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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란 전체글ll조회 1677













집 앞을 서성이다가, 결국은 발걸음을 돌렸다. 느릿하게 옮기는 발걸음 사이로 설운 빗소리가 찰박찰박 울렸다. 희끗희끗 흘러내리는 가로등 빛이 이다지도 무심한 적이 있던가. 오늘만큼은 저도 모르겠다는듯이 외면해 버리는 가로등 빛이 서러워서, 결국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내뱉고야 말았다.












이따금씩 너는 그런 말을 하곤 했었다. 소녀같은 취향이지만, 장미가 좋다고. 그러면 나는 무어라 했던가. 소녀같다고 놀렸다. 가시 돋친 장미의 줄기하며, 울긋불긋한 그 꽃잎하며, 어느 곳이 네 마음에 들었냐고 물었다. 그러면 너는 하얀 웃음을 한 번 짓고서,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생각해보건데, 나는 장미와 참 많이도 닮아있었다. 가시 돋친 줄기하며, 울긋불긋한 그 꽃잎까지, 참 많이도 닮아있었다. 




네 정원의 마지막 장미가 시들었을때, 너는 무어라 말했던가. 당신에게 바램이 있다. 라고 중얼였다.












한동안 날씨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가랑눈은 내릴대로 내려 온 거리가 망울진 눈들로 가득했고, 거리에는 오가는 이 하나없이 쓸쓸한 적막이 감돌았다. 아마도 길이 많이 얼었겠지. 여전히 하얀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끊임없이.



"여기서 뭐하냐."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인지는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보나마나 성열일테지. 코코아 담긴 머그컵을 건네며 자연스레 옆자리를 꿰차는 성열을 바라보며 나는 묘연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모락모락 김오르는 머그컵을 꼬옥 손에 쥐고서 창 밖을 바라보았다. 하얗게 얼어붙은 창문으로 희끗희끗, 적막한 거리가 보였다. 사람, 없네. 띄엄띄엄 말하는 내 말에 성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따라 유독 사람이 적네. 눈이 와서 그런가."





"이런 날에 더욱더 나와봐야 할텐데 말이지."





"그러게나 말이야. 이럴 때 아니면 언제쯤 눈구경을 해보겠어."





입 안을 쑤시던 달콤한 감각이 나른하게 온 몸을 감싸안았다. 우리라도 나갈까? 성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럴까?"




"그래 그럼. 오랜만에 나가서 눈구경도 하고 그러지 뭐."





쟁여놓았던 겨울 외투를 찾는데에는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실로 오랜만에 두터운 옷을 입고서 거리를 나섰다. 이른 아침, 아무도 오가지 않은 거리에 소복거리는 발자욱 소리가 유난히 처량하게 들려왔다.











"이맘때쯤이었지?"




"뭐가?"





"성규가 죽은게."




"…그랬지."





하얀 눈 위로 발자욱이 소복이 쌓이고 있었다. 어느 곳은 푹 파였고, 어느 곳은 못나게 일그러졌다. 너도 그랬다.





"보기드물게 착했었어."




"누구보다도 너를 사랑하기도 했고,"





"누구보다도 너를 아꼈지."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미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눈길을, 더 흐트리고 싶진 않았다.






"돌이켜보면, 참 안타깝다."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목 주위가 따끔따끔 거렸다.





"성규가 좋아하던 꽃이 뭐더라."




"…장미. 장미였다."





"아, 그래 맞아. 장미였지." 성열이 짧게 탄식했다. 






"지금도 성규는 장미를 좋아하고 있을거다."





"그렇겠지."




"그리고, 너를 좋아하고 있을거다."




"……."




"성규가 죽기 전에, 너에게 남긴 편지가 있어."





고개를 쳐들었다. 애잔한 미소를 띄고서 나를 쳐다보는 성열이 보였다. 불안정한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 보며, 나는 말했다. 어떤, 편지? 조심스레 묻는 나에게 성열은 한 장의 편지를 내보였다. 빛바랜 편지 봉투. 네가 좋아하던, 그 특유의 빛바랜 종이였다.




"살아생전 편지 한 번 안쓰던 놈이, 편지를 쓴다고 몇 날 며칠을 고민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더라."





"가서 읽어봐. 성규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테니."





저 어디론가 성열이 멀어지고 있었으나, 나는 그를 따라갈 수 없었다. 우두커니 서서 그 빛바랜 종이만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부들거리는 손을 애써 손에 힘을 주었지만, 더 떨려올 뿐이었다. 나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몇번의 실수 끝에 봉투를 연 나는 어렵지않게 편지지를 꺼낼 수 있었다. 똑같이 낡은 종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또다르게 눈에 익은건, 다름 아닌 장미 꽃잎. 말라비틀어져 보기 흉해진 장미 꽃잎 속에서, 나는 너를 보았기에, 나는 그 장미 꽃잎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흩뿌려진 두어개의 장미 꽃잎이 빛바랜 종이를 붉게 적시었다.




  
장미 꽃잎의 꽃말은 당신에게 바램이 있다.
장미의 꽃말은 아름다움, 애정, 미덕, 그리고 사랑.
나는 당신에게 장미의 꽃잎이, 그리고 장미가 되고싶다.
나를 바라기를. 그리고 사랑하기를.




"못 되 쳐먹은 놈…. 어찌 이렇게 심성이 곱지를 못해…."




꽃잎 하나가 힘없이 망울진 눈 길 위로 떨어졌다. 내 손이 더욱 심하게 경련을 일으킨 까닭이었다. 구기듯 빛바랜 종이를 손에 꾸욱 쥐어보였다. 주름이 지고 힘없이 구겨지는 종이에 나는 한 줌 눈물을 흩뿌렸다. 오갈데없어 길을 잃은 아이마냥, 그렇게 서럽게 울었다. 나는 이미 너를 바라고 있었고, 너를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당신에게 바램이 있다.
다음 생에는 내가 당신의 장미가 되기를.
장미가 되어 당신은 나를 사랑하고,
장미꽃잎이 되어 당신이 나를 간절하게 바라기를.










* * *



연재하고 있던 당신의 연애는 어쩌고 이런 글을 적고있냐 물으시면....면목이 없네요^_ㅠ
내일쯤에는 아마 마지막 편을 보실 수 있으실겁니다. 그 전에 간단하게 에피타이저로 선보이는 조각 글이랄까요.
언어 선택을 하는 데에 있어서 현대와 과거가 두루뭉술하게 한데 섞여버려 어느 시대인지는 독자분들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머릿속의 스케치 했던대로라면 좀 많이 옛날입니다^^;;혹시 현대같아 보이셨다면 또 다른 관점으로도 내용이 전개될 수가 있겠네요ㅎㅎ
아무튼 내일은 일요일!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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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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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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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금작가님발견 테라규 암호닉신창되나요? 젛아요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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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란
암호닉! 환영합니다 감사해요~^♥^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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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와 대박 소름.......그....그대.....왜이리 금손...........글잡엔 역시 금손들이 많아요ㅜㅠㅠㅠ어엉엉ㅇ ㅠㅠㅠㅠㅠ
12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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