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가 날 버리고 잤다잖아!"
"..."
"다른 놈이랑! 그것도, 자기 집에서!"
절규하며 형은 정말 엉엉 울었다. 그 울음이 너무 서러워서 나도 같이 울 뻔했다. 형은 눈물 범벅인 얼굴을 손으로 몇 번 닦더니, 다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날 버렸어! 날 버리고, 다른 새끼랑 잤어! 형은 아끼고 아꼈던 사탕을 다른 이에게 뺏긴 어린 애처럼 울었다. 나는 주저앉아 허우적대는 형을 그냥 가만히 내려보기만 했다. 그게 그렇게 슬퍼요? 내 말에 형은 미친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날 버린 거야. 날 버린 거라구. 날 버린 거란 말야. 형은 거의 미쳐가는 듯했다. 한숨이 나온다.
"그럼 형 버린 년을 왜 그렇게 찾아대요."
"흐으, 너어! 년이라고 하지 마!"
"년을 년이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해."
"...으으"
"대답해 봐요."
"나쁜 년, 나쁜 년!"
형이 작게 주먹을 쥐어 땅바닥을 내리쳤다. 년이라고 하지 말라면서. 이젠 헛웃음이 나온다. 지이익, 지이익. 신발이 아스팔트 바닥에 긁히는 못난 소리가 자꾸만 났다. 형이 발을 구르고 있었다. 그만 일어나요. 내 말에 형은 또 고개를 마구 도리질쳤다. 싫어! 나 지금 많이 슬프단 말이야! 누가 안 슬퍼보인댔나.
"난 평생 그 나쁜 년을 저주할 거야!"
"그러시든지."
"흐아, 걔 때문에 안 울 거야. 안 울 거라고!"
형은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딴 말을 내뱉었다. 양심에 찔리지도 않는가. 한심한 눈빛을 계속 쏘아대자 그제서야 일어나려는 듯 발 구르는 걸 멈춘다. 눈물을 닦기만 했을 뿐인데 축축해진 손을 옷에 몇 번 닦고 형은 땅을 짚었다. 그리곤 이랬다.
"아, 으으,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
"..."
"업어줘, 혁아."
붉은 입술을 비죽 내밀고 말하는 모습이 뻔뻔하다. 어이없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앞에 등을 내주며 쓴웃음을 삼켰다. 병신같은 형이다. 병신같은 나다. 진짜 병신같은 우리였다.
병신
w. 모타
병신 病身 (병ː신) : [명사] 모자라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나는 처음 병신이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보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완벽히 우리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끊임없이 모자라는 행동을 하는 걸 보면 병신이라는 단어도 좀 아깝다. 우리는 서로 우리를 욕했다. 너와 내가 아니라서, 더 그랬다.
"흐어어어, 아으, 흐아아아."
"그만 좀 울죠."
"흐으, 흐아아."
"쫌."
"흐, 그 애가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들었대."
"근데요."
"전에 자기 집에서 잔 남자는 원나잇이었나봐. 난 정말 그 애가, 흐아아."
"..."
"그런앤지, 몰랐어! 흐어, 으으."
저기요. 형은 처음부터 엔조이였어요. 두번째 남자친구였다고. 정말 믿음직했던 여친과 사귀다 배신 당한 것처럼 굴길래 말해주려다 그러면 아예 울음을 그칠 것 같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병신, 그만 울라고요. 딱딱해진 내 말투에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울음소리가 커진다.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단 둘이 사는 집에 바람 잘 날 없다는 게 말이나 되나. 이번엔 또 어떻게 달래주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형은 그 날 이후 거의 매일같이 울었다. 만날 우는 소리에 이젠 넌더리가 났다. 형에게 무어라 일침을 팍 박아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디서 별 그지같은 애한테 잡혔다 차여선 우는 꼴이 참 그래, 병신같았다. 우는 눈꼬리가 붉다. 고개를 앞으로 살짝 내밀고 말을 걸었다.
"형, 그 년이랑 자봤어요?"
"흐으, 응?"
"자봤냐고."
"..."
얼굴이 삽시간에 붉어진다. 나는 머릿속으로 또 그 생각을 했다. 병신.
"자, 자봤냐고?"
"네."
"그야, 그야."
"..."
"딱... 한 번?"
주먹이 말아진다. 잤거나 안 잤거나의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안 잤을 거라 생각했는데 잤었다. 형은 내 생각보다 좀 더 형편없는 밤일 실력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근데, 잤구나, 잤어. 그럴 줄 알았어. 머릿 속은 포화상태가 되어가지만 겉으로는 그냥 살짝 웃었다. 속에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이 스믈스믈 기어나온다. 잤구나. 잤다고.
"어땠어요?"
"응?"
형은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있었다.
"어땠냐고. 형 진짜 병신이에요? 말을 한 번 하면-"
"알아들어! 너 그런 건 왜 묻는데?"
"그냥."
"..."
"어땠냐니까요."
"... 어땠긴 뭘, 좋았지."
"근데 그 년도 좋았을까?"
단순한 내 질문에 형의 고개가 왼쪽으로 기울었다. 뭔 소리냐는 표정이다. 난 손을 올려 형의 머리 위로 얹었다. 가지런한 머리카락들이 부드럽게 손가락에 엉긴다. 얽히고 섥힌 머리카락들을 천천히 빗어주며 말을 이었다.
"그 년도, 좋았을까."
"..."
"형 잘 해요?"
"..."
"두 번 말하기 싫은데. 잘, 해요?"
"... 몰라."
나는 이 순간 형이 내 말을 다 알아듣는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형보단 내가 더 잘 할 것 같은데."
"야아..."
"형 그게 첫경험이었죠?"
얼굴이 울상이 되어간다.
"그 년은 형이 만족스럽지 못했나 봐요. 다 그런 거죠."
"..."
"그니까 다른새끼랑 자는 거지. 안 그래?"
"..."
"형은 박는 데에는, 좀 소질이 없나봐."
형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내가 그에 대고 씨익 웃어주었다.
"그럼, 형은."
"..."
"박히는 데에 소질이 있나?"
말을 하자 마자 큭큭 웃음이 나온다. 대면한 병신의 표정도 웃기고 내가 한 말도 웃기다. 형의 벙찐 표정이 점점 빨개지더니 전처럼 돌아와 곧 내 어깨를 확 밀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선 내게 삿대질을 했다. 마구 소리친다.
"너어, 너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장난인데요."
"너무 심하잖아!"
"자존심 상하면 잘 박으시던가."
"야!!!"
"테크닉이 없으면 그런 애들은 알아서 다 떨어져 나가는 거 알죠? 그 년은 그런 케이스였던 거예요. 형 좆 크기보고 달려들었는데 크기에 비해 그, 그 테크닉이 좀- 심하게 딸렸던 거지."
"와... 너 한상혁..."
"그래, 그랬던 거죠."
알아서 고개를 끄덕이고 박수를 두어번 쳤다. 어버버 거리던 형은 순식간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는, 믿을 새끼 하나 없다며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문은 닫고 가지. 상처받은 형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병신이, 좀 진화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형이 한짝씩 잘못 신고간 내 슬리퍼 한 짝과 형 슬리퍼 한 짝을 보며 형의 그 여자친구, 그 년을 떠올렸다. 그 년 찾느라 나 좀 힘들었다. 온갖 클럽을 쥐잡듯 뒤지다 겨우겨우 형의 카톡프사 여자와 똑같은 여자를 발견했다. 그리고 일부러 형의 친구들에게 모든 정보를 흘리며 그 여자의 집으로 갔다. 헐거울 대로 헐거워진 아래였는데, 형이 좋았다니 뭐 나도 좋았다고 하겠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한 밤 자고 일어나니 형이 마당에서 울고 있었다. 아침에 쓰레기 버리러 갔다가 친구한테 연락을 받은 듯했다. 그 애가 날 버리고 잤다잖아!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에 나는 귀를 후볐다. 그 여자에게 판 내 거짓 번호에 문자가 몇개 쯤 갔을까 생각했다. 아마, 한 번 더 자자고 엄청 많이 보냈을 것이다. 딱히 그런 적이 없었는데 허리가 아릴만큼 엄청 박아댔으니까 말이다. 근데 며칠만에 남친이 생겼다니, 자존심 상하기도 하고, 형한테 손 뗀 거 같아서 좋기도 하고? 문을 닫고 슬리퍼를 정리하며 나는 형이 돌아올 이틀 뒤를 생각했다. 거의 저러고 나가면 이틀 뒤에 돌아온다. 지금으로부터 이틀 뒤는 그것을 확인해볼 날이었다.
형이, 박히는 것에 대해, 소질이 있는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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