여행은 길어졌다. 찬 바람이 쐬고 싶어 시작한 여행은 꼬리의 꼬리를 물었고, 루한에게 모두 주었던 몸과 마음을 씻어내자 마음 먹은 순간부터 여행은 그렇게 길어졌다. 그리고 꼬박 한 달이 흘렀을 때 쯤에야, 민석은 루한을 추억으로 남길 수 있었다. 잠깐, 아주 잠깐이였지만 내 몸과 마음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았던 남자, 그것이면 충분했다. 민석은 홀로 거닐던 바닷가에서 모든 짐을 내려놓았고, 상처받고 흉이 진 마음을 씻어내렸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리라 마음 먹었다. 그렇게 끝이 없을 듯 이어지던 혼자만의 이별여행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던 날, 민석은 철렁,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자신의 집 앞에 쓰러지듯 주저앉아 있는 남자는 얼굴을 보지 않아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한 달동안 그렇게 힘겹게 끊어냈었던 남자, 이제는 정말 추억으로 남게된, 과거의 남자. 그랬기에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고, 쉽사리 이름을 불러 보지도 못했다. 민석이 할말을 잃고 그렇게 한참동안 루한을 보고 있을 때 쯤, 죽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의 고개가 들렸고, 시선을 피할 여유도 없이 그의 얼굴을 보았던 민석은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 멈춰버릴 수 밖에 없었다.
‘ 민석…, 김민석……, 민석아…. ’
그 고귀하던 남자가, 어미를 잃은 강아지처럼 서럽게 울고 있었다. 자신이 그렇게나 좋아했던 잘난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젖어있는 모습을 본 그 순간부터 민석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눈 앞에 남자는, 더이상 자신이 알던 루한이 아니라는 것을.
::
“ 민, 민석아, 오, 오늘도 늦, 늦게 들어올거야…? ”
갓 구운 토스트 하나를 입에 물고 셔츠 단추를 잠구던 민석은, 달달 떨려오는 목소리로 물어오는 질문에 거울 너머의 루한에게 시선을 두었다. 직접적으로 마주친 시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울로 한번 걸러진 그 시선에 루한은 덜컥 굳어버렸다. 민석이가, 나를 보고있어. 터질듯 심장이 뛰었고 자신의 모습이 초라할까 금새 마음이 초조해졌다. 여느때처럼 무덤덤하게 루한을 바라보던 민석은 슬슬 가슴이 답답해졌다. 얹힌 듯 꾹 숨을 조여오는 답답함에 먼저 고개를 돌린 것은 언제나처럼 민석이였고, 제게 향해있던 시선이 떨어짐과 동시에 세상을 잃은 듯 풀이 죽는 루한도 다를 것이 하나 없었다.
“ 어. 늦게 들어올거야. 안 들어올 수도 있고. ”
“ 아…, 아……. ”
거짓말이였다. 민석은 오늘도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했다.
루한이 항상 자신이 집을 나감과 동시에 밥 한 숟가락 뜨지 않고 현관문 앞에 쪼그려 앉아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민석이 눈 앞에 보이지 않으면 루한의 세상은 그대로 멈춘다. 민석이 없으면 그렇게 어둠 속에 쪼그려 앉아 눈물만 뚝뚝 흘리는 주제에 행여나 민석이 자신을 미워할까봐 가지말라고 응석 한번 부려보지 못한 루한이였다. 자신이 나갈때마다 울상을 짓고 발을 동동 구르는 루한에게 관심없는 척 고개 한번 돌려주지 않았지만, 민석은 루한의 행동 하나하나를 다 눈에 담아내고 있었다. 늦게 들어온다는 말 한마디에 오늘 하루종일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을 훌쩍일 루한을 알면서도, 민석은 빈말으로라도 좋은 소리 하나 해주지 않았다.
“ 안, 안 들어오면 안 돼, 자, 잠은 집에서 자, 자야되는거야. ”
밥 먹듯이 여자에 취해 호텔에서 아침을 맞이하던 루한도, 잠은 집에서 자야 되는 걸 알고는 있었구나. 과연 그 때의 루한이 제 집에서 잠을 잤던게, 몇일이나 될까. 민석은 씁쓸하게 웃으며 넥타이를 정리했다. 용기내어 건네본 설득에도 민석에게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루한의 마음은 더더욱 초조해졌다. 민석아…, 초조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부르려던 이름조차 목구멍에 순간 턱, 걸려버렸다. 역겨우니까 부르지마. 싸늘한 표정으로 제게 돌아왔던 날카롭던 말이 아직까지도 잔뜩 날이 서 뾰족하게 심장을 찌르고 있었다. 민석이 싫어하기에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눈가가 촉촉히 젖어오는 것은 순식간이였다. 민석이 눈 앞에서 살아 숨쉬는 것을 확인하면서도 가슴이 불안했다. 자신이 손끝하나라도 건들이면 바스스 부서져버릴 것 처럼, 민석은 위태롭다. 당연히 곁에 있어야 했을 민석이 처음으로 사라진 그 때의 사건 이후로 온전치 못한 정신임에도 민석이 당장이라도 날아가버릴 것 처럼 위태롭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고개를 돌릴 때 마다 루한은 눈물을 흘린다. 자신의 시선이 조금이라도 오래 제게 떨어져 있으면, 루한은 모든 것을 다 잃은 사람처럼 덜덜 떨며 소리 한자락 내지 못하고 그렇게 눈물만 뚝뚝 흘린다. 그래서 민석은, 루한을 내쫓을 수 없었다. 민석의 앞에서 그렇게 당당하던 사람이, 관계가 끝난 후 한 번만 더 키스해달라고 보챌 때면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말없이 담배불을 붙이던 그 무심한 사람이, 민석 하나 때문에 서럽게 눈물을 흘린다. 독해지자, 모질게 굴자 수십번 다짐하고 다짐해도 저렇게 우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은 속수무책으로 유해진다.
가만히 거울 너머의 루한의 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꾹 깨물던 민석이 가방을 챙겨들고 신발을 챙겨신었다. 그때까지도 애써 눈물을 참으려 노력하며 숨을 고르던 루한이 화들짝 놀라 민석의 뒤로 따라붙었다. 갈 곳을 잃은 손이 허공에서 정처없이 머물었다. 당장이라도 가지말라고 울며 떼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음에도, 루한은 민석의 옷자락 하나 잡아 쥐지 못했다. 저도 모르게 민석에게로 뻗어지는 손을 애써 쥐어보던 루한이 금새 울상이 되었다. 느릿느릿 신발을 챙겨신던 민석이 흘끔, 루한을 돌아보았다.
“ 나 기다리지마. ”
다녀올게.
민석은 오늘도 진심을 꾹, 눌러 담았다.
갑자기 삘 받아서 쓰는 글이라 아직 제목도 없어서 그냥 저능아, 하고 달아놨네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만약에 반응이 좋으면 정식으로 연재 시작하고, 제목도 수정하겠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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