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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서로를 확실히 각인시켰던 면접도, 등산으로 낑낑대던 야유회도, 잦았던 회식, 야근, 새로운 분들을 많이 사귀었던 워크샵이 있었던 일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어느새 연말이 됨. 오빠 직장 다니는 얘기 건너건너 듣긴 했지만 무직이었던 작년과 입사를 해 회사를 다니고 있는 직장인의 연말은 달랐음. 회사일도 회사일이고, 혼자 할 것도 많았음.
차장님은 입사한지 1년 되어가는 사원인 나와 비교도 안되게 몇 배 더 힘든 연말을 보내고 계셨음. 미팅이면 미팅, 술자리면 술자리 쉴 새 없이 참석하시느라 몸 상하지 않으실까 걱정될 정도였음. 가끔 점심시간에 의자를 돌려앉아 잠깐 눈을 붙이시는 모습도 종종 봤음. 차장님에 비하면 상당히 여유로운 연말이었지만 밤에 이불을 잘 덮지 않고 자서인지 추운 날씨 탓인지 원인 모를 감기에 나도 마스크를 쓰고 회사를 다님.
송년회를 한다고 하는데 먼저 취직한 친구들이나 선배들 말을 들어보면 다들 '송년회' 하면 절레절레 하곤 했음. 걱정에 비해 분위기도 괜찮았고 초반에는 그렇게 버티기 힘들지는 않았음. 감기기운 때문에 컨디션이 조금 좋지 않을 뿐이었음. 다섯시에 퇴근하고 왔는데, 시침은 벌써 몇 칸이 지나가고 술병도 점점 쌓여갔음. 와 정말 작정하고 와야 하는 곳이구나 느꼈음.
"얘 너무 주지마, 아파"
옆자리에 앉아계시던 차장님이 한 마디 하심. 그래도 앞으로 회사생활 잘 하려면 이런 자리에서 너무 빼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해서 아랑곳 않고 주시는대로 족족 받아마심. 정신 꽉 붙들어 매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차장님이 채워져있는 내 잔을 가져가셔서 아무렇지 않게 대신 마셔주심. 몇 번을 그러다 차장님께서 나갔다 오라고 신호를 주셔서 전화받는 척 잠깐 바깥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는데 화장실에 다녀오시던 이대리님과 마주침.
"ㅇㅇ씨 여기서 뭐해"
"잠깐 바람 좀 쐬려고요"
"그래, 힘들어?"
"아니요 괜찮아요!"
"연애해?"
"?_?"
"차장님이랑"
차장님과 연애중이냐는 갑작스러운 이대리님 질문에 머리는 새하얘지고 네,? 네,,? 하고 있었는데 차장님이 나오심.
"내 이럴 줄 알았어요"
"이럴 줄 알게 뭐 있어"
"회식할 때도 맛있는 건 다 ㅇㅇ씨 주고, 아까도 대신 마시고. 연애해요 둘이?"
"아마도"
차장님이 대답하시니까 예쁜 연애하세요 전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하고 들어가심
"미안해요"
"네?"
"혹시나, 밝히기 싫었을 수도 있으니까"
차장님 표정에서 걱정이 묻어나오길래 절대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백 번 아니에요 하며 손사레까지 쳤더니 그럼 됐고. 하시며 머리 두번 쓰다듬으시고 들어가심. 정말 남생각 많이 하시는구나, 하고 한 번 더 느꼈음.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송년회도 끝이나고 차장님과 함께 택시를 기다리는데 손이 살짝 스침.
"손이 너무 차다"
"날이 추워 그런가봐요"
멋 부리지 말고 건강을 챙겨야지. 예쁜 것도 좋지만. 하시며 차장님 목에 감겨있던 목도리를 풀어 내 목에 해주심. 목도리를 하고 나서도 콜록콜록 하니까 투박하게 팔을 끌어당겨 자기 품안에 나를 완전히 가두심. 차장님 품에 안겨 차장님 얼굴을 올려다보니 춥잖아. 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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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왠일로 점심 때 넘어가도록 문자 한 통 없으시길래 전화를 걸었음. 전화를 받은 첫 마디 여보세요. 부터 몸이 안좋으시구나가 확 느껴졌음
"어디 아파요?"
-아니
"많이 아파요?"
-괜찮아요, 감기는 좀 나았나
"병원은요, 아 약은"
-쉬면 돼요. 괜찮아
괜찮다고는 하시는데 목소리가 전혀 괜찮지 않았음. 죽을 만들어 가져갈까 했는데 한 입 맛을 보니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음. 죽하고 약하고 사서 차장님 집으로 감. 띵동 하고 초인종을 누르니 차장님이 나오심
"어떻게 왔어요"
"택시 타고 왔어요"
"내일 연락 하려고 했는데"
"걱정돼서 왔어요"
"죽을 만들었는데 먹으면 더 아플 맛이라 그냥 사왔어요"
"어제 그렇게 마시고 안 피곤한가"
"매번 그렇게 여기저기 다니시니까 병이나죠,"
평소엔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오늘따라 한껏 잔소리를 함. 혼자 떠들다보니 어느샌가 대답이 없으시길래 차장님을 봤는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계셨음. 어제 내 잔 때문에감기가 옮았나,, 하고 조심스래 물었더니. 절레절레 하시며 살짝 웃으심.
"이렇게 말도 많이 할 줄 알고"
"..."
"예뻐, 새삼 설레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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