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마(夢魔) : Nightmare
몇 주 전부터 자꾸 가위에 눌린다.
꿈을 잘 꾸지 않았던 나인데 요즘은 잠이 들 때마다 꿈을 꾼다.
레퍼토리는 늘 똑같다. 누군가가 내 몸을 짓누른다던가,
누군가에 의해서 어딘가에 갇혀 있다던가, 그 누군가가 나를 묶어둔다거나.
그 '누군가'를 보려고 할 때마다 나는 가위에 눌렸다.
남자고, 약간 쉰 목소리를 가졌다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처음엔 내가 예민해서 그런가보다 싶었지만,
3주 내내 같은 사람이 꿈 속에 나온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닌데다가,
꿈이라고 하기에는 느낌이 너무 생생했기 때문에 이상한 구석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오늘은 제발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그냥 잠에 들었으면 좋겠다.
주변 사람들이 요즘 나한테 묻는 말은 다 똑같다.
왜 그렇게 수척해졌냐, 잠은 자냐. 이런 말이었다.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있어야 말이지....
최근에는 학교에서 잠깐 졸 때도 잠깐 잠깐 나타나는 그였다.
제발 오늘은 꿈을 꾸지 않기를 바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일어나."
"누...구세요."
"누구긴 누구야, 나잖아."
오늘도 잠 자는 건 글렀구나.
눈을 붙인 지 얼마나 지났을까. 그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눈을 뜨려고 했지만 역시나 눈이 떠지지 않았다.
누구냐고 묻자 그는 웃으면서 나잖아, 라고 말했다. 난 당신이 누군지 몰라요.
"당신이 누군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너 내가 궁금하구나?"
"......아니, 그게 아니고."
"그러면?"
"내 꿈에 그만 나타나 주면 안 돼요?"
그냥 맘 편하게, 아무 꿈도 안 꾸고 자고 싶어요. 뒷 말을 꿀꺽 삼켰다.
그가 허, 하며 실소를 내뱉었다. 여전히 눈은 떠지지 않았다.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의 손길이 내 얼굴을 스치자,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소름끼치게 차가워서.
"음.... 그건 안되겠는데?"
"...왜요? 뭐 잘못한 거라도 있는 거에요?"
"그냥 너 꿈에 안 들어 오면, 하루가 재미 없어."
"......근데 왜 맨날 꿈 꿀 때마다 당신을 보면 가위에 눌려요?"
"내 얼굴 궁금해?"
그가 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사실은 얼굴이 궁금한 게 아니라,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 궁금한 것 뿐이에요. 그냥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빌고 또 빌었다.
"내가 나오는 게 싫어?"
"......."
"근데 어떡해. 나오고 말고는 내 몫인데."
"......."
"그냥 편하게 자고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네?"
"잘 자라고."
그의 차가운 입술이 내 입술에 맞닿자마자, 나는 쥐 죽은 듯이 깊은 잠에 들었다.
*
오랜만에 컴퓨터를 켜 키보드를 두드렸다.
꿈에 자꾸 어떤 남자가 나와요. 그 남자가 누군지 보려고 할 때마다 가위에 눌려요.
그 사람이 나타날 때마다, 숨이 막히는 것 같아요.
내가 찾은 해답은 하나였다. 몽마라고 해요, 그런 걸.
지식인 답변창에 쓰여 있었다.
[몽마는 주로 남자의 모습으로 여자의 꿈 속에 들어가요.
몸을 옥죄거나, 심하면 꿈에서 성행위를 하기도 해요.
최근에 불미스러운 일로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으셨는지 돌아보시고,
최대한 잠에 들기 전에 좋은 생각을 하시고 드세요.
꿈에 몽마가 나오지 않도록.
미신이긴 하지만, 몽마는 사람의 기를 빨아 먹어서,
나중에는 죽을 수도 있다고 하네요.]
그럴 리가 없잖아. 내 기를 빨아먹는 거라고?
이제껏 수 없이 그 남자가 내 꿈에 나타났단 말이야.
저게 다 미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꿈일 거야. 그냥 단순한 꿈.
그렇지만 그가 지난번에 나를 묶어서 가뒀을 때,
밧줄 때문에 남은 흉터가 자고 일어나서도 그대로였다는 사실이,
나를 더 무섭게 했다.
어김없이 밤은 찾아오고, 잠에 들자마자 또 다시 그가 나타났다.
"오랜만이네?"
"......네."
그런데 있잖아요.
"혹시.... 당신 말이에요."
"응?"
"몽마...에요?"
내 물음에, 그는 잠시간 가만히 있더니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소리가 그렇게 소름돋을 수가 없었다.
"응, 맞아."
"......."
"네 기, 빨아먹으러 온 거야."
"......."
"네 잘못이지, 어떡하냐."
도대체 그게 왜 내 잘못인데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 진짜... 죽는 거에요?
"너가 너무 예쁜데, 어떡해."
"......"
"근데 넌 매일 밤이 지나면 도망가잖아. 내가 가두고, 묶어 놔도."
"......."
"나만 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네?"
"......"
"내가 너한테 최근에 마지막으로 잠 잘 시간 줬잖아, 기억나지."
그의 차가운 손이 내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아, 제발. 꿈이라고 누가 말해줬음 좋겠다.
엄마가 날 흔들어 깨워서 꿈에서 나오게 됐으면 좋겠어.
눈이라도 뜨면 가위 눌려서 언젠간 일어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 눈을 떴지만,
오늘은 그냥 눈이 떠졌다.
"이제, 네 기 다 빨아 먹어서 남은 게 없어."
"......!"
"어, 눈 떴네. 이제 나 보여? 궁금했지?"
침대 위에 비스듬히 누워서 날 보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 눈빛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정말 몽마가 맞는 걸까.
그냥 내 몸이 조금씩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급함에, 눈물이 흘렀고, 그는 웃으며 내 양 볼을 잡더니 내 눈물을 닦았다.
"울지마, 응? 어차피 앞으로 평생 나랑 있어야 되는데-"
"......싫어요."
"싫어? 싫어도, 너는 이제 나한테서 못 벗어나."
"......."
"우는 것도 예쁘네."
그대로 눈이 감겼고, 그가 나를 안은 채로, 어딘가로 향하는 느낌만 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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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는..그냥 갑자기 쓴 작품입니다. 하하.
사실 최근에 제가 꾼 꿈이에요...(소름)
저 내용이 전부 다 제 꿈은 아니구요ㅋㅋ
그냥 꿈에서 누가 절 가뒀는데, 그 가둔 사람 얼굴을 보자마자
가위에 눌렸답니다...하하...
그게 갑자기 생각나서 한솔이랑 막 짬뽕해가지고 쓴 거에요.
한솔이와 함께라면 정글숲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만...
아무튼 한솔이의 집착을 응원합니다.^^
원우 글은... 또 밤에 올려야죠! 시험이 끝났으니까 달린다! 열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