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스웨덴 세탁소_ 답답한 새벽
형은 동네 꼬마 대장이었다. 누군가가 맞고 있으면 깡마른 몸체로 저보다 덩치가 열 배는 더 큰 형들에게 바락바락 대들었고, 때리려고 하면 앓는 시늉을 하며 크게 소릴 질러버리는 영악함도 갖췄으며, 비틀거리며 자전거 길을 밟는 여덟 살 꼬마에게 자전거 타는 법도 알려주고, 옆집 할머니의 시장을 대신 봐주며 남은 돈으로 아이스크림 하나 훔쳐먹는, 그런 작은 정의와 영악을 구현하고 다니는. 동네 사람들 모두가 형을 좋아했다. 비겁한 나 역시 그런 형을 선망했다.
어머니가 아버지께 발길질을 당하던 평범한 오후에 나는 뛰쳐 달렸다. 아버지는 미친 개처럼 침을 흘리며 어머니를 때렸다. 짓뭉개진 얼굴은 벌게서 곧 죽을 듯 밭은 숨을 토했다.ㅡ어쩌면 이미 죽었는 거일 수도 있다ㅡ아버지는 꼭 내 앞에서 그랬다. 나는 언제나 아버지의 검은 범주에서 도망쳤고 그 끝에는 형이 있었다. 형이 나를 보면 나는 삼켜오던 것을 단번에 쏟아내며 엉엉 울었다ㅡ형의 영악함을 조금 닮아갔다고 생각한다ㅡ 형은 나를 으스러지게 안으며 내 까만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울지마."
사나이는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커다란 손이 내 비열한 겉껍질을 벗겨간다. 네가 씩씩하게 엄마 지켜줘야지. 내가 형 가슴께에 코를 부벼오면 형이 나를 품에서 떼어내고 희끄므레하게 웃었다. 가자! 엄마 지켜주러. 앞장서 걷던 형은 어금니 한 개가 빠졌다. 내 아버지께 뺨을 맞아서. 두려움에 주저앉아 우는 내게 형은, 피범벅인 이를 훤히 드러내곤 웃었다. 하나도 안 아파. 어차피 곧 뽑아야 하는 거였어.
다음 날 형의 어머니는 내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했다. 아버지는 유치장에 며칠 있다가 교도소를 갔다. 내가 본 건 아니고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형은 울었다. 미안해, 정국아. 그때 알았다, 나는 형을 지켜줘야겠다고. 다짐은 일곱답게 막연해서 열렬하지 않았지만 의중 두었다.
그 날 뒤로 형은 나를 유독 챙겼다. 꽃이 오는 날 꽃을 꺾어 손에 쥐여주었고, 비가 오는 날 희멀건한 손바닥을 내밀며 온 동네와 같이 젖어갔다. 패인 웃음이 그렇게 간드러질 수가 없다. 곰팡이 핀 벽지에 힘없이 기울어진 깨진 거울을 쳐다보며 형의 웃음을 따라 해본 적은 이제 셀 수도 없다.
생각해봤는데, 형
내가 여름을 매미 우는 날이 아닌 존나 더워 라고 읽을 때, 겨울을 눈사람이 되는 날이 아닌 씨발 이라고 읽을 때
나는 형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때 쯤, 형은 용감한 만큼 아팠다
이름도 모호하고 피상적인 것이었다. 내가 첫 야자를 했던 날 폐병처럼 기침을 쏟아내고, 나와 봉숭아 물 들일 때 눈이 빨갛게 충혈됐고, 오늘은 피를 토해냈다. 형은 곧 고꾸라질 듯한 몸으로 연약하게 웃었다. 곧 죽겠다, 그치. 형이 시시덕대면서 말했다. 곧 봄인데, 형. 나는 주저하는 입매를 어거지로 올렸다. 형 살 수 있을까. 시큰한 코끝을 참아내느라 눈이 아팠다. 형의 마른 손가락 등을 보는 눈이 아파서 감아버렸다. 형 나 눈 나빠지면 좋겠어. 내가 눈을 감고 말하자 턱을 괸 채 말한 건지 발음이 잔뜩 뭉개진 형이 작게 하품하며 대답했다. 나도.
"왜?"
나는 눈을 떴다. 다시 형이 보인다. 동그란 코가 귀여웠다.
"나 머리 빠지는 거 보여주기 싫어서."
그러면서 바닥에 우수수 떨어진 제 머리칼을 뭉텅이 지게 잡아 내 눈 앞에 흔들었다. 내가 코를 찡그리자 형이 와르르 웃는다. 꼭 생긴 게 너 싫어하는 송충이 같지. 내가 빤히 보자 재미없다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다, 곧 내 눈앞에 들이민다. 아, 박지민 진짜! 결국 으르렁거리자 반듯한 눈을 치뜨며 야, 전정국. 내가 너보다 밥 몇 그릇을 더 먹었는데 반말이야? 그러면서 또 웃는다. 형이 웃으며 몸에 힘을 빼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어졌다. 형의 비웃음이 멈췄다. 내가 숨을 죽여 너를 불렀다. 형
형
형
형
지민아
나는 딸꾹질을 했다. 형을 계속 부르고 싶은데 딸꾹질이 멎지 않아서 못했다.
야, 전정국ㅡ 해줘야지 형.
나는 새벽이라 잠에 몽롱한 형을 업고 뛰었다.
형은 이미 늦었다고 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의사의 말에 내가 대답했다. 알아요.
근데 오늘은 살 수 있죠? 의사가 짧게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위아래로 간결히 움직였다.
나는 뭉뚝하게 웃었다. 이제 미래를 꿈꿀 수 없다면 오늘을 꾸면 된다, 형.
형 있잖아, 나 맨날 형 너 꿈꿨다. 하루는 형이랑 밥 먹는 꿈 꿨고, 하루는 형이랑 하루종일 웃는 꿈을 꿨고, 아 씨 이건 진짜 쪽팔리는데 형이랑 섹스하는 꿈도 꿨다? 첫 몽정 했을 때 형이 나 놀렸잖아. 무슨 꿈 꿨냐며 이름 모를 서양 누나들을 불러댈 때 아무나 웅얼거리긴 했는데 그거 사실 형이었어. 형 완전 배신감 들지? 다 바랜 꼬맹이 키워놨는데 음흉하다고. 그래도 나 떠나지마. 이제 그런 꿈 안 꿀게. 그리고 형 몰래 여자친구 사귄 적도 있어. 형 좋아하는 거 믿을 수가 없어서, 내가 몇 번 고백했는데 다 받아주데. 형 나 인기 진짜 많아, 여자애들이 좋아 죽을라 그런다니까? 그러니까 나 계속 잡고 있어야 돼, 형이.
새벽이었다. 새벽을 내일로 해야할지, 오늘로 해야할지 몰라 그냥 오늘 하기로 했다. 내일은 형 꿈을 꿀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오늘 할래. 울음을 삼킨 입에선 단내가 났다.
형 나 할 말이 있는데. 간헐적이게 일그러지던 선이 곧은 선을 구축한다.
박지민 사랑해. 형 대답해줘야지, 반듯한 눈을 치뜨며 야, 전정국, 하고. 오늘 새벽은 맑다더니 거짓말이다. 담배 연기라도 연거푸 마신 냥 갑갑하다. 이제 꿈에 형이 없다. 나는 주저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무효다. 이 봄은 무효다.
지금까지 무효다.
이 침묵도 무효다.
강요당한 침묵의 밧줄
아, 아, 세상에
몸조차도
침묵으로 말하고 있다.
내가 없다.
그러나, 내가 살고 있다.
무효다.
이 봄은 무효다.
_문정희, 선언, [나는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