갠홈 동시 연재
※이 글은 팩션(Faction)입니다.
팩션이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신조어로써 역사적 사실이나 배경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창작해내는 것
바야흐로 햇빛이 맑아오던 호시절이었다. 그런 날에 어울리듯 마을 골목은 한적했지만 시내로 나갈수록 그 한적함은 깨져 어수선함과 혼잡함으로 바꾸어나갔다. 시위대로 꽉찬 길은 참담한 현실을 보여주는듯 하였다. 서울에 위치한 서울역 광장에선 10만 데모가 일어나고있었다. 아직 그 소식이 전해져오지않은 듯한 이 곳, 근처에 위치한 고등학교에서는 이런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오가며 대화하는 소년들이 있다. 이 소년들에 대한 서막은 19년전부터 이미 시작해와 지금까지도 계속해오고 있다.
까치가 이울다 01
written 로단테
금남로 근처에 위치한 고등학교 안에 수많은 교실들이 있지만, 그 교실들 중 눈에 눈에 띄는 곳은 3학년 9반, 소년들이 담겨져있는 반이다. 교실 안속엔 그 좁은 곳을 다 꽉 채울정도의 학생수로 이루어져있는데 그 사이에 책상 3개와 의자를 붙여 진지한 표정을 가진 소년들이 눈에 띄었다. 의자를 거꾸로 돌려 앉아 두명을 쳐다보며 올라간 눈꼬리를 가진 소년의 이름은 김민석. 아는것에 대해 다 토해내며 열성적이게 대화를 이끌어가는 주도자, 이지만 어울리지않게 동그란 안경을 써 살짝은 어벙해보이는 소년의 이름은 김종대, 그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뚱한 표정을 지으며 한 쪽 손으로 그런 얼굴을 지탱하는 모습을 한 소년은 김종인이다. 셋, 아니 둘의 대화가 익숙한 몇몇의 반 아이들은 그 대화를 듣고 있기도 했다.
"언제 쯤이면 끝이 날까."
"그러게."
종대의 말 하나하나 다 맞대답을 쳐주며 이야기하는 민석이였다. 종인은 그들의 대화를 계속듣다 못참겠는건지 대화주제를 살짝 돌려버렸다. 준면이형은 잘 지내지? 간단한 안부인사를 묻는 무미건조한 물음일수도 있겠지만 이들에겐 그가 중요했다. 준면은 김종대의 친 형, 이자 전남대학교에서 시위운동을 하고있는 갓 21살인 파릇파릇한 대학생이다. 종대는 그런 자신의 형과 같이 시위운동에 참여한적이 셀 수 없을만큼 많았다. 계속되는 휴교령에 준면은 날마다 시위운동에 참여하였고 몸이 상하여 오는 날도 많아졌다. 이젠 그런 그의 건강을 묻는건 일상이 되기도 했다.
"오늘 니 집 가도 되냐?"
"매일보는데도 또 내가 보고싶어?"
"준면이형 보러가는거다 새끼야"
장난과 진담이 섞인 말로 종대에게 말하는 민석을 보는 종인은 그제서야 실웃음을 뱉으며 표정을 풀었다. 그런 종인을 확인한 종대는 보기 좋은 능글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표정 푸니까 인물이 사네. 라고 말하니 종대의 어깨를 주먹으로 쌔게밀치며 말 대신 행동으로 표현하는 종인이였다.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하는건지 눈을 접으며 맨날 때려. 라고 말하고는 똑같이 종인의 어깨를 주먹으로 쳤다. 그런 모습을 보는 민석은 아 새끼들, 또 시작이라며 웃어보였다. 그들을 보니 새하얗고 평범한 19살 고등학생인 모습이 자연스레 보여지는것 같았다.
*
듣기만해도 귀가 찢어질듯한 소음이 들려온다. 그 소음 중에선 프로펠러의 웅장한 소리가 합쳐져있다. 훈련을 다 끝낸 공수부대원들은 딱딱 맞춰진 발소리를 내며 웅장한 소리를 내는 본체 안 속으로 들어갔다. 비밀리의 작전이 있는지 부사관으로 보이는 한 이가 대원들을 향해 말을 외치며, 지상위에 있던 수송기는 하늘 위로 떠올랐다.
어디를 향해 가는건지 아무도 몰랐다. 아는건 조종사와 부사관 뿐. 암묵적인 물음만 있어 시끄러운 기계소리빼고는 고요한 공간이였다.
*
늦은 하굣길을 셋이서 걸어오는 길에 고양이를 만났다. 이 고양이는 어렸을 적, 아마 내가 13살때 쯤인가 그 아이를 만났을 때 길고양이였던걸 발견했었다. 고양이를 보니 길었던 5년의 세월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루야. 너를 부르는 내 부름에 고양이는 뒤뚱거리는 몸을 이끌고 우리 곁으로 와서는 내 다리와 저의 등을 부비적대며 애정표현을 하는 루였다. 루는 고양이의 이름이다. 그 아이가 그리워 붙여준 이름.
루야, 이거 먹어. 종대 부모님이 열고있는 작은 구멍가게에서 소시지 하날 꺼내 루의 앞에 놓아줬다. 그렇게 값비싼 음식이 아니라 종종 내 돈으로 사서 준다. 하지만 그런 날 말리며 소시지 하나는 괜찮다며 돈을 다시 내 손에 쥐어주는 종대가 있어 소시지 값을 걱정하는 날은 없었다.
"잘 먹는다."
사실 나보다 종인이 루를 더 좋아한다. 제일 싫어하던것도 종인이였지만. 언제부턴지 종인은 배아파 낳은 딸처럼 루를 보살폈다. 아이고, 잘먹네. 식사 중인 루옆에서 칭찬과 감탄사를 내놓는 종인을 본 종대는 팔불출새끼. 라며 혀를 찼다. 루야, 오빠 장가갈 때까지 같이 살아야된다? 2년전부터 저 말이다. 그만해라, 새끼야 루 체해. 결국 우쭈쭈거리는 종인의 등을 발로 차는 종대였다. 그 모습을 본 내 입에선 웃음소리가 터져나와 작은 구멍가게 안을 채워나갔다.
"아줌마는?"
"자고있을걸."
가게 놔두고 맨날 저렇게 잠만 자다간 도둑들어도 모를거야. 가게 앞에 내놓아진 막대사탕을 까먹으며 말하는 종대였다. 야, 너 이썩어 그만먹어. 루만 보던 종인이 방금 막 깐 종대의 사탕을 보곤 뺏어들었다. 종대는 달달한걸 좋아하기때문에 작은 이들는 충치로 덮어져있었다. 입이 삐죽 튀어나온 종대를 보더니 허릴숙여 귓속말을 하는 종인이였다. 뭐라고 말을 하는것같았지만 내가 있는 곳까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충 키..뭐라고 들은거같은데, 저러는거 한 두번이 아니라 딱히 신경은 쓰이지않았다. 말을 다한 듯한 종인은 능글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종대를 쳐다봤다. 내 옆에 앉아있는 종대 얼굴을 보니 망치를 맞은듯해 보였다가 금방 익은 고구마를 만진 손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이 미친놈! 그리고 퍽하는 소리와 함께 종인은 정강이를 맞았다.
*
"오늘도 준면이형은 못보는건가."
한 시간 째, 구멍가게 앞에 놓여있는 평상에 앉아 얘기하고 있었을까 해는 이미 달에게 삼켜져 없어진 후였고 갈듯말듯한 가로등만 길을 비춰주고 있었다. 늦은시간까지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 않는 준면이형을 기다리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었다. 나 오늘 엄마가 맛있는거 해준댔는데. 얼마나 배고픈지 아까전부터 배에서 소리를 내던 종인이 꺼낸 말이였다. 아담하고 조촐한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종대와는 달리 종인의 부모님은 두분 다 교사라 그런지 부족함 없이 컸었다. 그것도 아저씨께서는 옆반 담임선생님이기도 해 우리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였다. 처음에는 신경 안 쓰더니, 부러워하지마라며 난 너네들이 부러워할 만한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우리에게 혼을 냈었다. 그래도 부러운 마음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어, 루 잔다."
"애기처럼 자네."
곤히 자는 루의 모습을 보니 또 그 아이가 생각이 났다. 걜 닮은것 같아. 라는 말이 입안까지 나왔지만 음소거된 상태로 나와 아무도 듣지 못했을거다.
"잘 지내고 있을까.."
"누구?"
작게 중얼거리던 내 말을 들은건지 종대는 숨겨둔 여친이냐며 장난스럽게 물어왔다. 오, 김민석 드디어 여자친구사귀는거야? 누군데, 영숙이? 혜민이? 그런 종대 옆에서 같이 입을 맞춰오는 종인이였다.
"아니거든!"
"너 요새 고영이 많이 보던데, 좋아하는거 아냐?"
저번에 머리에 껌을 붙이고 다니던 고영이가 계속 신경쓰여 봤던거였는데 그걸로 트집을 잡곤 좋아하는거 아니냐며 묻는 종대가 오늘따라 더 미웠다. 평소에도 밉상이였지만.
"야, 걔랑은 내가 아깝지."
"허세는."
계속해서 놀려오는 둘 때문에 머리가 폭팔할것같았다. 나쁜새끼들, 죽을때까지 여자 평생 못 만나라. 저주아닌 저주를 하곤 빈 통에 들어있는 작은사탕 하나를 집어 포장을 뜯었다. 야! 먹지 마! 이미 다 뜯었는데 뜯지말라며 가게 아들분이 내 행동을 멈추게했다. 아까 소시지는 괜찮다며 더 값싼 사탕은 안돼는건가. 니 입은 입이고 난 주둥이야? 왜 못 먹게하냐며 툴툴 대었더만 다른 맛을 먹으라며 통 안에 손을 넣곤 내가 뜯었던 사탕과는 정 반대의 색깔을 가진 포장지였다. 홍삼맛? 쓴거 싫어하는데. 내 입맛은 다 알고있을텐데 굳이 홍삼맛을 준걸보면 종대는 아마 날 싫어하는 것 같았다. 다음에 우리집 놀러오면 니가 싫어하는 김치찌개만 끓여줄거다.
"앞으로 누룽지맛은 먹지 마."
"왜."
그냥 먹지 말라면 먹지 마! 에라이, 치사해서 안 먹는다. 종대 부모님들껜 죄송하지만 앞으론 다른 가게에 가서 사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사탕 봉지를 뜯어 안에 있는것을 입에 넣었다. 처음엔 달달한 맛이 느껴지다가 곧 쓰디 쓴 향이 흘러나오더니 코 끝을 찌르는 알싸한 맛이 느껴졌다. 우웩, 맛없어. 헛구역질을 해보이는 행동을 하며 휴지 달라고 손을 까딱거리니 아깝다며 다 먹으라하는 종대였다. 결국은 억지로 코 끝을 막아 다 깨뜨려서 먹었다.
"다신 홍삼맛주지마라."
진심을 다해 경고했더니 종대는 웃으며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애입맛이냐며 놀려댔다. 그 말에 자기가 홍삼맛을 먹은듯 표정을 구기던 종인이 그럼 홍삼맛을 사오지 마. 라고 받아쳐줬다. 예상치못한 종인의 방패때문에 안그래도 어벙해보이는 종대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듯 버벅거렸다.
"야, 농담이야. 근데 김민석. 그거 먹지말고 너네 할머니 가져다주지."
너네 할머니 홍삼맛 좋아하지않아? 잠시 내가 까먹었던 부분까지 기억해주는 종인의 말에 아차싶었다. 종대야, 나 몇개만 사갈게. 하나에 얼마더라? 잘 들어가지않는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어 집히는거마다 다 꺼내봤다. 하나, 둘, 셋.. 육백원 밖에 없네. 꼼꼼히 동전을 세아리던 나를 본 종대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더니 홍삼맛 사탕 한 봉지를 가져와 내 앞으로 밀어줬다.
"다 가져가."
"나 이거 다 살 돈 없어."
"괜찮아, 다음에 계란말이 하나 해 줘. 니가 해주는거 맛있더라."
내게 애 입맛이라며 놀리던 종대도 사실은 나보다 편식이 더 심했다. 이미 치아상태를 보면 그의 식습관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자기 좋아하는 것만 먹고 싫어하는 건 쳐다도 안 봐 맨날 혼이 나는 어린아이같았다. 그런 사소한 걸 빼면 이미 다 자란 청년같았다. 맨날 자기가 먼저 양보하고, 배려해주는 세심함이 미래에 어른이 된 우리들 중에서 제일 먼저 멋진 어른이 될것 같았다.
*
얘기하다보니 정말로 하늘은 잿빛을 지나 검은 연필심으로 흰 공간을 꽉 채워그린듯한 도화지같았다. 더 늦게 되면 할머니 혼자 밥을 챙겨드셔야 할걸 생각하니, 궁둥이는 자연스레 때졌다. 나 먼저 가볼게. 바지에 뭍은 먼지를 털며 둘에게 인사를 했다. 조심히 가라며 손을 흔들어주곤 종대는 내게 외쳤다.
"할머니한테 안부 전해드려!"
*
"할머니, 나 왔어."
무겁지만 여태 무거움이 느껴지지 않던 가방과 홍삼맛 사탕 한봉지를 앉은뱅이책상 옆에 세워뒀다. 할머니, 오늘 내가 맛있는거 해줄게. 자고있는 할머니를 힐끔 쳐다보곤 부엌으로 들어가 구석에 있는 부탄가스를 꺼냈다. 반찬은 항상 어제 먹었던걸로, 이미 식은 국을 맛보며 상했는지 분별하고 난뒤, 꺼질락말락한 주황색 불이 올라타고있는 가스버너 위에 올려뒀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 보글보글거리며 끓는 국을 확인하고 아침에 급히 지었던 밥을 떠 은그릇에 담았다. 달그락거리는 소릴내며 그릇을 세 개 더 꺼내고는 뜨끈한 계란국으로 보이는 것을 세 곳에 골고루 담았다. 하나엔 계란을 많이, 다른 하나는 국물을 많이넣었고 마지막 하나는 두개에 비해 확연히 적은 양을 담았다.
"할머니."
아직까지 깨어나지 않은 할머니 곁으로 가 하얗고 작은 손을 콧등 밑으로 갖다대었다. 옅게 느껴지는 숨에 민석은 안도하고 할머니를 다시 조심스럽게 불렀다. 할머니, 할머니 일어나봐요. 몇 번 더 부르니 에구, 우리애기 왔냐. 할매 깨우지그랬어. 할머니는 쇳소리를 가진 목소리로 말하더니 힘들게 상체를 일으키셨다. 나 방금 왔으니까 걱정말구 밥먹자. 부엌으로 가 밥상다리가 부러질 만큼은 아니지만 비쩍마른 반찬이 많아 눈으로 봐도 배부를듯한 꽉 찬 밥상을 힘겹게 들고왔다.
"오늘 종대 집앞에서 루 보고왔다?"
"그랬어? 우리새끼. 많이 컸더나."
응, 5년전 처음 봤을 때 보다 몸집도 커지고 살집도 많이 붙었더라고. 걔도 그렇게됐을까. 나보다 키 작고 외소했었는데. 숟가락과 은그릇이 부딪히는 소리에 작게 중얼거리던 말을 멈췄다. 항상 저가 만들어준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할머니를 보니 몇 숟가락 먹지도 않았는데도 배불러왔었다. 아 맞다 할머니 저거 봐봐. 들고있던 숟가락을 밥상위에 올려놓곤 앉은뱅이책상 옆에 놓여진 사탕 봉지를 가리켰다.
"저게 뭐시더냐?"
"종대가 할매 드시라고 챙겨줬어."
어유 기특하기도해라. 종대 안본지 좀 된거같은데, 다음에 한 번 집에 데려오지 그랴. 이 할매가 맛있는거 해준다고 해부러. 어렸을 때 부터 할머니는 종대를 내 친 형제처럼 보살펴줬었다. 원래 성격이 좋아 어르신분들이랑 잘 지내던 종대라, 할머니는 엄청 맘에 들어 하셨다. 그리고 애교없는 나에 비해, 넉살이 좋아 애교도 많이부리며 할머니의 사랑을 받는게 내심 부럽긴했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내게 종대보다 더 많은 사랑을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였다.
"거 루한은 아직까지 소식없고?"
"..응."
왜 안 한더냐. 잘 지내는지 모르겄네. 그 말과 함께 나는 밥그릇을 비워냈다. 원래 몇 숟가락 채 되지 않았지만 오늘 밤은 더 빨리 먹은거 같았다. 기분 탓일까.
"근데 아부지는 아직 안 왔냐."
"..오늘 새벽 전에는 온다 그랬는데."
아버지는 나와 같은 시위운동을 하신다. 아직까지 학생인 나는 학교에 걸리고 그래서 제약이 많았다. 아버지는 언제부턴지 엄마가 사라지고 난 뒤 부터 시위를 시작하셨다. 그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그리고 딱히 캐내며 알고싶은 생각은 없다. 아버지만의 비밀이 있을수도 있으니까.
"국 식겠네잉."
짜게식어가는 국을 보니 며칠 째 집에 들어오지 않던 아버지의 빈자리가 조금 느껴지는 것 같았다. 무사한 건지, 묻고싶다.
"할머니, 나 이거 치우고있을테니까 누워 계셔요."
힘들게 몸을 옮기시는 할머니를 도와드려 아까보단 가볍지만 무거운 밥상을 두 손으로 들어 부엌에 갖다놓았다. 아깝지만 아직 남아있는 두 그릇을 치우고 빈 그릇들을 양 손에 들고 밖으로 나갔다. 밤에는 물 차가운데. 지하수에 연결된 꼬여있는 호스를 풀어 물을 틀었다. 물과 함께 씻겨지는 달그락 소리에 나는 어렸을 적 들었던 노랠 흥얼거렸다. 8시 쯤 넘어서그런지 달빛은 아까보다 더 밝아졌다. 대야에 담겨져있는 차가운 물은 달빛과 내 얼굴을 비춰줬다. 요즘따라 살 빠진거같네. 예전과는 달리 홀쭉해진 볼을 보며 맨날 저보고 살빠졌다며 먹고다니라던 종대의 말이 이제야 신경쓰였다.
쏴아아하고 쏟아지는 물소리와 함께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뚜벅뚜벅. 아버지의 신발 소리와 비슷해 들고있던 접시를 대야위에 올려두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정말 아버지일까. 찬물때문에 퉁퉁 부은 손을 바지에 닦으며 대문앞에 섰다. 그리고 발걸음 소리도 멈췄다. 원래라면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가 아버지를 맞이해줬을테지만, 가까이가니 아버지의 신발소리가 아니란걸 알 수 있었다. 아버진 체중을 크게 실어 한 걸음마다 무거운 걸음이셨는데, 저 걸음소리는 가벼우며 규칙적이었다. 누굴까. 조심스레 잠궈둔 대문을 열어 천천히 열었다.
끼이익.
철과 철이 맞닿는 소리에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그리고 내 눈앞엔 믿기지 않게 그 아이가 서있었다.
"오랜만이야, 민석."
*
"...한이?"
잠시 시간이 거꾸로 간 듯 했다. 아니 꿈을 꾸는건가, 바보같이 부은 손으로 볼을 꼬집으며 현실에 직면했다. 뺨을 때리기도 했다. 그래도 눈 앞에 있는건 진짜 루한이였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5년동안 많은 생각을 해왔었지만 아직 정하지 않아 내 입은 옴짝달싹 할 수도 없었다.
어째서 여기 온거야?
5년동안 고민하던 말들과는 달리 끔찍한 세 마디였다. 어째서 왔냐니, 내가 내뱉고도 후회스러운 말이였다. 내 말에 루한은 말없이 날 쳐다보기만 해 그제서야 저도 떨리는 눈동자로 루한을 찬찬히 훑어봤다. 옛날과 똑같은 짧은 머리와 여전히 고운 얼굴이였고 이목구비는 더 다듬어진거 같아 도자기같다고 느껴졌다. 덩치는 저보다 훨씬 자란거같았고 몸도 다부진것같았다.
"그대로다."
목소리는 변성기를 겪은건지 미묘하게 달랐었다. 내 기억속의 너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니 놀란 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다.
"민석, 늦게왔지. 미안해."
뒤늦게 나는 루한의 품에 달려들어 안겼다. 5년, 5년만이라니. 널 다시 만날 수 있는 날까지 짧다고 생각해왔지만 이렇게 길줄은 몰랐다. 오랫만에 차갑지만 따뜻한 품에 안기니 기분이 내심 좋아졌다. 매일 사진으로만 보던 그 차가움과는 달리 직접 느껴지는 살결이 너무 좋았다. 고갤 들어 루한을 쳐다보니 언제부터 쳐다본건지 날 내려다보는 시선과 마주쳤다. 그리고는 곱게 눈을 접으며 저를 쳐다봤다. 그에 질세라 나도 웃으며 바라봤다. 다시 보게되서 너무 반가워. 보고싶었어.
*
마당에 있는 작은평상에 둘이 앉아 5년간 못다한 이야기를 펼쳐냈다. 여태까지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3분쯤 지난줄 알았던 시간이 알고보니 20분이나 지나있었다. 얘길 들어보니 루한이 여기 온 이유는 혼자 여행가고 싶어서 였다고 한다. 굳이 여행 온 곳이 광주인 이유는 나와 친구들이 있어서라고 말해줘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래도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잘 지내셔?"
"응."
"..그, 요즘 바쁘시나?"
"어, 이번에 맡은 일이 있으신건지 쉴 시간도 없어 보이시더라고."
"그렇구나..."
루한의 아버지는 계엄군이셨다. 5년전에 봤을때도 군기가 잡혀있으셔서 첫인상은 무서우셔서 쉽게 다가가진 못했던거로 기억이 남아있다. 루한의 첫 인상도 그렇게 좋진 않았었지만.
"어머니는?"
"..어?"
갑작스레 묻는 제 엄마의 안부에 뒤에서 돌을 맞은 듯 한 기분이였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이었다. 뭐라고 말해야 얘가 충격을 받지 않을까. 하며
"..돌아가셨어."
"뭐?"
루한의 눈은 토끼눈이 되어 내게 재차 물어왔다. 그게 무슨 말이냐며, 루한의 말에 나는 쉽게 답 할 수가 없었다. 저 때문에 차에 치여 돌아가신걸 어떻게 풀어 설명해야 할지 내 머릿속은 복잡한 철로 길 처럼 꼬여갔다. 루한은 본드가 붙여진듯 떨어지지 않는 내 입술을 보더니 자연스레 소릴 죽였다. 다시 입을 열었을 때 어머니 일에 대해 물어봐서 미안하다며 말해왔다. 왜 니가 미안해해. 미안하다고 말 할 이유 따윈 너에게 없었다.
"...민석아, 너 김치찌개 잘 끓이지?"
"어? 으응.."
"나 내일 또 올건데, 그 때 끓여주면 안 돼?"
"내일? 지금 해줄게, 먹고 가."
오늘은 괜찮다며 두 손을 젓는 루한의 행동에 조금은 아쉬웠다. 지금 맛있게 끓여줄 수 있는데.
일어서는 루한의 뒷모습에 괜스레 겁이 나 다시 말을 걸었다. 내일 애들도 데려올까? 거의 소리치듯 말했지만 루한은 담담하게 뒤돌아봤다. 응. 짧은 한 마디로 답한 루한은 저의 손을 만지며 말해왔다. 단순한 접촉이였지만 긴 세월을 느낀 내 촉감은 루한의 손을 맞잡았다.
"조금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돼? 우리 오랜만에 보는 거기도 하고, 할머니한테 인사 드려야지."
"주무시고 계시니까 인사는 내일 드릴게."
"그래도.."
"민석, 내일 또 볼 수 있어 걱정 마."
걱정하지말라며 한 손으로 제 볼을 쓸어만지는 그 손길에 어렸을 적 추억들이 영화 필름처럼 되어 눈앞에 재생되었다. 내일 볼 때까지 밥 꼬박꼬박 챙겨 먹으라며 살 빠진 날 걱정해줬다. 한 끼도 빼먹지 않고 챙겨먹겠다고 웃으니 루한도 그제서야 미소를 지으며 대문 앞으로 걸어나갔다.
"내일 또 보자."
"조심히 가."
배웅해준다는 내 친절을 거절한 루한은 기어코 날 못 나오게 했다. 결국 집문 안에서 인사를 해주고 문이 닫힐때까지 쳐다봤다. 곧 철소리를 내며 닫힌 문을 보니, 루한을 만났다는게 실감이 되지 않았다.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다시 한 번 볼을 때려봤지만 아프긴 정말 아팠다. 아직까지 대야에 넣어돈 설거지감들을 뒤로 놔두고 방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구석에 박혀있던 작은 동그란 상자를 열어 그 속에 있던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봤다. 온통 사진뿐이였지만, 내 유년시절을 볼 수 있는 마지막 흔적들이였다.
"..찾았다."
맨 밑에 바닥에 봉지로 싸여있던 작은 사진 두개를 꺼냈다. 하나의 사진에서는 14살 때 우리들의 웃고 있는 모습과 또 다른 하나에는 너와 내가 해맑은 아이처럼 웃는 모습이 담겨져있었다. 닳지말라고 봉지로 감싸둔게 다행인건지, 사진은 방금 막 찍은것처럼 깨끗했다. 손때가 많이 묻어있어 끝은 닳았었지만.
이 사진을 다시 꺼낸건 근 4년 만이였다.
아까 내 눈으로 본 너의 얼굴을 다시 그려가며 사진을 쳐다봤다. 그대로구나, 너. 변함이 하나도 없었다.
겉모습은 그대로지만 본심은 변했는지 알 수 없어, 내 걱정은 향처럼 다시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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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18 민주화운동이 배경이에요!
글쓰기 전부터 엄청많이 고민했었다가 이제야 이 글을 올리느뉴ㅠㅠㅠㅠㅠ (감격)(폭죽)
모르는 부분도 많으니 미숙한 점은 이해해주신다면 감사드리겠습니다..ㅠㅠ ♥
오타난 곳이랑 이상한 곳은 지적해주시면 제 사랑을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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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응팔 정팔이 전교1등인데 공군사관학교갔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