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00
1880년대 어느 추운 겨울, 보기만해도 쓸쓸하고 황량한 대저택에서 어느 이름모를 소년의 신음에 찬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마침내 그 소리는 괴성으로 변하고 이내 쨍그랑 하고 유리깨지는 소리가 나더니 헐레벌떡 메이드복을 입은 여자가 팔 한쪽을 감싼채 내려온다.
"무슨 일이죠?"
무슨일이냐 묻는 여인의 말에 메이드는 아무말도 안한채 팔 한쪽을 조심스레 내려다 본다. 누군가 입으로 문 흔적들이 가득하다.
여인이 가만히 알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이자 메이드는 황급히 계단을 내려간다.
'똑똑똑'
"들어오지마. 들어오지말라고!!!"
"원우, 엄마야. 들어가도 될까?"
"다 싫어. 다 싫다고. 가버려."
끼이익. 여인은 조심스레 문을 연다. 방에 여기저기 깨진 유리와 찢어진 천이 가득하다.
원우라고 불리우는 이 소년은 괴롭다는 듯이 벽을 쿵쿵치며 소리를 지른다. 여인은 걸어가 조용히 원우를 안고 쓰다듬어 달래주기 시작한다.
"우리 원우. 뭐가 이렇게 화났을까."
"다들 나가라하라고. 나 보지마!!"
"여기에는 아무도 없어. 엄마밖에는."
"짜증나. 씻기 싫다고!!!"
"알지. 그런데 신부님이..."
"그 엿같은 신부님 타령 그만해. 엄마도 이제 그만 나가."
"너무 흥분한거 같은데 이석민 선생님을 불.."
"닥쳐!! 엄마도 그냥 나가라고!! 제발 그 선생 좀 부르지말라고!!"
소년은 끝내 자신을 쓰다듬어 주는 여인의 손을 물어버리고 밀어낸다.
손을 다친 여인은 황급히 밖을 나온다. 여인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내려온다.
***
전원우. 21세.
원래 그는 난폭한 소년이 아니었다. 인정많고 장난기 많은 그냥 평범한 소년이었다.
잘생긴 얼굴탓에 주변 가문 여자들이 탐을 내기는 했지만 그냥 평범하디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가 난폭해지기 시작한것은 18살 겨울.
마차를 타고가다 마부의 잘못으로 옆 낭떠러지로 떨어진 후에 그는 시력을 잃게 되었다.
그때부터 온갖 피해망상에 사로잡혔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주변사람들을 해치기 시작하였다.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이 장애인이 되자 마음의 병을 얻은 그의 아버지는 시름시름 앓다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아버지의 막대한 유산이있어 재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 시선 때문에 그들은 시골로 도피해야했다.
그래. 그는 원래 난폭하지 않은 평범한 소년이었다.
***
한바탕 일을 치루고 여인은 푹신한 안락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신다. 아, 오늘 교사가 온다했는데. 여인은 조그맣게 중얼거린다.
원우가 눈이 보이지 않으니 어떤 수업도 진행할 수가 없다. 그리고 교사들 하나같이 원우의 난폭함과 짜증에 못 이겨 한 달도 못 채우고 도망치기 일쑤였다.
이번엔 제발 잘 버텨주길. 여인은 계속 기도하고 기도한다. 그래도 이번 교사의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원우가 정상적인 수업을 받을 수 없다는것을 여인은 교사들이 다 도망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방법을 바꾸었다.
책을 읽어주면 좋지 않을까. 정서발달에도 좋고. 책은 간접적인 세계라 하지 않던가.
눈으로 세계를 볼 수 없는 원우에게 귀로 세계를 들려주고 싶었다.
원우에게 뭘 바라는 것은 없었다. 그저 이 수업을 통해 원우의 마음이 조금 추슬러져 있기를. 또 자신이 불행한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해주기를.
그냥 그것 뿐 이었다.
'똑똑똑-'
"누구세요?"
"김세봉 입니다."
"아, 교사 분이시군요. 들어오시죠."
망토를 얼굴까지 뒤집어 쓴 여자가 불안한 눈빛으로 재빨리 들어온다. 여인이 내민 악수도 지나치고 그저 빨리 일을 하고 이 집에서 나가고 싶다는 표정이다.
하얀 얼굴. 그렇지만 여기저기 화상자국들. 하얀 얼굴에 대조되는 하얗고 푸석푸석한 머리. 작은 눈. 큰 코. 각질이 점령한 하얀 입술.
그것이 그녀의 외관을 표현해주는 단어들이다. 푸석푸석. 하얗다. 그리고
못생겼다.
"그래도 목소리는 참 좋네요."
여인을 따라 계단을 올라가던 세봉 에게 긴 정적을 깨고 여인이 무심코 던진 말이다. 그 말엔 함축되어 있는 의미가 있다.
'얼굴을 더럽게 못생기고 흉측한데, 목소리는 참 좋네요.'
세봉이는 아무런 표정, 미동도 그리고 반응도 없이 묵묵히 여인을 따라 계단을 올라간다.
더보기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블라인드로 첫 작품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시각장애인인 원우와 엄청난 추녀인 여주의 사랑이야기인데요. 앞으로 더 재밌는 글 쓸테니 미숙해도 많이많이 봐주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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