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국민이들이 있는 2학년 5반. 남자 아해들 밖에 없는 칙칙한 문과반이지만, 아이들은 아직도 일주일전의 체육대회의 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들뜬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어. 예를 들어 교실에서 축구공을 가지고 패스를 한다던가, 책상 두개를 이어 붙인 후 그 틈새에 공책을 세우고 탁구를 하는 식으로.시끄러운 교실 안. 아이들이 뒤섞여 노는 모습들 속에서 조용한 곳이 한 군데 있어. 중간 분단에서 오른쪽 맨 뒷자리인, 지민이 자리야. 짐니 앞자리엔 석진이와 그 주변에 몰려있던 아이들이 자기들 단체사진을 보며 낄낄거리고 있고. 핸드폰 안에 있는 건, 유니폼을 입고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하며 있는 모습들이야. 딱 열여덟 나이에 맞는 장난들이지. 거기엔 섹시한 포즈를 취다며 입술을 내밀고 있는 지민이도 있어. 지민이 사진을 보던 석진이는 자기 뒤를 돌아 지민이를 불러. “빡지, 니 사진 확인 안 할꺼? 완전 피콜로 닮게 나왔는 데” “이응” “하, 얘 봐라. 애가 맥아리가 없네” 책상에 얼굴을 붙인 지민이는 자기에게 힘 빠지게 굴지 말라는 석진이의 말도 대충 끄덕여. 손으론 계속 정국이가 준 펜을 만지작거렸고. 볼펜대를 감싼 벨벳재질의 천의 느낌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그냥 심심해서인지 계속 펜대를 만지작거리던 지민이. 책상에 턱을 붙인 채로 입을 열었다 닫았다하면서 턱을 부딪히게 만들다가 눈을 굴려 정국이쪽을 봐. 친구들과 탁구를 하며 좋아하는 모습. 아침부터 저렇게 신날까? 힘이 어디서 솟아나는 거야- 하고 생각한 지민이는 친구를 이겼다고 아이처럼 눈을 접어가면서 좋아하는 정국이를 보다 피식 웃어.그리곤 아침 조례시간에 윤기가 나눠준 급식비 납부 영수증에 낙서를 해. 사람 모양을 그렸다가, 강아지를 그리고, ‘뭔데 신경 쓰여’라는 유행가 한 구절도 적어보고. 그렇게 조금 끄적이자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려. 맑은 종소리와 동시에 지민이 앞자리에 몰려있던 아이들은 아쉬운 소리를 내며 흩어지고. 그렇게 얼마 있지 않아서ㅡ 국어시간의 주인공인 윤기쌤이 밝은 표정으로 들어와. 해맑은 얼굴과 다르게 양 손엔 프린트물이 산만큼 가득 쌓인 상태이야. “안녕” “아- 선생님 그거 또 뭐에요!” “뭐긴 뭐야 이놈들아. 너희 기말 잘 보라고 손수 만들어온 시조 정리 프린트물이지” 그러자 아이들은 일제히 앓는 소리를 내. 개중엔 ‘선생님 저희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시다니! 이런 못난 제자들때문에!’ ‘민윤기 포에버’ ‘쌤 사랑해요’와 같이 장난스레 아부하는 목소리들도 섞여있어. ‘기말’이라는 말을 듣자 숨을 턱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지민이는 한숨을 푹 내쉬어. 생각해보니 기말고사가 이주도 안남은 상태였거든. 꿈도 없고 목표도 없는 데, 뭐 하러 이렇게 공부해야할까? 하는 푸념이 머릿속을 가득 헤집어 놓을 때, 석진이가 프린트물 끝으로 지민이 볼을 콕콕 찔러 “이거 빨리 돌려” “아, 쏘리” “너 요즘 여자친구 생겼냐? 왜 이리 정신을 빼놓고 살아” “그른거 아니거든요. 님은 앞이나 보세요” 석진이는 ‘수상해’하며 앞을 봐. 지민이 역시도 시선을 앞을 향해 고치고. 그러자 시야에 들어온 건 초록색 칠판과 그걸 바탕을 한 채 생각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윤기야. 아이들이 제게 시선을 줄 때에서야 윤기는 멈춰있던 포즈를 풀곤 눈을 휘게 웃으며 이야기해. “임마드라 체육대회가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빠져있냐. 정신 차려. 내가 누누이 말했지만 너흰 강동원처럼 잘생기지도, 지디처럼 끼가 많은 것도 아니라서 공부아니면 할 게 없어.” 그러자 아이들은 입을 삐죽 내밀어. 쌤 너무 매정해요- 장난스러운 투정들을 듣던 윤기는 크게 한 번 웃고는 수업으로 들어가고. 오늘 배우는 시조는 고전 시조. 옛 사람들의 사랑을 담은 이야기야. “이 시조는 참, 답답하게 사랑을 말하고 있어. 임이 화자에게 ‘꿈에서도 너를 봐’하면서 사랑한다고 이야기하지만, 화자는 ‘난 니가 너무 좋아서 잠도 설치는 데, 나를 좋아한다면서 꿈에서 보는 게 가능해?’라고 따지는 거거든.” “그게 뭐에요!” “그럴 거면 헤어지지” “그래, 그러게 말이야. 그러면 너희가 배울게 줄어들 텐데.” 윤기의 장난스러운 말에 아이들은 각자 자기들 생각을 말하느라 잠시 소란스러워졌지만, 윤기가 ‘밑줄 그을 꺼니까 이제 펜 들고.’라고 이야기하자 잠잠해져. 지민이 역시도 윤기 말에 맞춰 ‘사랑 거짓말이 님 날 사랑 거짓말이’라는 구문에 줄을 긋기 위해 펜을 들었고. 그런데 문득 사랑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와. 그 두 글자만 확대한 것처럼 아주 또렷하게. 그러자 무슨 생각인지 지민인 손에 들려있던 형광펜을 놓고는, 정국이가 준 펜을 들어 그 위에 하트 모양을 그려. 반듯하게 그려진 하트. 자기가 의도했던 것보다 더 잘 그렸는지, 그걸 보다 뿌듯하다는 듯 작게 웃어. 예쁘게 그려졌다-라고 혼잣말 하면서. 2.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동안, 지민인 지민이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해. 자기 생각엔 자기 머리가 그닥 좋지 않은 편이라고 생각해서야. 중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기 위한 지민이 나름의 노력인거지. 지민이는 이번 시험기간을 맞아 집 근처 도서관에 가. 시험기간마다 도서관에 가는 건, 고등학교에 들어오고 처음 시험 준비를 했을 때부터 생긴 일종의 습관이야. 그런데 이번 시험기간엔 갈 때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정국이를 만나.따지고보면 정국이는 지민이가 다니던 도서관에 다닌 지 오래 되지 않았어. 집도 이 근처도 아닌지라, 번거롭게 이곳에 오는 것이 분명했지. 정국이가 언제부터 온 것인지 생각해보면 지민이가 자기에게 어디서 공부 하는 게 좋냐고 묻던 석진이를 향해 ‘집근처 도서관. 거기 개꿀이야. 사람들이 잘 안 오거든’하고 대답했을 때부터인 것 같아. 그래서 지민인 정국이가 번거롭게 오는 이유가 아마도 자기를 견제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 물론 순전히 지민이 예상일 뿐이지만. 옆에 빈 의자 위에 가방을 내려놓던 지민이는 공부를 하기위해 책을 펼치면서 정국이를 힐끔 봐. 하얀 제 피부를 더 도드라지게 할 만큼 새빨간 후드티를 입고 턱을 괸 모습. 지루한 듯이 펜을 돌리던 정국이랑 눈이 마주칠 때까지 지민이는 정국이를 보고 있었어.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려. 윤기가 준 프린트물에다 아무렇게나 줄을 그으면서. [주제: 임을 향한 복잡한 사랑] [Point: 야속함] 줄을 긋다가 손을 멈춘 지민이는 또 힐끔 정국이를 봐. 정국인 여전히 지민이를 보고 있었고. 짐니는 ‘아, 쳐다보지 말 껄’하고 작게 인상을 쓰다 문득 제 손을 봐. 자기 손에 들린 건 정국이가 준 볼펜. 지민이 손에서 까딱거려져 깃털이 살랑살랑 움직이고 있었어. 눈 앞에서 연약하게 흔들거리는 모습이 거슬려 지민이가 깃털을 잡으니, 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있던 정국이 입가에 미소가 걸려. 정국이가 자기 때문에 웃는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저도 모르게 쑥스러워진 지민인 제 볼만 긁적거리고. 3. [결전의 날] 칠판에 크게 써있는 글씨를 보던 지민이가 한숨을 내쉬어. 오지 않길 바라던 날, 기말고사. 짐니는 제 머리를 잔뜩 헤집어. 벌써부터 외운 게 다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까치집인 머리를 한 채 주변을 둘러보니, 역시나. 아이들은 공부 잘 하는 아이를 중심으로 몰려있어. 전교 1등인 남준이, 반에서 공부 꽤나 하는 편인 정국이. 이 둘에게만 편중 된 인기지. 아이들에게 둘러 쌓여있는 정국이를 보던 지민이는 입을 비쭉 내밀다, ‘정국아!’하고 정국이 쪽으로 가려는 석진이를 잡아. “야 나한테 물어봐” “놉” “.....나도 나름 잘 하거든?” “나는 나름 잘하는 것 보단 완전 잘하는 사람한테 묻고 싶다, 죄송!” 얄밉게 이야기하곤 정국이에게 가는 뒷모습을 째려보다 지민이는 책상 서랍에서 노트를 꺼내들기 위해 손을 넣어. 그런데 노트보다 먼저 잡힌 건 손바닥만한 사이즈의 초콜릿이야. 그 위에 붙어있는 포스트잇, 동글동글한 여자아이 글씨. 눈을 깜빡이던 지민이는 이게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좌우로 저어. “이거 내꺼 맞나? 잘못 온 거 아니야?”어벙하게 서 있다가 지민인 입꼬리를 끌어올려. 다시 보니 이 글씨체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것 같기도 해. 지민이는 핸드폰을 내기 전, 연주에게 카톡을 빠르게 보내. [나한테 초콜렛 줬어?] ‘설마’하는 마음 반, 기대하는 마음 반으로 카톡을 기다려. 핸드폰 담당인 영석이는 ‘박지 빨리 내!’하고 짜증을 내고. 거기에 어어-거리며 대답한 지민인 카톡이 오자마자 확인해. [아니. 왜? 누가 너 줬어?] 그 말에 지민이 어깨가 쳐져. 아 이거 뭐야. 글씨체 비슷한 여자애인가. [포스트잇에 있는 글씨가 너랑 비슷하길래] [혹시 포스트잇 분홍색?] [ㅇㅇ맞아] [아! 그럼 내가 쓴 거 맞아] [정국이가 오늘 아침에 나한테 써달라고 했거든] [너 주려고 그랬나보다ㅋㅋㅋ어쩐지 걔가 초콜릿 들고다닌다고 했어ㅋㅋ] [생각해보니까 나쁜 자식이네ㅋㅋㅋ지 여친 안 챙기고 친구부터 챙기고ㅠㅠㅠ이럴때만 의리남이지ㅠㅠㅠ] [잠깐만, 전정국이 나 준거라고?] [응ㅋㅋㅋ 이왕 이렇게 된 거 친하게 지내는 건 어떠신지?ㅋㅋㅋ] 믿을 수 없는 말들이 쏟아져 내리자, 지민이는 핸드폰만 뚫어져라 봄. 나랑 친해지고 싶다고 얘기 했다고? 지민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작게 인상을 써. [일학년 때부터 정국이가 나한테 너랑 친해지고 싶다고 다리 놔달란 식으로 얘기 많이 했어ㅋㅋ] ‘일학년 때부터’라는 말에 지민이가 눈을 동그랗게 떠. 그런 지민이를 해탈한 표정으로 보던 영석이는 ‘바악지이민 제발 내라! 너만 내면 된다아’라고 얘기하고. 영석이가 애타는 목소리로 자기를 부르자 핸드폰을 급하게 꺼. 그러다 실수로 떨어뜨리고. 핸드폰을 주우려고 허리를 숙이려고 하는 데, 어느샌가 앞으로 나타난 정국이가 먼저 주워줘. “이래서 핸드폰 액정이 나가겠냐? 더 세게 떨어뜨려야지” 핸드폰을 건네받고, 영석이에게 핸드폰을 건네. 영석이는 얼이빠진 표정으로 어딘가를 보는 지민이 표정이 자기가 화를 내서 당황한 거라고 생각하는 지, ‘빨리 빨리 내야 내가 담임쌤한테 안 깨지거든. 악감정은 없다’하고 이야기하며 어깨를 툭툭 쳐. 그리곤 자기도 짐니 시선이 향하는 곳을 봐. 거기엔 아이들에게 둘러 쌓인 채 예상 문제를 집어주는 정국이가 있어. 영석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다 이내 핸드폰을 내러 사라졌지만, 지민인 계속 그 자리에 서있어. 그 때까지도 지민이 시선이 향하는 곳은 한 군데야. 애들 질문을 받아주는 정국이의 말간 얼굴. ‘빠가 새끼, 이것도 몰라’하면서 친구의 멱살을 장난스레 잡는 모습. 왜? 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고개를 젓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더 이야기하고 생각해봤자 자기만 복잡해 질 껄 알기 때문이야. 오늘은 시험보는 과목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으니까 애써 무시하는 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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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잔 뭔가 단어하나에 너무 집착하는경향 있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