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도 더 전의 일이라 첫 만남은 정확히 기억 나지 않는다. 그저 아빠의 일터가 나의 놀이터였고, 간호사 언니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었던 단편적인 부분들만 어렴풋이 기억이 날 뿐이다. 하지만 최대한 기억을 되살려 보자면, 그 날의 너는 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태어날 때 부터 엄마가 없었다. 나를 낳다가 돌아가셨다는 것은 후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아빠는 그런 나를 금이야 옥이야 아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엄마의 분신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물론 아니라고 부정하시겠지만, 어렸던 내 눈에는 다 보였다. 아빠의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충분히 베이비시터를 고용해서 키울 수 있는 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당신 손으로 나를 길러내셨다. 그것을 당신의 숙명쯤으로 여긴 것 같았다. 이건 여담인데 아빠도 아빠 노릇이 처음인지라 많이 서툴렀는데도 나는 곱게 자랐다며 할머니께서는 나를 자랑스러워 하셨다. 나도 내가 자랑스럽고. 아무튼 아빠는 내가 입에 아빠라는 단어를 겨우 올릴 수 있게 됐을 때부터 나와 함께 당신의 일터로 출근하셨다. 병원측에서도 유능한 의사였던 아빠의 사정을 봐주셨고 꽤 순한 축에 드는 아이였던 나는 간호사실에서 언니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너와 처음 만났던 그 날은 꽃샘추위가 막 가시고 간만에 따뜻한 봄바람이 불던 그런 날이었다. 한껏 들뜬 나는 아빠의 진료실 앞에 얌전히 앉아있다 진료를 끝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나오는 아빠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병원 앞 뜰에서 놀아도 되냐고 죽어라 졸랐었다. 나를 끔찍이도 싸고 돌았던 아빠는 당연히 안된다며 간호사언니들이랑 얌전히 기다렸다 점심을 같이 먹자는 말만 되풀이 했다. 이에 시무룩해진 내가 안쓰러워 보였던 간호사 언니가 곧 초등학교도 입학할텐데 학교 보내놓으면 걱정돼서 어쩌실거냐며 아빠에게 압력 아닌 압력을 넣자 그제서야 아빠는 조심해서 다녀오라며 못마땅한 얼굴로 허락을 내렸다. 그 때가 아마 아빠 없이 병원 밖으로 나갔던 첫 날이었을 것이다.
나는 조심성이 없었다. 툭 하면 넘어지기 일쑤였고 무릎에는 늘 크고 작은 상처들을 하나씩 달고 살았다. 여자애가 조심성이 그렇게 없어서 어떡할래. 아빠의 단골 잔소리 중 하나였다. 그런 아빠의 걱정에 보답이라도 하듯 나는 그대로 앞 뜰로 달려나가다 꽃밭에 채 닿지 못하고 그 앞 풀밭에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대로 빼액 울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간 다시는 아빠가 외출을 허락해줄 것 같지 않았고 무엇보다 나는 넘어졌을 때 울음을 터뜨리는 법보다 툭툭 털고 일어나는 법을 먼저 배웠다. 다행히 아스팔트 바닥은 아니라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억센 잔디에 쓸린 손바닥과 무릎이 쓰라렸다. 비죽비죽 튀어나오려는 울음을 애써 눌러담고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벌개진 손바닥을 연신 쓸었다. 그러면 더 따갑다는 것도 잊고 열심히 쓸어댔다.
「괜찮아?」
앳된 목소리에 얼굴을 번쩍 들자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해를 가린 채 내 앞에 서서 손을 내밀고 있었다. 역광 탓에 아이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미루자 아이가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아이의 머리에 가렸던 햇빛이 다시 내 얼굴로 쏟아져 내렸다.
「괜찮냐구.」
「어, 어? 아, 응. 괜찮아.」
「너는 넘어져도 안 우네. 몇 살이야?」
밝은 햇빛에 눈이 부셔 눈을 한껏 찌푸린 채 아이를 바라보자 아이는 나를 향해 씩 웃어보였다. …예쁘다. 아이의 첫 인상이었다. 너의, 첫 인상이었다.
「일, 일곱 살….」
「어, 나도 일곱 살이야! 너 그럼 내년에 학교 가겠네?」
아이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종알종알 말을 잇는 아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덩달아 나도 입꼬리를 올려 아이의 장단에 맞추었다. 손바닥이 쓰라린 건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응. 학교 가. 너도 그럼 입학 해?」
「어…, 아니. 난 아파서 못 가.」
그제서야 아이의 환자복이 눈에 들어왔다. 눈에 띄게 가라앉는 아이의 표정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그 자리에서 정처없는 시선만 이리저리 굴리기 바빴다. 그런 나를 본 아이는 표정을 풀어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넌 이름이 뭐야? 내 이름 석 자를 일러주자 곧바로 아이의 이름 석 자가 돌아왔다. 김태형.
「너는 환자복도 안 입었으면서 왜 여기 있어? 퇴원 해?」
「아니. 나는 아빠가 의사야. 그래서 아빠가 출근할 때 와서 퇴근할 때 집에 가.」
그렇구나. 고개를 주억거린 아이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일으켜 줄게. 나 이제 가야 돼. 냉큼 아이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앉아있을 때는 마냥 커 보였는데 일어나보니 나와 별반 차이나지 않는 키에 입을 가리고 작게 웃었다. 나 갈게. 아이가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뒤 돌아 총총 사라졌다. 벌겋게 달아올랐던 손바닥과 무릎은 그새 다 가라앉아 있었다.
퇴근길에 아빠 손을 붙잡고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조잘조잘 늘어놓았다. 넘어졌다는 것을 말 하면 혼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보다 오늘 만났던 또래 아이를 소개시켜주고픈 마음이 더 컸다. 내 말을 가만히 경청하던 아빠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의 이름을 물어왔다. 태형이래, 김태형. 아빠는 별안간 작게 띄워진 미소를 싹 지우고 나를 내려다 보았다. 딸.
「오늘 봤던 친구 이제 다시 만나지 마.」
「왜? 태형이 착해. 나 일으켜도 줬는데?」
「만나지 말라면 만나지 마. 아빠가 분명히 말 했어.」
자주 볼 수 없는 무감정한 아빠의 얼굴이 무서워 나는 울망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아빠 몰래 태형이를 찾아다니는 짓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 내가 아빠에게 혼날까 걱정했던 간호사 언니는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아빠가 왜 태형이를 만나지 말라 했는지 조곤조곤 설명해 주었지만 마냥 어렸던 나는 그 것들이 왜 김태형을 만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되는지 알 지 못했다. 고집 하나는 황소고집이었던 나는 아빠가 나를 말리다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릴 때 까지 김태형을 만났고, 결국 김태형과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이모. 야, 김태형! 학교 가자!"
"아침부터 기차 화통을 삶아 드셨나. 시끄러워, 인마. 다른 사람들 다 자."
선천적인 심장기형으로 열 다섯을 넘기기 힘든 꼬마환자였던 김태형은 열 아홉이 되어있었고, 고집스레 태형이를 찾아내는 나를 뜯어말렸던 아빠는 기복 없이 고르게 뛰는 태형이의 심장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학계에 발표된 적 없는 그런 희귀한 케이스가 태형이라고도 말했다. 김태형을 십 이년째 봐오고 있는 아빠는 가끔 내가 고집불통이었던 게 다행이었다고 회상한다. 태형이가 저렇게 기적처럼 살아있는 게, 어쩌면 네 덕분일지도 모른다고. 지키고 싶은 사람이 늘어나서 태형이가 차마 이 곳을 못 뜨는 게 아닐까, 한다고. 아빠는 가끔 의사답지 못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
안녕하세요, 썸머비 입니다.
새롭게 다시 시작하려니 기분이 묘하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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