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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하고 열흘. 꼬박 100일이 지났다.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미약한 기대라도 품고 있었더라면 실망할 정도로 바뀐 건 거의 없었다. 푹 패인 양 볼이 그대로, 살이 찌지 않았고. 늘 혈색없이 까무잡잡한 입술도 그대로, 늘 그렇듯 각질은 터있었고.

챙겨주는 사람도 없고, 뭐가 어떻다 봐주는 사람이 없으니 변할 것도 없었다.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잡아주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혼자만의 특별한 실험을 가장한 은둔 생활은 끝이 났다. 



-



아주 어릴적엔 모래밭이었던 놀이터의 바닥은 푹신한 재질로 깔려있고, 놀이기구래봤자 그네와 시소밖에 없는 소박한 공원으로 변해있었다. 소매가 헤진 후드 집업을 입은 종인은 벤치하나를 골라 엉덩이를 간신히 걸치고 앉았다.

하늘은 맑았다. 가을 하늘이 청명한 것은 인지상정이거늘 왜인지 모르게 야속하단 생각이 들었다. 

종인의 100일을 칼같이 세고 있던 건지 육촌 뻘 되는 종대가 그를 찾아왔다. 공원에 앉아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던 종인은 머쓱하게 웃었다. 



-



극작가가 되겠단 꿈은 아주 예전에 버렸는데. 씨껍질이 훼손된 헛된 꿈으로 종대는 자꾸 종인을 이끌려고 했다. 종인은 결국엔 버럭, 언성을 높였다.


"내가 안 한다고 했지?"
"김종인."
"관심없어, 이제 그런 거. 헤맬만큼 헤맸고 꿈타령 할 나이 아닌거 알잖아. 나 이제 취직할거야."
"김종인!"
"미안한데, 이제 그만 가. 나 갑자기 피곤해. 쉴래."
"어제 막공이었어."


아. 탄식이 터지려는 걸 질끈 입술을 깨물어 참아냈다.


"어떻게든 귀 닫고 아등바등 소식 피해보려고 너 애썼다는 거 알아. 그거 알면서도 사람들 다 모른 체 해줬고."
"..."
"삽질해서 다른 구덩이 파고 들어가는 거 하나도 안 쿨해보인다고, 새끼야."
"..."
"이제 그만 해."


종인은 고개를 푹 떨구고 있었다. 덩달아 초라하게 쳐진 어깨에 종대의 손이 위로의 온기를 남겼다. 기름칠을 해야하는데, 늘 생각만 하고 미뤄뒀던 삐걱거리는 문이 또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종대는 문을 닫고 나서기 전에 몇 마디를 더 덧붙였다.


"시파티, 쫑파티, 시작하고 끝 정해놨다고 그게 진짜 시작이랑 끝도 아냐."
"..."
"누군 시작도 못해봤는데 남은 시작해서 누릴거 다 누려보고 끝낸 거 비단 너뿐만도 아냐."
"..."
"형이 무슨 말 하는 줄 알지?"



-



진동은 울리다가 멈췄다가를 아까부터 계속 반복했다.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 역시 종인처럼 미련한 맘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종인은 쪼그려앉아 머리를 싸매고 곁눈으로 핸드폰 액정을 훔쳐보았다. 

정나미 없이 세 글자 박아둔 이름이 계속해서 떠오르고 있었다. 액정뿐만이 아니라 몇 년 전부터 극장의 포스터에도, 브라운관과 스크린에도, 수면 위로 간간히 떠오르고 있는 이름이었다.


"거슬리게 왜 전화를 하다 말다..."


뚝. 전화가 끊겼다. 미친 척 한 번 받아볼까 싶었다. 종대가 한 말의 잔상이 자꾸만 아른거려서. 그래서 결국엔 통화버튼을 눌렀는데 정작 도경수도 예상은 못했나보다. 당황한 듯 곧바로 전화가 끊겼다.

종인은 황망하게 액정을 바라보다가 웃음을 흘렸다. 사이는 매번 이렇게 틀어지기만 한다. 

다시 전화가 올까? 



...설마.



-



101일 째 되는 날 아침. 알람도 없이 종인은 눈꺼풀을 느릿하게 들어올렸다. 사실 밤새 잠을 설친것이 맞다. 잠을 자는 척 눈만 감고 숨소리를 고르게 내쉬면서 잠에 든 척을 했을 뿐이다. 

사실은 간헐적으로 울려대는 핸드폰 알림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취기가 올라 주정으로 보냈다고 변명하면 딱일것 같은 내용이 한결같이 액정 위에 찍혀있었다.



「사실은」
「보고싶어」
「사실은 보고싶어」



사실. 얘랑 나 사이에 사실이란 건 항상 존재했는데. 새삼스럽게. 종인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손바닥에 닿는 피부의 감촉이 거칠하다. 

때마침 한 통의 문자가 또 도착했다. 문자의 발신인 역시 종인과 마찬가지로 덩달아 밤을 샌 모양이었다.



「사실은」





"보고싶어?"
- .....
"대답이 없네."
- .....
"보고싶어."
- .....
"보고싶었어."
- .....
"아, 그게,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그 공연. 네가 한 뮤지컬."


수화기 건너편에서 숨을 쌕쌕 몰아쉬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온다. 온 몸에 힘이 들어가 종인은 휴대폰을 쥔 손이 경직되는 기분이었다. 


- 왜 보러 안 왔어?
"어?"
- 보러 오지.. 
"..."
- 초대권 빼줄 수도 있었는데.
"..."
- 나 진짜 잘 했어.
"아.. 그러게."
- 나 보기 싫었던거면 다른 형 회차로 빼줄 수도 있었는데..
"그런 건 아니고."
- ....
"다음에 또 해. 그 땐 보러갈게."
- 응. 그래.
"..."
- ...
"..."
- ...
"아, 저기."
- 응?
"궁금하진 않겠지만, 나 이제 좀 바빠."
- 아...
"나잇값 못하고 그동안 많이 쉬어서, 일자리도 구해봐야되고."
- ...
"..어. 그래. 그냥."
- ...
"그냥 그렇다고. 나도 이제 일 할거라고.
- 회사원 될거야?
"어?"
- 그냥. 회사 다닐거냐고.
"몰라. 이력서는 닥치는대로 넣어봐야겠지, 뭐."
- 그럼 네 전공은..
"다 쓸데 없는거지, 뭐."
- ...
"배웠다고 개나소나 다 써먹을 수 있는 능력도 아니잖아."
- ...
"..."
- 그럴거면 왜,
"..."
- 왜.. 대학교에서 그거 배웠어?
"..."
- 왜 나랑 같은 학교 다녀서,
"..."
- 왜 그런 글을 썼어.
"..야."
- 대체 왜, 종인아.
"..."
- 너는 왜 날 좋아했어?




그리고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그래, 이게 사실이었다. 용기가 없어서, 남이 콕 찝어주기 전까진 부러 피해온 사실. 몇 년을 앓았던 상대방이 친절히 찔러주는 정곡.

심장은 뛰고 있는데 숨소리를 쥐죽은듯 멈췄다. 수화기 너머의 경수가 무슨 표정을 짓고있는지 감히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았다. 종인은 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눈을 꾹 감았다.




- 나도 널 좋아했는데.
"..."
- 그래서 내가 네 꿈이 되고 싶었는데.
"..."
- 넌 내 꿈이었으니까...
"..."
- 김종인.
"..."
- 듣고 있어?
"..."
- 또 비겁하게 전화 끊고 나 모르는 척 하려고 그래?
"...아니, 듣고 있어."
- 보고싶어.
"..."
- 계속 이렇게 듣고싶고, 보고싶어.
"..."
- 넌 더이상 안그래?



목구멍 밖으로 심장이 정말 튀어 나올 것 같은데. 숨소리는 이상하게도 나질 않아서. 겨우 짜낼 목소리조차 없는 것 같았다. 종인은 목각인형처럼 핸드폰을 꺼버렸다. 사고회로에도 기름칠을 해야하는걸까. 생각이 모두 멈춘 듯 했다. 




-




이틀이 지나서야 겨우 핸드폰을 다시 켰다. 부재중 전화나 메시지같은건 와있지 않았다. 겨우 다잡은 마음이 다시금 갈등하려했다. 종인은 급하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수신음이 가는동안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야."
- ...
"보고싶어, 나도."
- ...
"내가 그러니까 변명을 하자면, 그 날은 너무 정신이 없어서.."
- 두더지맨이다.
"뭐라고?"
- 나 지금 뭐하고 있나 물어봐.
"어?"
- 빨리, 물어봐. 
"뭐하는데, 너?"
- 외박중.
"아, 그래."
- 어디서 하냐고 외박하냐고 물어봐.
"어디서 하는데."
- 길거리에서 외박중.
"..어?"
- 정확히 말하자면 남의 집 앞에서 외박중.
"야."
- 나 철판 깔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되게 떨린다.
"..."
- 너희 집 앞이야.
"..."
- 보고싶고, 듣고싶어서 온 것도 있고,
"..."
- 엄청 용기내서 말한건데 대답도 안해주고 끊어버린게 괘씸해서 화나서 온 것도 있는데,
"..."
- 그냥 이 한 마디 해주려고 왔어.
"..."
- 네가 계속 내 꿈이 되어줬으면 좋겠다고.

더보기

"..."

- 아, 김종인 보고싶다.

"..."

- 보고싶어, 김종인.

"..."

- 꼭 오늘만 말고도. 내일도, 모레도, 내년에도. 계속.

"경수야."

- 해피엔딩 주인공 되고 싶다.

"도경수."

- 김종인이 쓴 해피엔딩 스토리 주인공.



[엑소/카디] 보고싶어?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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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근이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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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흡....좋아요ㅠㅠㅠ 움짤하고 분위기도 되게 잘 어울리고.... 경수가 먼저 용기 내줘서 다행이에요 종인아 얼른 문 열어줘ㅠㅠ 카디행쇼ㅠㅠㅠ 새벽에 잘 보고 가요...
12년 전
대표 사진
독자2
오아.................쩐다....................와.......................................................헐.....................ㅠㅠ
대화하는데 그 긴자감과 설렘이 다 느껴져서 저도 막 긴장.............헐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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