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연입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12시가 다 되어가네요. 아, 작가님이 시간 없다고 빨리 사연 읽으라고 하시는데요? 괜찮습니다. 한 시간 밖에 되지 않아도 우리 열한시는 여유롭게 가면 되니까요."
"...."
"하하. 이러다가 작가님 울겠어요. 알겠습니다. 오늘의 첫 사연이자 마지막 사연."
"...."
"안녕하세요. 전 서울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아니, 이제 곧 성인이 되는 유ㅇㅇ입니다. 이름은 익명을 신청하셨어요. 바로 이어가겠습니다."
"....."
" 남들이 흔히 말하는 고3 생활이란 한마디로 지옥 같다고 하죠. 저도 그렇고 제 주변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수시를 보던, 정시를 보던, 예체능 계열이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제 친구들은 하루하루 스트레스 속에 갇혀있는 듯 살아갔어요. 저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어떻게 될지 모를 제 미래 때문에 불안하지만, 불안한건 제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기 때문에 투정도 부리지 못했죠.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전 수능을 보고 난 후 였습니다. 온 세상은 수능이 끝났다고 수험생들을 토닥였고, 주변 사람들의 위로와 응원은 이제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을 만큼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전 아무런 해방감도,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나 설렘도 없었습니다. 그저 지금까지 난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내가 진정 하고 싶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생각이나 해봤을까,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재수란 타이틀을 어깨에 지고 싶지 않아 아무렇게나 쓴 원서, 일단 재수는 면했다고 기뻐하는 제 친구들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제 마음은 더 밑으로 추락합니다. 말로는 아직 늦지 않았다, 아직 너는 젊고 기회는 많다, 라고 세상에 널려있지만, 실제로는 그게 아닌 걸 알아요. 뒤쳐지면 남들의 시선 때문에 더욱더 힘들다는 것이요. 지금 당장 막막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네요. 남들이 보면 한심하고 안쓰럽게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열한시에 보낸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일도 아니겠지만, 어디에도 속 시원히 하지 못했던 말을 하는 것에 의의를 두려고요. 지금 라디오 듣고 계시는 청자 분들이 갑자기 우울해지시면 어떡하죠? 만약 그렇다면 민DJ님께 부탁드릴게요. 아, 마지막 사연곡도요.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너무 저한테 다 맡기시는 거 아니에요? 마지막 사연곡도 그렇고."
"……."
"아, 그럼 우리 열한시분들한테 물어볼까요? 정말 이 글을 듣고 우울하셨는지, 괜찮으신지? 그거 물어보는 것도 좀 그런가.. 그러...면! 제가 마무리 할게요. 우리 열한시분들 지금 잠오는데 듣고 계시잖아요. 손가락 움직이기 귀찮을 거 아냐."
"……."
"익명으로 보내주신 유ㅇㅇ님. 아마 그 시기에 겪을 수 있는 고민 중, 가장 머리 아프고 불안한 고민을 하고 계신 것 같아요. 뭘 어떡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가끔은 나 자신이지만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라는 말이 스스로 얼마나 답답하고 힘든지 제가 가늠할 수는 없겠지만, 제가 드릴 말씀은 딱 하나에요."
"……."
"나 자신을 믿는 것. 물론 자기 주변에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어요. 가족이나 친구, 어쩌면 지나가다 마주치는 사람일지도 모르죠. 그러나 나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단 하나에요. 스스로의 믿음. 어떤 말을 듣던지, 어떤 행동을 당하던지 나 자신이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결과는 달라져요. 마찬가지일거에요. 주변 사람들이 제 아무리 안쓰럽게 보고, 괜히 위로해도 제 자신이 다르게 생각한다면 달라지겠죠."
"……."
"그러나 그게 쉽지 않은 건 당연해요. 물론 제가 말한 모든 사실을 유ㅇㅇ님뿐만 아니라 우리 열한시분들도 알고있을거에요. 나 자신만 믿으면 된다, 라는 말을 알고는 있지만 분명히 현실에선 적용이 안 되죠. 나는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는데 친구는 성인이 됐다며 놀러 다니고, 누구는 유학을 간다며 sns에 글을 올리고, 누구는 재수를 했는지 도통 얼굴이 안보이고. 분명 이 불안함을 나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닌 거 같은데, 막상 둘러보면 다 나보다 행복해 보이고, 어찌되었던 제 갈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죠."
"……."
"저도 그랬어요. 처음 음악 한다고 했을 때 그냥 어린아이의 호기심으로 봤는지 별 말 안하고 알아서 해봐라, 이런 식이었죠. 그래도 전 꿋꿋이 했어요. 집에 손 벌리기 싫어서 그 어린 나이에 알바도 해보고, 날을 지새우면서까지 비트를 만들기도 하고. 제 주변 친구들은 은근히 비꼬기도 했죠. 네가 음악을 한다고? 힙합? 부끄러워하기도 싫어서 일부러 강한 척도 했기도 했어요. 아, 작가님 웃지 마세요."
"……."
"장담해줄 수 있는 건. 유ㅇㅇ님이 꿋꿋이 자신의 길을 고민하고 개척해 나간다면,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이 차갑고, 날카로운 게 아닌, 지금의 나 자신을 만들어준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있을거에요."
"……."
"너무 제 말이 길었나봐요. 작가님이 빨리 끝내라고 하시네요. 열한시분들은 아마 제가 끝내는거 싫으실텐데."
"……."
"유ㅇㅇ님. 열한시에 보내는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해지셨다면 정말 다행이에요. 꼭 지금 이 순간이 나중에는, 하나의 추억이 되어있으면 좋겠습니다. 아, 사연 곡은 제가 정해도 된다고 하셨죠? 그럼 마지막으로 듣고 마치겠습니다. 열한시분들,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지막 곡,"
"……."
"Tomorrow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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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에 넌 지금의 널 절대로 잊지마.
이 가사를 처음 봤을 때의 전율을 잊지 못해요.
참 대단한 사람. 민윤기 짱짱맨!
곧 석진오빠 이야기 오겠습니다. 빵야빵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