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한테선 향기가 나, 짜증날 정도로 달콤한 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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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애는 나에게 있어서 꿈같은 존재였다. 너무 포근한, 그래서 깨어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을 여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안녕.'
그애가 웃으면서 말을 건넸을때. 난 이미 마음을 열어버렸는지도. 그 웃음이 너무 예뻐서,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감정 표현에 서투른 나를 그애는 천천히 기다려 주었다.
그애는 학교에서 유명했다. 잘생기고, 키크고, 공부 잘하고, 뭐 그런 여러가지 것들로. 그런 애가 나보다 잘난 여자애들을 놔두고 왜 나에게 그렇게 잘 해주었는지 처음엔 몰랐다. 그저 이상형이 특이한가보다, 하고 넘어갈 뿐이었다.
그애는 나만 바라봐 줬다. 내가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될까 싶을 정도로 달콤한 말들을 쏟아냈다. 마치 노래하듯이. 나 또한 그에 대한 보답으로 진심을 줬다. 그가 시키는 건 무엇이든 할 정도로.
평소처럼 그애 집에서 놀던 어느 날, 평소처럼 영화를 보다 그애와 입을 맞췄다. 평소와는 다르게 뜨겁게 쓸려 올라오는 손길. 한번도 본적 없던 그애의 모습에 당황해 손을 끌어내리지만 멈추지 않는다.
갑자기 덜컥 무서워진 내 눈가에 눈물이 핑 돌고, 내 입술은 다급하게 그 애의 이름을 부른다. 순간 그애가 멈칫 한다. 내 눈가에 고인 눈물을 확인한 그애는 뭐라 읊조리며 고개를 돌린다.
잠시후 그애는 언제 그랬냐는 듯 퍽 다정한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그애는 다시 내가 알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놀랐어?미안해. 내가 다 미안해. 품에 안아줬다. 난 안심한다. 맞아. 얘가 그럴 리가 없어.
언젠가부터 이상한 소문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에 관한 수근거림. 쟤래. 아 걔한테 몸 대주는애? 근데 걔는 쟤한테 마음 없다며. 그때는 걔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그애에게 가서 울먹이며. 나 속상해. 자꾸 이상한 소문이 돌아, 말했었다. 힘들어도 그애의 품 안에서라면 뭐든지 괜찮을 것 같았다. 가만히 나를 감싸안는 손길과 달콤한 목소리 안에 머물수 있다면.
그애는 또 예쁘게 웃으며. 괜찮아. 누가 너보고 그런 나쁜 말을 해. 그런거 신경쓰지마. 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그럴 거라고 생각 했다. 그애만 있다면 뭐든지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애가, 바로 그애가 나를 무너지게 만들 줄은.
*
요 몇일새 권순영이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그 말은 즉 수업시간에 자지 않는다는 말이고, 동시에 수업시간을 나를 방해하는 시간으로 사용한다는 말이었다.
권순영은 수업시간 내내 나를 불러대고는 입으로 뭔가 속삭인다. 대충 심심해, 보고싶어, 그런 류의 말들이다.
한숨을 쉬며 대꾸해 주면 권순영은 또 싱글벙글 웃으며 아양을 떤다. 아니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아양을 떤다기보단 끼를 부린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몰랐는데 권순영은 저런 쪽에 숨겨진 재능이 있었나 보다.
무시하는 것도 한두번이지 어쩔 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픽 새어 나오곤 한다. 권순영은 그럴때면 어-웃었다- 하면서 내 얼굴을 가리키며 기뻐했다. 시끄러워진 권순영 덕분에 부쩍 선생님께 이름을 불리는 일도 많아졌다.
'일어나.'
속닥대다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해 걸릴때면, 권순영은 김여주도 같이 떠들었어요. 하며 나를 걸고 넘어지고. 나는 복수심에 불타다 내 이름이 불리자마자 권순영도 같이 떠들었어요. 하고 대꾸한다. 결국 나란히 복도로 끌려간다.
그래도 권순영이 확실히 전보다는 수업을 듣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계속 못 들은 채를 하면 한동안 조용해지는데, 이때 뒤를 살짝 돌아 보면. 칠판을 바라보고 있는 권순영이 보인다.
눈의 초점을 봐서 수업을 듣는건지 오늘 급식 메뉴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건지는 모호하지만. 그래도 그게 얼마냐.
난 괜히 뿌듯한 마음에 앞을 돌고, 얼마 안가. 김여주-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뿌듯함은 와장창 무너져 내린다. 뭐하는거야. 쟤는 내 공부 방해하러 학교 다니는 건가.
하지만 이상하게 선생님께 지적을 당하는 것도, 수업시간을 뺏기는 것도, 다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다. 공부는 뭐 집에 가서 하면 되겠지.
어찌 됐든 이제 난 권순영이 전보다 훨씬 편해졌고 권순영도 그걸 알고 있는 듯 했다. 점점 가까이 나에게 다가오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그건 오로지 나에 한해서였다. 권순영은 나를 제외한 모두에게 여전히 차가웠다.
가끔 친구들이 나한테 반갑게 인사를 했다가 옆의 권순영을 발견하고 주춤대다 아, 안녕 하고 인사를 건낼때면. 권순영은 내가 무안할 정도로 인사를 모른체 했다.
그저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거나, 내 손만 느릿하게 쓰다듬으며 무시할 뿐이었다. 아는척이라도 하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아, 원래 권순영 성격이 이랬었지 하고 깨닫는다.
밝은 얼굴에 익숙해져 잊고 있었던 권순영의 첫인상을 끄집어 본다. 무심한 표정에 아무 일에도 관심이 없어 보이는. 그러면서도 뭔가 묘하게 생긴 남자애.
권순영을 둘러싼 많은 소문들이 있었지만 난 별로 관심이 없었다. 소문이란 믿을 가치가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친구의 말에 궁금해져 복도를 지나가던 권순영을 바라본 순간, 모든게 시작됐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그때의 권순영이 이렇게 나랑 가까워지리란 걸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쉬는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권순영은 어느새 내 옆자리에 앉아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고 있다. 말끝이 늘어진다
"여주야."
권순영을 힐끔 쳐다본다. 권순영은 싱긋 웃더니 손을 내 앞에 내민다.
"손."
나는 고분고분하게 내 손을 권순영의 손 위로 얹는다. 내가 말한거라 약속을 어길 수도 없다. 그날 이후로 권순영은 시도때도 없이 내 향기를 맡아댄다.
"옳지."
권순영은 내 손을 두어번 쓰다듬더니 끌어당겨 냄새를 맡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쟤는 변태 맞다.
권순영의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뒷통수를 보고 있는데, 권순영의 정수리에 어느새 검은 머리가 많이 자랐다. 이쯤 되면 다시 염색할때 안 됐나? 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권순영을 부른다.
"권순영."
"응."
"너 요즘은 염색 안해?"
"질문을 할땐,"
권순영이 뭔가 말하려 한다. 난 여전히 정수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귀를 기울인다.
"이름을 예쁘게 불러 줘야지."
순영아, 하고. 권순영은 장난스레 웃는다. 저번에 급식소에서 불렀던걸 말하는 것 같다. 기운이 빠진다.
"싫어."
"그럼 대답 안해줄건데?"
참나. 하나도 안 궁금하거든. 니 머리가 노란색인지 검은색인지. 내가 어이가 없어서. 내가 시키는대로 다 할 줄 아나. 근데 항상 샛노란 색이던데 검은 머리 자라는거 보니까 신기하긴 하다. 얘도 사람이구나.
아씨,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를 악문다.
"순...영아"
"뭐라고? 잘 안들려."
얼굴이 달아오르는게 느껴진다. 권순영은 사람을 너무 잘 다룬다. 아니, 나만 잘 다루는 건가.
"순영아..."
"다시."
"순영아."
권순영은 마침내 웃음을 터트린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내가 못산다, 진짜. 하고 말한다. 내가 더 못살겠다. 나는 붉어진 얼굴을 들키기 싫어 아예 엎드린다. 다행히 권순영은 모른체 해준다.
"염색이 아니라 탈색이야."
여전히 웃음기 가득한 말투로 말한다. 그러더니 내 옆에 엎드려 귀에 대고 말을 잇는다.
"난 사실, 세상의 모든 냄새가 지독해. 그래서 맡을 때마다 머리가 아파."
처음 듣는 사실이었다. 난 고개를 돌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권순영을 쳐다 본다. 권순영은 웃고 있다. 약간은 씁쓸하게.
진짠가? 권순영의 말이 만약 사실이라면, 권순영은 지금까지 어떻게.
"그런 두통이, 탈색을 하면. 탈색약 냄새를 맡으면 거짓말같이 없어져서. 머리가 상해도 하고 또 하는거지. 냄새가 독하면 몇달은 버틸 수 있으니까."
난 말없이 권순영을 응시하고 있다. 눈을 더 크게 뜨자 권순영의 입꼬리가 싱긋 올라간다. 진짜야? 난 입모양으로 물어 본다. 권순영은 대답하지 않는다.
"근데 요즘은 탈색할 필요가 없어져서."
내 머리칼을 쓸어 넘긴다. 누구 덕분에. 달콤한 목소리가 따라 온다. 나는 권순영의 말이 진짜일까를 생각하다가 그만 잊어버린다.
의심할 필요가 없다. 권순영이 아파했던 날들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뭐 어때, 듣기 좋으면 됐잖아.
권순영은 다시 내 손을 감싸고는 몇 차례 쓰다듬는다. 부드럽게 내 손목을 잡는다.
"우리 매점 가자."
권순영은 내 손목을 잡고 이끈다. 손목을 잡던 손은 자연스레 손을 타고 내려와 깍지를 낀다.
복도를 가로지르자 권순영의 얼굴을 확인한 아이들이 하나둘 길을 터준다. 그리고 권순영의 손을 따라 나에게로 옮겨 오는 시선들. 아무래도 이런 시선은 부담스럽다.
시선으로 끝나지 않는다. 몇몇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쟤네 온다. 미친. 손까지 잡아?
몇몇에게서 시작한 속삭임은 전염병처럼 옆사람에게로 옮는다. 이제 모든 사람이 속닥인다. 쟤. 걔. 쟤. 걔. 쟤. 걔.
과거가 겹쳐 들린다. 정신이 어지럽다. 눈 앞이 뒤틀린다. 더이상 걸음을 뗄 수 없어서, 난 멈춰 선다.
권순영은 뒤를 돌아 본다. 화를 참고 있는 표정이다. 나한테 화가 난 건가? 권순영은 나에게로 다가온다. 나는 가만히 멈춰 서 있다.
권순영은 내 뒤에 서서, 양 손으로 내 귀를 감싼다.
한순간 모든 것이 잠잠해진다. 시끄럽게 떠들던 애들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듣지마."
권순영의 목소리가 울린다. 권순영은 천천히 발을 떼고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걸어간다. 우릴 바라보던 애들을 지나친다. 긴장이 한숨을 쏟아내듯 풀리고, 나를 조여오던 과거가 한순간에 스쳐간다.
"아무것도 듣지마."
그렇게 권순영은 앞으로 계속 걸어간다. 우린 함께 걷는다. 나는 갑작스레, 그런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계속 권순영의 목소리만 듣고싶다고.
-작가사담-
짠 한밤중에 찾아온 새봉입니다!내일부터 다시 바빠질 것 같아서 이틀 연속 선물 드리고 갑니다♡제 글이 선물이 될까 모르겠네여...암튼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항상 감사하다는거!!모든 댓글 너무너무 잘 읽고 있다는거!!!제가 작은 은혜에 보답하고자 내일쯤 작은 이벤트를 하려고 합니다^ㅅ^이벤트라 해봤자 별거 없지만 독방에서 질문해서 하나 건졌슴다ㅎㅎㅎㅎㅎ절대 기대하지 마시라는거...다른 이벤트처럼 화려한게 아니라 엄청 소소한거라는거...크게 실망하실 수 있습니다....암튼 늦은밤 다들 순영이처럼 달콤한 꿈 꾸세여!!(꾸벅)♡♡♡사랑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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