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놓쳐 버리고 말 겁니다.
나는 반복하지 않을 거고, 당신도 내 이야기를 끊지 않는 겁니다.
내가 지금부터 당신에게 필요로 하는 건 약속입니다.
내 말을 주의 깊이 잘 듣고 말을 모두 끝내기 전까진 날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거죠.
만약 그렇게 하기로 약속해줄 수 없다면, 이 곳을 떠나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당신이 남기로 한다면, 여기 남기로 한 것이 당신 자신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은 내 책임이 아닙니다. 당신 책임이죠.
잘 귀 기울여 들으세요.
THE IMITATED SWAN
지민은 철저하게 이성적이었다. 무용수라는 자신의 위치와 걸맞지 않은 성향이었지만 지민은 또한 몹시 영특했다. 타고나길 남들보다 뛰어난 지성이었다. 지민은 자신의 지성에 끊임없이 기대왔다. 누구에게도 뒤떨어진 적 없는 지성은 지민에게 큰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지민이 몸을 담그고 있는 곳은 예술이었다. 그곳은, 지적 수준을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지민은 단 한 순간도 프리모 우오모 (primo uomo) 의 위치에 설 수 없었다. 예술의 세계란 그러하였다.
지민은 처음 무용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한 극단에서만 연기해왔다. 'Alter Ego', 그것은 지민의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지민의 모든 것을 쥐고 흔드는 곳이었다. 지민은 늘 생각해왔다, 이곳은 그 무엇보다 잔인하며 지독한 곳이라고. 맞는 말이었다. 무용에 대한 열정과 마음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이 바로 지민의 'Alter Ego'였다.
발레란, 완벽을 추구해야만 하는 예술이다. 카메라로 영상을 담을 수 없는 이 예술은 너무나 덧없기에 아름다웠고, 아름답기 위해선 모든 순간이 빛나야 한다. 지민은 그 무엇보다 발레의 이 점을 가장 동경했다. 지민의 눈동자엔 한순간 존재할 뿐인 그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이 짙게 담겨 있었다.
지민은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일 만큼 아름다운 무용수였다. 그가 몸 끝에서 그려내는 선은 유려했으며 그의 눈빛은 관객을 몰입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아름답긴 하지만 완벽한 무용수는 아니었다. 그의 연기를 본 모든 사람은 그에게 입을 모아 말했다, 아름다운 연기였다고. 그 누구도 지민에게 완벽한 연기였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민은 완벽을 갈망했고 집착했다.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지민은 지독하게 원했다.
"오디션 공고 떴다!"
"이번에도 백조는 김탄소겠지?"
"그럴걸. 우리 극단에서 걜 뛰어넘을 만한 실력은 없으니까."
김탄소. 지민에게 그녀는 동경의 대상이자 지민이 뛰어넘을 수 없는 단단한 벽이었다. 모든 오디션에서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지민은, 그녀가 오디션장에 들어섬과 동시에 잊힌다. 지민의 빛은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만 빛을 발했다. 지민은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증오했다. 지민이 사는 예술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지민아, 여기서 또 만나네?"
"... 응, 안녕."
"이번엔 둘 다 열심히 해서 꼭 우리 파트너로 만나자."
또한, 그녀는 친절했다. 다정한 그녀의 성품은 서로 끌어내리기에 급급한 세계에서마저 칭찬을 받았다. 지민 역시 느끼고 있었다. 분명 그녀는 지민이 만나 온 사람 중 가장 맑은 사람이었다. 프리마돈나에 눈이 멀어 새빨간 눈동자에 독기를 가득 품은 다른 무용수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녀의 눈에선 예술을 향한 투명한 동경이 보였다. 그녀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녀의 예술을 사랑했다.
오디션 당일, 지민은 긴장으로 가득 찬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레오타드를 올려 입었다. 탈의실에서 나와 오디션장에 들어선 지민은 구석진 곳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고개를 돌려가며 참가자들을 확인하던 지민은 이내 미소 지었다. 그곳의 무용수 중 지민보다 우수한 무용수는 없었다. 만족한 표정을 짓고서 지민은 몸을 풀기 시작했다. 스트레칭을 하는 지민의 모습은 다른 무용수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그들의 시선을 느끼며 지민은 더욱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지민의 몸으로 쏟아지던 수많은 눈빛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순식간에 지민에게서 시선을 앗아간 주인공은 탄소였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사뿐히 발을 내디뎠고 지민과 눈이 마주치자 반가운 듯이 인사를 건네었다. 지민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남모를 열등감을 느꼈다. 어색하게 웃으며 함께 인사한 지민은 더욱 구석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민이 자리를 옮기든 말든, 이미 무용수들의 관심 밖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민을 바라보며 감탄하던 수십 개의 눈동자는 탄소에게로 이어졌다. 토슈즈를 고쳐 신는 장면 하나에도 그들은 그녀를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지민은 토슈즈가 신겨지지 않은 자신의 발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남성 무용수들은 토슈즈를 신지 않음이 당연함에도 지민은 탄소와 자신을 비교해가며 자신을 상대적으로 낮추었다. 지민은 모순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행동을 그 스스로가 행하고 있었다.
"박지민?"
탄소를 향한 눈빛을 거두고 홀로 생각에 잠겨 있던 지민은 자신을 부르는 감독의 목소리에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안 가득 고인 침을 삼키고 심호흡을 한 후, 지민은 연기를 시작했다. 스스로를 백조로 변화시켜 완벽한 연기를 보이는데 주어진 시간은 고작 1분이었다. 다른 남성 무용수들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지민의 선은 부드러웠다. 지민의 작은 손짓은 백조를 연상시켰고 그의 움직임에는 백조를 향한 짙은 갈망이 묻어 있었다. 지민의 백조는 모두의 1분을 단숨에 앗아갔다. 지민의 동작과 회전은 모두를 숨 죽이게 하였다. 누군가의 작은 탄성을 시작으로 숨을 헐떡이며 연기를 마친 지민에게 환호가 쏟아졌다. 마치 커다란 무대의 일류 무용수에게 보내는 박수를 받는 듯한 기분에 지민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기쁘게 웃었다.
정면에 있는 거울을 통해 모두의 표정을 살피던 지민은 순간 표정을 굳혔다. 탄소였다. 자신의 연기를 보며 말갛게 웃는 그녀는 구름 위를 떠다니던 지민을 한순간에 절벽으로 끌어내렸다. 질투와 시기 따위의 추잡한 감정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응원이었다. 그녀의 순수함은 지민을 한없이 추락시켰다. 거울을 통해 그녀와 눈이 마주친 지민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에 탄소 역시 웃으며 화답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호선을 그리며 닫혀 있던 입술을 떼는 탄소를 지민은 뚫어지라 쫓았다.
'멋진 연기였어.'
지민은 토해내듯 호흡을 뱉어내었다. 여전히 맑은 그녀의 미소를 지민은 더 바라보지 못했다. 황급히 시선을 돌려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지민은 생각했다, 그녀의 말 속엔 분명 다른 뜻이 있을 거라고. 어릴 적부터 가식으로 가득 찬 곳에서 자라왔던 지민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이었다. 안타깝게도 지민은 있는 그대로 사람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김탄소?"
감독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또다시 지민에게 모였던 모든 시선은 단숨에 탄소에게로 옮겨 갔다. 지민은 가벼운 걸음으로 자신의 자리로 걸어오는 탄소를 노려보았다. 지민의 시선을 느낀 그녀는 다시 한 번 미소 지었다. 탄소는 그녀가 짓는 그 티 없는 미소가 지민에게 좌절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모두의 사랑을 받고 자라온 탄소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지민은 뒷걸음질 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즉석에서 반주하는 피아니스트에게 여유로운 신호를 보내고 탄소는 그녀의 1분을 시작했다.
그녀의 발이 닿는 곳마다 물결이 일렁이는 듯했고 그녀가 팔을 움직일 때마다 백조의 날갯짓이 겹쳐 보였다. 지민은 입술을 깨물며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그녀의 장면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지민은 바삐 그녀를 쫓았다. 탄소는 언제나처럼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선사했고 발끝을 세워 마무리한 연기는 모두의 환호를 끌어냈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자세를 바로 한 탄소는 숨을 고르며 밝게 웃었다. 지민은 여전히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탄소는 유난히도 지독한 지민의 시선에 눈을 마주했다. 분명히 서로를 향한 두 눈이 담고 있는 의미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곳에 단둘만이 존재하는 듯 지민과 탄소는 서로를 향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위태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담아내던 지민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오디션장을 나갔다. 지민은 탄소에게서 본 완벽을 인정할 수 없었다.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탈의실로 향하는 지민은 걸음을 멈췄다. 누군가에 의해 붙잡힌 손목에 그를 바라본 지민의 눈빛은 흔들렸다. 탄소였다. 어색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본 그녀는 지민의 시선이 자신이 붙잡은 손목으로 향하자 당황하여 손목을 놓았다.
"아, 미안. 그냥 인사를 하고 싶어서..."
"... 왜?"
"응?"
"왜,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그, 그냥 네 연기가 멋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뭐?"
"넌 그 순간 아주 멋진 백조였어. 대단했어, 정말로!"
"......"
"... 내가 혹시 뭐 실수했니?"
"... 나 갈게."
"어?"
지민은 황급히 탈의실로 향했다.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지민은 걸음을 빨리했다. 코너를 돌아 도착한 탈의실에 들어선 지민은 문을 잠갔다.
'멋진 연기였어.'
'넌 그 순간 아주 멋진 백조였어.'
'대단했어, 정말로!'
지민은 그녀의 말들을 되뇌었다. 한 모금의 가식도 찾아볼 수 없는 그 감탄은 진심이었다. 지민은 숨을 깊게 뱉으며 문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수차례 머리를 쓸어올리던 손은 지민의 눈가에 정착했다. 지민에게 진심이란 너무나도 생소한 것이었다. 지민의 주위엔 온통 가면을 쓴 사람만이 가득했고 지민 역시 자연스레 가면 속에 스스로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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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디한테 무례한지 아닌지 논란인 카리나 발언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