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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저갱 전체글ll조회 2388

 

 

 

 

 

루한은 제 특유의 둥글둥글한 두 눈을 크게 떴다.

두 동공이 커지면서 조금은 괴상한 표정이 나타났지만, 크게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입도 눈과 마찬가지로 조금이지만 벌어졌다. 외마디 비명소리마저 내뱉었는데, 사실 그것은 놀라움보다는 경악에 더 가까웠다. 태초의 기대가 전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얼핏 보면 실망에 가까운 무언가로 비추어지기도 했으나, 사실 실망은 아니었다. 휑한 운동장을 보고 학교 생활이 순탄치 않을 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조금은 했었으니 말이다. 루한이 다시 교실 안을 둘러보았다. 보면 볼수록 정신이 아득해졌다.

 

" 세상에.. "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홉시 사십분.

루한이 쓸 3학년 1반 교실은 몇 개의 가방이 놓여진 자리만 제외하고 모조리 텅 비어 있었다.

 

 

 

 

 

 

종인은 한동안 그대로 누운 채 믹스테잎의 주인공을 상상하는 영양가 없는 짓을 반복하다 누군가가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오자 잽싸게 일어서 앉아야만 했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자, 들어온 존재는 다름아닌 경수였다. 종인은 경수가 속해 있는 그룹에 세훈과 함께 같이 속해 있었다. 별다른 동아리가 아니라, 일종의 막장 팸과도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사실 이 학교에서 그런 팸은 하나 둘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성적이 가장 좋은 일원들이 단체로 모여있는 종인의 그룹은 가장 고난이도의 막장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좋았지만, 그래도 경수는 그중에서 가장 제정신이었다. 경수가 종인의 얼굴을 보더니 반가운 기색을 띈다. 종종 같이 연습을 하기도 했고.

 

" 종인이구나. "

 

안녕, 선량한 얼굴로 인사를 하는데 받아주지 못할 위인은 없다. 연습하러 온 거야? 네. 무뚝뚝한 종인의 얼굴에 경수가 조금 무안한 얼굴을 한다. 자신도 연습하러 온 거라며 연결한 마이크를 쥐는데 뭐든 열심히 하는 경수의 모습은 타인인 종인의 눈에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경수가 발성을 잡고 노래를 시작한다. 종인은 음악에 대해 전문가가 아니었지만 경수의 목소리는 매력적이었다. 종인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던 경수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종인의 얼굴이 조금 부담스러운지 노래를 멈춘다.

 

" 무슨 할 말 있어? "

" 선배. "

" 응? "
" 노래 잘 부르네요. "

 

매력 있어요.

무심하게 던져진 한 마디는 생각보다 경수의 마음에 깊이 파고들었나 보다. 놀랐는지 눈이 조금 커진 경수에게 멋지다고 말해오는 종인은 경수의 차분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믹스테잎에 있는 견고한 분위기와 조금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다르다고 해야 하나, 어쨌건 둘 다 종인의 취향에 부합한다는 게 정답이었다. 경수의 조금 붉어진 볼을 미처 보지 못한 종인이 계속 말을 이었다. 그냥 마음에 들었어요. 무심하지만 진심이 담긴 말에 내심 기뻐진 경수의 두 뺨이 붉어진다. 제 붉어진 뺨을 숨기려 고개를 숙인 경수가 종인에게 물어온다.

 

종인아.

네?

그럼 이번 학기 축제 때 나랑 같이 준비할래?

축제요?

응, 뮤지컬 형식으로. 다른 애들도 같이 하거든.

 

고심하던 종인이 좋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경수와 함께 한다면 나쁘진 않을 거 같다. 종인도 조금이지만 보컬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고. 승낙을 받자마자 경수는 알겠다고 말하더니 마이크를 끄고 연습실을 나가 버린다. 종인이 나가는 경수를 멍하게 본다.

 

문이 닫힌다.

이제 다시 홀로 남았다. 종인은 자리를 옮겨 다시 눕는다. 아직 머릿속에는 믹스테잎의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드럼 비트가 있는 걸 보면 드럼을 칠 줄 아는 사람인가. 단서가 얼마 없어서, 찾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다시 생각을 하나 둘 되짚다가 그의 견고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떠올리며 무심코 깍지낀 손을 풀어 바닥을 더듬는데.

 

" 어. "

 

뭔가 잡히는 게 있다.

종인은 딱딱한 무언가를 집어들었다. 손아귀에는 가지런히 놓인 드럼 스틱이 잡혀져 있다.

드디어 집히는 사람이 생겼다.

종인은 작게 미소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연습이 끝났으니 더는 학교에 있을 필요가 없다. 여전히 드럼 스틱은 종인의 손아귀에 있었다.

종인이 연습실을 나섰다.

사람이 없어 휑해진 연습실 안 시계는 여전히 여섯 시 반에 멈춰져 있다.

 

 

 

 [카찬/백도/세루] 시계태엽 오렌지 02

시계태엽 01

 

 

 

찬열은 반쯤 졸고 있던 백현을 깨워 편곡 작업을 도우게 했다. 빨리 해, 관계의 대가로 당당하게 요구하는 찬열의 닦달에 백현이 마지못해 작업을 도왔다. 음악실 안 조그마한 스피커 사이로 그럴싸한 재즈 편곡이 뽑아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작업이 끝났다. 둘의 사이는 참으로 요상했다. 찬열이 맥을 못 추는 느낌이 들다가도 우위에 서 있던 백현이 아래로 가는 일이 반복된다. 신경전이 벌어지다가도 본래의 사이좋은 친구 사이로 돌아온다. 찬열이 마무리가 다 된 작업물을 저장하다 문득 머리를 스친 사실에 절망했다.

 

" 망했다.. "

" 뭐가? "

" 저쪽 연습실에 드럼 스틱을 놓고 왔어. "

" 넌 좀.. "

 

심하게 덜떨어진 면이 보이곤 해. 백현의 독설에 찬열이 넌 애초에 나서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하고 맞받아쳤다. 백현이 찬열의 약점을 잡아 그를 괴롭히긴 했어도 찬열 역시 호락호락하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조금이지만 날이 선 두 눈이 백현을 향한다. 백현은 이제 찬열에게서 경수의 잔상을 완전히 비워버렸다. 물론, 앞으로도 내킬 때마다 찬열에게서 경수를 비춰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절친한 친구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이 잔뜩 모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 아무 것도 못하고 뒤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겁쟁이. "

" 넌 다를 거 있어보여? 끝까지 고개 한번 못 돌리고 앞만 보고 걷잖아. "

 

안 돌리는 게 아니라, 못 돌리는 거지.

찬열은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실은 백현이 약점을 잡았다는 사실을 빼면 둘은 거의 동등했다. 단지 서로에 대한 이득을 취하기 위해 이탈한 관계가 문제시되었지만, 백현은 용기가 없었고 찬열은 자신이 없었다. 결국에는 둘 다 별 다른 점이 없다는 거다. 한숨을 내쉬며 백현이 나지막히 풀 죽은 목소리로 말한다.

 

" 우리는 너무 같으면서도 달라. "

" 그래서 계속 분쟁을 일으키는 거고. "

 

찬열은 딱히 그 말에 반론의 의사를 펼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동조하는 기색이었다. 침묵은 하되 절대 부정은 하지 않지, 찬열의 모호함에 백현은 심술이 났다. 사실 자격지심에서일지도 모른다. 변변찮은 표현 한번 하지 못하고 외바라기 짝사랑을 12년째 해온 자신보다, 현명한 짓이라고는 하지 못하지만 이런 cd라도 꾸준히 보내는 찬열이 인격적으로도 객관적으로도 백현보다 훨씬 낫긴 했다. 백현은 찬열을 어리석은 겁쟁이라고 생각했지만 적어도 멘탈이 쓰레기에 가까운 자신보다는 훨씬 나은 존재라고 생각했기에 그의 자존심을 일정부분 꺾되 절대 찬열의 인신공격만은 하지 않았다. 그건 친구로서 찬열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이내 경수를 생각하며 씁쓸해진 백현을 본 찬열이 조금은 동정어린 눈길로 쳐다보았다. 예의 그 고고한 눈길로 백현을 쳐다보는데, 백현은 찬열의 이 눈길이 경수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생각했다. 결핍이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였다. 백현이 닮았다, 라고 중얼거리자 찬열이 곧바로 눈을 치켜떠 정색하더니 한 마디 속삭인다.

 

" 변백현. "

" 결국 네가 아무것도 못하는 이유는 하나잖아. "

 

너무 더럽게 놀아서, 안 그래?

자신을 너무 잘 아는 찬열에게 새삼 다시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짜증이 일은 백현이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 말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여인네를 갈아치우는데 백현은 경수를 짝사랑하면서도 그에게 정착할 자신도, 고백할 용기도 없었다. 끝까지 찌질하게 구는 자신이 제가 봐도 별로라서 제대로 티를 낸 적도 없다. 백현은 결국 자신을 쳐다보는 찬열의 눈길이 마음에 안 들어 화살이 담긴 뼈아픈 한 마디를 찬열에게 던졌다.

 

" 도경수는 너한테도 일정 부분 양심의 가책 아냐? "

 

너 그렇게 되고 제일 울었던 애가 경수였잖아.

찬열의 표정이 보기 좋게 굳어졌다. 백현은 그제서야 어느 정도 자신의 상념을 가라앉힐 수가 있었다. 찬열은 그와 달리 백현에게 들은 말이 앙금이 남아 있다는 얼굴이었다.

경수는 성지였다. 짝사랑하는 백현 뿐만 아니라, 두 사람 모두에게 일종의 성역이었다. 감히 저를 상처입히겠답시고 그것을 침범한 백현이 괘씸했다. 그리고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백현은 여유로운 얼굴로 제 몫의 노트북을 툭툭 두드린다. 이윽고 찬열이 좀 누그러진 얼굴을 하자,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물어온다.

 

" 그래서. "

" 뭐가. "

" 지금 연습실에 가려고? "

 

스틱 가지러.

… 아니, 나중에. 지금 가면 오히려 더 오해 사.

찬열이 화를 누그러뜨리자 둘의 사이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백현이 여유롭게 교실로 발걸음을 옮기며 판정을 내린다.

이번 판은 무승부였다.

 

 

 

 

 

 

 루한은 생각보다 크게 놀란 편은 아니었다. 그냥 가만히 제 자리에 앉아서 다른 이들을 기다렸다. 가방을 올려놓고 발만 동동, 딱히 학교 지리도 모르고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어 무료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기만 했다. 얇은 가디건 한 장만을 걸쳐서 그런가 조금은 추웠다. 티셔츠와 청바지만을 매치한 옷차림은 지극히도 모범생적이고 단조로왔다. 가디건 새로 마른 손목과 팔이 드러나 있었다. 교무실에서 받은 교과서를 펼치며 예습을 하는 루한의 모습은 정말로 모범생의 표범이라고 보아도 좋았다.

 

" 전학생이야? "

 

그 때, 문이 열리고 재학생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들어왔다. 몹시 침착하고 단정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빈 교실에 온 것이 몹시 반가워 루한이 조금은 어눌한 발음으로 안녕! 하고 인사를 했다. 이름이 뭐야? 상대가 묻자 루한은 제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 난 김준면, 스무 살이야. 상대의 소개에 루한이 동갑이라며 반가워했다. 준면이 저와 동갑이라는 루한의 인사에 조금은 놀란 듯 했지만 이내 손을 내밀어 잘 부탁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악수를 하자 루한이 상대를 향해 웃었다. 상대도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는 모양새였다. 잘 부탁해. 너 되게 예쁘게 생겼다. 이런 저런 인사치레와 칭찬의 말들이 오고 가자 준면이 본격적으로 루한을 바라보며 본론을 말하기 시작했다.

 

" 여기서 애들이 만든 규범으로는, 월요일은 원래 학교 안 와. "

" 응? 그런데 루한이 볼 때는 오늘 학교.. "

" 그러니까, 학생들이 만든 규칙이라고. "

 

여기서 룰은 그냥 장식품이야. 깨지기 위한 거라고 말해도 별 상관이 없어. 말한 준면이 어깨를 으쓱하자 루한의 얼굴에서 수긍의 표시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정말? 응, 정말. 루한은 자신이 다녔던 북경화양예술전문학교(줄여서 북화전이라고 부르는데 음식 이름 같다며 낄낄대는 학우들도 있었다.)와 이 학교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북경의 학교도 노는 아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 곳은 조금 더..

 

" 여기서 모범생을 기대하진 마. "

" 모두가 정신나간 집단이거든. "

 

선생도, 학교도, 학생까지 전부 다.

의미심장하게 말하는 준면을 바라보며 루한은 정말로 그럴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곧이어 몇 명의 학우들이 더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중 한명은 키가 아주 큰데 얼굴이 굉장히 예뻤고, 나머지 두 명은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무언가 저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분위기가 있었다. 두 명은 제각기의 분위기가 달랐다. 한 명은 진짜 모범생 같은데, 한 명은.. 루한이 이런 저런 탐색을 하고 있던 도중 키가 작은 아이들 중 모범생으로 보이는 애가 먼저 제 이름은 경수라며 인사를 건넸다. 아주 선량해 보였다. 도경수, 루한이 명찰에 있는 이름을 읊으며 인사를 받는데, 문득 키 큰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 안녕, 난 박찬열이야. "

 

그 다음으로 인사를 하는데, 활짝 웃는 얼굴이 정말 예뻤다. 와, 루한은 조금 감탄했다.

 

" 찬열 예쁘다. "

 

착해 보여,

저가 툭 던진 뚱딴지같은 말에 놀란 듯 동그래진 눈이 마냥 선한 모양새를 띄고 있다. 루한은 의외로 쿨한 구석이 있었다. 찬열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도 놀란 듯 눈이 동그래져 있었다. 루한을 쳐다보자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는다. 곧바로 소재가 넘어갔다. 잘 부탁해.  다섯 명의 학생들은 어색하게 루한과 첫인사를 나누었다. 스무 살의 모범생으로 보이는 중국 교환 학생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지나갔다.

 

루한은 준면을 포함한 그들 네명 모두와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네명 다 자신이 보기에는 나쁜 아이들이 아니었다.

다만, 찬열이 좀 걸렸다. 겉보기의 오렌지빛 머리색과는 달리 루한은 그가 가장 그늘져 보였다. 물론 나쁜 의미는 아니었지만, 고고해 보이는 얼굴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갔다.

 

 

 

 

 

 

" 아, 중국 학교가 그런 거야? "

" 응. 루한이 다닌 학교도 배울 거 다 배우고 그래. "

 

교실을 나온 루한은 일행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생각보다 루한의 한국어 실력이 좋다는 데에 감탄을 하고 있었고, 루한은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중국 학교에 대해 말해주고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고 가는데, 경수가 궁금한 점이 있는지 물어온다.

 

" 그럼 형은 거기서 뭐 했었어? "

" 아, 나는.. "

 

루한이 잠깐이지만 말끝을 흐렸다. 무어라 답해야 할지 고심하는 눈치였다.

 

" 그냥 거기서 노래도 하고..춤도 추고.. 다른 건 뭐.. 그냥. "

 

그냥 좀 놀았어, 루한도.

반은 건성으로 대답하는 루한의 말을 경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잘 못 믿는 눈치였다. 대화는 곧 바로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고 가다 학교 지리 이야기가 나왔다. 루한은 자신이 잘 모르는 학교 지리에 대해서 상냥하게 말해주는 그들이 고마웠다. 휑한 1층을 거닐다 백현이 제안했다. 어차피 아무도 없는데 그냥 밖으로 나가죠.

 

" 형도 같이 나갈래? "

" 나도? 루한도 같이 나가? "

 

망설이던 루한이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더 있어도 할 게 없어 보이긴 했다.

 

 

 

 

 

" 여기야? "

" 응, 혹시 형도 알아요? "

" 루한도 여기 살아. "

 

아니, 오늘 이사 왔어.

루한은 여기 바로 아래층이야. 12층인 백현과 찬열의 아래층이라면 11층이라는 소리였다. 집 열쇠를 달랑달랑 흔드는 루한을 보자마자 일행들은 전부 아래층으로 몰려갔다. 루한의 새 집은 이미 가구부터 도배까지 완벽하게 마친 상태였다. 부호였던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향으로 루한의 집안은 유복한 편이었다. 홀로 남은 삼촌을 뒤로 한 채 유학길에 올라 고급 오피스텔에 거주하게 되었는데, 혼자 살기에는 지나치게 널찍하긴 했다.

 

" 그런데 여기서 뭐 하는 거야? "

" 뭐, 같이 모여서 실기도 하고.. "

 

그 순간 루한은 백현이 이상한 눈짓을 하는 모양새를 목격했다. 영문을 몰라 멍하게 바라보자 곧 갑자기 오피스텔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온다. 첫 번째로 들어온 키큰 남자와 찬열의 두 눈이 잠시 마주친다. 그러나 남자는 별 생각 없이 안으로 들어선다. 그 다음은 역시 키가 큰 소년이었다. 두 사람은 천천히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섰다. 커다란 가방 두 개를 든 채로. 교복을 입은 키가 큰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루한도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 세훈? "

" 알아요? "

 

응.

세훈도 루한을 알아봤는지 움찔 하는 모양새가 보인다. 두 사람의 눈이 잠시간 서로 마주했다. 어리지만, 지독히도 음울하고 무언가에 짓눌린 듯한 세훈의 눈빛이 루한에게 와 닿았다. 그러나 이내 곧바로 시선을 피해버리는 세훈을 보고 자그마한 아쉬움을 느껴야만 했다. 두 사람은 가방 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곧이어 그들의 손에 주어진 물건에 루한은 잠시간 놀라움의 탄식을 뱉어야만 했다.

 

" 너희..좀 스케일이 크게 노는구나? "

 

하긴, 종이에 싼 대마초를 보고 탄식을 내뱉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제대로 막나가기로 작정한 건지 세훈은 백현과 찬열에게로 그것을 던진다. 자세히 보니까 담배도 있다. 경수에게 내밀어진 담뱃갑, 그걸 받아서 한 대를 꺼내어 불을 붙인다. 맙소사, 루한의 놀란 두 눈이 다시 세훈과 마주한다. 준면은 변명이라도 하는 듯이 그래도 나랑 경수는 마약은 안한다며 무어라 말해온다. 정작 그것을 들어야 하는 루한은 여전히 세훈과 눈을 마주하고 있다. 분명히 저보다 어릴 텐데도 세파에 잔뜩 찌든 두 눈은 묘하게 루한을 자극하는 마력이 있다. 이번에는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루한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세훈의 두 눈과 비교적 양지에 가까운 루한의 두 시선이 다시 서로 마주친다. 동시에, 둘 사이에 무언가 전류가 파스슥 튀었다.

 

" 루한. "

 

그 때, 루한의 정신을 일깨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 한번 피워볼래? "

 

그렇게 말한 찬열은 주저없이 종이에 싼 대마를 루한에게 내밀었다.

고개를 돌린 루한과 어쩐디 미묘한 표정을 짓는 찬열의 얼굴이 모두의 이목을 집중했다.

찬열의 얼굴은 고고해 보였다.

흐트러짐 없이, 여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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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어이구 제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계태엽이 왔네요ㅠㅠㅠㅠㅠㅠ어 정말ㅠㅠㅠㅠ이 미묘한 분위기는 어휴ㅠㅠㅠㅠㅠ잠깐 진정을 좀 해야할거같아요 습습 후후...진짜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ㅠㅠㅠㅠ무저갱님ㅠㅠㅠㅠ사랑합니다ㅠㅠㅠ찬열이와 백현이의 미묘한 관계ㅠㅠㅠ어흐ㅠㅠㅠㅠ좋네요 정말ㅠㅠㅠ경수를 아끼고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건지 그저 괴롭히고 싶은건지 종인아 저는 네 마음이 무척이나 궁금해요ㅠㅠㅠ순하다고 느꼈던 루한도 알고보니 노는 아이였군요...아 너무너무 재미있어요ㅠㅠㅠ더 길게 코멘트하고 싶은데 이 여운을 느끼러 가야겠어요ㅠㅠㅠ사랑합니다 작가님!!!!혹시 암호닉이 된다면...수줍게 미녜 신청하겠습니다...♥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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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아ㅠㅠ이엄청난분량ㅠㅠ
경의를표해요ㅠㅠㅠㅠㅠㅠㅠㅠ
첫문장읽고든생각.학교가,진짜막장이구나..
분위기도어둡고다루고있는소재도밝은편은아닌데....왜이렇게평화로운느낌인거죠?
종인이의학생다운풋풋함이좋아요♥♥
프롤로그는...음음..살짝빼두고?
1편이랑2편만봤을때는전체적으로,하는색느낌이나요.살짝빛바랜하는색..
너무너무평화롭고고요한분위기라는생각이자꾸드는데,프롤로그의임팩트가워낙커서..
언제폭풍이휘칠까,불안해요ㅠ
으핫,으핫..
방금2편다읽었는데벌써부터3편이기다려지네요!
하루빨리치열한분위기를느끼고싶어요!!
환절기네요ㅠ
건강조심하세요♥♥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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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시계태엽오렌지 원작 엄청 쩔엇던거 같은데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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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저갱
원작 반의 반도 못따라갈듯..죄송합니다..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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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1
헐 그런뜻으로 한말 아닌데여ㅠㅠ걍 원작이 갑자기 생각나서 무서워서그랫쯤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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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저갱
아 원작 저도 안좋아해요.. 그런 폭력적이고 싸이코틱한 내용 좋아하지 않아요 이것도 그냥 따온거에요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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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
와..........무저갱님 저 포비에여 ㅠㅠㅠㅠㅠㅠ자기전에 인티 딱 한번만 하고 잘래캤는데 이런 행운이 ㅠㅠㅠㅠㅠㅠㅠㅠ아 ㅠㅠㅠㅠㅠㅠㅠ완전좋다 ㅠㅠㅠㅠㅠㅠ불타는 금욜밤에 감수성이 풕발하거 있어요 ㅠㅠ우중충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진짜 제 스탈 이네여............3편도 완전 기대 하고 있을게여 ㅠㅠ항상 좋은글 감사핮니다ㅠㅠㅠㅠㅠ제가 무슨일이 있어도 시계태엽 오렌지는 정주행할게여 ㅠㅠㅠㅠㅠ사랑해여 ㅠㅠㅠ좋은 주말 보내세요♥♥♥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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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6
땅콩샌드에여!그냥 둘러보고있었는데 시계태엽오렌지가 떴길래 바로들어옴요♥아 이런 퇴폐적인분위기 좋아요 이런분위기를 글로 일케 표현을 잘하시다니 자까님손은 금손..☆이거 너무 좋아요 많이 기다리고있어요!아임웨이팅뽈유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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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6
시계태엽오랜지이거 따른분블로그억서본것같은데 그분이세여?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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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저갱
머피의법칙이라면제가맞는거같아용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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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7
헐 ㅜㅜ 알라븅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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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저갱
저도사랑해요~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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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8
헐헐허러허헣허허 제가 얼마나 기달렸는지 아세요?ㅠㅠㅜㅜㅜㅜ 정말 재밌다..ㅜㅜㅜ 학교가 너무 막장인걸 잘 표현해주신듯 굿b 이제부터 매일 3편기대할꺼에요!!!!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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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9
우와 이거 오늘 처음보는데 학원물인가했는데 마약나오는거보니까 그냥학원물은아닐것같고 애들이 다 음악하는거보니까 음악쪽이랑 관련이있나 싶기도하고 흥미로운 글이네요ㅎㅎㅎ신알신 하고 갈게요~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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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0
1호팬이에요! 스킨스랑 비슷하게 간다니.................쨩bbbb 메인 관계들사이에 껴있는 소소한 다른관계들도 너무 조으다..... 백현이 찬열이 종인이 찬열이 관계가 제일 궁금해요ㅠㅠㅠㅠㅠㅠㅠㅠ 그나저나 루한이 쿨워터향.........ㅁ7ㅁ8 반전이네욬ㅋㅋㅋㅋㅋㅋㅋ 결국 누하니는 찬열이한테서 받아들것인가 아닌갘ㅋㅋ 오늘의 숙제이네욬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음편도 기다릴꼐요ㅠㅠㅠ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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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2
행쇼에요!오늘은 늦게봤네요ㅋㅋ 시간내서 꽤오래 본것같은데 찬열이랑 백현이 대화하는 부분 너무좋네요 서로가 서로의 문제를알고 말을 해줘도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거는 아쉬웠지만 ㅋㅋ진짜 서로 대화할때 속으로 읽는데 막아련아련하고..쨌든 또 루한앞에서 대마피우는거는..세훈 그럴줄 몰랐는댘ㅋㅋㅋ오늘편 완전댬있어요 다음편도 빨리나왔으면 해요ㅋㅋ다음에는 일빠로 올께요ㅋㅋㅋㅋS2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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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3
아 진짜 볼수록 빠져든다.......뭔가 고요하고 마성이에요ㅕ....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계속계속 읽고싶은데 이제 3화읽으면 기다려야겠네여 나어;라;냐갭ㄷ귬느루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아 진짜 사랑해여 금손작가님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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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4
문체ㅠㅠㅠㅠㅠ너무 좋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진짜 분위 문체 완전 취향박살이예요ㅠㅠㅠㅠㅠ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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