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열일곱 유치원입니다! 02
(부제: 잠자는 유치원의 사슴)
2014년 5월 중순. 햇볕이 따사로운 점심시간 후.
"지금은 무슨 시간일까요~?"
"노리시간이여!!"
이 유치원에서 세 달을 근무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아이들이 최고로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이자
선생님들도 덩달아 신나는 시간 중 하나가 바로 놀이시간이야.
유치원 옥상에는 놀이터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크기지만
나름 있을 건 다 있는 '미니' 놀이터가 있어.
각 반마다 아이들을 두 줄로 세우고 계단으로 향했어.
너는 세 반을 다 돌아가면서 보조해주는 선생님이라 그냥 맨 뒤에서 가려는데
한 아이가 너에게 오며 너의 손을 꼭 잡았어.
살짝 놀란 너는 눈이 커진 채로 아래를 내려다봤고
너를 위로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는 원우가 보였어.
너는 허리를 숙여 원우에게 선생님이랑 같이 가고싶었냐고 물어보자
고개를 위 아래로 세차게 흔드는 원우야.
"원우능 선생님이 조아요."
뜬금없는 원우의 고백에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질 뻔 했지만 괜히 담담한 척 하면서
'선생님도 원우가 좋아요~' 하자 원우는 볼이 빨갛게 익으면서 예쁜 웃음을 지어줬어.
그렇게 서로 웃다가 옥상 놀이터에 도착했어.
열일곱 유치원에서 나이가 제일 어린 친구들이 있는 토끼반 지수쌤이 앞에 서서 말했지.
"여러분~ 그럼 우리 신나게 놀아볼까요~?"
언어선택이 적절한지는 의문이었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달려가는 아이도 있는가하면
벌써 귀찮음이 뭔줄 아는지 천막이 쳐져있는 그네에 앉아 친구들이 노는 풍경을 지켜보는 아이도 있었어.
너는 혹여나 아이들이 다치면 어쩌나 안절부절하며 돌아다니고 있는데
누군가 너의 앞치마를 당기는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토끼반 명호였어.
"여기 아야해써여-"
벌써 어디서 다쳐온 건지 무릎이 까져있었지.
화들짝 놀라며 '괜찮아? 안 아프니?'하고 내가 더 호들갑을 떨자
명호는 씨익- 웃으며 너에게 답했어.
"이거능 아무 것도 아니에여."
아이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닌 것 같다고 느낀 너는 황당함과 웃음이 함께 몰려왔어.
명호의 손을 잡고 수돗가로 가 물로 상처를 씻어내니 따끔한지 표정이 일그러지는 게 보였어.
그래도 안 울고 버텨내는 명호가 기특한지 네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의젓하네, 우리 명호!' 하자 표정이 풀어지며 웃는게 보였어.
혹시나 해서 가져온 구급상자를 들고 벤치로 가서 앉아 내 다리 위에 명호 다리를 올려서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줬어.
"선새님, 호 불어주면 안대여?"
상처에 호- 하고 불어달라는 명호의 말에 '그래!'하고 따갑지 않게 호- 하고 불어주자
뭐가 그렇게 좋은건지 까르르거리며 웃는 명호.
괜시리 너도 마음이 진정되면서 웃음이 새어나왔어.
그렇게 명호의 치료가 끝나고 너도 한 번 가서 애들이랑 놀아볼까 생각해서 자리에서 일어났어.
알록달록한 미끄럼틀에서 우당탕 소리가 나길래 보니까
미끄럼틀 맨 아래 출구에 사슴반 정한쌤이 다리 사이에 아이 하나를 끼고 같이 내려온 거였어.
"워후!! 준휘야, 재미있었지?!
어, 칠봉쌤! 선생님도 타실래요?"
선생님의 품에 안겨있던 준휘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어.
어째 애들보다 선생님이 더 신났는지.
나는 정중하게 거절하고 더 뒤쪽으로 가 봤어.
아이들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있는 승철쌤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하는 소리에 맞춰 공룡포즈를 취하는데 아이들이 어찌나 좋아하던지 웃음이 끊이질 않아.
그러다 승철쌤이 조금 움직이자 순영이가 놓치지 않고 '선새니 움지여따!!!!'하고 소리치니까
술래인 지훈이에게 가서 약속하듯 새끼손가락을 연결하고 있었어.
그 옆으로는 지수쌤은 숨바꼭질을 하는 중이었는데 쌤이 술래였는지 10부터 1까지 숫자를 거꾸로 세고 있었어.
지수쌤이 1을 세고 바로 뒤를 돌자마자 아무 곳에도 숨지 못한 민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어있었어.
지수쌤이 '어~ 민규 찾았다~'라고 하자마자 민규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어.
"선새미.. 다 숨어써? 하고 왜 안 무러바여..."
라고 말하고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리는 민규에 의해 당황한 지수쌤이 당황했는지 민규를 꼭 안아주고
'오, 선생님이 몰랐네- 미안해, 민규야...'라고 말 하는 걸 봤어.
그러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내게 민규를 달래는 동안 술래를 대신 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벤치로 가 앉아버렸어.
얼떨결에 술래가 된 너, 칠봉쌤은 '선생님이 술래니까 숫자 다시 센다~'하고 눈을 가리고 뒤 돌아 섰어.
그렇게 내가 술래가 된 숨바꼭질이 마무리가 되어갈 쯤 원장선생님께서 직접 올라오셔서
간식먹을 시간이라는 말씀을 하셨고 원장선생님 앞으로 예쁘게 두 줄을 서는 아이들이 보였어.
원장님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는데 왜 선생님들이 안 보이나 해서 뒤를 돌아보니
남자 좀비 셋이 입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어.
매 놀이시간마다 느끼는 거지만, 선생님들이 애들을 놀아주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선생님들을 놀아주는 것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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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간식시간이 끝나고 치카치카까지 끝낸 아이들이 자신의 이불을 펴고 누웠어.
창 밖에서는 따스한 바람이 불어왔고 각자 반 안에서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들려왔지.
간식이 담겨있던 식판을 가지러 백호반에 들어가자
백호반은 제일 나이가 많은 7살 반이라 낮잠을 자지 않고 다른 반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
모아놓은 식판을 내게 주려다 다시 가져가시던 승철쌤이 토끼반 식판까지 가져갈테니까
사슴반에 있는 식판을 가져오라고 하셨어.
그러고는 바로 옆에 붙어있는 토끼반으로 들어가버리셨어.
아이들은 선생님이 나갔는지 어디 갔는지 쳐다보지도 않고 조용히 예술의 세계를 펼치고있었어.
'역시 7살. 내년에 학교들어가는 아이들이라 의젓함이 잔뜩 묻어있구나.' 생각하다
'아, 맞다. 사슴반에 식판 가지러 가야지.' 하고 문을 살짝 밀어 밖으로 나와 사슴반으로 들어갔어.
잔잔한 피아노 곡이 흘러나오고 아이들의 새근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어.
그리고 낮은 책상에 아이들 의자를 가져다 앉은 정한쌤의 뒷 모습이 보였어.
아이들 낮잠 잘 시간동안 보육일지 쓰시는구나 생각하고
식판을 가져간다는 말을 하려고 등을 톡톡두드리자 정한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
얼마나 열심히 쓰시면 건드리는데 뒤도 안 돌아보시나 해서 가까이 다가가니
열심히 자고 있는 사슴반 선생님이 보였어.
애들보다 미끄럼틀 더 열심히 탈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남은 이불을 하나 가져와 등에 덮어주고 노란 포스트잇에다가
'열심히 아이들과 놀아주시느라 지치신 사슴선생님-
식판 가져갑니다! 이따 오후에 들어올게요!' 라고 써 놓고 나왔어.
그렇게 노느라 지친 잠자는 유치원의 사슴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잠만 자다가
아직도 불이 꺼진 것을 본 앞 반 지수쌤이 불을 켜주러 온 그제야 일어났다는 후문이..
-epilogue-
"소꿉노리 할꺼야."
"그럼 엄마는 누가해?"
"다람지 선새님."
아무 반도 맡아서 가르치지 않는 너에게 선생님들이 키가 큰 남자선생님들 사이에 콩알만한 네가
다람쥐처럼 (귀엽고) 작다는 이유로 지어준 별명인 '다람쥐'가 선생님 앞에 붙는 수식어가 되어버렸어.
아이들은 소꿉놀이를 하겠다며 한 두명씩 모였으나 모이는 족족 남자애들이라 엄마를 할 사람이 없었나봐.
그래서 엄마는 누가 할 거냐고 묻는 명호에게 원우가 다람쥐 선생님인 칠봉. 네가 할 거라고 대답했어.
본인이 모르는 사이에 엄마가 된 너는 아는지 모르는지 애들을 보면서 돌아다니고 있었어.
"그러면 아빠는 누가 해?"
"나, 나. 내가 하꺼야!"
원우가 일어서며 자신있게 손을 들었어. 그리고 자신이 아빠를 하겠다고 나섰어.
순간 명호의 표정은 굳어버리고 조그만 아이가 정색을 한 채로 자신보다 형인 원우에게 대답했어
"시러, 내가 하꺼야."
그렇게 원우와 명호의 말다툼이 오가다가 원우가 명호의 볼을 꼬집고 도망을 쳤어.
명호는 원우의 뒤를 쫓아가다 넘어지고 말았지.
그리하야 명호의 무릎은 까져서 피가 났고 그대로 주저 앉아있다가
네가 올라올 때 구급상자를 들고 온 것을 봤던 명호는 울음을 집어삼키고 너에게 다가갔어.
놀라는 너의 반응에 명호는 괜히 멋진 척을 하며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을 해.
속으로는 아프고 울고싶지만 멋지게 보이려고 꾹- 참는 거였지.
네가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줄 때 원우와 눈이 마주친 명호는 원우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웃어보였어.
원우는 분하다는 표정을 짓다 고개를 돌리고 승철쌤을 따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러 갔어.
*
아낌져가 아! 낌! 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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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명호를 영악한 아이로 쓴 것 같지만 아닙니다....ㅎ
그런 의도는 전혀 아니에요!!!!! 그냥 선생님을 좋아하는 순수한 아이....!!!!
승행설 다음으로 나온 잠자는 유치원의 사슴 잘 보셨나요...?!
다음 편에는 누가 나올지 짐작이 가기 시작하셨죠?! 데헷-
근데 어떤 한국말을 물어봐야하는지 감이 안잡히네요.. (저지르고 보는 아낌져)
암호닉 신청은 정말 감사히 받겠습니다!
비루한 저의 글에 댓글 남겨주시고 읽어주시는 여러분 사랑해요!
좋은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