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호/도경수] 환절기
날이 많이 쌀쌀해졌다. 손에 들고있던 가디건을 주섬주섬 챙겨입으며 신호가 바뀌길 기다렸다.
다 입고 옷 매무새를 정리하고나니 딱맞게 신호가 바뀌었고 핸드폰을 꺼내들고 재빨리 길을 건넜다.
여전히 아무 알림없이 조용한 핸드폰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언제쯤 연락이 오려나-
집 앞에 거의 다 와서야 포기했다.
'연락 안오려나보네..바쁜가'
신발을 대충 벗어놓고 거실에 벌러덩 누워버렸고 피곤함에 눈이 감기려할 때 쯤 진동소리에 눈이 번쩍뜨였다.
왔다, 왔다 왔어.. 목소리를 다듬고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응 지호야"
-뭐야 왜이렇게 빨리받아?
"게임중이였어 이기고있었는데..
-거짓말하지마 티나잖아, 집앞으로 갈께 춥다 따뜻하게 입고 나와
"응..! 조심히와 기다릴게"
-경수야- 밖에서 기다리지마 추워, 끊는다
전화를 끊고 현관문 앞 거울앞에 서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봤다.
'지호가 예쁘다고 해줬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하며 가디건 단추를 단단히 잠구고대충 벗어놓은 신발을 재빨리 신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기다린거 알면 또 인상을 찌뿌릴 지호생각에 빌라계단에서 기웃기웃 창밖을 보고있었다.
20분거리를 또 열심히 뛰어오고 있을까? 자존심에 안뛰어왔다고 떵떵 우겨댈 지호모습에 벌써 웃음이나왔다.
열심히 창문이 뚫어져라 보고있으니 노란머리가 빠르게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집이 보이자 슬슬
속도를 낮추더니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머리를 만지는 지호가 너무 좋다. 나도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고 방금 나온듯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우지호!"
지호는 오자마자 아무말 없이 내 양손을 잡더니 무섭게 쳐다봤다.
"일찍 나오지 말라니까 전화했을 때 나왔지? 손이 차잖아 벌써"
"눈치도 빨라 너도 조심히 오라니까 뛰어왔지"
"안뛰었어~ 아무리 네가 보고싶어도 말은 잘 들어"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아 진짜"
내 손을 자기 주머니에 넣고는 "배고프다 밥먹자"라며 개구지게 웃으며 익숙한 길을 걸었다.
가을에서 겨울이 되고있는 날씨였다. 혼빠지게 더운 여름을 지나서 이런 선선한 날씨가 왔다는게 기쁘면서도
벌써 연말이 되어감을 체감하는 듯해서 서글프기도하다. 우지호와 잡고있는 왼손이 언제까지 따뜻할 수 있을까?
이런 말을 지호가 들리게 했다면 안그래도 싸나운 눈이 얼마나 무서워질지 상상조차 하기싫다. 이런생각을 하는걸
눈치 챈건지 지호는 잡고있던 손을 더 쎄게 잡았다. 아파서 움찔하며 아프다고 말하자 아프라고 한거라며 대수롭지않게
웃어넘기더라- 지호는 자주가던 분식집에 가자며 들떴고 멀지않은 곳에 위치해있던 분식집에 들어가 족히 세명이서 먹어야 할 양을 주문했다.
"라볶이랑 우동도 주시구요, 밥도..음.. 밥은 뭐먹지? 돌솥비빔밥먹을까? 그래 돌솥비빔밥도 주세요!"
"지호야 나는 안먹어"
"왜- 우동국물이라도 떠먹어 입 맛없어도 그래야 돼"
"아니야 생각없어 정말로.. 응? 양보해줘"
"그럼 비빔밥 두숟가락만 먹어 국물은 다섯번만 더이상은 양보안해"
마지못해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지호는 티를 안내려고 노력하는 듯 하지만 서운함과 속상함이 마음속에서 회오리치고
있는게 분명했다. 나 또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있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동안 음식들이 하나씩
나왔고 지호는 열심히 한 입 두 입 먹으며 아까 약속한 비빔밥 두숟가락과 국물 다섯숟가락을 내 입에 먹여줬다.
"내일 병원가"
"몇 시였더라?"
"아침 10시, 지호야 나 혼자가고싶어"
"안돼"
"안됀다고만 하지말고 이유부터 물어봐ㅈ.."
"왜.."
"내일 역시 전처럼 결과는 안좋을꺼야, 그건 너도알고 나도아는 당연한 사실이야.. 넌 항상 결과가 안좋으면 화부터 내,
잘못도 없는 의사선생님한테...그치 지호야..? 너 화나는거에 비하면 난 몇 백 몇 천배는 더 화나 내 몸이고 내가 관리소홀히
한거같아서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해지고 싫어져 그래서 난..."
"알았어 혼자갔다와 진료끝나고 전화 꼭 하고"
"응..고마워"
"미안해 병원갈 때마다 곤란하게해서"
내가 너무 머리아프게 했나 싶어 미안해졌다. 주에 한두번 병원으로 진료를 받으러 갈때마다 지호는 같이 가줬다.
이제서야 아무렇지 않게 "나 몸이 안좋아요 곧 죽을지도 몰라요' 하고 말할 수 있지만 처음 알게됐을땐 가족들이나
지호가 안아줘도 그 무서움이 가시지 않았다. 난 생각보다 오래, 1년이란 시간을 버텨왔고 가끔 차라리 빨리 죽었어야했는데
라는 생각이 날 너무 힘들게해서 방에서 울고있을때마다 지호는 어떻게 아는건지 그 타이밍에 전화를 해줬다.
'내일은 뭐할까?' 라며 미래를 나에게 선물해줬고 희망을 심어줬다.
조금씩 남긴 음식들을 아깝다며 울상지으며 계산을 하러간 지호가 날 봤다.
"경수야 너 오늘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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