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나에게 엄마 없이 자란 아이라는 꼬리표가 달리지 않도록 무던히 노력했다. 바쁜 병원 일에 치여 상상조차 못 했던 아침밥을 손수 찌개까지 끓여가며 상 위에 올리기 시작했고 간호사 언니들에게 머리 묶어주는 법을 배워 와 서툰 손길로 내 머리를 묶어주기도 했다. 물론 너무 바쁠 때는 빗질로 떼울 때도 있었지만. 아빠의 피나는 노력 끝에 나는 아빠 말을 빌리자면 '어디 가서 엄마 없는 아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을 만큼 예쁘게' 자랐다. 마냥 어렸던 그 때에도 아빠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나를 돌보고 있다는 것을 대충 눈치채고 있었던 나는 아빠의 말이라면 뭐든지 따랐다. 아빠가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말이라도 잘 들어야지, 하는 마음이 기저에 깔려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딱 하나 못 참았던 게 있었는데 다름아닌 아빠의 악취미였던 공주풍 원피스 입기였다. 딸이라고는 선머슴같은 나 뿐인 아빠는 그런 옷이라도 입혀놓으면 그나마 조금 얌전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여덟 살이었나, 아홉 살이었나. 여튼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학교를 마치면 병원의 점심시간과 맞아 떨어지던 터라 털레털레 병원으로 향해 아빠의 진료실로 무작정 쳐들어 갔었다. 내 키의 반 만한 책가방을 매고 진료실로 들어온 나를 덥썩 낚아챈 아빠는 그대로 나를 당직실로 데려가 당시 나를 놀리기에 푹 빠져있던 간호사 언니가 조달해준 공주풍 원피스를 덮어씌우다시피 해 내게 입혔다. 얼결에 책가방만 벗어 던진 채 질색하는 옷을 걸치게 된 나는 기겁하며 벗어내려 했지만 아빠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뒤로 달린 지퍼까지 야무지게 잠근 아빠는 흐뭇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 봤고 나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입꼬리를 씰룩였다. 그 때,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아빠의 의사가운에서 자그마한 티아라가 모습을 비추자 나는 앞뒤 살피지 않고 그대로 당직실을 빠져 나와 달렸다. 아빠 미워! 다시는 안 놀아!
「어, 너….」
「…….」
「그 옷 뭐야?」
어디서 이런 옷을 구해왔는지 영락없는 디즈니 공주 옷에다 종아리를 겨우 가린 치마 아래에는 입고 있던 청바지와 운동화가 그대로 드러난 우스꽝스러운 차림을 한 채로 무작정 달리다 김태형과 맞닥뜨렸다. 심부름으로 음료수를 뽑아 오던 참이었는지 헐렁한 환자복 차림에 양 손에는 이온음료를 들고 내 앞에서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보던 태형이가 그 자리에서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오른 것은 그 웃음 뒤에 따라온 단어 때문이었다.
「공주야.」
「뭐? 공주?」
「공주 옷 입었잖아. 공주네.」
그 뒤로도 한참을 웃다가 겨우 웃음을 거둬내고 숨을 고르며 내게 가까이 다가와 화려한 레이스며 형형색색의 천조각을 이어붙인 원피스를 한참을 만지작거리던 어린 날의 태형이는 양 손에 들고있던 음료수 중 하나를 내게 불쑥 건넸다. 너 이거 좋아해?
「이걸 왜 나한테 줘?」
「나 웃겨줬으니까.」
「…….」
「나 너 공주라고 불러도 돼?」
「공주라고?」
「응. 너 지금 진짜 공주같아.」
배시시 웃는 그 얼굴에 혹하는게 아니었는데.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김태형이 나를 공주라고 부를 줄 알았다면 그 때 칼같이 거절했어야 하는 거였다. 공주야, 너 프린트물 안 봐도 돼? 김태형의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공주 소리에 박지민은 들을 때 마다 진저리를 쳤다. 징그러운 새끼. 쟤가 어딜 봐서 공주야. 차라리 왕자라고 하지 그러냐. 박지민의 타박에도 김태형은 어깨만 으쓱해 보일 뿐 도통 호칭을 고치려 들지 않았다.
"수학은 놨으니까 됐어. 문과한테 뭘 더 바라?"
"오늘 문학도 치는데."
"…야, 박지민. 진짜야?"
"하여간. 너 김태형 없으면 어떻게 지낼래?"
아니, 나는 진짜 오늘 수학이랑 과학만 치는 줄 알았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박지민을 노려보기도 잠시, 김태형이 가방에서 꺼내주는 문학책을 정신없이 훑어내렸다. 야, 너는 안 봐도 돼? 내 물음에 김태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엄만 내 성적에 연연 안 하는 거 알잖아.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데.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농담 마냥 나오는 소리에 나와 박지민은 그대로 굳어 김태형을 경악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저, 저 새끼가.
"너는, 못 하는, 말이, 없지, 어?"
"좀 맞자, 태형아. 이리 와. 그 입 부터 어떻게 좀 해야 돼."
"아, 아파. 야! 나 환자야!"
박지민은 손이 맵다. 뭣도 모르고 함부로 덤볐다가는 큰 코 다치는 수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박지민이 그런 손으로 김태형의 입을 짝 소리가 나게 때렸다. 태형이의 등짝을 팡팡 소리가 나게 내려치고 있던 나도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박지민 손으로 한 대 맞는 게 내 손으로 백 대를 맞는 것 보다 더 아플테니. 아니나 다를까 김태형의 입 주위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박지민은 짐짓 엄한 얼굴을 풀지 않았다. 아, 박지민. 손만 매워서. 태형이가 입 주위를 손으로 문질렀다.
"너 오늘 정기검진 결과 나오는 날이냐? 갑자기 헛소리를 해."
"우리 공주 귀신이다. 어떻게 알았어?"
일부러 과장해서 내게 얼굴을 들이미는 김태형의 어깨를 저만치 밀어내었다. 가끔 김태형이 제가 죽는다, 어쩐다 하는 소리를 입에 올릴 때가 있는데 그런 날은 어김없이 두 달마다 한 번씩 있는 정기검진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제 딴에는 심란해서 그런 거겠지, 하며 이해하려 해도 나와 박지민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야, 심장이 기형인게 그렇게 큰일이야? 죽을 병처럼? 밥 먹듯이 학교를 조퇴하는 김태형이 또 병원에 가 봐야 한다는 이유로 학교를 빠졌던 어느 날 박지민은 나를 붙잡고 그렇게 물었다. 내가 의사도 아닌데 어떻게 알아. 의도치 않게 말이 모나게 나갔지만 천성이 유들유들했던 박지민은 아랑곳 않고 끈질기게 물었다. 아니, 막 저렇게 조퇴하고 그래도 학교에서 아무 제제가 없잖아. 네 아버지가 쟤 담당의라며. 나는 크게 한 숨을 내쉬었다.
잘 들어. 두 번 말 안 할거야. 나도 자세한 건 몰라. 아빠가 얘기를 안 해주시니까. 근데 하나 분명한 건 쟤 그냥 시한폭탄이야. 저 심장 언제 멈출 지 모르고, 선천적 기형이니까 완치같은 것도 없고. 상태도 호전됐다가 나빠졌다가 해. 학교 나올 때는 좀 괜찮은거고, 안 나올 때는 안 좋은거고. 수술대 위에 올라간 횟수는 세지도 못해. 너무 많아서. 그냥 당장 죽는다고 해도 이상할 거 없는 사람이야, 김태형은.
내 말을 전부 경청한 박지민은 한참동안이나 얼이 빠진 채로 있었다. 다음 날 태형이가 다시 학교에 올 때 까지 박지민이 저 상태라면 곤란했다. 태형이는 그 누구라도 제 눈치를 살피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동정과 다를게 뭐가 있냐며. 하지만 내 걱정과는 반대로 박지민은 아무렇지 않게 김태형을 대했다. 평소처럼 장난을 걸어오면 받아주고, 깜빡했던 숙제를 배끼고, 함께 청소를 빼먹고. 평소 가감없던 애정어린 주먹까지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 때 느꼈다. 아, 우리가 친구 하나는 제대로 만났구나.
"몇 시까지 가는데?"
"한 시. 오늘 시험 끝나면 몇 시지?"
"열두 시 반. 딱 맞겠다."
고개를 작게 주억거리는 태형이를 보며 한참을 망설이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야, 김태형. 오래 고민한 것 치고는 퍽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였다. 왜. 곧장 대답이 돌아왔다.
"같이 들으면 안 돼?"
"또 고집 부린다. 싫다고 했잖아."
"나 마음만 먹으면 아빠한테 다 물어볼 수도 있어."
결과를 함께 듣던 나중에 혼자 따로 듣던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김태형은 굳이 나와 함께 듣지 않는 길을 택했다. 왜. 대체 왜 그러는데. 이유라도 들어보자. 내 말에 태형이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 나쁜 얘기 들으면 나 있을 때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다가 혼자 있을 때 속앓이 할 거 다 아니까 그렇지. 그 말이 전부 맞았기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너 나 몰래 선생님한테 물어서 다 듣는 거 안다."
"…아빠가 얘기 했냐?"
"그래, 인마. 뭐 좋은 얘기라고 그렇게 몰래 들어."
아니, 나는 그냥…. 변명거리를 찾으려 눈만 도록도록 굴리고 있을 때 종이 울렸다. 시험 잘 쳐라. 가방을 한 쪽 어깨에 둘러맨 김태형이 자리를 찾아갔다. 나도 책상에 널부러진 책을 가지런히 정리해 들고 자리를 찾아갔다. 시험은 어렵지도 쉽지도 않았다. 점수는 그저 한 만큼 나올 터였다. 문학 빼고. 문제를 푸는 내내 김태형을 곁눈질 하며 바라보았다. 문제지를 몇 번 들춰보는가 싶더니 이내 망설임 없이 슥슥 마킹하고 자리에 엎드렸다. 매 시간 그랬다. 그렇게 엎드려서 자면 숨 제대로 못 쉴텐데. 내 걱정이 쓸데 없는 것이라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김태형은 새근새근 잘만 잤다.
아빠는 자정무렵이 되어서야 퇴근하셨다. 지친 몸을 이끌고 내 옆으로 와 소파에 털썩 걸터앉은 아빠가 관자놀이를 짚으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으레 있던 일이라 애써 신경을 돌리려 애꿎은 텔레비전 화면만 연신 돌려댔다. 채널만 한참을 돌리고 있다 이내 전원을 끄고 리모컨을 저만치 밀어두었다. 하루종일 머릿 속 한가운데 박혀 떠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나오지 않는 문장을 억지로 짜내어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태형이 어때? 이번에도 별 일 없지?"
아빠는 내게 장난치는 것을 좋아한다. 내 반응이 귀엽다나 뭐라나. 그런 연유로 아빠는 진지하지 않아도 될 일에도 퍽 진지해져 나를 긴장시키기 일쑤였다. 이번에도 그렇겠지. 아빠는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아빠. 내가 아빠의 팔을 붙들고 살짝 흔들 때 까지 아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
"딸."
"응."
"태형이가 너한테 별 말 안 해?"
아빠의 물음에 방금 전까지도 이어지던 카톡을 떠올렸다. 별 일 없지? 가벼운 내 물음에 가벼운 대답이 돌아왔었다. 응. 별 일 있겠냐. 물론 곧이 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당장 내일 죽는다고 할지라도 나한테는 무조건 괜찮다고 할 김태형을 알기에.
"괜찮대."
"……."
"별 일 없다고. 괜찮다고 그랬는데."
"……."
"아, 좀 그러지 마. 나 무서워. 빨리 말 해줘."
같이 들어가자고 그렇게 졸랐는데 걔가 끝까지 안 된다고 했단 말이야.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긴장할 때면 나오는 버릇이었다. 아빠는 습관처럼 입술을 지적하곤 했지만 이번에는 그런 나를 보고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딸. 아빠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위험해."
"뭐가."
"태형이, 위험하다고. 두 달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악화 속도가 너무 빨라."
"……."
"약은 더 독한 거 써야 할거고, 약 부작용도 서서히 생길거야. 어쩔 수 없어."
"…아빠."
나도 모르게 손이 덜덜 떨렸다. 그러니까 김태형 너는, 이런 말을 듣고도 나한테 그렇게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이거지. 소파 옆 협탁에 올려두었던 핸드폰으로 손을 뻗었다.
"김태형 이런 거 한 두번 아니잖아. 그치?"
"……."
"어릴 때 부터 자주 그랬잖아. 나빠졌다 좋아졌다. 학교도 그만 뒀다가 다시 다녔다가."
"……."
"이번에도 그런거지? 응?"
"……."
대답 좀, 해 줘. 아빠. 핸드폰 홀드를 해제시키고 카톡을 열어 대화창으로 들어갔다. 정처없이 떨리는 손 탓에 헛손질을 여러번 해 들어가는데 시간이 한참 더 걸렸다. 내일은 찍지 말고 풀라는 내 카톡이 숫자 1이 사라지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잠 든 모양이었다. 여전히 떨리는 손을 다잡고 느리게 쉼호흡 하며 자판을 눌렀다.
"아빠. 내가 물었잖아."
"……."
"대답해 줘."
"…미안하다."
뭐가. 뭐가 미안한데.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아 이를 악물었다. 김태형. 네 이름 석 자를 쓰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전송버튼을 눌렀다. 자고 있을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1모양이 금세 사라졌다. 왜? 답장이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이 마치 영겁의 시간과도 같았다. 아빠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 죽어? 전송버튼을 누를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눈을 질끈 내리감으며 꾹 눌렀다.
"조심해야 돼. 태형이 열 다섯살 때랑 지금이랑 너무 비슷해."
"……."
"더 이상 진행되면 남은 날 장담 못 해."
누가 그래 내가 죽는다고? 되돌아온 답장에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선생님이 그러셔? 아닌데. 나 안 죽는데. 다급하게 따라붙는 메시지가 사무치게 서글펐다. 아니야, 등신아. 그냥 물어본 거야. 안 자고 뭐 하냐? 김태형은 빠르게 내 답장을 확인했다. 대답이 돌아오기 전에 얼른 카톡을 끄고 홀드를 걸었다. 핸드폰을 내려두고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아빠.
"아빠 의사잖아. 사람 살리는 게 아빠 할 일이잖아."
"……."
"태형이 살려줘요. 응? 살려주라."
열 다섯의 어느 밤, 수술대에 올라가기 전날 쓰러지듯 잠이 든 네 손을 붙들고 곁에 있는 네 부모님이 깨실까 숨 죽여가며 울었던 적이 있었다. 그 밤을 재현이라도 하듯 나는 울었다. 아빠는 그 밤처럼 나를 달랬다. 무능한 당신을 탓 하며, 그저 내 등을 쓸어내렸다. 오늘도 어김 없이 밤이 너무 길었다.
*
안녕하세요, 썸머비 입니다.
아마 연재텀은 일주일에 두어개씩 올라오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워낙 글을 쓰는 속도가 느리다 보니...;ㅅ;
그럼에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날이 많이 추워요. 감기 조심하시고 외출하실 때 조심 또 조심하세요!
♥암호닉♥
자몽사탕 짐잼쿠 뿡뿡이 8개월 사이다 설레임 태태
잘난태태 비비빅 짜근 두글 ♥사랑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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