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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밥 먹으러 가는 중에 차에서 휴대폰을 꺼내 게임을 함. 하도 광고가 뜨길래 깔면 안 나올까 해서 깔았는데 총 게임이 취향저격이었음. 평생 게임같은 것에 한 번도 빠져본 적이 없는데 너무나도 재밌었음. 도착했는데도 게임이 아직 안끝나서 차장님이 잠시 기다리고 계셨음. 아주 중요한 판이었는데 져버려서 순간적으로 짧은 비속어가 나옴. 아차싶었지만 두루뭉술 넘어가려 모르는 척 함.
"아 빡쳐"
"빡치는 게 아니라 화나는 거."
"아 화나"
"총게임이 정서에 안좋네"
"스트레스 풀기에는 좋아요"
"얌전한 사람이 점점 터프해지잖아"
이러쿵 저러쿵 하다가 결국 식당으로 들어감.
"왜 이렇게 못 먹어요"
"시간이 너무 늦어서"
"일곱시인데"
"팝콘 먹어야 하니까요"
"밥을 먹어야지. 어떻게 사람이 팝콘만 먹고 살아"
"25개월 애다, 애야"
차장님은 삼십오개월? 하고 물으니까 피식 웃으심. 밥 먹고 사진관에 들름. 최대한 단정한 척 찍었더니 나름 잘 나온 것 같아 기분이 좋았음.
"뭐 찾았어요?"
"증명사진이요, 여기저기 쓸 데가 많아서"
"그래요"
"지갑에 끼워두고 다녀요. 보고 힘나게"
무시하고 운전만 하시길래 그냥 차에 아무렇게나 올려둠.
팝콘도 먹고 영화도 보고 나와서 차에 탔는데 수족냉증 + 차 안의 한기로 손이 너무 시렸음. 하필 주머니도 없는 코트를 입어서 손을 꼼지락 꼼지락 거리기만 함. 차장님이 쓰윽 한 번 보시더니 손을 잡으심. 잡았다기 보다는 내 손을 가두심. 한손으로 운전하면 사고난다니까 자기는 베스트 드라이버라서 괜찮다고 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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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늦잠을 자서 지각을 함. 지각은 거의 안했는데 살금살금 자리로 감. 차장님 안계시길래 아싸 하고 앉았는데 곧 한 손에 커피를 든 차장님이 들어오심. 차장님이 자리에 앉으시자마자 메세지가 하나 옴.
[지금 몇시 09 : 10 ]
[아홉시 십이분이요 09: 12 ]
[왜 물어본지 알지요 09 : 13 ]
[네 09 :13 ]
지각을 해서 그런가 유난히 오늘따라 이사원 이거, 이사원 저거. 지시가 많으심. 혼이 쏙 빠지게 일하고 점심시간이 됨. 차장님이 잠깐 아래층 들려야 하신다고 지갑 들어있는 자켓좀 가지고 내려가 있으라고 하심. 이건가 저건가 하다가 이거다! 하고 꺼내보니 차장님 지갑이 맞음.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사진은 그대로 차에 두고 내렸을 게 분명하니 생각난 김에 하나 끼워두려고 지갑을 열었는데 떡하니 내 사진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 팔에는 내 덩치만한 차장님 자켓을 걸치고 내적으로 기뻐하는 중에 문이 열림. 문 앞에 핸드폰을 하며 서계신 차장님을 보자마자 피식 하고 웃음이 실실 샘. 내 사진을 휴대폰 액정에 들이밀며 힘이나요? 하고 물으니 또 못 들은 척 하심.
"저 이직할까 봐요"
"왜요, 누가 힘들게 해? 일이 힘들어?"
"네. 상사한테 너무 많이 혼나서"
"누가 보면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는데 상사가 괴롭히는 줄 알겠어요"
제가 차장님 자기에요? 하고 불량하게 말하니까 틀린말은 아니잖아. 그렇지요? 라며 태연하게 대답하심.
"진지하게 한 번 고민 해봐야겠어요"
"혼내도 내가 혼내고 쓴소리도 나한테만 들어야지. 어디가서 이상한 상사 만나 고생하는 건 속상하네."
애인한테 잔소리하는게 나라고 편하겠어요? 하심. 식당에 거의 다 왔는데 옆으로 차가 쌩 하고 지나감. 차 때문에도 놀랐지만 순간 옆으로 확 당긴 차장님 때문에 더 놀람
"아무리 똑똑해도 정신을 차려야지, 아프면 더 속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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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퇴근하는데, 차장님이 노트북 가방, 새해선물, 이것 저것 짐이 많으셔서 함께 낑낑거리며 주차장으로 감. 신호를 기다리는데 라디오에서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에 대한 의견을 받는다는 내용이 나옴.
"당연히 알이 먼저지 어떻게 닭이야"
"알이 먼저는 아니지"
"닭이 알에서 나오잖아요"
"어떻게 보면 알은 닭이 낳는 거니까, 질문이 좀 이상하네"
"그러니까 알을 낳는 닭은 알에서 나오잖아요"
품에는 쇼핑백을 안고 별것도 아닌 것에 열과 성을 다해 우기니까 그래요, 알이 먼저야. 당연히 알이 먼저지. 하심. 집에 도착해서 내리려는데 차장님이 뒷자리에서 아까 가지고 내려온 쇼핑백을 집어서 건네주심. 열어보니까 목걸이였음. 예쁘긴 예쁜데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나 싶음. 더군다나 이런 비싼 브랜드를.
"신년선물. 하고 다녀요 예쁘게."
"아니에요, 이런 거 없어도 괜찮아요"
"비싼 거 아니야"
"에이"
"모조품. 짝퉁이야. 별로 티 안나네"
"농담. 나중에 데리고 살려고 작업 거는 거니까 그냥 받아줬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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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에요 .. 올 때마다 오랜만 인 것 같네요
독자님들 다 떠나가신 건 아닌지 8ㅅ8
늦었지만 독자님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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