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고등학생 종대와 크리스의 졸업식! 이야기에요.
친구가 슬쩍 던져준 썰인데 너무 써보고 싶어서 써봤어요 즐감하세요~
종대가 크리스를 힐끔 쳐다봤다. 종대는 1반 크리스는 8반이였다. 멀기도 멀다. 종대가 투덜거렸다. 마지막인데…. 이렇게 멀리서라도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말 한마디 걸어보지도 못했다. 창문 너머로 농구를 하고 있는 크리스를 바라보거나 복도 너머로 친구들과 지나가는 크리스를 쳐다만 봤었다. 가까이 붙어있을 수 있던 시간은 거의 없었다. 도서부인 종대가 도서관 사서를 하고 있을 때 가끔씩 도서관에 들리는 크리스를 볼 때, 그때 아니면 가까이서 볼 기회가 없었다.
크리스는 유명했다. 여러모로 유명했다. 돈 많은 도련님, 한국으로 유학을 온 외국인, 에이전시가 있는 모델, 농구 팀에 들어갈 정도로 유명한 농구 실력. 훤칠하고 잘생긴 외모. 남고였지만 크리스는 실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가끔 잡지 한쪽에 크리스의 사진이 실리기도 했으니까. 남자아이들의 우상정도.
속으로 좋아하기만 했다. 누구나 외로워지는 봄이면 종대는 속으로 끙끙 앓기만 했다. 말이라도 한마디 해보면 좋을텐데…. 용기가 없는 저를 탓하며 종대는 따듯한 봄날에 홀로 상사병을 앓았다. 매일매일 크리스의 뒷모습만 바라봤다.
크리스는 가끔 영어로 되어있는 도서를 빌리러 도서관에 왔었다. 아무래도 한국어는 익숙하지 않은지 빌려가는 책은 죄다 영어 해석을 위해 몇 권 가져다 놓은 독일이나 프랑스, 미국 소설이였다. 사서인 종대가 크리스의 학생증을 받아 대출을 해 주었다. 종대는 책을 건네어 주고 건네어 받는 그 짧은 시간이 너무 좋았다. 그 순간만큼은 시간만 죽이는 도서부에 들기를 잘한 것 같다고 생각 했다.
종대는 이도 저도 아닌 평범한 학생이였다. 유일하게 잘한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은 노래 하나였다. 그러나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부모님의 반대에 밴드부에 들 수 없었다. 중학교때 같이 올라온 밴드부 친구들은 많이 아쉬워했다. 축제기간에는 정식으로 밴드부원으로 무대에 서지는 못했지만 밴드부 친구들을 도와준다는 명목 하에 한곡씩 노래를 불렀다. 비록 짧게 보여주는 인트로 같은 무대라 큰 반응은 없었지만 종대는 그 순간이 매우 즐거웠다.
고등학교 2학년, 그 때도 무대에 올랐었다. 종대가 부를 노래는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였다. 무대 정중앙에 섰을 때 저 멀리 눈에 띄는 한 인영이 보였다. 훤칠한 키를 가지고 있는 크리스였다. 강당 거의 끝 가운데에 혼자 서서 종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종대는 제가 할 대사를 잊어버렸다. 간신히 진행자의 도움으로 잘 넘어갔지만.
이젠, 버틸 수 없다고.
노래가 시작함과 동시에 종대는 크리스와 눈을 맞췄다. 지금이 아니면 이렇게 눈을 맞출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크리스는 종대가 자신을 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선을 피하지 않고 종대를 바라봤다. 긴장한 손바닥에서 땀이 베어 나왔다. 노래는 점점 클라이막스로 치닫고 있었다. 종대는 어쩐지 이 강당 안에 크리스와 저 둘만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너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볼 수만 있다면…
종대가 눈을 감았다. 크리스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괜스레 눈물이 나는 것 같아 눈을 꽉 감았다. 크리스가 저를 보고 있는지 보고 있지 않은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종대가 노래를 끝마치고 눈을 떴을 때, 크리스는 없었다.
같은 학교에, 같은 공간에,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시각에 등교를 하고 하교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오늘이 마지막이였다. 어떻게 흘러왔는지 모를 고등학교 생활은 오늘로 끝이였다. 오늘은 졸업식이였다. 졸업식. 크리스가 대학에 붙었는지 안 붙었는지도 몰랐다. 뭔가 허무했다. 이렇게 끝인가. 고등학교 생활도 끝이고, 이렇게 크리스를 뒤에서 바라만 볼 수 있는 것도 끝이고, 얼굴을 볼 수 있는 것도 마지막인가 싶어 마음이 심란했다. 질기기만 했던 짝사랑도 끝인가 싶었다.
마지막 교장선생님의 말씀은 언제나 지루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아무도 떠들지 않았다. 종대는 일부러 줄의 맨 마지막에 섰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남들보다 한뼘은 큰 크리스의 뒤통수가 보였다. 남들 모르게 크리스의 뒤통수만 바라봤다. 오늘이 마지막인데, 실컷 봐야지. 하는 심정이였다. 종대는 자꾸 울컥했다.
…고등학교의 졸업식을 마치겠습니다.
사회를 맡으신 선생님의 말씀이 장내를 울림과 동시에 학생들의 입에선 함성이 쏟아졌다. 아이들은 서로를 안아주고 격려해주느라 바빴다. 웃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없던 크리스도 오늘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따라 웃고 싶었는데 종대는 웃을 수 없었다. 자꾸 슬퍼졌다. 친구들과 포옹을 하던 크리스가 별안간 종대를 향해 돌아봤다. 종대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눈을 마주쳤다. 종대가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시선을 돌린 곳에는 종대의 부모님과 형이 있었다. 종대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났다. 꾸역꾸역 참으며 부모님과 형에게 크게 인사했다. 그 때였다. 종대 뒤에서 누군가 종대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종대가 의아함에 고개를 돌렸을 때는 크리스가 서있었다. 종대는 너무 놀라 숨까지 멈췄다. 크리스가 슬몃 웃었다.
크리스는 종대를 끌고 혼잡스러운 장내를 벗어났다. 종대가 뒤돌아 부모님께 소리쳤다. 잠깐만…! 친구들이랑 인사하고 올께! 부모님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가 저와 친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종대는 크리스의 손길을 뿌리칠 수 없었다.
인적이 드문 학교 뒤편까지 끌려왔다. (말만 그렇지 반은 종대의 의지로 걸었다.) 종대가 12월의 차가운 바람에 목을 움츠렸다. 그제야 크리스는 종대의 손을 놓아주었다. 놓자마자 차갑게 파고드는 바람에 손끝이 시렸다.
뭔가 어색한 기운이 맴돌았다. 서로 말 한마디 재대로 나눠본 적 없는 사이였다. 왜 끌려왔는지 이유도 모르는 종대는 그저 시끄럽게 뛰어대는 심장소리를 죽이려 심호흡을 했다. 크리스는 그런 종대를 물끄럼 바라봤다. 종대, 맞지? 익숙하게 들려오는 한국어에 종대가 고개를 들었다.
“한국말, 잘하네?”
반사적으로 튀어나간 말이였다. 종대가 뱉어놓고 놀라 입을 가렸다. 크리스가 웃었다. 한국에서 3년을 살았는데 못할 리가…. 처음 들어보는 한국어에 놀라서 그랬다고 종대가 우물쭈물 변명 했다. 크리스가 이해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종대, 잠깐만.”
크리스가 종대를 가만 세워두고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겼다. 종대는 그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다 종대의 휑한 목덜미가 신경 쓰였는지 제가 하고 있던 목도리를 매어 주었다. 종대가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크리스는 묵묵히 목도리를 단단히 매주었다. 그러고는 또 다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사라졌던 크리스가 돌아오면서 들고 온 것은 꽃다발이였다. 알록달록 예쁜 색으로 물들여진.
크리스는 조금 부끄러운듯 손으로 코끝을 매만졌다. 종대와 재대로 시선을 맞추지 못했다. 오히려 지금은 종대가 크리스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종대는 분명히 추운 겨울인데, 찬바람만 쌩쌩 부는데 따듯하다고, 여기가 따듯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크리스와 마주 볼 것이라고 대화를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이거, 종대 가져.”
크리스가 종대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종대가 꽃다발을 건네받았다. 예쁘다…. 종대가 중얼거렸다. 크리스의 귀가 빨개졌다. 부끄러워하는 것일까? 종대가 속으로 제발, 하고 빌었다. 크리스가 자신과 같은 마음이였으면 좋겠다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이거…뭐야?”
종대가 물었다. 크리스가 마이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대답했다.
“졸업 축하해.”
“…….”
“이 말 꼭 해주고 싶어서 불렀어.”
크리스가 뒷목을 쓸었다. 자신도 축하한다고 말해야 되는데 종대는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입을 열면 속마음에 담아두었던 말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좋아해. 종대.”
“…뭐?”
“종대를, 좋아해. 내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종대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꿈인가? 종대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앞에 서있던 크리스가 종대의 양 볼을 살며시 감싸 쥐었다. 크고 따듯하고 부드러웠다. 크리스가 엄지로 종대의 눈물을 닦았다.
“정말이야. 종대 처음부터 좋아했어. 용기가 없어서 선뜻 고백하지 못했어.”
“…….”
“학교에서 늘 보고 있었어.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널 불렀어.”
“…내가 거절하면 어쩌려고?”
“대답을 바라고 한 고백은 아니야. 그냥, 말해주고 싶어서.”
크리스가 웃었다. 종대는 그런 크리스를 올려다봤다. 정말 크리스가 나를 좋아하는 것이 맞을까? 종대는 자신의 볼을 감싸쥐고 있는 크리스의 손을 맞잡았다.
“…진짜지?”
“응. 물론.”
확고한 대답을 듣는 순간 종대는 크리스의 품을 파고들었다. 크리스가 조용히 웃는게 느껴졌다. 종대의 입에서는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크리스는 그런 종대의 뒷머리를 가만히 쓸어주었다. 너도 나를 좋아할거라 믿고 있었어. 크리스가 나즈막히 말했다. 종대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크리스를 끌어안고 있는 손에 힘을 더욱 줬다.
“좋아해, 좋아해 종대….”
“나도…나도 좋아해….”
종대가 발뒤꿈치를 들어 크리스의 입술에 키스했다.
졸업식이였다.
고등학교도, 짝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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