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서
알람이 울린다. 00은 잠시 몸을 뒤척이다 알람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한 잔 따라 마시고 TV를 틀엇다.
[오늘의 핫!토픽 가수 V씨가 새로운 드라마를 찍는다고 하는데요. 지금 그 현장 함께 만나보시죠-]
"저게 뭐가 웃기다고... 너 안 웃긴거 티 다난다 뻥쟁아"
TV 속에서 리포터의 말을 듣고 웃는 태형을 보며 00은 말했다.
김태형은 유명했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아니, 다가갈 수 없을만큼 유명해졌다.
TV를 틀면 음악 방송 속에서, 광고 속에서, 드라마 속에서, 어느 한군데도 빼놓지 않고 네가 나왔다. TV를 볼 때 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느껴지는 거리감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미 너는 내가 알던 과거의 김태형이 아니었다. 쉬는시간에 매점에서 바나나우유를 함께 나눠먹던, 점심시간에 먼저 자신을 찾아와 밥 먹으러 가자며 해맑게 웃던, 풀린 신발끈을 보며 무릎을 꿇고 신발끈을 리본으로 묶어주던, 과거의 김태형은 없다. 지금 대중앞에서 빛나는 유명인사만이 TV속에서 웃고 있다.
그리고 난 그런 김태형이 너무 낯설다.
열여덟이 되던 해에 김태형은 나에게 고백을 했다.
"우리 사귀자-"
김태형은 민들레 하나를 꺾어 들고 나를 바라보며 사귀자 말해왔다.
축구를 하던 아이들이 빠져나간 먼지 가득한 운동장이 싫었고, 바람만 불면 날라가 버리는 민들레도 싫었지만 김태형이 좋아서, 네가 좋아서 우리는 사귀게 되었다.
열아홉이 되던 해에 김태형은 느닷없이 내게 물어왔다.
"나 연예인 하면 어떨거 같아? 막 이상하려나?"
"그건 왜 갑자기?"
"연예인 제의 받았어! 나 데뷔시켜준대 대박이지 너도 좋지?"
나는 부정의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해사하게 웃는 네 얼굴이 날 향해있어서 그리고 나는 그 얼굴이 너무 좋아서 네가 좋으면 나도 좋다는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스무살이 되던 해에 김태형과 나는 처음을 함께 보냈다.
앞자리가 바뀌는 새해를 처음으로 같이 보냈으며, 당당하게 주민등록증을 들고 첫 음주를 함께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처음이어서 떨리고 좋았던 것이 아니라 너와, 김태형 너와 함께여서 더욱 떨리고 좋았다.
스물한살이 되던 해에 김태형은 V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데뷔했고, 데뷔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정리될줄 알았던 우리 사이는 이상하게도 이어져왔다.
"태형아 너 나랑 사귀는거 너네 회사에서 알아?"
"응 아는데?"
"너 나랑 계속 만나도 되는거야? 막 헤어지라고-"
"괜찮아 괜찮아 너는 걱정 안해도 돼-"
단호하게 말하는 김태형이 믿음직스러웠을까, 나는 알겠다고만 대답했다.
스물두살, 스물세살, 스물네살이 되던 해는, 그 해에는 혼자였다.
인지도를 얻으면 바빠지는게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김태형은, 아니 뷔는 눈코뜰새없이 바빴고 김태형은 나와 있어주지 못했다.
연예인과 사귀는게 무슨 쉬운일인가, 그 정도는 예상했고 또 내가 감수해야하는 부분이었다.
음악방송에서 1위를 하고,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받고 인기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김태형은 말라갔다. 잦은 해외출국과 바뀌어버린 밤낮에 간혹가다 하는 전화통화에도 나는 미안함을 느꼈고 죄책감을 가졌다. 마치 내가 너에게 남은 미련인 것 같았다.
그리고 스물다섯이 되는 올해 나는 김태형에게 이별을 말할까 한다.
너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미루고 미뤄왔던 헤어짐을 말하려 한다.
사랑이 지나간 패여버린 가슴에-
"여보세요"
"봤어? 인터뷰? 나 진짜 잘했지"
"응, 진짜 못하더라 억지로 웃는거 티 다났어"
"아, 진짜- 그 리포터가 재미없는걸 어떡해 난 그래도 최선을 다했어"
"응 그래 그렇다고 치자"
"뭘 그렇다고 쳐 그러면 그런거고 아니면 아닌거지"
자신과의 전화에 약간은 들뜬듯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자 그냥 웃고만 있었다. TV속에서 V는 여전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터뷰를 하고 있었고, 수화기 너머의 김태형은 하루일과를 말하며 투덜대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통화에 오늘이 아니면 말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까도- 야- 너 듣고있어? 왜 대답이 없-"
"태형아 행복해?"
그냥 물어보고 싶었다. 지금의 넌 행복할까
".....갑자기 뭘 그런걸 물어보고 그르냐... 행복하지"
"태형아 행복하지?"
과거의 김태형은 내게 종종 말해왔다. 자기는 재미있는 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거라고.
"행복하다니깐- 완전 완-전 행복해"
"태형아 우리 헤어질까?"
내가 그려왔던 우리의 이별은 아무 일도 아니란 듯, 하룻밤만 지나가고 나면 다 잊혀질 그런 일인 듯 가볍고 담담한 이별이었다.
더 이상 너에게 미련으로 남고싶지 않은 나의 마지막 바람이었다.
"행복하다니....어.....?"
"우리 그만 만나자 태형아"
"야, 야 너 왜 그래 내가 괜찮다고 했잖아 응? 우리 만나는거 상관없다고-"
"아니. 내가, 내가 그만 만나고 싶대 우리는 이게 끝인거 같대 태형아 나는 여자라서, 되게 이기적인 여자라서 나 혼자 두는 남자랑은 더이상 만나고싶지 않대"
"....00아...."
"내가 너무 이기적이어서 그런거야 내가 너무 못나서 그래서"
"잠깐만-잠깐"
"나는 너랑 그만 만나고 싶대 김태형은, 내 열여덟의 첫사랑은 TV에서 빛나는 V로만 기억하고 싶대 미안해 태형아 정말 미안해"
"00아 제발 아 내 말좀-"
소파위에 던져둔 핸드폰에서 계속해서 벨소리가 울렸다.
'여자라서'
그 언젠가 아주 평범하던 날에 V가 아닌 김태형에게 말했었다.
"난 이 노래 되게 좋아해 가사가 맘에 들어"
"그래? 제목이 뭔데?"
"여자라서"
"그럼 나도 이제 이 노래 좋아-"
"너는 왜, 왜 이노래가 좋은데?"
나는
"나도 가사가 좋아서- 그리고 니가 좋아서-"
허무맹랑하고 사탕발림뿐인 그 대답이 좋았다.
홀로 남겨진 몇 평 안되는 이 집에서 노래가 울려퍼진다.
지금 내 상황과도 너무 잘 어울리는 이 노래를 슬프게도 난 이제 더이상 못들을 것 같다.
아마 너도 그렇겠지.
안녕하세요! 작까입니다ㅎ
글잡에 글 쓰는게 처음이고 또 되게 못써서 포인트 받기도 부끄럽네요
얼마나 못 썼나 구경이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그냥 가볍게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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