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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고였다. 사고였고, 사고였다. 나의 불찰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고 나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실수로 인해 나는 꽤 큰 댓가를 치뤄야만했다. 기억을 잠시 잃어 부모님과 그에게 상처를 줘야만 했고, 앞이 잠시 보이지않는 현상을 겪기도 해야했으며 언제 봐도 적응되지 않는 크디큰 주사를 여러차례 내 몸속에 주입해야하기도 했다. 스물 아홉의 사고. 2년간의 재활치료와 1년동안의 통원치료. 나는 이십대의 끝을 그리 보내는것으로 댓가를 치뤘다. 더불어 평생 쓸 수 없게된 다섯의, 아니 열개의 손가락을 포기하는것도 함께. 손자락이 민둥했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익숙해지기까지엔 시간이 많이 필요한듯 보였다. 별 생각이없었다. 총을 손에 쥐었던 직업을 갖고있던 터라 주윗사람들의 안타까움이 귓바퀴로 흘러 고막까지 닿아도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내가 가장 짜증스럽고 고역이었던 일은 비오는날 그의 우산을 더이상 내가 들지 못한다는 것에 있었다. 실직의 아픔보다 그 무게가 더 무거웠다. 그 날 처음으로 손이 민둥해진것에 대해 화가났다. 내 죄질에 비해 그것의 댓가는 너무나도 컸다. 매일밤 꾸는 꿈이 있었다. 사고가 나기전의 일상이 주를 이뤘다. 꿈속에서 나는 그 대신 팝콘을 양손에 들 수도 있었고 추운날 따뜻하게 내린 커피를 두손에 쥐어 그의 두볼에 갖다댈 수도 있었다. 그것이 날 더 괴롭게 만들었다. 나는 꿈을 더 이상 꾸지않길 매일밤 기도했지만 한켠으로는 더이상 꿈을 꾸지 않게되는것이 두려워 기도를 집어치우고 애써 꿈을꾸려 노력하기도 했다. 완벽한 모순이었다. 꿈은 곧 균열로 부숴질것을 알면서도 그것에 매달려 한참을 허우적대는게 웃겼다.



나는 곧 파멸했다. 작은일에도 화가났고 이제 아무것도 내스스로 할 수 없다는것을 깨닫게 된 그때에는 내 속의 분노를 잠식시키지 못해 나를 죽여버리는데까지 이르렀다. 생각은 곧 실천이 되었다. 첫번째엔 손목을 그었고, 그런 나를 그는 또한번 살려냈다. 상처가 흉져 내가 봐도 흉측한 모양새를 하고있던것을 그는 살살 어루만져줬다. 그 마음에 울컥한 마음이 또다시 나를 죽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번째엔 난간에서 떨어졌다. 실수를 가장한 고의였다. 나뭇가지에 사지가 걸렸다. 안그래도 온전치 못한 내 몸은 더이상 성한 곳이 없었다. 시간이 좀 흐른뒤, 옅게 남은 생채기에도 잔뜩 울상을 지으며 연고를 발라주던 그는 또한번 나를 살려냈다. 세번째, 그는 날 또한번 살려냈다.



***

너, 그거 알아?
너만 보면
내 목구멍이 포도청이야.

그렇게 말해오는 백현의 입술이 파리했다. 저의 의지와 상관없이 달달대는 손끝을 애써 감추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그리 내뱉는 백현의 목소리만은 올곧았다. 멈칫,했다. 보이지않는 결계라도 쳐둔듯 가까이 닿을 수 없었다. 뿌리치듯 발걸음을 가까이하면 이번엔 두걸음 멀리 걷는 백현이 의아했다. 백현아. 입술을 열어 파동을 일으켰다.


그런 널 보는 내마음도
마찬가지야 백현아.


무너지듯 쓰러져내렸다. 시야에서 휙 멀어진 백현의 가슴께에 재빨리 손을 끼워 일으켜냈다. 잔뜩 부어오른 마음이 진물을 뱉었다. 백현이 숨을 뱉지도 들이지도 못하며 울어댔다. 제 마음처럼 백현의 목도 부어올랐구나. 손끝이 민둥했다. 그덕에 거리를 더 가까이 해야만했다. 서툴게 눈물을 닦아냈다. 닦아내면 닦아낼수록 백현이 울었다. 이러다 숨이 끊길 것같은 불안감이 들 정도로 울었다. 그 많은 눈물을 참고 또 참았을 백현이 파노라마로 지나갔다. 괜찮다니까 백현아. 무의식이 그의 손께로 이끌었다. 오직 저만 보이고 느끼는 다섯손가락의 신경이 백현의 손등을 쓸었다.


겨우 울음을 그쳤나 했다. 안정된 숨을 되찾고 일정하게 요동치는 등허리를 보아 그런 줄 알았다. 더듬더듬 제 손을 잡아오던 백현이 또다시 눈에 바다를 한껏 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거세게 파도를 몰아붙일듯한 그 눈에 백현이 제일 좋아하는 웃음을 지었다. 파도가 금새 잠잠해졌다. 주먹을 쥔 듯한 저의 손을 버겁게 감싸쥔 백현이 곧 눈을 감았다. 백현이 잠에들었다.

이불을 살짝 걷어내 사이께로 빠져나왔다. 이 손으로는 문을 열 엄두조차 내지못했다. 침대 아래로 내려가 두팔로 무릎을 감싸쥐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백현에게 짐이되긴 싫었다. 저를 짐이라 여기지 않을것임을 알고있음에도 그랬다. 살아온 날들보다 앞으로 남은 날들이 훨씬 많았다. 안그래도 평범하지 못한 사랑에 온전치 않은 연인을 곁에 두게 할 수는 없었다. 창밖엔 비가내리고 있었다. 비, 우산. 백현에게 우산이 되어 주고 싶었다. 비가 오던 눈이 오던 그 어떤 계절도 함께 하고싶었다. 우산을 펼 수 조차 없는 이 손으로 무얼 하겠다고. 실소가 터져나왔다. 이불이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무릎을 지탱해 일어났다. 손을 짚고는 더이상 일어날 수가 없어 터득한 방법이었다. 침대에 몸을 뉘였다. 이 순간이 꿈의 영원이기를. 경수가 오늘도 기도했다.


곧 잠에 빠져들었다. 긴 과도기의 터널을 지나 꿈속에서 눈을떴다.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민둥했던 손이 온전한 채로 있었다. 비가 내렸다. 저멀리 걸어오는 백현이보였다. 경수야 여기-.자연스레 우산을 넘겨받아 길거리를 걸었다. 추적추적한 날씨덕분인지 사람은 많지 않았다. 비단 저만 알아차린것은 아닌지 밖에서 스킨십은 일체 하지않던 백현이 스리슬쩍 팔짱을 껴왔다. 따뜻한게 마시고싶다는 백현의말에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섰다. 카페모카를 입에 물고 오늘은 뭐했어, 뭐했어. 하는 백현이 귀여웠다.

"이제 집갈까?"
"응, 그러자."

다시 길을 걸었다. 왼쪽 손목에 찬 시계를 무심결에 쳐다봤다. 아침 7시. 시간개념이 뒤틀린 꿈속이란게 상기되는 순간 이었다. 눈을 돌려 백현을 쳐다봤다. 주윗건물들이 하나둘 뒤틀리기시작했다. 손에 들린 우산마저 시공간을 깨고 있었다. 곧 건물들의 유리창에 금이가더니 더한 분열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균열된 세상속에서 유일하게 멈춰있던것은 아마 백현이 너와, 너의 우산을 씌워 줄 수 있었던 그때의 나였을 것이다.

***


잠에서 깼다. 매번 이런식이었다. 눈쌀을 한껏 찌푸리게 만드는 과거회상의 연속. 잔뜩 구겨진 표정이 쉽게 평온을 찾기란 쉽지않았다. 손등으로 젖은 이마를 털어내고 시계를 쳐다봤다. 아침 7시. 데자뷰를 느끼는 듯 했다. 내 몫의 이불을 정리한 뒤 책상으로 걸어가 팔꿈치로 더듬더듬 핸드폰을 켰다. 전화번호부에 들어가는 단순한 일 마저도 힘이들었다. 또 더듬더듬. '김준면'. 전화를 걸었다. 작은 선반에 핸드폰을 올려놓고 그 선반을 이용해 거실로 나왔다. 몇번 수화음이 이어지고 상대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경수야.

"형. 나 좀 도와줘. 백현이 깨. 나 이거만말하고 끊을게. 종이랑 펜들고 병원앞에 좀 있어주라. 내 마지막 부탁이야 형. 점심시간 맞춰 갈게."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 상대의 답을 듣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약속이 성사될것을 안다. 선반에 핸드폰을 올려 아까의 시간을 반복했다. 서둘러 백현을 깨웠다. 오늘은 해야 할 일이많으니까.백현을 일으켜 화장실로 보내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청바지에 스트라이프티셔츠. 바닥에 두고 다리를 끼워넣고 침대위에 올려 머리를끼워넣는게 쉬운일은 아니었다. 옷장을 뒤져 같은 디자인의 티셔츠를 하나 더 찾아냈다. 다 씻은듯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머리를 하고 나온 백현에게 티셔츠를 건냈다. 너 커플티하고싶다며. 입자, 오늘.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

백현이 한껏 웃으며 옷을 갈아입었다. 영화관에 갔다가 남산에 가기로했다. 평범하지 못했던 지난 3년을 무르듯 지나치게 평범한 일상을 걸어보고싶었다. 꿈에서만 쟁취할 수 있었던 평범함에 지극한 감동이 느껴졌다. 예전처럼 콜라와 팝콘을 대신들 수 없고 습관처럼 잡아오는 백현의 손에 깍지를 껴 잡아줄 수는 없었지만 만족하기로했다. 앞서 말했듯이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

버스에서 내려 영화관에 들어섰다. 주말이라 그런가 연인 가족 친구들이 입꼬리에 한껏 웃음을 달고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번호표를 빼내어 구비된 소파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전광판에 빨간 숫자가 떴다. 잃어버린 로맨스를 찾아서 두분 9시 영화 맞으십니까-. 하고 묻는 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는 지루했다. 사랑이 식은 두남녀가 허구언날 싸워대는 이야기였는데 나는 그다지 공감하지못했다. 그것은 백현도 마찬가지였는지 서둘러 남산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꽤 가까운거리라 금방 하차할 수 있었다. 등산로를 걸어 팔각정을 지나 남산타워 승강기에 올랐다. 자물쇠를 두손에 쥔 백현이 귀여웠다. 스카이라운지에 도착했다. 글을 쓸 수 없었기에 안내원에게 부탁하는 수 밖에 없었다. '사랑해 하트.' 투박한 내글씨와는 다르게 곱게 쓰여진 필체가 만족스러웠다. 백현이 자물쇠를 걸어 잠군후 열쇠를 바닥으로 던졌다. 나도, 던졌다.

부모님 핑계를 대며 백현과 헤어졌다. 아쉬움을 한껏 담은 눈꼬리가 신경쓰이긴 했지만 뒤돌아야했다. 형의 점심시간이 가까워지고있었다. 걸음을 서둘러 옮겼다. 병원앞까지 다다르자 형의 실루엣이 보였다. 나를 알아챈것인지 두팔을 붕붕 흔드는 형에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근처 커피숍에 자리를 잡았다. 종이와 펜을 꺼낸 형의 모습이 모든걸 다 알고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던 것은 내 착각일까. 아니면,

"형 나는 글을 쓸 수가없잖아. 내가 불러줄테니까, 받아적어줘요. 형 필체도 나보다 이뻐서그래."


나는 내 두눈이 제대로 본것이었다는것을 알아챘다. 형의 동공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고 곧장 펜을 잡은 손조차 바들바들 떨리기시작했다. 형은 알면서도, 나와준거다. 더이상의 교점이 없을것을 알면서도, 나와준거다.

"너. 이러는 이유가뭐야. 꼭, 백현이 한테 그래야겠어?"
형, 백현이는 내가 그래야 할 이유야.
"부탁이야 형."
그 증거가 이 손이고.
"알았어. 그대신 너, 연락 자주해. 알겠어?"
알잖아, 형도.
"응. 형 나 어떡해 벌써부터 목소리떨려. 할게. 잘 써줘"
더이상의 파멸은 없을거야. 백현이에게도, 나한테도.

『백현이에게,
먼저 미안해 백현아. 내가 겁쟁이인것도 미안하고, 그로인해 도망칠 수 밖에 없어서 내가미안해. 스무살에 만나 12년의 사랑을 했었네. 이만하면 된거야. 내 옆에 있느라, 힘들었지? 수고했어 백현아. 이제 그만 쉬어도돼. 다른 누군가와 시작을 해도 좋아. 나는 너를 지켜보고만 있을게. 충분히 사랑받을 백현아. 너는 내 또다른 손가락이야. 존재하지않아도 나는 너를 느낄수 있고, 볼 수도있어. 약속할게, 나는 항상 네곁에 있어.                               』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추한꼴 보이기싫었는데….백현아, 미안해. 미안해. 내가, 너무미안해.



***

형과 서둘러 헤어진 후 동해로 갔다. 해변을 혼자 거닐었다. 신발을 천천히 벗어 모래사장 위에두었다. 어차피 쓸려내려갈것이지만, 세상에 흔적 하나쯤은 남겨두고가고싶었다. 자살하는사람치곤 지극히 모순적이었다. 차가운 물살이 몸을 에워쌌다. 눈을 감았다. 과도기의 터널을 지나 꿈에 도달했다. 저멀리 백현과 저가 보였다. 몇시간전의 우리. 경수가 서운함을 한껏 담은 백현을 뒤로한채 준면이 형을 만나러 가고있었다. 경수의 어깨를 톡톡 쳤다. 경수가 뒤돌았다. 그리고, 먼저입을 뗐다.


"후회 안할 자신, 있는거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된거야. 잘했어."
나는 숨죽였다.


***

 

 

 

 

 

잔뜩 무너지는 오백이 보고싶었어요....뎨동함다...현실오백은 예쁘게 사랑중일거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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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어떡해ㅜㅜ 남겨진 백현이는 어떻게 살라고 그랬어... 경수야... 경수도 안타깝고 한 순간에 사랑을 잃어버릴 백현이도 안따깝네요... 작가님 필체 딱 제 스타일이에요! 다음 작품도 기대할게요!
12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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