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만의 시간
2부
20.
“아, 이거 좀 말하기 그렇긴 한데….”
말하기 그러면, 말을 안 하면 되잖아.
발로 차여놓고도 꿋꿋하게 앉아있던 변백현이 우물쭈물하면서 또 말을 꺼낸다. 듣기 싫은데 아, 나 진짜 듣기 싫은데. 귀찮은 티를 내며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는데도 녀석은 굴하지 않고 내 팔을 잡아당기며 말을 걸어온다.
“들어봐.”
“아, 자꾸 뭘 들으라는 거야!”
“변백현 보고서.”
“하….”
한숨만 나온다. 한숨만.
“내가 너희의 잠자리까지 신경 쓸 위치는 아니긴 한데.”
아, 잠자리. 잠자리는 무엇인가요. 곤충인가요…? 네가 말하는 잠자리가 내가 생각하는 잠자리가 아니길 빈다.
“커플이란 게 그렇잖아?”
“…….”
“아 뭐 물론 플라토닉 러브도 좋지 근데. 뭐, 내가 지향하는 사랑은 아니라 이거거든.”
“…….”
“게다가 내 생각은 그래. 뭐, 그게 너희랑 썩 잘 어울리진 않는 것 같단 말이야.”
“…….”
“암튼! 그래서 내가 그 영상들을 주의 깊게 살펴본 결과로는”
“…….”
“너희가 이렇게, 음. 일반적인 커플이 아니잖아?”
“…….”
“그러니까 그… 포지션이 중요하다고 봐, 나는.”
“…….”
“근데, 나의 고찰에 의하면 아무래도 음... 니가 밑에 있는 게…더 그림이 좋지 않을까?”
듣자듣자 하니까 이게 진짜 제대로 미쳤나….
이런 변백현을 볼 때면 정말 의심스럽다. 이 아이는 왜 머리를 달고 다니는 거지? 생각을 하긴 하는 거야 대체? 자기가 전에 나한테 무슨 소리를 했는지 기억은 할까?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보는 변백현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세게 밀어버렸다.
“닥쳐. 닥치라고 제발 좀.” “아 왜!”
“왜냐고? 왜냐고?!”
“야, 이거 진짜 제대로 고민한 결과거든?”
“닥치라고 새꺄. 입 함부로 놀리지 마라. 너 그러다 입 찢어지는 수가 있어.”
“…너 지금 내 노력 무시 하냐?”
“그런 쪽으로 노력하지 말란 말이야!”
“야, 제일 힘든 부분부터 이해하려고 애 쓴 거야!”
“…변태새끼가 아주 웃기고 있네.”
“벼,변태라니?! 너 지금 내가 변씨라고 변태라고 놀리는 거냐?”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이..드립도 정도껏 쳐라.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저리 꺼져. 꺼지라 고!”
“힝..도경수 개새낑..”
변백현을 겨우겨우 떼어냈다. 울상을 지으며 내 자리에서 멀어지는 변백현에게 다시 한 번 세 번째 손가락을 들어 올려주었다. 개새끼, 엿이나 먹어. 아, 지금까지 시달려서 그런지 머리가 다 지끈거린다. 자꾸 옆에서 쨍알쨍알. 어찌나 시끄럽던지. 아니, 안 그래도 난 지금 무지하게 심란하다구요! 네?
녀석이 제일 앞에 위치한 제 자리에 앉는 것까지 보았다.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옆에서 떠들던 놈이 없어졌는데도 머리가 계속 지끈거려서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왠지 모르게 힘이 쭉 빠진다. 그래서 또 한 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다음 시간을 준비하려고 서랍을 뒤적이다가 다음 수업이 뭐였는지 기억도 안 나서 칠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게시판에 붙어있는 과목은 다름 아닌 수학. 아, 망할 수학. 또 들었어. 젠장! 이 정신머리로 수업이나 제대로 들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집중도 제대로 안되고, 자꾸 다른 생각만 머릿속 가득이니.
‘너랑 자고 싶어….’
책을 찾으려고 서랍 속을 뒤적이다가 문득 그 아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데도 혼자 부끄러워서 또 고개를 숙여버렸다. 온 몸에 있는 피가 얼굴로 다 모여든 것 같은 열기가 느껴졌다. 아, 덥다.
그래, 변백현이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그런데 그런 내 앞에 와서 그런 얘기나 실컷 늘어놓았으니 좋게 보일 리가 없잖아…. 그 생각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서 머리를 세게 한번 털었다. 으, 생각하지 말자. 이제 그만!
서랍 속에서 찾은 수학책을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그러고 하염없이 그것을 바라보는데 교과서 상단에 크게 위치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수학I. 그래, 수학….
수학 하면 또 종인이가 생각이 난다. 나를 붙잡고 수학 공부 좀 하라고 매번 혼을 내곤 했었지. 아, 종인이. 김종인. 종인이를 생각하면 또 그 팬…티가 생각이 나고. 그러면 난 또 혼자 부끄러워지고. 괜히 더워서 얼굴에다 대고 손부채질을 했다. 얼굴 옆에서 팔랑이는 손을 멍청하게 바라보다가 또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뽀뽀도 쉽고, 키스도 나름대로 쉬웠는데 이…건 뭐가 이렇게 어려운지. 내가 너무 순수한가? 그런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생각을 안 해봤으니 지금부터 생각하면 되는 거긴 한데. 막상 생각하려니 무엇부터 해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그저 막막하다. 머릿속에 있는 거라곤, 그때의 종인이의 얼굴? 뭐, 그 정도? 그래도, 그 동영상을 찾아본 건 나름대로 용기를 낸 거였는데. 하긴, 내가 말을 안 하면 그 아이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싶다. 그렇다고 말을 하기엔 좀…그래. 아, 진짜 뭐가 이렇게 어렵지? 진짜, 어렵다.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있는데 옆에서 소음이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박찬열이 의자를 빼고 자리에 앉는다.
“왜.”
내가 뚫어져라 쳐다보니, 고갯짓으로 날 가리키며 묻기에 그냥 눈을 깜빡였다.
“야, 너 왜 이제와.”
“무슨 일 있었냐?”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다음 시간 수학?”
“아, 어….”
내 책상위에 올려 진 교과서를 슥 보던 찬열이 고개를 끄덕이며 제 서랍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어디 갔다 왔는데.”
“매점.”
“매점?”
“어.”
“앞으론 어디 갈 때 꼭 변백현 좀 데리고 가. 아님 날 데려가던가.”
“무슨 소리야?”
“아, 넌 변백현 관리 좀 제대로 하란 말이야.”
“내가 걔 관리를 왜 해.”
“걘 원래 네 담당이잖아. 그러니까 니 선에서 알아서 처리하란 말이야. 어?”
“뭐라는 거야….”
찬열이가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러면서 혀를 차. 쯧쯧, 이렇게. 뭐라 대꾸는 않고 답답한 마음에 박찬열을 불러보았다. 그래도 지금까지 내 마음 제대로 알아주는 건 박찬열 밖에 없었으니까.
“야, 찬열아.”
찬열이 내 부름에, 교과서를 찾다말고 나를 빤히 본다. 뭐든 말 해보라는 눈빛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털어놓을 뻔 했다. 그, 중요한 사안을 박찬열한테 털어놓을 뻔 했다고. 그래, 어차피 이건 우리 둘의 문제고, 또. 말 해봤자 얘가 뭘 알겠나 싶은 거다. 녀석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무것도 아니라며 하던 일, 마저 하라고 손을 내저었다.
“에효….”
한숨이 난다.
一
우리가 이렇게 어색한데도 불구하고 여느 때처럼 점심시간은 늘 다섯이서 함께였다. 오형제. 무슨 독수리 오형제도 아니고 이게 뭐지? 왜 밥먹을 때 이렇게 꼭 다섯이서 먹어야 되냐 이말 이야…. 맞은편에 앉아있는 종인이를 빤히 바라보다가 혹시라도 눈이 마주칠까 싶어 얼른 고개를 숙여 밥을 퍼먹었다. 지금,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 맛이 안나. 그냥 의무적으로 씹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난 밥 먹는 기계인가. 그런 것인가.
“…흐음.”
“…….”
“이상해….”
평소와는 달리, 갑자기 거리를 두고 말을 하기는커녕 눈도 안 마주치려고 피하는 걸 눈치라도 챈 건지, 오세훈이 밥먹다 말고 말을 툭 던졌다.
“이상하단 말이지….”
“뭐가?”
옆에 앉은 백현이가 고개를 돌려 오세훈을 쳐다봤다. 그랬더니 오세훈이 숟가락을 쥔 손으로 나와 김종인을 가리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변백현도 녀석의 손을 따라 나와 김종인을 번갈아 쳐다보고, 조용히 밥 먹던 찬열이 마저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데도 종인이는 관심 없다는 듯 여전히 그저 밥을 퍼 올리기만 한다.
“진짜 이상하지 않냐?”
“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야. 바퀴벌레들.”
오세훈의 말에 변백현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오세훈이 나와 종인이를 한데 묶어 칭했지만 둘다 그에 대답하진 않았다. 멀쩡한 사람보고 바퀴벌레라니…. 내가 바퀴벌레를 얼마나 증오하고 혐오하는데?!
“어쭈, 대답 안 한다. 둘 다?”
“…….”
“니네 바퀴벌레 아니라 이거냐?”
“…….”
“…….”
“그럼, 좋아.”
“…….”
“야, 김종인 너, 여신….”
여신이라는 단어에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들고 오세훈을 바라보았다.
“왜! 왜 부르는데 왜, 왜!”
그제 서야 오세훈이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 아, 저 악마 같은 놈. 오세훈한테 당하느니 내가 그냥 김종인한테 너를 잠시 여신으로 칭했노라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고 말지….
“너네, 내외 하냐?”
“…내외는 무슨.”
“그럼 새로운 애정 행각이야, 뭐야?”
“그런 거 아니거든?”
“…….”
“…….”
“…싸웠냐?”
그 말에 그냥 눈만 깜빡였다. 싸웠냐니? 생각지도 못한 말이어서 조금 놀랐다. 평소와 다른 건 인정하지만 싸운 건 아닌데. 그냥, 좀 평소보단 어색한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쥐고 있던 젓가락으로 괜히 밥을 들추다가 앞에 앉은 김종인을 슬쩍 쳐다보았는데 그 아이는 수저를 꽉 쥐고서 아무 말 없이 오세훈을 바라보고 있기만 한다. 이 순간까지도 나를 보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난 참 바보.
“아니.”
내가 멍하게 있는 사이, 종인이가 대답했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목소린지 모르겠다. 입술을 꾹 닫고 그 아이를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오세훈에게 고정되어있던 시선을 슬쩍 내 쪽으로 돌리던 그 애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만다.
“…씁.”
“…….”
“뭔가 있어.”
“…….”
“분명 뭔가 있는데….”
그 일련의 과정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았는지, 세 명 모두 게슴츠레한 눈으로 고개까지 갸웃거리며 나와 김종인을 번갈아 본다. 우리에게 집중되는 이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괜히 제일 가까운 곳에 앉아있는 변백현의 등을 세게 내리쳤다. 그랬더니, 백현이가 등을 부여잡고 성질을 낸다.
“아, 왜 때려!”
“니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밥이나 먹어.”
“제일 만만한 게 나야?”
“밥이나 먹으라고.”
괜히 변백현과 티격태격하다가 무심코 앞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마침 나를 보고 있던 종인이와 눈이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 이렇게 제대로 얼굴 본 건 오늘 처음인 것 같다. 얼마나 많이 쑤셔넣었으면 볼이 터질 것 같다. 그렇게 눈꺼풀을 한 세 번 정도 깜빡였을까, 녀석이 얼굴이 빨개지면서 사례가 들렸는지 갑자기 쿨럭이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
“…….”
바보.
一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해봐.”
“아, 뭘!”
“니들 싸웠지?”
변백현이 말했다. 그 옆에 선 박찬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고, 또 다른 쪽의 옆에 있는 오세훈은 귀찮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아, 그런 거 아니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정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단호한 얼굴을 한 녀석들이 나와 김종인을 가둔채 문을 철컥 닫아버리며, 각자 한마디씩 한다.
“아니기는. 야, 니들이 분위기가 이상하니까 우리가 다 뻘줌 하잖아.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둘 다 꽁해있지 말고 남자답게 말하고 풀어라.”
“그래, 제발 좀. 특히, 도경수 너 한숨 좀 그만 쉬고.”
“이런 거 귀찮으니까 니들 일은 좀 알아서들 하라고.”
“야, 존나 웃긴 게 닭털 날리는 것도 보기 싫은데 이런 것도 보기 싫지 않냐?”
“난 둘 다 보기 싫어. 그냥 둘 다 없어 졌음 좋겠다.”
“찬성이요!”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괜히 나서서 일만 크게 만들었다. 하필 세명이 싸웠다고 생각했는지 수업을 마치고, 자습까지 하려고 남아있던 나와 종인이를 각각 끌고서 인적이 드문 미술실에 넣고는 문을 잠가버리는 거다. 이 큰 미술실에 갇혔다. 꼼짝없이 둘이서. 문 밖의 세 녀석이 화해 장려 프로젝트라며 거창한 이름을 붙였지만, 이건 화해도 아니고, 그 어떤 것도 아니란 말이야….
문 밖의 변백현이 음흉한 미소를 짓고, 박찬열이 그런 변백현의 뒤통수를 한 대 내려친다. 오세훈은 그저 만사가 귀찮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채 볼을 긁고서 나를 본다.
“그럼, 나중에 보자!”
얘들아, 그런 거 아니라고…. 이거, 아니거든요?
놈들이 떠나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나는 칠판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며 걸었고, 종인이는 바닥에 철푸덕 앉아 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말이라도 꺼내야 하는데, 얼굴 보기도 민망한 이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 진짜로.
어색해서 괜히 발걸음만 빨라진다. 어차피 걸어봤자 거기서 거기인데도 계속 한 자리만 맴돌았다. 마치 여자가 높은 하이힐을 신고 지나가는 것처럼, 침묵 속에서 내 발소리만 크게 들렸다. 슬리퍼 끄는 소리만 들렸다, 이 말이다.
“경수야….”
“응?!”
난감함에 머리만 긁적이는데 종인이의 목소리가 들려서 자리에 멈춘 채 굉장히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진짜 바보 같다. 나 방금 되게 바보 같았어. 그렇지만 이제와 후회하면 무엇 하리. 이미 뱉어진 말인 것을….
혀로 입술을 축이며 그 아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종인이가 내 눈을 똑바로 보았다가, 은근슬쩍 옆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잇는다.
“…여기 앉을래?”
왠지, 이 어색함을 풀어보고자 종인이가 노력하는 것 같았다. 말은 안 나오면서 힘겹게 말을 꺼낸 거지. 그래서,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 애가 가리키는 곳으로 걸어가 살포시 앉았다. 음, 그러니까. 그 애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 옆을 따라붙는 시선이 느껴진다. 정면을 바라보긴 부담스러운데 옆모습은 괜찮나?
“오, 오늘은 학원 안가?”
“아, 응….”
“집에…가려던 길이었어?”
“응. 넌, 학교에서 공부하고 가려고?”
“…어.”
결국, 변백현 박찬열 손에 이끌려 여기에 갇혀버렸지만.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갤 돌려 정면을 못 보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종인이도 함께 웃은 것 같고, 뭐 그렇다.
분명, 아침보단 괜찮은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도무지 어색함이 풀릴 기미가 안 보인다.
“아, 오세훈 진짜….”
“…….”
둘 다 노력하는 와중에 말이 이어졌다가, 끊겼다가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나 혼자 어색한 건가 싶어서 옆에 앉은 종인이의 눈치를 살짝 보면, 그 애도 썩 괜찮은 것 같지는 않다. 어색한 가운데 대화는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그 모습에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애썼다.
“더, 덥다…그치?”
“…….”
“…….”
“…….”
“아, 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말이 이어졌다가 끊기기를 반복하는 건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괜히 더워서 손부채질을 했더니 종인이도 내 얼굴에다 대고 팔랑팔랑 손을 흔든다. 바람이 느껴져서 슥, 고개를 돌려 그러는 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자기 손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종인이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결국 내게 눈을 맞춰온다. 1초, 2초, 3초가 흘렀다. 이번에는 그래도 떨어지지 않고 둘 다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괜히 입술이 말라서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녀석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간다.
“…….”
…진도. 어제부터 오늘 내내 그 생각만 했다. 진도,진도,진도…. 진도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니까 괜히 더 민감하게 종인이의 신체에 집중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아래로 떨어진 녀석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아래로 길게 뻗은 까만 속눈썹을 스쳐지나가, 나처럼 살짝 아랫입술을 베어 무는 걸 보았고, 또. 침을 삼켰는지 살짝 움직이는 그 목젖도, 바닥을 지탱하고 있는 그 손등에 작게 튀어나온 그 힘줄까지 세세하게 다 보인다. 평소였다면 그냥 스쳐지나갔을 것들인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유심히 살펴보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괜히 나 혼자 부끄러워서 숨을 멈추고 잔뜩 얼어있는데, 종인이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손을 들어 머리를 쓸어 올렸다.
아, 어떡하지. 머리를 쓸어올리는 그 손길마저 신경이 쓰인다.
“…….”
그런 그 애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어제 그 문제의 동영상이 오버랩 된다. 두 개의 영상이 따로 놀더니 하나의 얼굴로 겹쳐져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 채로 살짝 벌어진 그 입술…. 그 사이로 뱉어져 나오는 가쁜 숨….
…아, 나 진짜 미친 것 같아.
종인이를 앞에 두고 그런 상상을 하다니! 미쳤어, 미쳤어 도경수!
그 아이는 모르겠지만, 나 혼자 부끄러워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분명히, 얼굴 또 빨개졌을 거야.
“…….”
“…….”
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어쩔 줄 모르고 여전히 터질 것 같은 얼굴을 감싸 쥐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떤 말도 못할 것 같다. 그냥, 미안해. 내가 다 미안해 종인아. 이렇게 썩었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했어. 미친, 내가 나한테 완전 배신감 든다. 엉엉. 그런데 넌 어떻겠어. 그깟 팬티가 뭐라고…! 순수한척 했어, 내가!
“…경수야.”
그렇게 나를 채찍질하고 있었다. 종인이가 내 이름을 부르며, 얼굴을 가린 내 손을 하나씩 가져가 제 손에 가두었다. 너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있다가, 정수리에 꽂히는 그 시선에 어쩔 수 없이 슬쩍 고개를 들어 나만 줄곧 바라보고 있던 그 애의 눈을 찾았다. 눈이 마주치자, 녀석이 눈꼬리를 휘며 웃는다.
나는 따라 웃을 수가 없어서 그저 눈만 깜빡였다.
“경수야.”
“…….”
“내 말 좀 들어줘.”
“…….”
“알겠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저… 그러니까….”
말을 하겠다고 했으면서도, 부끄러운지 종인이가 아랫입술을 깨문 채 살짝 웃었다.
“사실은 나 지금 되게 많이 부끄러워….”
“…….”
“너한테 그런 거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일이 이상하게 꼬여서….”
아니야, 다 내 탓이야! 그런 생각으로 고개를 마구 저었다. 그랬는데, 종인이가 또 웃는다.
“근데 있잖아….”
“응….”
“…나.”
“…….”
“너, 많이 좋아해.”
웃음이 잦아들고, 어느새 그 애가 한껏 진지해진 모습으로 나를 마주해왔다. 나를 좋아한다 말하는 그 목소리에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건, 반칙이야…. 이건, 반칙이라고.
나를 설레게 만든 주제에, 제가 뱉어놓고 조금 부끄러웠던지 고개를 아래로 숙이며 깊은 숨을 내뱉던 종인이가 다시 얼굴을 들어 나를 바라본다.
“…그러니까, 그런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줬으면 좋겠어.”
“…….”
“그런데,”
“…….”
“네가 거부감 같은 거 느끼고, 이런 게 싫으면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릴게.”
아, 진짜 반칙이다, 이건.
“그러니까,”
내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는 그 애에 집중을 하느라 대답을 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얼른 그 입술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우리 어색하게 이러지 말자.”
“…….”
“응?”
“…….”
“응?”
“…….”
“…….”
“…응.”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랬더니 녀석이 제 손에 잡힌 내 손을 세게 쥐면서 나를 향해 웃어 보인다. 그래서, 나도 따라 웃고 말았다.
난 네가 너무 좋아, 종인아….
***
그렇지만 포기하기엔 아직 일러요^*^
전 포기하지 않을거에여..
담편이나 다담편쯤 아마 불마크...☞☜
얘드라 홧팅!
나도 홧팅TT
아, 과제 해야하는데.... 과제 하다가 꽂혀서 막 써제꼈네여
오늘만 날이 아니잖습니까?!
과제는 내일 하는 걸로TT 힝... 과제 껒여...
오늘은 분량 많죠?!
담에 언제 올지 모르니까 이런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뇌물이에여..
그나저나 답글 다 달아야하는데 정말 죄송해요TT
과제 끝내고 다 달겠습니다!
언제나 감사하고 또 감사한거 아시죠?
오늘도 예쁘게 봐주세요 하트♥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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