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민은 윤기를 무서워했다. 사랑하는 애인 사이임에도 내리꽂아지는 폭력을 참아야했고, 또 자신을 향한 냉정한 시선을 참아내야 했다. 그는 윤기를 사랑했다.
저녁 9시, 밥을 챙기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지만 지민은 윤기의 방문을 두드렸다. 형, 밥 안 먹어? 몇 번 두드렸음에도 조용한 방문 너머를 바라보며 지민은 등을 돌려 주방으로 향했다. 아직 식지 않은 국, 김이 올라오는 밥. 식탁을 정리하며 올라오는 한숨을 참고는 앞치마를 걸어두었다.
‘너 하면 잘 어울리겠네.’
무심하게 저에게 던져주었던 분홍 앞치마였다. 그래, 분명 그때라도 좋았다. 웃음을 감춘 무심한 말투. 그것은 윤기의 습관이었다. 이제는 억지로 감추지 않아도 웃음은 보이지 않았다. 지민은 앞치마를 쥐었다 놓은 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언젠가부터 각자의 공간의 생긴 뒤로는 지민은 윤기에게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었다. 지민은 차가운 공기를 지나 흰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아직 잠들기에는 이른 시간이지만 억지로라도 눈을 감았다. 내일이면, 내일이라면 달라지지 않을까.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요즘 들어 꿈을 꾼 기억이 없다. 좋은 걸까. 뭉쳐진 근육을 풀고 기지개를 켰다. 구겨진 이불을 털어 정리를 하고 방문을 열었다.
“뭐해?”
문을 열자마자 마주한건 윤기였다. 이 이른 시각에 약속이라도 있는지 외투를 걸친 모습이었다. 중요한 약속은 아니구나. 윤기의 헝클어진 머리를 보며 지민은 생각했다. 윤기는 갑자기 나온 지민의 모습에 당황을 했는지 허둥지둥 현관을 열고 사라져버렸다. 알고 있었다. 윤기의 등 뒤에 숨겨진 칼을 지민은 볼 수밖에 없었다.
알고 있었다. 윤기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민윤기 박지민 이야기
w. 유리창
‘커피에 설탕 넣지 마.’
설탕을 넣으려다 떠오른 생각에 다시 뚜껑을 닫았다. 까맣게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자신의 모습 같았다. 커피포트 선을 뽑고 커피 잔을 든 채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윤기는 지민의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치 선이라도 그은 듯 문 앞에서 항상 멈춰있었다. 쓰다. 한 모금 넘기자 올라오는 쓴 맛이었다.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쓴 맛. 윤기가 떠올랐다. 왜 그랬을까. 지민은 얼마 전부터 윤기가 자신을 살펴본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윤기는 주변에게 둔감하니.
내가 죽기를 바라면서 왜 헤어지자는 얘기조차 하지 않는 걸까. 지민은 부엌에서 설탕 통을 가져와 뚜껑을 열었다. 한 스푼, 두 스푼. 작은 알갱이들이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다.
사고 이후였다. 몇 달 전, 크리스마스 기념 여행을 간다며 잔뜩 신이 나서 차에 올랐었다. 그 뒤로 트럭과 충돌 사고가 있었다. 윤기는 다행하게도 가벼운 상처들만 있었지만 문제는 지민이었다. 분명 외상은 없었지만 의식 없이 며칠을 누워있다 눈을 떴다고 했다. 마치 필름이 끊긴 듯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들이었다.
‘지민아!!!’
하, 하아... 생생한 윤기의 목소리만 남아있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를 들고 싱크대에 전부 부어버렸다.
욕실은 수증기로 가득 차있었다. 뿌옇게. 물은 찰박거리며 지민의 몸을 감쌌다. 온 몸은 멍 자국이었다. 두 팔을 물 안으로 집어넣고 얼굴까지 밀어 넣었다. 이대로 죽을 수 있을까. 푸하! 폐에 공기를 집어넣고 숨을 헐떡거리며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박지민."
욕실 밖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지민은 몸을 일으켰다. 형 왔어?
“나오지 마.”
문고리를 잡으려던 손이 멈칫했다. 나오면 죽일 거야. 너 죽일 거야, 지민아. 손을 내렸다. 지민은 바닥에 주저앉아 문에 등을 기댔다. 문 너머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같은 자세로 다른 방향을 향해있는 그들이었다. 지민은 윤기에게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전 10시, 윤기는 회사에 가고 없을 시간이었다. 지민은 시선을 책상에 고정시킨 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다리를 떨어대고 손톱을 물어뜯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고요한 것 같지만 방 건너에서 들려오는 조그만 소리. 위협적이었다. 지민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두려움에 애꿎은 손톱을 괴롭혔다.
똑똑.
손톱에 피가 맺혔다.
“박지민.”
형이야? 지민은 의자가 젖혀지도록 세차게 일어나 방문으로 향했다. 맺혀있는 피를 바지에 대충 닦고 문고리를 돌렸다. 퍽. 지민의 얼굴 위로 주먹이 날아와 꽂혔다. 그대로 방문에 머리를 박고 쓰러져버렸다. 일어나. 갑자기 날아온 거센 충격에 어질어질했지만 시선은 윤기에게 꽂혀있었다. 윤기는 그대로 지민의 멱살을 잡고 거실로 끌고 왔다.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는 지민의 몸뚱아리를 기어이 세워 다시 바닥에 내려꽂았다. 몇 번의 발길질이 지민의 배를 강타했고 지민의 위에 올라타 목을 쥐었다. 커헉, 컥. 윤기는 손가락에 더욱 힘을 주었다.
“왜... 살아있는 거야?”
윤기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컥, 컥!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밀려오는 두려움에 지민은 윤기의 손목을 잡았다. 제발...죽어. 지민은 실핏줄이 터져 빨개진 눈을 부릅뜨며 윤기를 밀어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재빠르게 벽에 붙었다. 아아악!!! 윤기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대며 오열하고 있었다. 폐에 가득 공기를 집어넣으며 숨을 몰아쉬던 지민은 천천히 일어서 윤기를 바라보았다. 형... 윤기는 벌떡 일어나 지민의 멱살을 잡았다.
“니가 왜 살아있는 거야? 도대체 왜!!! 제발 죽으면 안 돼? 나 좋아한다면서...그럼 제발 죽으란 말이야!!!!”
하아, 하아... 둘은 서로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지민은 자신에게 고래고래 소리치며 떨어대는 윤기의 모습이 괴로웠다. 형을 이렇게 사랑하는데. 지민은 떨어대는 윤기를 밀어내고 그대로 안았다. 흥분한 윤기를 달래듯 등을 쓸어주었다.
“내가 형 많이 사랑하잖아.”
지민은 그대로 베란다로 걸어갔다. 창문을 열었고 그대로 곤두박질쳤다.
삐- 삐- 삐-
눈을 뜨고 보이는 것은 천장이었다. 코와 입을 덮고 있는 호흡기. 온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온통 붕대 투성이. 여기 어디야. 눈알을 굴려가며 이 곳이 어딘지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을 찰나에 문이 열리며 간호사가 들어왔다. 눈동자를 굴려 간호사를 쳐다보자 깜짝 놀라며 얼른 밖으로 나가 늙은 의사와 함께 들어와 나를 향해 걸어왔다.
“일어나셨네요, 오랫동안 의식이 없으셨습니다.”
지민은 깨질듯한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꿈처럼 느껴지는 그간의 기억들. 생생하게 떠오르는 교통사고의 현장. 부서진 차의 잔재가 윤기의 몸을 관통한 기억이 떠오른 순간지민은 멍해진 상태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 형은 죽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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