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니 - your name
수민이의 손에서는 아이스초코가 흘러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저거 닦아야 하는데... 나는 멍한 표정으로 수민이를 바라보면서도 가방 안에 있는 휴지를 꺼내려 손을 더듬거렸다.
너 역시도 매우 당황한 것 같았다. 내 무릎을 벤 그대로 수민이를 바라보며 움직이지도 못하는 걸 보면.
"..."
"저, 저기... 그니까 수민아."
김석진이 뒤늦게 뭔가 말해보려고 했지만 마땅한 변명거리가 떠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갔을텐데. 나는 입술을 잘근거렸다. 젠장. 망했어. 이게 뭐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 변명이라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입을 여는 그 순간, 멍하니 있던 수민이가 입을 열었다.
"뭐야?"
"어... 그니까..."
"씨발아. 미쳤어? 안 비켜? 지금 이름언니 무릎에서 뭔 짓이야!"
응?
"안그래도 마른 사람 무릎 베고 누워서 뭐하는 짓거리야! 너는 눈 없어? 저 다리 안보여? 너 때문에 언니 다리 부러지면 어쩌려고!"
유명 아이돌은 연애를 할까?
02
w. 복숭아 향기
"언니가 어쩌다가 저런 사람을 만났어요."
"어..."
"막 데이트하거나 그럴 때 언니보고 밥사라고 하는 건 아니죠? 나 만날 때마다 내가 먹은 건 내가 내라고 하는 인간인데 그런 쓰레기 같은 짓은 안하죠?"
"내가 먹은 건 내가 내야하는데..."
"헉. 미쳤어. 미쳤어. 언니가 얼마나 먹는다고 언니 꺼까지 언니가 내요. 존나 처먹는 저 인간이 다내야지."
"..."
원래 남매가 이런 사이였던 건가.
너는 한 쪽 구석에서 궁시렁거리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고 수민이는 어느새 내 두 손을 꼭 붙잡고 구구절절 네 욕을 하고 있었다.
김석진은 그런 네 등을 토닥이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고 가운데 앉아있는 전정국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헤실헤실 웃으며 나와 너를 번갈아보고 있었다.
수민이는 내 두 손을 만지작거리다 내 다리 한 번 보고 한숨을 내쉬고 그러다 내 얼굴 한 번 보고 배시시 웃었고
그런 수민이를 마주하는 나는 머쩍게 웃으며 혀로 입술을 축였다.
솔로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팬을 봤지만 팬싸인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이렇게까지 가깝게 팬을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언니."
"으, 으응?"
"혹시 혹시 저 인간이 언니한테 이상한 짓 하면 바로 저 불러요. 제가 광주에서 바로 달려오던지 할게요."
"충분히 잘해주고 있는데..."
"당연히 잘해줘야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저 진짜 오늘 언니 팬싸인회 오려고 광주에서 올라온 거거든요. 밥 많이 많이 챙겨먹어요. 진짜 가까이서 보니까 더 말랐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울먹거리며 말하는 수민이를 보며 나는 조심스레 수민이의 머리를 쓸어내려주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다들 나를 볼 때마다 밥 좀 먹으라고 말을 하기는 했는데 이렇게까지 밥 먹으라고 챙겨주는 사람은 또 처음이었다.
팬심이라는 게 이런 건가. 나는 눈동자를 데록데록 굴리다 수민이와 마주보고는 작게 웃어보였다.
"나 진짜 괜찮아. 밥도 잘 먹고 있고."
"..."
"수민아?"
"와... 존예..."
아직 혈기왕성한 여고생의 감정선을 따라가기에 나는 너무 나이를 먹었나보다.
멍하니 나를 바라보며 예쁘다를 중얼거리는 수민이에게 나는 그저 허허 웃어줄뿐 별 다른말을 해주지 못했으니까.
-
'제 번호에요. 잃어버리면 안 돼요. 저 잊어도 안 돼요!'
수민이는 내 손에 번호를 쥐어주고 나서야 너에게 질질 끌려서 밖으로 나갔다.
연습실에 있던 시간은 30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을 텐데. 허허. 나는 아직도 멍한 표정으로 수민이가 주고간 쪽지를 만지작거렸다.
누가 남매 아니랄까봐. 번호 주는 방법도 똑같네. 그러고보면 너와 수민이의 얼굴이 묘하게 닮아있었다.
나는 푸스스 웃으며 쪽지를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정수민 다음부터 내가 데리고 오나 봐."
수민이를 배웅해준다고 나갔던 너가 툴툴거리며 돌아왔다.
너는 여전히 입술을 삐죽 내민 채로 불퉁한 표정을 지으며 궁시렁거리고 있었다.
동생이 왔던게 그렇게 불만인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네 어깨를 꾹꾹 눌러댔다. 너는 나를 한 번 보더니 그대로 내 어깨 위에 이마를 기대왔다.
나는 그런 네 등을 토닥여주었다. 갑자기 동생이 들어와서 얼마나 놀랬을꼬.
"여기 온거 자체도 혹시나 너 볼까봐 따라온거란다."
"고맙네."
"나한테 하는 말이 너한테 무슨 짓을 했길래 둘이 사귀는 거냐고 바락바락 달려들더라."
"누구 들은 사람은 없고?"
"그 와중에 누구한테 들킬까봐 입은 꼭 다문채로 달려드는데 죽는 줄 알았어."
"고생 많았네."
정수민이 번호 줬지?
응.
연락할거지?
당연하지.
너는 나를 끌어안은 채로 잠시 웅얼거리다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너 이제 보컬레슨 받으러 가야하잖아.
그러고보니까 시간이 꽤 흘러있었다. 나는 네 등을 한 번 더 토닥여주고는 작게 웃어보였다. 어쩔 수 없지 뭐. 할 일은 해야하니까.
"정수민 때문에 오래 보지도 못하고."
"동생이잖아."
"다음에 밥 한 번 먹자."
"동생까지 같이?"
"뭐 어때. 안그래도 맛있는 거 사달라고 조르던데. 일요일 저녁에는 내려가야하잖아."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내일 저녁 같이 먹으면 되겠다.
너와의 약속을 마지막으로 나는 안무 연습실을 나와 녹음실로 향했다.
악보를 보고 피아노를 치며 음정을 잡는 동안에도 내 입꼬리는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형제 자매가 없는 외동이어서 그런가.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 은근히 챙기는 것 같은 너와 수민이의 모습이 꽤나 보기 좋았으니까.
내일 저녁 너와 같이 밥먹을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물론 수민이를 만나는 것도 기다려졌고.
-
연습을 마치자 벌써 하늘이 어스름해진 새벽이 되었다.
빨리 숙소 가서 씻고 자야지. 하품을 하며 사무실 밖으로 나오자 이제 연습이 끝났는지 핫바를 입에 물고 있는 김석진과 마주쳤다.
방금 전까지 같이 있었던 너와 전정국은 보이지 않았다. 먼저 숙소로 갔나?
김석진은 나를 발견했는지 핫바를 우물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다른 한 손에는 무언가 가득 들어있는 봉지가 달랑거리고 있었다.
"이제 가요?"
"응. 너는 이제 가?"
"방금 끝났어요. 왜 오빠 혼자에요?"
"나 라면 먹는 거 기다려달라니까 휑하니 가버리더라. 나 진짜 서러워."
김석진은 늘 그랬던 것처럼 쫑알거리며 내 뒤를 따라왔다.
같은 소속사여서인지 내 숙소와 방탄소년단 숙소는 같은 아파트였다.
아파트는 같지만 동은 다른 그런 느낌이랄까. 숙소끼리 가까우면 뭐해. 막상 만나는 날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별하나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아. 춥다.
"왜. 아까 수민이 봐서 그래?"
"아니요. 추워서요."
"갑자기 왜?"
"그냥 추워서요."
"싱겁긴."
먹을래?
김석진은 입에 물고 있던 핫바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언젠가 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석진이 형은 뭐랄까... 막 신경써주는 형은 아닌데 먹을 거 주면 나름 그게 위로거든. 그냥 말로 하면 되는데 말이야.'
이게 나름 위로라는 건가.
딱히 무슨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뭔가 힘이 되는 기분이었다. 진짜 그냥 추워서 하늘 보고 그런 건데.
예전에 내가 너무 바스라질 것처럼 행동하긴 했었나보네.
"들어가."
"조심해서 들어가요. 오빠도."
"나 요 앞에 살거든."
"나도 여기 살아요."
김석진은 나를 아파트 입구까지 데려다주었다.
여자 혼자 집에 들어가는 걸 볼 수는 없다나. 그래봤자 바로 옆동으로 들어가면 방탄소년단 숙소인데.
혼자 가는 길이 심심해서 같이 가자고 한 거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튼 속이 뻔히 보여요.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아파트 계단을 올라갔다. 2층이라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게 참 마음에 들었다.
숙소 현관문 앞에 작은 상자가 놓여져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뭐지? 가까이서 보니 분홍색 상자에 하얀 리본이 있는게 꼭 선물상자 같았다.
상자 위에는 To 성이름 이라 쓰여져 있었다.
팬이 준건가? 숙소는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온거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상자를 품에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
[아, 진짜? 그냥 나도 기다릴걸.]
"뭘 기다려. 석진 오빠도 라면 먹다가 만난 건데."
[어쨋든 같이 왔잖아. 아까 얼마 보지도 못했는데.]
"됐네요."
[내일 스케줄 괜찮지?]
"응. 내일 녹음만 있어."
[내일 저녁에 같이 밥먹자. 나도 보니까 시간 괜찮더라.]
"메뉴는 너가 정해. 나 아무거나 잘먹어."
[(언니는 좀 먹어야 해요!) 아, 좀 비켜봐. 알았어.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그냥 뜯어먹어요!) 정수민!]
"알아서 잘 먹고 있다고 전해줘. 걱정하지 말라고."
[알았어. 쉬고 있어. 나중에 카톡할게. 미리 잘자! (언니, 잘자요!)]
"응. 너도 잘자고 수민이도 잘자."
너와의 전화통화를 마치고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아. 편하다. 일을 할 때도 물론 즐겁지만 역시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침대 위에 누워있는 이 순간이었다.
너랑 있을 때와는 또 다른 행복이었다. 이건 편한 거고 너랑 있는 건 행복한 거고. 엄연히 다르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이메일을 확인해보니 은영이에게 메일이 와있었다.
은영이는 아직도 어디로 유학을 갔던건지 알려주지 않았다. 종종 이렇게 메일을 보내올 뿐이었다.
가끔 전화를 할 때도 있었다. 국제전화라서 비싸다고 자주 하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이야.
존댓말 따위는 집어치운지 오래였다.
오랜만이야.
아니 오랜만은 아닌건가? 그래도 매일 보던 얼굴인데 이정도면 오랜만이지. 그치?
언니 앨범 잘 듣고 있어. 여기서도 인터넷은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마. 노래 좋더라.
후속곡은 나중에 들어볼게. 아직 리패키지는 오지 않았거든.
뮤비 보니까 살 더 빠졌더라. 거기 회사도 막 샐러드만 먹이면서 밥은 안주나봐. 어째 다시 골라도 그런 회사로 갔어.
남자친구랑은 잘 되가고 있지? 별 말 없는 거 보면 잘 지내는거 같던데.
들키지 말고 오래 가. 들키면 언니만 힘들잖아.
다음 달에 한국 들어갈 거 같아. 정확히 정해지면 다시 메일 할게. 몸 건강히 잘챙기고.
그럼 그 때 봐.
별로 긴 내용의 메일은 아니었지만 종종 메일과 함께 보내준 사진을 보면 유학 생활이 꽤나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다행이다. 나는 작게 웃어보이며 은영이가 보내준 사진을 핸드폰에 저장했다.
저장 폴더 이름은 내 동생 이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숙소 앞에서 발견한 상자를 열어보았다.
상자 안에는 오늘 팬싸인회에서 찍은 듯한 내 사진들이 몇 장 들어있었다.
대포 카메라로 찍은 건가... 화질도 보정도 장난이 아니었다. 예쁘다. 나는 사진 한 장 한 장을 넘겨보며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사진 속의 나는 다른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 카메라는 한 번도 안봤나보네. 팬싸인회 하면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팬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웃어주고 그랬는데...
나는 사진들을 곱게 모아 다시 상자 안에 집어넣었다. 상자 안에는 사진 외에 다른 것은 들어있지 않았다.
쪽지 하나라도 써주지. 그럼 다음에 내가 카메라 제대로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흔히 말하는 아이컨택 한 번 해주지 못해서 그런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상자를 침대 머리맡에 놔두고 수면 안대를 썼다.
사랑받는 기분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나는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기분 좋다. 새벽까지 연습하느라 몸은 힘들었지만 뭐랄까... 힘들지 않았다.
역시 침대 위에 있을 때 마음이 제일 편안했지만 행복한 거는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인 것 같았다.
빨리 내일 됐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이불을 덮었다. 꽤나 길었던 하루가 이렇게 마무리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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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오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 것처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실제로 사람들이 사랑을 할 때 면역력도 높아진다고 하네요. 이는 절대 우연이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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