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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박지민] 불나비 14 | 인스티즈




자우림 -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반복재생 부탁드립니다.








불나비

14










 제가 이 이름을 안게 될 줄 알았을까. 저를 부를 이 없던 시절, 그래서 이름도 필요 없었다. 아무도 이름을 부르지 않아 그랬다. 그 다음으로는 지시 대명사가 제 이름을 대신했다. 서운할 것 없었다. 나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 자신, 누군가가 기억해주리라 기대한 적 없다. 제가 이 이름을 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족쇄처럼 존재를 묶어버린, 이름. 이름의 무게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예외 없이 내리는 절망. 이겨내고야 말 것이다. 절망의 구렁텅이, 살아남고야 말겠다.


 “예양 위치, 알아냈어.”


 제이는 지민을 죽이지 못했다. 죽일 수 없었다. 총을 겨눈 제 모습이 우스워 견딜 수 없었다. 지민은 제이를 재촉했다. 어서 죽이라고 말했다. 망설임은 제게 독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마치 앞으로 제이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듯이. 곧게 뻗은 제 팔에 경련이 이는 것 같았다. 제이가 지민을 죽일 수 있을 리 없었다. 제이는 지민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애초부터 그럴 수 있을 리 없었다. 겨누고 있던 총을 내렸을 때도 지민은 저의 눈동자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지민을 바라보며 제이는 입술을 씹었다. 저는 그런 초연함을 닮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하루가 지났다. 지민을 조심스럽게 스치며 제이가 말을 건넸다. 위치와 대략적인 정보가 적힌 서류를 차 보닛에 넣고 내렸다. 지민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이가 그대로 지민을 지나쳐 두양애로 향했다. 그런 제이를 보던 지민이 보닛을 열어 서류를 확인했다. 건물 내부도와 CCTV 위치가 나와 있었다. CCTV 장면을 담은 사진도 있었다. 노란 원피스를 입은 예양이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지민이 눈살을 찌푸리곤 사진을 더 가까이 보려는 듯 종이를 눈앞으로 가져왔다. 자세히 보니 예양은 팔다리가 고정되어 있는 모양새였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지민이 사진에 고정했던 시선을 옮겨 아래 적힌 제이의 글씨를 보았다. 약물 테스트. 간결하게 적혀있었다. 지민이 그것을 조심스럽게 옆좌석에 내려놓았다. 그러곤 차를 출발시켰다.


 “청, 그런데 말이야.”

 “어.”

 “그녀가 왜, 날 막지 않은 거지? 두양애를 쳐보겠다고 했는데.”

 “그걸 그렇게 곧이곧대로 얘기했어?”


 연화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청이 바람 빠지는 듯한 가벼운 웃음을 내뱉었다. 언제나처럼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청이 연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연화는 오늘도 장갑을 착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청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연화의 화상 흉터로 향했다. 청은 그것을 가만 바라보다가 입을 잠깐 다물었다. 연화의 물음을 떠올리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소파에 앉은 연화가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아직 더운 기운이 남아있는 녹차였다.


 “두양애를 쳐서 리안화가 손해볼 건 없으니까. 아니, 원래는 진즉 그랬어야 했으니까.”

 “무슨 뜻이야?”

 “그 애가 죽기 전에 두양애는 없어졌어야 했어. 그렇게 되지는 못했지만.”

 연화는 다시금 그 얼굴을 떠올리려 애를 썼다. 그러나 떠오르지 않았다. 제가 손에 쥐고 있던 총의 무게만 겨우 떠올랐다. 저를 연화라고 부르던 그 마지막 목소리, 꺼져가던 숨…. 연화는 순간적으로 숨을 참았다. 그때의 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연화가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에 시선을 고정했다. 청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마주 본 소파에 청이 앉았다. 그제야 연화가 청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 애는 지켜내지 못했지만. 쓸쓸함이 맴돌았던 그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녀가 연화에게 우호적인 건, 그녀 역시도 연화였기 때문일까?


 “이제야 묻기에는 너무 늦은 말이지만, 청. 그날 왜 나를 데려갔어?”

 “…….”


 그날이 연화의 기억 속 폭발이 있었던 새벽을 의미하는 것을 청은 모를 리 없었다. 청은 연화의 물음에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청이 데려가지 않았으면, 저는 연화의 삶을 살지 않아도 되었을까. 제가 총을 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그렇게 죽지 않았을까. 모든 선택이라는 갈림길을 지나쳐 피할 수 없이 맞이한 결과가 연화를 쓰게 덮친다. 청은 고민을 하고 있는 걸까. 침묵이 길어질수록 연화는 입안이 말라감을 느꼈다.


 “그 애는 그날 자기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뭐라고?”

 “다 알면서 간 거야. 그 새끼들이 수작 부릴 거라는 것도. 죽으러 간 거야. 그 자리가 너무 무거워서. 못 버티겠어서. 그래서 나한테 너를 부탁한 거지, 너를 살려달라고. 제가 불행한 삶을 안겨줄 그 애를 살려달라고. 그래서 데려갔어, 너를. 그렇게 되지 말라고, 전부 똑똑히 지켜보라고.”


 연화는 순간적으로 숨을 쉬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다. 들이마신 숨을 내뱉을 줄 몰랐다. 청이 연화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연화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떨어뜨릴 뿐이었다. 연화는 이제 저를 지칭하는 말이었으므로, 그녀를 부를 호칭 따위는 없었다. 연화는 그저 부를 이름 없이 그리워했다. 이제는 흔적도 남지 않은 그 사람을, 그리워했다.


 그대로 청의 사무실을 빠져나와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을 가만 바라보다 올라탔다. 저는 변한 것 없이 그대로인 줄 알았는데, 정신 차리니 저도, 제 주변도 모두 변해있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처럼 모든 게 흘러간다. 연화는 손에 모든 것을 쥐려고 해보았지만 그것들은 모래처럼 우수수 쏟아져 내릴 뿐이었다. 연화가 제 손에 얼굴을 묻었다. 더는 무엇도 잃고 싶지 않다. 저는 이제 변하는 것이 싫다. 제 곁에 남은 것이, 그대로 남아줬으면 했다. 다시 열리는 문에 연화가 손을 내리곤 어떠한 고뇌도 없었던 것처럼 걸어나갔다. 습관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건물 밖으로 정차된 지민의 차가 보였다. 연화가 조수석의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좌석 위에 놓인 서류들이었다.


 “왔어요, 연화?”

 “이게 다 뭐야. 혹시….”

 “예양. 알아냈어요.”


 들려오는 지민의 음성에 연화가 지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망설임 없이 바로 차에 올라타고는 서류부터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연화는 한참이나 노란 원피스를 입고 있는 예양의 실루엣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저 사진일 뿐이었음에도 예양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일었다. 옥경은 예양이 두양애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예양은 이를 알리고 싶어 할까? 연화는 예양이 아니었으므로 그저 한 문장뿐인 질문으로 남고 말았다. 우선 예양부터 구하고 보는 것이 순서에 맞았다. 연화는 예양을 저버릴 생각이 없다. 예양은 어떨지 모르지만.


 “예양은 왜 데려간 거지?”

 “마약 거래 건 때문이기도 했고, 새로운 약물 테스트 때문이기도 해.”

 “무슨 약물?”

 “…그것까진 잘 몰라. 새로운 마약인지, 아예 다른 종류인지.”


 지민이 연화의 물음에 고개를 저어 보였다. 연화는 지민의 대답을 들으며 예양을 구해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두양애를 치겠다고 말한 것, 치기 어린 말일지도 몰랐다. 애초에 단시간 내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말한 것은 일종의 목표 의식과도 같은 거였다. 지지 않겠다는. 순전히 개인적인 원한에 그칠지도 몰랐다. 지민은 운전 중이었으므로 연화에게 함부로 시선을 던지지 않았다. 그러나 연화가 고민 중이라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지민은 말을 꺼내려는 듯 입을 열었으나 이내 다시 다물었다. 연화에게 전해야 할 말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연화에게 전해도 될지, 고민하는 것이었다. 지민은 빨간 불빛이 들어오는 신호등을 보고는 이내 브레이크를 밟았다.


 “아무래도 리안화가 갤러리 사업에 치중하겠다는 말이 벌써 들어간 모양이야. 예양이 그것 때문에 거래 연결하기는 어렵다고 한 것 같아. 그만하고 싶었겠지.”

 “…그래서.”

 “이용 가치가 사라진 거지.”


 나처럼. 지민이 말을 애써 삼켜내었다. 다시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개를 끄덕인 연화가 제 머리를 시트에 기댔다. 갤러리 사업에 치중한다고, 그것은 제가 그렇게 전하라 시켰던 거였다. 고작 미끼나 던져보자고 한 말이었는데 이에 예양이 위험해진 격이었다. 연화가 한숨을 내뱉었다.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순간적으로 무력감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너무나도 차게 흐르는 탓에 연화는 몸이 시릴 지경이었다. 이용 가치. 연화가 그 단어를 씹고 또 씹었다. 예양이 어디 있는지 알게 된 이상, 시간을 더 끌 수는 없었다. 모든 일을 빠르게 해결해야 했다. 그런 연화의 계획에 자꾸만 걸려드는 것은 옥경이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예양만을 기다리는 옥경. 그녀에게 무어라고 전해야 할까.


 “연화.”

 “아, 응.”

 “고민이 많나 보네. 도착했어.”


 지민이 손을 뻗어 으레 그랬듯 연화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연화는 내리기 위해 문으로 손을 뻗다 말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지민의 얼굴을 보았다. 당장 닥친 일에 집중하다 보니 그에게 무신경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지민의 입술이 터 있었다. 연화는 그런 지민의 얼굴에서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간 지민이 연화의 얼굴을 보며 그랬던 것처럼. 연화는 이제야 그 심정을 알 것만 같았다. 감히 확신할 수 없는 미래에 그가, 아니 제가 있을 수 있을까 두려워 그랬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그의 얼굴을 담아두려는 것이었다. 이제는 이름 없는 그녀의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는 것이 퍽 두려워서. 지민은 그렇게 되지 않길 바라서.


 연화가 제 두 손을 뻗어 다정하게 지민의 뺨을 감쌌다. 지민은 그런 연화를 보며 조용히 눈을 깜빡거렸다. 연화가 그대로 지민의 입술에 짧게 두 번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지민은 멀어지는 연화를 다시 한번 잡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지민이 연화가 그랬듯 연화의 뺨을 다정히 쓸었다.


 “괜찮아, 연화. 다 괜찮을 거야.”

 “응. 그럼.”


 지민의 말에 연화가 대답했다. 그제야 차 문을 열고 바깥으로 발을 내디뎠다. 지민의 목소리 하나면, 저는 정말로 괜찮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민은 멀어지는 연화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언제나처럼 지민 저 자신은 연화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것이었다. 연화가 저를 다시 찾아와줄 때까지. 사격장에서 발걸음을 돌릴 수 없던 그때처럼. 지민에게 내려진 숙명이었다.


 연화는 긴장감을 떨칠 수 없었다. 제게 아직 확실한 계획이 없어 그랬다. 예양을 구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 다음은, 아마 두양애겠지. 청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분명 협조할 것이다. 그 대신 두양애를 정말 뿌리 뽑겠다는 생각으로 달려들 것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붉게 타올랐던 그날 새벽처럼 모든 목숨을 앗아가는 것일 테다. 연화는 그렇게 목숨을 잃을 생각이 없다. 제가 지키고 싶은 것은 오직 몇 명뿐이다. 그것만 손에 넣으면 연화는 무엇도 필요 없었다. 아무튼 시작은, 예양이다.


 연화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곤 열린 문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저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맹렬하게 빛났다. 연화는 그 눈빛에 집어삼켜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녀는 서서 소파에 제 허벅지를 기대고 있었다. 팔짱을 낀 모습이 보였다. 연화는 그대로 걸어가 그녀 앞에 섰다. 그녀가 앉지 않았으므로 연화도 앉지 않았다. 마주친 시선에 망설임이라고는 없었다.


 “연화, 잘 가져왔어?”

 “네. 그럼요.”


 연화가 제 손에 들린 USB를 한 번 흔들어 보였다. 그에 따라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레 연화의 손으로 향했다. 그러나 연화는 그녀에게 바로 USB를 건넬 생각은 없었다. 다시 제 오른손으로 USB를 꽉 쥐었다. 연화가 웃자 그녀도 따라 웃었다. 들려오는 웃음소리는 없었다. 연화는 제 궁금증부터 풀기로 했다. 그녀가 연화를 어떻게 도와주겠다는 것인지, 왜 도와주려는 것인지. 사실 이전부터 물어봤어야 했지만 당시 연화의 안중에는 그런 것이 들어올 리 없었다. 정신 제대로 놓고 있었지, 연화가 그렇게 생각하며 웃었다.


 “왜 저를 도우시려는 건데요?”

 “네가 연화니까.”

 “두양애가 목표가 아니고요?”


 연화의 물음에 그녀가 팔짱을 끼고 있던 손을 풀어 작게 박수를 치며 웃었다. 그녀가 한 손으로 소파를 짚었다. 얼마나 크게 웃는 것인지 그녀의 고개가 뒤로 젖혀질 정도였다. 연화는 순간적으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긴장하지 않은 척 함부로 침도 삼키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계산적인 표정을 잘 알아차릴 그녀였다. 그래서 연화는 더 긴장해야만 했다. 그녀가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의 머리칼이 어깨 위에서 흔들렸다. 좋아, 다 좋다구. 그렇게 말한 그녀가 소파를 향해 고개짓 했다. 앉아. 연화는 그 말에 소파로 걸어가 앉았다. 그러나 그녀는 앉지 않았다.


 “그건 부차적인 거지, 연화. 그래서 말인데, 내가 어디까지 계획하고 있다고 생각해?”

 “…….”

 “내가 왜 다 알면서도 예양을 리안화에 뒀을 것 같은데? 연화, 말해봐. 연화는 무슨 생각으로 나한테 덤벼든 거지?”


 그녀의 물음에 연화는 입을 뗄 수 없었다. 입안이 바싹 마르는 것만 같았다. 그녀에게 밀리면 안 된다. 생각은 하고 있지만 벗어날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나오는 중압감이 그리 만들었다. 연화는 무슨 말을 뱉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연화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말 그대로 함부로 덤빈 게 맞았다. 평소의 연화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였다. 그래, 연화는 지금 제가 사리 분별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제가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그랬다. 그래서 앞뒤 생각도 않고 무작정 저지르고 본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화는 물러설 수 없었다.


 “무슨 생각…, 그게 중요한가요? 전 이번 건에 대해선 별생각 없어요. 그냥 하고싶은 대로 할 거거든요. 내키는 대로.”

 “그러다 죽으면?”

 “죽는 거죠. 무서울 게 뭐 있나. 타의도 아니고 제 선택이 가져올 게 죽음뿐이라면 어쩔 수 없죠. 이걸 위해서 살아남았는데, 내가.”


 연화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찾아오는 어둠 새로 기어코 불길이 번져 들기 시작했다. 연화는 한순간도 그 기억을 잊은 적 없다. 타오르는 불길, 막혀오는 숨, 뜨거운 공기. 그리고 마주치지 못했던 두 눈. 박지민. 저를 구하기 위해 틈을 비집고 오던 그 아이. 유일하게 숨구멍을 터주던, 그 아이. 삼켜진 절망 속에서 죽어도 괜찮다 다짐했다. 그를 위해 살아났으므로. 그가 절망으로부터 멀어질 수만 있다면.


 연화의 대답에 앞에 앉은 그녀가 과장되게 시선을 천장에 두었다. 고민하는 듯 발끝으로 바닥을 콩콩 찧었다. 구두 앞코와 바닥이 부딪히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여전히 허공에서 시선이 배회했다. 연화는 가만 입을 다물고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연화는 앉아 있었으므로 그녀를 올려다보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구태여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음…. 그녀의 목소리가 길게 늘어졌다. 마침내 그녀의 시선이 연화에게로 향했다.


 “나는 연화를 그냥 내버려 둘 마음이 없는데?”

 “무슨 수로요.”

 “무슨 수를 써서든. 그게 중요한가, 안 중요하지. 네 말이 맞아, 그렇지? 내가 연화를 도와주는 이유…. 궁금해? 나도 연화처럼 별 이유 없어. 네가 연화라서, 그게 다야.”


 연화한테 되도 않는 연민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지. 그녀가 덧붙였다. 연민, 연화가 그 단어를 곱씹었다. 제게 느끼는 감정이 연민이라니. 연화는 불쑥 웃음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삼켜내었다. 제게 연화라는 이름을 안겨준 사람이 연민을 갖는다니. 그러나 이 역시도 목구멍 아래로 삼켜내었다. 그녀 역시도 연화였으므로 가질 수 있는 감정일지도 몰랐다. 차라리 그게 제게는 다행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화는 소파에 등을 잠시 기댔다가 다시 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손에 쥐고 있던 USB를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그러자 그녀가 손을 뻗어 USB를 손에 쥐었다.


 “연화. 뭘 계획하고 있든 오늘 내로 끝내. 그 이후는 없어. 아무것도 안 남길 거야, 두양애고 뭐고.”

 “두양애에서 필요한 건요.”

 “시간 끌어봤자야. 길어질수록 잃을 것만 늘어나지. 그걸 감수하고 거기서 가져올 만한 건 없어, 연화. 진즉 했어야 했던 일을 이제야 하는 것뿐이야. 그래, 내키는 대로 해. 그럴 기회가 온 거잖아?”

 “그러려고요. 내키는 대로.”

 “오늘 자정이 지나고 동이 트기 전이야. 그때까지 끝날 거야.”


 연화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제야 그녀와 눈높이가 얼추 비슷해졌다. 연화가 그녀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가 일어났다. 그녀의 웃는 낯이 보였다. 연화가 그녀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녀의 발소리가 연화로부터 멀어졌다. 연화 역시도 그녀를 등지고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장식장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연화가 순간적으로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으려다 말고 몸이 경직되어 옴을 느꼈다. 심장 고동 소리가 귓가를 따갑게 때리기 시작했다. 연화는 간신히 침을 삼켰다. 건조한 목구멍이 칼칼하게 아파왔다.


 “그런데 말이야, 연화….”


 연화가 숨을 한 번 참았다. 혀로 입술을 한 번 쓸었다. 느리게 제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권총을 장전한 그녀가 연화를 향해 조준했다. 아, 여기서 죽으면 곤란한데. 연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몸이 잘게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제가 권총을 쥔 것도 아니었는데. 연화는 떨리는 두 손을 숨기려 등 뒤로 감춰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연화의 모습을 모르지 않았다. 그녀의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제가 여전히 총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면 안 됐는데. 연화의 실수였다.


 “그러려면 연화도 노력을 해야 하지 않겠어? 아직도 총만 보면 무섭니? 아직도 두려운 게 있는데, 네가 지키고 싶은 걸 어떻게 지키겠니.”


 연화는 제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처음 리안화에 들어와 표정을 숨기지 못하던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녀가 겨누고 있는 총이 저를 향해 있다는 것만 알았다. 너무 겁 없이 덤벼들었던 걸까? 연화가 아랫입술을 씹었다. 아래에서 지민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연화는 제가 눈을 떠야 할지 감아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감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조준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격발하기 전까지는 거두지 않을 모양새였다. 연화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지민의 얼굴만이 제 앞에 떠올랐다.


 지민은 차에 남아 제이가 넘겨준 건물 내부도를 다시 보는 중이었다. 두양애로부터 예양이 있는 건물은 차로 이동하면 15분 가량 걸릴 만큼 떨어져 있었다. 예양이 있는 건물을 돌아다니며 경비하는 이들이 있었다. 인쇄된 페이지를 손끝으로 따라가던 지민은 기시감에 동작을 멈추었다. 하. 지민이 짤막하게 숨을 내뱉었다. 저와 제이가 어렸을 적 있던 곳이었다.


 5층짜리 건물이었고, 3층을 병동처럼 만들어놨다. 실험체처럼 누워있던 예양의 모습이 보였다. 저와 제이가 실험체였던 것처럼. 이제야 왜 익숙했는지 이해가 갔다. 제가 있었던 곳이었으므로. 그들은 그곳에서 실험을 하고 있는 거였다. 예양을 실험체로 쓴 이유, 이용 가치도 맞지만 리안화 때문이기도 했을 거다. 예양으로 인해 리안화로부터 공격받을까봐. 그러나 안타깝게도 예양은 두양애에 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제이라면 몰라도. 지민은 그곳이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미 경험한 바로 아는 것이었다. 멋대로 빠져나가려다 붙잡혀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민은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기억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때도 제이를 데리고 탈출하려 했으므로 예양을 데리고 나오는 것이 수월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안다.


 사실 지민은 예양을 크게 신경 쓰는 편이 아니었다. 지민의 신경은 오직 연화에게만 곤두서 있기 때문이었다. 지민이 예양의 탈출을 도우려는 이유는, 연화의 안위 때문이었다. 연화 홀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연화의 뜻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으므로 이번에도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해결해야 할 건, 두양애다. 이대로 두면 연화를 위협할 것이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야만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민에게는 별다른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지민은 무엇도 잃고 싶지 않았다. 연화도, 제이도.


 CCTV를 제이가 손 본다고 하더라도 이전 영상을 반복해서 틀어놓는다면 그들이 이상함을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적정시간 내로는 건물에서의 일을 끝내야 했다. 저는 모든 변수를 계산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제이뿐이었다. 지민은 제가 그렇게 계산할 수 없다는 사실에 꽤나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는 없었다. 제이,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의 계획이 성공리에 마치길 바랄 뿐이었다. 지민은 감히 연화가 무사하길 빌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안 되겠어. 이 정도도 극복하지 못한 네가 뭘 할 수 있을까. 안 그래? 겁에 질려 벌벌 떨 바에야, 시작하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연화는 눈을 감지 않았다. 그런 연화의 모습을 보며 그녀가 웃으며 한쪽 눈을 감았다.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화약이 터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연화의 머리칼이 공중에 흩날렸다.


 끝없이 타오르는 불꽃을 이겨내야만 했다. 지킬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돌이킬 수 있는 것은 무엇도 없다. 재로 남을 수는 없다. 눈을 감으면 나타나는 환상, 그리고 환상통. 더는 그 기억에 고통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제 앞에서 겁도 없이 타오르던 절망, 그 어느 날 작열하는 태양보다도 더 뜨거웠던. 이제는 제가 그런 절망까지도 모두 씹어 삼킬 것이었다. 절망에 잠식당하지 않으려면 제가 절망을 죽여야 했다. 다시는 살아 제 앞에서 더러운 숨결을 뱉지 못하도록 아주 꼭꼭 씹어, 소화시킬 것이었다.



2021.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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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점점 결말을 향해서 가네요ㅠㅠ 불나비만의 독보적인 분위기.. 아마 인생작 중에 하나가 되지 싶어요
3년 전
소슬
감사합니다, 독자님. 좋은 밤 되세요!
3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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