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written by. 여자친구 "명수야, 나 이제 힘들다…" 3년 전, 이 맘때쯤이었을꺼다. 그 때도 이렇게 선선한 봄바람이 불고있었으니깐… 유난히도 눈이 이뻤던 그 아이는 나의 말에 언제 웃고있었냐는듯, 웃음기를 지우고 표정을 굳혔다. 한참을 아무말없이 서로 바라보고만있다가, 그 아이가 이번에는 또 왜이러냐며 슬픈표정, 슬픈목소리로 나에게 되물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두려워, 우리도 이제 다른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자…" 나의 말에 그 아이는 믿을수없다는듯 슬픈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자기가 다 잘못했다며, 더 잘할테니깐 제발 그런소리 하지말라며 내 손을 잡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아이를 말없이 한참을 바라보다가,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그 아이를 떠나왔다. 이성열!!! 이성열!!!!! 성열아..!!! 형!! 악을쓰며 나를 부르는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긴했지만, 나는 애써 못들은척을하며 걸음을 더 빨리했다 유난히도 눈이 이뻤던 그 아이의 이름은 명수, 김명수였다. 명수야, 니가 나를 그리워할수록 너만 힘들어져… 미안해. 이제 그만 서로 잊고 평범하게 그렇게 살자. 2년… 짧다면 짧고,길다면 긴 연애기간이였지만.. 그 때동안은 정말 사랑했어. 그리고 3년이 흐른 지금도 나는 너를 많이 사랑하고있어.
* * *
"골수이식 받으셨다고 안심하면 안되는거 아시죠?" "네, 압니다. 알아요. 벌써 몇번째되묻는거에요?"
"그렇지만, 원장님께서…"
30분 전부터 계속되는 김간호사의 질문에 성열은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다. 아니 알겠다니깐 몇번이나 물어보는거야!! 엄마도 진짜 내가 죽을병걸린것도 아니고, 재발할 확률도 적다면서 왜이렇게 호들갑이야?! 성열은 한참을 혼잣말로 중얼중얼거리더니, 아직도 자신의 옆을 지키고있는 김간호사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김간호… 아니, 민정누나. 엄마한테 똑똑히 전해드려요. 내 몸은 내가 알아서 간수한다고." 성열의 말에 김간호사는 아무말도 못하고 큰 눈으로 성열을 바라보다가, 가방을 고쳐매고 나가는 성열의 모습에 정신이 번쩍드는듯 고개를 두어번 젓더니, 이미 긴다리로 멀리까지 휘적휘적걸어가고있는 성열을 향해 소리쳤다. 성열씨!! 항상 돌조심,사람조심,차조심… 어, 그리고, 음.. 또 뭐지? 뭐였더라?! 김간호사는 병원장이 알려준 성열의 사대규칙을 성열에게 알려주지는 못할 방정, 도히려 자신이 까먹었다는 사실에 멀어져가는 성열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다시 업무를 보러 간호사실로 발걸음을 돌리는데, 딱딱하고 뾰족한것들 조심, 맞죠?! 라는 성열의 외침이 들리자, 간호사실로 돌렸던 발걸음을 다시 성열에게로 돌려 기쁜 목소리로 네!!! 맞아요~!! 라고 외쳤다.
성열은 기뻐하는 김간호사를보면서 살짝 미소를짓다가 3층입니다.라는 엘리베이터 소리를 듣고, 엘리베이터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1층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소리에 성열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와 병원을 잠시 둘러본후, 크게 한번 숨을 들이킨뒤, 병원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술 후, 오랫만에 맡아본 바깥공기는 성열에게 너무나도 달콤하고 상쾌한 향기로 다가왔다. 4월의 중순, 그렇게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따스한 공기에 성열은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펴준뒤, 오랫만에 친구나 볼까하는 생각으로 휴대폰 홀드를 풀어 전화를 걸었다. "정남아!!"
[아 씨, 정남이 아니고 정은이라니… 잠깐, 누구세요?] 꽤 길었던 신호음이지나고, 정은이 받자마자 장난스럽게 정은이 제일 싫어하는 별명을부른 성열은 변하지않은 정은의 목소리에 살풋 미소를 지었다.
"서운한데, 벌써 이 오라버니 목소리도 까먹고 말이야." [아니, 누구신데 그러세… 헐, 설마 너 이성열임? 내가 아는 그 이성열 맞아?] 별 미친사람을 본다는듯 짜증을 내던 정은은 뒤늦게 휴대폰 액정에 뜬 성열의 이름을 확인한 뒤, 꽤나 놀란듯 평소보다 한층 더 높아지고 흥분된 목소리로 자신이 아는 그 성열이 맞냐며, 한참을 되물었다. "그래, 오랫만에 성열님이 한국으로 컴백 좀 해주셨다. 보고싶었냐?"
[지랄, 똥싸네… 너 이새끼 그래도 이 누님이 많이 보고싶었다.] 성열과 통화하는 내내 말은 비꼬는듯이 하는 정은이었지만, 그래도 내심 성열이 정말 그리웠었는지 마지막에는 보고싶었다는말과 함께 오랫만에 잘생긴 우리 성열이 얼굴이나 보자며 웃었다. 성열은 자신도 그럴 생각이었다며, 언제 시간이 되냐 물었고. 정은은 귀하신 우리 성열님이 부르신다는데 그깟일이 중요하겠습니까? 라며 언제든지 달려갈테니깐 불러만 달라고 말했다. "난 지금 보고싶은데?" [예,예 성열님이 보고싶다는데 뛰어가야죠~ 어디에서 뵐까요?]
"하늘공원, 거기에서 보자."
[알겠어, 금방 갈께 기다려!]
그래도 오랫만에 보는 녀석인데, 선물은 사줘야겠지? 정은을 볼 생각에 들뜬 성열은 근처 악세서리점에 들어가 정은에게 어울릴만한 팔찌를 구입한다음 그리 멀지않은 거리에 있는 정은과의 약속장소로 걸어갔다. 신호등이 많아서 생각보다 약속장소에 늦게 도착한 성열은 혹시라도 정은이 벌써 와있을까 노심초사했지만, 다행히도 아직 정은이 아직 오지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야이성열!!!!!"
"아이씨, 깜짝이야!!.. 어? 유정은?!"
뒤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정은으로 인해 성열은 그만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고말았다. 아야야… 순간적으로 짜증이났지만 정은의 얼굴을보니 화가 눈녹듯풀린 성열은 언제 짜증을 냈냐는듯 허허-. 하고웃으면서 정은과 이야기를 나눴다. "야, 이성열! 진짜 말도없이 미국으로 가버리는게 어디있냐!!" "아, 그래도 돌아왔으면 됐잖아~ 내가 뭐 이민을 간것도 아니고."
"나 참, 그래 내가 너한테 무슨말을 하겠냐… 아, 잠깐. 야! 이호원!! 안나오고뭐해!!"
이호원? 만날 보는애가 여긴 왜 오는거야? 성열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정은이 소리치는쪽을 바라봤다. "아, 서프라이즈하려고했는데!!"
"서프라이즈는 무슨, 너 아직도 정은이 귀찮게구냐?"
"아니거든? 나도 이제 정신차렸고, 인턴 생활만으로도 벅차다. 그리고 쟤 결혼할사람있어."
유정은이 결혼할사람이 있다니! 그 남자 머리다친거아니야? 저 생긴것만 여자지 성격은 산머슴마같은 녀석이 뭐가좋다고?! 성열은 호원의 말에 경악을했다. 정은은 그런 성열을 바라보다, 어이가없다는듯 그러는 나는 뭐 평생 결혼도 못할꺼같았냐며 소리를쳤다.
"아, 장난이야! 장난! 그나저나 누군데?"
"말하면 니가 알아?"
"그래도, 10년지기 친구의 남편이 될 사람인데, 내가 신경 좀 써줘야지!"
푸훗-. 정은은 궁금하다며 난리를 치는 성열을 보다가,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고, 정은의 웃음을 본 성열은 지금 자신을 무시하는거냐며 펄쩍펄쩍뛰었다.
"미안,미안! 너무 웃겨서, 큭…"
"유정은, 진짜 너..!!" "말해줄께, 말해주면되잖아! 음, 일단 나이는 나보다 한 살어려. 그리고 직업은 포토그래퍼! 멋지지? 또.. 성열이, 너 몹지않게 눈이 진짜 이쁜 사람이야." 그렇게 한참을 생각만해도 설레고 신난다는듯 자신의 남자친구를 자랑하던 정은은 남자친구와 만나기로했는데 늦었다며, 황급히 자리를 떠났고. 그 후에도 한참을 아무말도없이 자신과 함께 벤치에 앉아있던 호원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미국은, 무슨 지랄하네… 넌 병원이 미국이냐?"
"……."
"아까 넘어졌잖아, 괜찮아?"
누가, 우리 엄마 병원 인턴아니랄까봐-. 한참을 호원의 걱정가득한 잔소리를 듣고있던 성열은 너가 시끄럽게 구니깐 더 아픈거같아. 라며 호원의 입을 단숨에 막아버렸다.
"하, 정은이한테는 언제.. 언제 말할껀데?" "아직, 아직은 말할때가 아니야…, 아직은 아니야, 호원아.."
"…그래 니가 그렇다면 어쩔수는 없는데… 몸조심해. 너 골수이식받았다고 안심하면 안되는거 알지? 조금이라도 크게 다치면…." "호원아." "……." "난,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되?"
정은이 있는동안은 애써 밝은척하던 성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호원은 작게 한숨을 쉰 뒤, 말없이 울고있는 성열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명수야…, 김명수…. 보고싶어… 흐읍, 명수야… 흐으…." "……." 그렇게 한참을 울던 성열은 그새 지쳐서 잠이들었는지, 호원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그렇게 잠이 든 성열을 한참동안 토닥여주던 호원은 이런일이 익숙하다는듯, 성열이 깨지 않도록 조심히 업어올린뒤, 자신의 차가있는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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