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그만 받기를 설정한 글입니다
1 " 형! 태형이형! " 오늘도 또다. 어김없이 전정국이다. 이제는 뒤돌아보지 않고도, 목소리만 듣고도 전정국임을 확신한다. 저 새끼는 질리지도 않나? 내가 전학 온 그 날부터 시작해서 벌써 세 달째 나를 따라다니고있다. 등교와 하교길은 물론이고 쉬는시간,점심시간 등 그냥 수업시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에 내 옆에는 꼭 전정국이 있었다. 그리고 전정국은 이상하리만큼 내 옆자리를 고집했다. 처음에는 별 또라이같은 새끼가 다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없으면 괜히 찾게되고 그러긴 개뿔. 여전히 또라이같은 새끼다. 그리고 나 또한 오늘도 어김없이 이어폰을 귀 깊숙이 꼽고 볼륨을 최대로 높였다. 니 목소리 듣기 싫어. 이 개새끼야! 라고 속으로 울부짖었다. 그래봤자 전정국은 오초후에 내 귀에서 이어폰을 빼내며 말하겠지. " 니 귀 다 상한다. " " 뭔 상관이야. 니 귀야? " 전정국은 입을 삐죽 내밀면서 이어폰을 자신의 손가락에 돌돌 감아 정리하고는 내 마이 주머니에 쏙 집어넣었다. 지가 내 여자친구도 아니고, 심지어 같은 거 달린 남자새끼가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전정국이 내 앞에서 알짱댈 때 내가 하는 생각은 딱 두 가지다. 아, 귀찮다. 아, 집 가고 싶다. " 형, 있제. 내 어제 애들한테 욕 씨게 얻어먹었다. " " 왜. " " 옆 반에 김민주 있제. 그 예쁘장하다고 소문난 가시나. " " 내가 일학년도 아니고 걔를 어떻게 알아? " " 아, 맞네. 하여튼 금마한테 고백 받았는데 형 때문에 영점일초도 고민 안하고 깠다. " 전정국은 잘생겼다. 저정도면 키도 크고 몸도 다부지고 춤도 잘추고 노래도 잘한다. 공부 빼고 모든 게 완벽한 놈이다. 대구에서 올라와서 사투리를 쓰는데 그 사투리에 일학년은 물론이고 이학년, 삼학년 누나들까지도 전정국에 껌뻑 죽는다. 전정국이 고백을 받는 일은 내가 아침에 일어나 학교를 오는 것 만큼이나 당연하고 일상적이다. 근데 여기서 의문점은 자신에게 고백했던 수많은 여자애들을 거절한 이유가 딱 한가지, 오로지 나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쯤되면-사실 오래전부터- 진지하게 고민한다. 전정국 저 새끼 진짜 게이인가? 하고 말이다. " 야. 너 진짜 게이야? " " 형. 내 진짜 형 좋아한다. " 아, 주여. 전학 가게 해주세요. 2 정국은 일학년이라 이층이고 나는 이학년이라 삼층이다. 그런데 전정국은 매일 아침 당연하다는듯이 이층을 지나쳐 삼층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나보다 먼저 교실로 들어가 내 자리에 빵과 우유를 놔둔다. 오늘은 초코우유다. 매일 다른 맛의 우유를 사오는 전정국이 딱 한가지 사지않는 우유가 있다. 흰 우유. 나는 흰 우유를 못 먹는다. " 이거 먹을 사람. " " 그냥 좀 처먹어, 복에 겨운 새끼야. 전정국 섭섭해하는 소리 여기까지 들린다. 어떻게 한 번을 안 먹냐? " 나는 단 한번도 전정국이 사온 것을 먹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기분이 이상했다. 어미새가 주는 모이를 받아먹은 아기새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빵과 우유를 교실 뒤쪽 사물함 위에 올려놓았다. 배고프면 아무나 처먹겠지 뭐. 하품을 연거푸 해대다가 책상 위에 엎어졌다. 그래도 단 한번도 버린 적은 없다. 아니다, 버리는거랑 다를게 없는건가. 씨발. 내가 이걸 왜 고민하고 있는거야? 3 " 형. 니 네시간 내내 잤다. 밥 무러가자. " 등교하자마자 책상에 엎드린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후로는 기억이 없다. 무의식 속에서 어렴풋이 나를 깨우는 전정국의 목소리가 들렸고, 눈을 떴을 때 교실에는 나와 전정국 뿐이었다. 안 먹어. 나는 눈을 다시 감고 엎드렸다. 전정국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정적이 흐르고 얼마 후 교실을 나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4 " 호석아. 김태형 깨워라. " 정호석이 내 뒤통수를 강하게 내리쳤고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또 당했다. 김석진 개새끼. 내가 전교에서 제일 싫어하는 물리선생이다. 나는 이를 악 물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김태형 졸거나 자면 알지? 김석진의 목소리가 내 머리 위를 둥둥 떠다녔다. 내 시선은 한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책상 모서리에 죽봉투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누가봐도 전정국임이 틀림없었다. 죽봉투 안에는 죽과 숟가락, 몇몇 밑반찬과 물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대체 언제 내랑 밥 먹어주는데? 이건 버리지말고 형 니가 좀 먹어라. 전정국은 내가 자신이 사다주는 음식들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있다. 5 야자가 파하고 나는 필통과 수학문제집을 가방에 쑤셔넣고 집에 갈 채비를 했다. 불을 끄고 복도에 나가면 전정국이 나를 기다리고있겠지. 신발까지 갈아신고 교실을 나섰다. 전정국이 없다. 괜히 주변을 살펴봤지만 여전히 전정국이 없다. 내가 얘를 왜 찾고있는거야? 고갤 절레절레 흔들며 문을 잠궜다. 애꿎은 자물쇠를 한 번 더 당겼다. 전정국이 옆에 없는 첫 하교길이었다. 6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전정국은 나를 찾아오지않았다. 무려 일주일이나 나는 전정국을 전혀 보지 못했다. 전정국은 학교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종종 은연중에 전정국을 떠올리고있는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인정했다. 나는, 전정국을, 걱정하고 있다. 7 "선생님. 정국이 친한 형인데요. 정국이 무슨 일 있어요? 요 몇주 학교도 안 나오는 것 같던데. 나는 결국 전정국의 담임까지 찾아갔다. 담임도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보였다. 무단결석 이주째라고 했다. 부모님의 전화번호라던가 친척의 전화번호는 하나도 없고 혼자 산다고했다. 나는 전정국의 전화번호와 집주소를 종이에 옮겨적었다. 내가 전정국 번호도 몰랐던가. 8 줄기차게 전화 해보았지만 전정국은 단 한번도 전화를 받지않았다. 신호음이라도 가던 게 나중에 가서는 아예 폰을 꺼놓았다. 어쩔수가 없었다. 전정국의 집을 찾아갔다. 초인종을 몇번이나 누르고 문을 몇번이나 두드렸건만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도무지 감이 안오는 녀석이다. 포기하고 가려는데 문자가 한통 왔다. 나는 전정국의 집문에 기대어 서서 그대로 죽 흘러내렸다. 쭈그려앉아서 문자를 확인했다. 전정국이었다. 981230 나는 재빨리 일어서서 숫자 여섯자리를 꾹꾹 눌렀다. 손잡이를 잡고 힘껏 잡아당기자 문이 열렸다. 나는 조심스레 집 안으로 들어섰다. 적막했다. 차가운 공기가 맴돌았다. "형." 어둠 속에서 전정국의 갈라진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출처를 찾기위해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데 순간 팔목이 끌려 전정국의 품에 안겼다. 전정국은 나를 꼭 감싸안고 내 어깨에 얼굴을 부볐다. " 형... " 울음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나는 서서히 팔을 들어 한손으로는 전정국의 등을 토닥이고 다른 손으로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 형. 니는 내가 그렇게 싫나. " 마음을 쿡쿡 찔러왔다. 정말로 귀찮았다. 또라이새끼 그 이상도 아니었고 그 이하도 아니였으며 나에겐 정말로 별거 아니었다. 나는 전정국의 호의도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고, 전정국의 진심을 모른 척 할수도 있었다. 근데 더 이상은 아니었다. 나는 고민하지않고 고개를 저었다. 전정국에게 말하고 싶었다. 니가 없는 이주동안 나는 니 생각만 했다고. 니가 나에게 주었던 수많은 진심들을 이제야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나 또한 너를 좋아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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