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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주된 배경은 홍콩이랍니다.*
*
여름, 습도가 유독 높은 침사추이의 뒷골목은 아수라장이다.
같이 가자며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탄을 말끔히 무시한 태형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앞서간 지민을 따라 달린다. 숨이 코 아래까지 차오른다.
콩알만한 주황색 머리통이 시야에 겨우 들어오는 걸 보니, 달리기도 많이 달렸나 보다.
빌어먹을 쌍광, 얘네랑 한번 나갔다 오기만 하면 수명이 오년씩 단축된다니까. 고개를 하늘로 쳐든 탄이 속으로 투덜대는 동안 조심성이라고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총성이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출발하기 전부터 이를 부득부득 갈더니, 결국 박지민이 잡았나 보지. 잠시 동안 달리던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다가, 느긋하게 발걸음을 늦춘 탄이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담배를 꺼내물었다.
배신자를 어떻게 조져야 친애하는 보스의 기분이 풀릴까나. 왼손에 쥔 손도끼를 한바퀴 빙글, 돌리며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로 시선을 옮긴다.
“씨, 씨발, 이거 아, 안 놔?!”
“뭐야 레온. 재미없게 울고 있어.”
“흡, 박지민, 너-!”
“왜 울어? 오늘은 즐거운 날이잖아. 설마 조금 다쳤다고 계집애처럼 엉엉 우는 거야?”
왼쪽 다리가 완전히 비틀린 남자 앞에 쪼그려 앉은 지민은 늘 그래왔듯 생긋, 최대한 발랄하게 미소를 지었다.
태형은 사냥을 할 때마다 눈까지 접어가며 끅끅 웃어대는 지민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함께 일할 때마다 으레 그래왔듯 별다른 말 없이 손목으로 시선을 내려 시간을 확인했다.
어젯밤부터 시작된 추격전 탓에, 본의 아니게 두 끼를 걸렀더니 온 몸에서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빨리 일을 마치고 <딘타이펑>에서 뜨거운 육즙이 배어나오는 샤오룽바오나 먹었으면. 침을 꼴깍 삼킨 태형이 한숨을 푸우- 쉬었다.
박지민, 저거 또 시작이야.
“날씨도 이렇게나 좋은데, 우리 게임이나 한번 해볼까.”
“흡, 살려줘, 제발…”
“아아, 잠깐 잊고 있었네. 레온은 게임을 별로 안 좋아했지. 보스에게 잘 보이려고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프로그래밍만 죽어라 해댔던 걸로 기억하는데.
주인의 발을 핥는 개새끼마냥. 충실한 척은 다 하면서.”
못마땅하다는 듯 어린애처럼 입을 배죽 내민 지민이 팔짱을 끼고 서 있는 태형을 힐끔 쳐다봤다. 얘 좀 보라는 듯한 투였다.
평소라면 얼마든지 장난을 받아줬겠지만, 지금처럼 배가 고플 때 시간을 질질 늘이는 건 사양이었다.
표정이 슬쩍 굳어진 태형이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바닥에 쓰러진 남자의 눈 앞에 면도칼이 들어왔다.
이런 약해빠진 새끼한테는 나이프를 쓰기도 아까워.
울대가 튀어나온 남자의 목으로 칼을 내려, 가볍게 누른 태형이 코웃음을 쳤다. 남자의 피부를 찢고 나오는 비린 선혈이 면도칼 위로 방울졌다.
죽음을 목전에 둔 남자가 백지장처럼 질리자, 시종일관 장난스럽던 지민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김태, 미쳤어? 이거 내가 잡았어. 내 먹이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너야말로 장난 그만하고 빨리 해치우지. 밥 먹으러 가고 싶으니까.”
살의가 적나라하게 떨어지는 지민의 눈빛을 마주한 태형이, 가볍게 눈썹을 치켜올리며 쥐고 있던 면도칼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하여간 애새끼. 한숨을 쉬며 뒷말을 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네 마음대로 하라며 어깨를 으쓱하고 뒷걸음질치자 가죽 장갑을 팽팽하게 당겨 낀 지민이 박수를 치며 박장대소했다.
“아하하, 놀랬잖아. 우리 태태가 친구 장난감을 뺏는 애가 아닌데, 왜 저러나 했네.”
“능청 떠는 것도 거기까지 하고, 김탄 오기 전에 해치우는 게 좋을 텐데. 잔소리 듣는 건 우리 둘다 별로잖아?”
“쳇.”
얼굴 위로 흘러내려온 머리를 쓸어넘긴 지민이 투덜대더니 장미 각인이 새겨진 검은 리볼버를 손에 쥐었다.
탄창에 총알 다섯개를 차곡차곡 밀어넣고 룰렛을 돌리듯 능숙하게 실린더를 돌린다.
달칵, 소리를 내며 잠금장치가 풀리자, 완전히 겁에 질린 반역자는 필사적으로 부서진 다리를 끌며 울퉁불퉁한 시멘트 바닥 위를 기었다.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그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절박한 상황에서 본능은 언제나, 이성을 지배한다.
“너랑은 꼭 러시안 룰렛을 해보고 싶었어. 모처럼 좋은 기회가 찾아왔는데, 태형이가 게임을 할 시간이 없다고 하네. 내가 또 우리 태태 말은 잘 듣거든.”
“아, 안돼. 보스, 보스와 전화를 하게 해줘-”
“게임,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걸로 하자고. 시간은 많으니까-.”
리볼버의 총구를 남자의 관자놀이에 들이밀던 지민이 방긋, 웃으며 항복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마냥 양 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뒷걸음질쳤다.
나는 당신을 해할 생각이 없다는 듯한 무구한 제스처였다.
사람은 누구나 극도의 위기에 몰리면 비이성적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식은땀으로 젖은 얼굴에, 빛을 잃은 눈에 희망이 돋아났다.
그래, 보스는 관대하니까. 보스는 상냥한 사람이니까. 벌을 내린다면 다리 하나를 망가뜨리는 걸로 족하지 않았을까. 겁만 주라고 지시했겠지.
덧없는 희망에 부푸는 남자의 얼굴을 흥미롭게 내려다보던 지민이 배를 잡고 깔깔 웃기 시작했다.
“헤에, 레온 그렇게 안 봤는데, 꽤 멍청하구나? 설마, 살려줄거라는 기대라도 한 건 아니겠지.”
“그, 그런 게 아니라고?…”
입꼬리를 씩 올려 웃은 지민이 총알이 관통한 무릎을 구둣발로 힘주어 밟자, 남자는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죄송합니다, 제발, 제발. 양손을 모아 싹싹 비는 시늉까지 하는데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오소리가 어떻게 노루를 사냥하는 줄 알아?”
“흐, 흐으…”
“노루 한마리를 점찍은 다음에는, 아무리 쉬운 사냥감이 품에 안겨와도 한눈을 팔지 않아. 계속 달려.
놓쳤다? 상관없어.분비물을 맡고, 발자국을 쫓고. 어떻게든 추적해.”
“제발, 제…제발…”
“결국엔 발굽이 닳고 발이 부어올라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노루를 진창에서 발견하게 되지.”
눈꼬리를 살풋 접은 지민이 혀를 내어 바싹 마른 입술을 핥았다.
남자가 방심하는 틈을 타서 타앙, 부러 힘 풀린 손으로 오른쪽 허벅지를 마저 쏜다.
솟구쳐 오르는 고통에 남자는 절규한다. 두 눈에 비치는 것은 사람이 아닌 악마다. 진심이야. 진심으로 이걸 즐기고 있는 거야.
그에게 이건 고작 노루사냥 정도로 비쳐지는 것 뿐인가.
다시 말해, 박지민에게 나는 그저…
“…노루.”
“그래서, 레온. 발굽은 괜찮아?”
흐흐흐, 고개를 젖혀 웃으며 다시 총을 겨누는 지민의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태형이 픽, 바람빠지는 소리를 냈다.
장난질만 치더니 이번엔 제대로네.
순간적으로 수축되는 팔근육의 움직임에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묻어있지 않다.
“지옥에서 보자고.”
타앙-.
총알이 발사됨과 동시에 두개골이 으깨지는 소리가 질척하게 울렸다.
아랫턱만 남은 시신의 근육이 이완되며 부르르, 떨리더니 썩은 나무토막처럼 맥없이 시멘트 바닥 위로 쓰러졌다.
얼굴부터 구두까지 뇌수와 피가 튀어 엉망이 된 지민이 신경질적으로 얼굴을 와이셔츠 소매에 비볐다.
“…짐승 비린내.”
“총알 회수하고 밥 먹으러 가자.”
“이 꼴을 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자고?”
“물론 너는 못 가지. 옷을 깨끗하게 간수한 나랑 김탄이는 <딘타이펑>에서 소고기가 잔뜩 들어간 샤오룽바오를 먹겠지만.”
생긋, 가지런한 치열을 드러내며 웃던 태형이 지민에게 라텍스 장갑 한 쌍을 던져주며 얄밉게 혀를 내밀었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뜸을 들이래.
태형은 피가 묻은 연갈색 구두를 죽은 남자의 자켓에 문지르며 홱 돌아섰다.
와, 너 진짜, 그러고도 니가 친구냐?!
가죽장갑을 벗고 라텍스를 손에 끼우던 지민이 뿌리가 검게 자라기 시작하는 주황 머리를 쓸어넘기며 한껏 열을 올려보지만,
이미 등을 돌린 태형은 손을 휘휘 저으며 탄피나 빠뜨리지 말고 챙겨오라는 잔소리만 덧붙일 뿐이었다.
*
“야, 인간적으로 너는 오늘 굶어야 되는 거 아니냐? 너가 한 게 뭐가 있어.”
“미친놈이 개소리야. 너가 한번 손도끼 들고 뛰어볼래? 생각보다 존나 힘들거든.”
“흐흐, 아니, 생각해보니까 그것부터 어이가 없어. 무슨 애가 무기로 손도끼를 들고 와? 쏘우 찍어?”
“…머리를 도끼로 나눠버리기 전에 입 다물지 그래?”
“아, 알았어.”
향긋한 잔향이 남는 자스민 차를 찻잔에 조르륵, 따르던 탄이 비아냥거리는 태형에게 발끈 화를 냈다.
아니, 도시 한복판에서 소음기도 없이 무작정 총질부터 하고 보는 놈들이 나한테 훈수를 둘 입장이냐고.
환상의 또라이 콤비 쌍광 아니랄까봐, 짜증을 내는데도 배실배실 웃으며 끝까지 사람 속을 긁어놓는 꼴이 박지민과 똑같다.
대가리를 날려버리겠다며 욕을 씹어뱉던 탄이 스포츠 백에 던져뒀던 작은 손도끼를 섬뜩하게 들어보이고 나서야 겨우 태형이 입을 다물었다.
주문한 샤오롱바오와 새우 딤섬이 나올 때까지 얌전히 차만 마시던 태형은, 결국 탄이 입안 가득 딤섬을 구겨넣는 모양을 보는 순간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으와, 그게 한 입에 다 들어가? 인간이 아닐 거라고 예상은 했다만…”
“…조용히 하랬다.”
“아, 응.”
번뜩이는 도끼날을 보고 잠시 입을 다시 다무는가 싶더니,
“…흐, 근데 싸부가 진짜 총 안 줬어? 그래서 풉, 도끼 들고 나왔냐?”
“…그냥 한 줌의 재가 되어라, 이 개씨발놈아!”
“아!!”
기어코 도끼 손잡이로 뒷통수를 얻어맞아야 속이 후련한가보다.
한숨을 쉬며 계산서를 집어든 탄이는, 폭력도끼녀니 뭐니 어린애처럼 징징대는 태형을 사뿐히 무시하며 석진의 지갑에서 슬쩍해온 카드를 내민다.
“어, 그거 보스 신용카드 아니야?”
“맞아.”
“그걸로 막 긁어도 돼?”
“원래 밥값은 돈 많은 새끼가 내는 거야.”
능숙한 손놀림으로 석진의 사인을 위조해 전자 패드 위로 갈기곤, 식사를 하느라 지워진 립스틱을 다시 칠하며 딱 잘라 말하는 게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태형은 찝찝하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우리 어째 이러다 엿될 것 같지 않냐.
고개를 갸우뚱 하던 태형이 미심쩍은 눈으로 탄을 쳐다보자, 긴 머리를 하나로 묶어올린 그녀가 결국 귀찮다는 표정으로 눈을 굴려 전화기를 꺼냈다.
“보스, 저에요.
네.레온 마르티스는 분부한대로 처리했어요.
네, 총으로요. 서류 작업만 대충 위조해 두면 문제 없을 거에요.
워낙 여기저기 적이 많던 인간이라. 네. 총알은 박지민이 회수했겠죠, 뭐.
아, 저흰 구룡반도에 있어요.
아니, 박지민은 옷 갈아입으러 인터컨티넨탈 호텔로 먼저 갔구요, 저랑 김태형은 <딘타이펑>에서 딤섬 먹었어요.
아, 아신다구요? 핸드폰으로 카드 사용 내역 날아왔다구요?
돈도 많으면서 아껴 뭐해요, 부하 사랑에나 써야지.
아, 여덟시까지요? 그럼 나중에 뵈요. 저희도 호텔에서 쉬고 저녁쯤에 페리 타고 넘어갈게요.
네. 네에-.”
“와, 패기 보소…”
“이렇게 하면 되지 뭐하러 쪼냐, 병신아.”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태형을 위아래로 훑어본 탄이 익숙하게 태형의 차 키를 빼앗아 들었다.
“보스가 중요한 일이 있다고 저녁에 홍콩섬으로 오래.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부웅-, 한화로 28억원을 호가하는 부가티의 시동이 요란하게 걸렸다. 순식간에 차를 빼앗긴 태형은 상황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아 맹한 얼굴 그대로 제자리에 서 있다.
“나 찾지마라.”
운전대를 잡은 탄이 장난스럽게 윙크를 하자마자 왜앵,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차가 출발한다.
“야! 야! 같이 타고 가야지이-!”
뒤늦게 우는 소리를 하는 태형을 식당 앞에 매정하게 버려둔 채로.
+)
분위기 나게(?) 홍콩 사진 투척이요!
이건 여주가 당당하게 가져간 태태의 28억원짜리 부가티 베이론이랍니다.
전 세계에 450대 밖에 없다죠 ㄷㄷ
아 물론 석찌니가 사준 거랍니다.^^
+)사담
할루, 느와르몬스터입니다!
와...저 진짜 별 기대 없이 글잡에 소심하게 예전부터 구상해두고 있던 이야기의 인물 소개를 올렸는데 반응들이 예상외로 너무 뜨거워서 놀랐어요...(감덩)
부족한 글솜씨지만 예쁘게 봐주시셨으면 좋겠습니다 헿헿
앗, 그리고 제목 추천을 받으려고 하는데 괜찮다고 생각하시는 제목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아니면 그냥 이 제목 그대로 갈까요?ㅋㅋㅋ
참, 여주 이름은 (글을 보고 예상하셨겠지만) 김탄이구요, 윤기 아래에서 쌍광이들과 함께 킬러레슨을 받는 친구에요ㅋㅋㅋ절대 지지 않는 센캐녀랍니다ㅋㅋㅋㅋ
+)암호닉
아직 많이 부족한 작가 믿어주시고 암호닉 신청해주신 여러분, 격하게 사랑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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