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철망상글] 태풍 그리고 내 남자친구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b/1/1/b114b2e1fc4a922f2e41cbcf2eb5dc38.jpg)
태풍이 온단다.
안그래도 얼마전에 뉴스 특보를 본지라 내 나름대로의 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 놈의 걱정 많은 남자친구는 국제 전화라 요금도 많이 나올텐데 하루도 마다않고 그것도 몇시간을 간격으로 꼬박꼬박 내 안부를 묻는다. ……이번에 오는 태풍이 엄청 큰거래, 우리 애기 날아가면 어쩌지? 이젠 익숙해져 버린, 다소 오글거리는 멘트에도 설레는 내 모습이 웃기기만 하다. 이러니까 만날 바보 커플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지.
- 걱정마요. 오빠나 다치지 말구.
- 내가 직접 갈수도 없고……어휴.
- 진짜 괜찮다니깐 그러네!
진짜지? 괜히 쓸데없이 돌아다녀서 다치지말고 집안에만 있어, 오빠가 사람붙여서 감시할거야! …알겠다니깐요. 그렇게 간신히 전화를 끊으니 어느새 핸드폰이 후끈후끈하게 달아올라져 있다. 얼마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8시가 다 되가는 걸 보니 우리 둘도 참 어지간한 것 같아 괜한 웃음이 나왔다. 내일은 장이나 봐놓을까.
W. 베베
창문 유리 파손 방지를 위해서는 꼭 신문지를 붙이시거나 테이핑을 하셔야 합니다……. 방송 스피커를 통해 늙은 경비 아저씨의 느즈막한 목소리가 들린다. 사실 오전에 경비실에서 붙이라고 신문지를 나눠주긴 했는데, 붙이긴 영 귀찮은거다. 아직 비도 안오고, 바람도 옅게 부는데 괜찮겠지. 그러곤 아까제 사온 물건들을 차곡 차곡 정리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징징, 진동소리가 들려온다. 전화 올 사람이라곤 뻔하지. 슬쩍 휴대폰을 보니 역시나 걱정 많은 우리 아저씨, 내 남자친구. 불과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통화했던 것 같은데, 뭐가 이렇게 걱정이실까.
- 왜요?
- 그냥, 지금 그 쪽에 바람이 심하대서. 괜찮지?
- 그럼! 여기 아직 바람도 별로 안불고 비도 안와요. 아까도 전화했으면서.
- 그래도, 걱정되니깐…….
어차피 집안이라 괜찮아요. 그나저나 지금 연습시간 아니에요? 이렇게 전화해두 되나. 내가 슬쩍 나무라니 윽, 장난끼가 잔뜩 어린 목소리로 받아친다. 으유, 진짜. 태풍보다 이 아저씨가 더 걱정된다. 할 수 만 있다면 독일이던 어디던 쫄쫄 따라가 옆에서 내 남자 밥 해주고 빨래 해주고 뒷바라지만 해주고픈 마음인데, 현실 상 그게 안되니 참 속상할 따름이다.
- 밥은 먹었어요?
- 아ㅡ직. 우리 애기가 해준 밥 먹고싶다~
- 치…. 밥 꼭꼭 챙겨먹어요.
알겠죠? 그러자 고분고분하게 응, 이라고 말해주는 남자친구의 목소리가 참 좋아서, 그 이후로도 거의 한시간은 통화했던 것 같다. 이번달 요금도 제대로 폭탄 맞겠구나…….
![[구자철망상글] 태풍 그리고 내 남자친구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1/e/7/1e741a2d0c52019c2481502d6017f028.png)
잠금장치를 풀고 조심스레 문을 여니 장난스런 표정을 짓고있는 내 남자친구가 보인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긴장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풀려버리면서 눈물이 났다. 올거면 미리 언질이라도 해주던지! 난 또 이상한 사람인 줄 알고…엉… 나 혼자 감정이 북받쳐서 엉엉 우는데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남자친구 모습을 보니까 그게 또 안심이 되어서 그대로 폭, 안겼다.
***
내가 대충 울음을 그치고 나니, 토닥토닥 내 등을 두드려주다 말고 남자친구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뭘 봐요. 내가 씩씩 거리며 말하니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내 볼을 살짝 꼬집는다. 난 지금 분해서 죽겠는데!
- 그게 그렇게 울 일이었어? 우쮸쮸 귀여워 죽겠네~
- 진짜, 내가, 얼마나, 놀랬는데…….
- 큭큭, 알았어, 알았어. 오빠가 잘못했어.
- …흥. 근데, 갑자기 웬일?
그것두 말도 없이. 그러자 약간 난감한 표정을 지은 남자친구가, 일단 집 안으로 들어가자며 내 등을 떠민다. 사고라도 친건가싶어 의심스러운 눈으로 힐끔, 쳐다보니 내가 걱정할만한 일로 온 건 아니라며 걱정말란다. 그나저나 아직 깨진 유리도 제대로 안치웠는데…. 뒤늦게 현관문을 닫고 들어가는데, 앞서 들어간 남자친구가 휘둥그레한 눈을 하곤 나에게 다가와 말한다.
- 저거 뭐야?!!
- 어, 그니깐, 바람이 불어서… 뭐가 부딪쳤나봐요.
- 그니까 내가!!
조심하라고 그랬지!! 안그러곤 자기가 다 울상이다. 다친데는 없어? 많이 놀랐지? 하면서 내 몸을 잡고 훑어보는데 또 다시 남자친구의 눈이 커진다. 나도 모르게 다친 곳이 있었나? 하고 보니 아, 발. 꽤나 깊게 찔렸는지 피가 아직도 난다. 그걸 자각하고나니 다시금 따끔거려서 아야아야, 하는데 많이 아프냐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발을 살피기 시작한다. 괜찮은데, 내가 어정쩡하게 발을 뒤로 빼자 덥썩, 내 발목을 붙잡는다.
- 약 있지?
- 으응, 저 쪽 서랍에….
- 기다려봐!
그러더니 나를 앉히곤 순식간에 약상자를 들고온다. 진지한 얼굴로 뭔가 다급한 행동을 취하는 그 꼴이 우스워서 살짝 입꼬리를 올렸는데, 자기는 진지한데 뭐가 웃기냐며 타박을 준다.
- 익녀야.
- 응.
- 다치지마, 알았지?
- 으응.
특히 나 없을 때, 만약에 크게 다쳤으면 어쩔 뻔 했어. 직접 내 발에 밴드까지 예쁘게 붙여준 남자친구의 나무람이 너무 예뻐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쪽, 뽀뽀를 했다. 안 다칠테니까 오빠도 나 없을 때 다치지 말기. 그러자 끄덕끄덕 고개를 흔들더니 나를 꼭 끌어안는다. 좋다, 우리 애기 냄새.
***
힘들지? 거의 쓰러지다시피 내 앞에 앉아있는 남자친구의 어깨를 꼭꼭 눌렀다. 안그래도 반나절을 비행기에 있다와서 피곤할텐데, 본의아니게 청소까지 시켜버렸다. 그래도 남자는 남자라고, 날 앉혀두고 혼자 열심히 유리를 치우고 경비 아저씨까지 부르는데 그 뒷모습이 너무너무 든든한거다. 또다시 그 모습이 생각나 내가 콩, 남자친구의 어깨에 머리를 박으니 슬그머니 내 팔을 가져다 제 허리에 감는다.
- 그러고보니까, 진짜 왜 왔어요?
- 너 보고싶어서.
- 아, 진짜루.
- 진짜.
- 진짜?
근데 그게 그렇게 쉽나? 한참 바쁠때라면서요. 내가 추궁하듯 묻자 사실…. 하며 운을 뗀다.
- 사실?
- 너 보고싶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그래서 거짓말치고 왔어.
- 무슨 거짓말?
- 그냥…….
무척 급한 일이 생겼다고, 아무튼 대충 둘러댔어. 그리고는 말을 얼버무린다. 뭐, 아무렴 어때.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장해서, 허리에 감은 팔에 더욱 힘을 줬다. 와줘서 고마워요. 웅얼웅얼 말하니 감겨있는 내 팔을 풀고 몸을 돌려 나를 마주한다. 고맙긴, 그러곤 씩 웃더니 바로 입술을 맞부딪친다. 이러면 반칙인데! 일부로 내가 입을 꾹 다물고있으려니깐 못살겠단 표정으로 입술을 떼고는 대신 쪽쪽, 내가 눈도 못뜨게끔 내 얼굴 여기저기에 입술 도장을 놓는다.
- 익녀야.
- 응?
- 오빠랑 같이 독일 갈래?
- 그건,
나중에 결혼하면, 한번 생각해볼게요. 그리고 덜컹덜컹, 바람에 흔들리는 창문소리가 요란한 틈을 타 재빨리 남자친구를 끌어안고 엎어졌다. 아아, 우리 아저씨 숨소리가 예사롭지 않은게 오늘 밤 내 침대에도 태풍이 한번 크게 일 것 같다.
| 으아니 |
급전개에 구글거리는 글이라니! 그래도 태풍이 온다기에 기념으로 똥같은 망상글 하나 투척 볼라벤인지 뭔지 지나간지 한참인데 아직도 바람이 부네요 숭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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