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뷔 블랙킹덤 05.
지민은 무영회의 건물을 벗어나자마자 대기해 있는 차를 타고는 백화점으로 가 달라고 말했다. 천 만원, 분명 큰 돈이고 지민의 나이가 스물 하나라는 것을 감안하면 가치가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허나 이 정도의 돈은 이제 지민에게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 되어 버렸다. 그것은 지민이 열심히 일 해 왔다는 것이 아니라 어둠에 무뎌져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처음 의뢰를 받아 시작 할 때만 해도 석진이 내 놓는 오백만원에 지민의 눈이 휘둥그레 졌었다. 이게 뭐냐며 물어오는 지민의 목소리가 떨렸다. 사람을 처음으로 죽였다는 데 오는 회의감과 어린 나이에 손에 쥔 큰 돈에 대한 놀라움에 지민은 혼란스러웠다. 점점 날이 지날 수록 지민의 실력이 늘어 가고, 지민의 몸값이 높아 지면서 사람 하나를 죽이면 턱턱 나오는 천 만원 대의 돈에 지민은 무뎌지기 시작했다. 그 만큼 사람 하나를 죽이는 데도 별 감흥이 들지 않았다. 박지민은 이제 더 이상 옛날의 박지민이 아니었다.
백화점에 지민이 들어서자 VIP임을 알아본 직원이 곧바로 지민을 안내했다. 백화점 내에서도 지민은 유명인사였다. 카드를 쓰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오직 현찰로만 그 큰 액수를 턱턱 지불하는 지민은 생긴 것과 늘 가지런한 정장 차림 때문에 재벌집 2세라느니, 어느 기업 총수의 자제라느니 하는 소문이 나 돌기도 했다. 부모가 없는 것을 안다면 얼마나 놀랄지 지민은 헛웃음이 나왔다. 명품관에 입성한 지민은 정국을 위해 사다 줄 구두를 고르기 시작했다. 여기서 제일 최고급인 걸로, 제일 신상인 걸로만 보여 주세요. 지민은 집에 있는 신발장에 가득 찬 정국의 구두들을 생각했다. 정국이 가진 구두들은 전 세계에 내로라 하는 장인들이 만든 것들, 제일 신상 컬렉션을 뒤지면 주로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상하게도 정국은 구두에 집착을 했다. 신발장이 가득 차서 불편한데도 지민이 그것을 가만히 방관하는 것은 전정국이 신으면 그 구두는 제 값을 하는 것 처럼, 그 이상의 값어치를 하는 것 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직원이 가져온 대여섯 켤레의 구두를 눈으로 스캔하던 지민이 악어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차가운 느낌의 구두를 골랐다. 칠 백 오십 만 원입니다 고객님 - 직원의 말에 지민이 꺼내든 것은 여지없이 수표들이었다.
Black Kingdom
05
태형을 데려다 주고 겨우겨우 새벽에야 집에 도착해 자기 시작한 정국은 오후 3시 경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이렇게 길게 자 본 적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고 정국은 생각했다. 장기간 임무는 이런 점에서 좋았다. 스케쥴도 내 맘대로 조정하고, 휴식도 나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점을 빼고는 장기 임무는 어제의 김태형처럼 귀찮은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정국은 딱히 선호하지 않았다. 물론 김태형 같은 일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일어서서 기지개를 한 번 쭉 핀 정국이 거실로 나가 박지민- 하고 불렀으나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정국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민이 차려놓고 간 것으로 보이는 밥과 반찬 몇 가지, 그리고 계란후라이와 그 옆에 놓인 노란 포스트잇 한 장 이었다.
〈나 회장한테 갔다올게 밥 챙겨 먹고 있어라 사실 너 깨워 갈려고 했는데 너 너무 잘 잠. ㅋㅋㅋ 형아가 돈 벌어와서 맛있는거 많이 사 줄게 꾹이 좀만 기다려!>
밥을 입에 밀어넣으며 포스트 잇을 읽어내려가던 정국의 웃음이 터졌다. 참 내, 먼저 태어난 게 누군데 형아래. 항상 회장이 부르면 함께 다니던 것을 떠올리며 정국은 지민이 차려준 밥을 맛있게 먹었다. 정국이 딱 숟가락을 내려놓을 때 쯤, 정국의 수저 소리 외에는 적막하던 집 안이 벨소리로 왁자해 지기 시작했다.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인 것으로 보아 김태형의 전화번호일 것이다. 전 날의 추태를 떠올리며 정국은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정국이야?"
"응, 형."
"어제... 잘 들어갔어? 술 마신 것 까진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로는 기억이 안 나더라고... 내가 사실 술을 먹으면 맛이 가거든... 그래서 깨니까 포스트잇 하나 달랑 있구 내가 집인거야! 실수했다 싶었는데..."
"......"
"나 많이 실수했니?"
"...어, 술집에서 뻗어서 정신을 안 차려 가지구 내가 업다가 안다가 집까지 데려다 준 것 빼고는 딱히 실수 한 거 없어."
"헐! 어떡해!! 아, 진짜 미안해 정국아. 내가 기억에 없는 친군데도 친구라고 나타난 사람이 첨이라 반가워서... 내가 미안해서 그런데 내일 뭐 해?"
"내일? 딱히 하는 거 없어."
"너 영화 좋아해? 내가 영화 보여줄까? 밥도 살게!"
천진하기만 한 태형의 말에 정국은 쓴웃음을 지었다. 식사, 영화 관람. 일상적으로 만나서 하는 일이라지만 그동안 정국은 영화 한 프로 똑바로 영화관에서 본 적이 없었다. 하는 일의 특성상 밤에 움직이고 낮에 주로 자는 일이 많은 정국은 굳이 암실같이 어두운 곳을 찾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가끔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집에서 지민과 함께 결제해서 보거나 빌려서 보는 게 다였지 영화관이라고는 한 번도 가 보지 못했었는데, 일상을 찾은 김태형은 이제 정말 일반인처럼 사고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태형의 말에 한참 반응이 없는 정국이 망설이고 있어서 대답을 못 한다고 생각 하는 듯 태형이 응? 하고 되물어 왔다. 정국은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제 아무리 머리를 다쳐 기억을 잃었다 해도 제가 몸 담고 있던 세계를 영화에서나마 마주하게 된다면 김태형은 반응을 못 해도 머리가, 몸이, 감각이 반응할 것이었다. 정국은 얼마 전에 개봉했다며 떠들어 대던 한 조직물을 생각했다. 그래 우리 내일 만나자. 정국이 수화기 너머의 태형에게 응답했다.
*****
무사히 마약 밀매에 성공한 윤기와 남준이 이제서야 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번 거래로 한 몫 두둑이 챙긴 덕에 이번에 인수하려고 했던 건물도 인수할 수 있게 되었다. 김태형이 없어 조직이 돌아가는 데 어려움은 있지만 그래도 무너질 일은 없을 것이라고 윤기는 생각했다. 물론, 홍연회와 무영회가 더 이상 부딪힐 일이 없다면. 그리고 남준과 윤기 사이에는 여전히 기묘한 기류가 흘렀다. 평소에 잘 하지 못한 말을 내뱉은 것은 윤기도 형사에게 발각된 것이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남준의 말은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었다. 허나 형사들은 잘못 건드렸다간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한 팀 전체와 상대해야 할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남준을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홍연회를 위해서도 그 형사를 섣불리 죽일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윤기는 말을 그렇게 해 놓고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지 않았다. 그냥, 남준이 다친 곳 없이 무사히 거래가 끝난 것 만으로도 만족했다.
"보스, 큰 일 났습니다. 밑에 애들 몇 명이 클럽에서 놀다가 소란을 일으킨 모양인데, 그게,"
"빨리 말 해. 무슨 일이야."
"... 무영회 건물인 줄 모르고 들어간 모양인데, 무영회 쪽 애들과 시비가 붙었답니다. 지금 빨리..."
허둥지둥 달려와 사실을 고하는 조직원의 눈빛이 두려움으로 빛났다. 남준과 윤기의 시선이 맞닿았다. 한 가지 일이 마무리 되면 이렇게 한 가지 일이 터지니 안심하고 살 수가 없었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오늘 거래가 무사히 끝난 것에 다행이라 생각 했건만 하필 무영회와 부딪히다니, 아무리 조무래기들끼리 부딪힌 일이라지만 이렇게 된 이상 김석진의 귀에도 이 사실이 들어갔을 것이었다. 지금 당장은 윤기와 석진이 투입되지 않을 것이나 자칫 잘못해서 큰 싸움으로 번진다면 조직 대 조직의 싸움이 될 것이고, 그것은 불리한 입지에 올라있는 홍연회가 무조건 손해인 싸움일 것이었다. 화가 난 윤기는 무슨 애들 관리를 그 따위로 하냐며 말을 전한 조직원의 복부를 발로 걷어 찼다. 저만치 나가 떨어진 조직원은 책상에 허리를 부딪히고도 두려움에 고통을 잊은 채 죄송하다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남준아, 니가 정리하고 와라."
윤기는 이번에는 직접 나서지 않고 남준을 보냈다.
*****
이번 화 되게 빨리 왔죠 !!! 아무래도 평일에는 연재가 좀 어려워서 ㅠ.ㅠ 주말에 한 편 더 쓰자는 마음으로 예정보다 일찍 오게 되었습니다
항상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감사하구요 사랑합니다 !!!!! 감사의 의미로 좀 있다가 단편 하나 업로드 될 예정이니까 그것도 재밌게 봐 주신다면 감사할 따름 ♡
여러분을 위한 제 선물이에여 ㅠㅠㅠ 암호닉 신청하실 분은 댓글에다가 암호닉 신청한다구 말씀 해 주시고 [암호닉] 이렇게 넣어서 신청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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