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을 틀어주시는 것을 추천해드릴게요!
레드벨벳-Take It Slow
전학생 박지민 01
:전학생이 왔다
"아,미친. 남자라니!"
"돌았어? 입 안 다물어?"
내 앞자리의 김태형은 선생님이 나가시자마자 뒤돌아 내 책상에 엎어졌다. 끊임없이 미친-과 남자라니-를 중얼거리는 것을 보아하니 진심으로 실망한 것이 틀림없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남자' 전학생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사실 이어폰을 꽂고 있어서 뭐라고 씨부리던 들릴 것 같지도 않지만- 내 옆에 앉아있는데! 덕분에 박지민을 흘긋흘긋 쳐다보며 그의 눈치를 보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사실 그는 나와 김태형에게는 손톱,아니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우리 학교는 2교시 쉬는시간이 20분이었는데, 김태형과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 시간이 되면 매점을 향해 달렸다. 이른 등교시간 때문에 아침밥을 챙겨먹지 못하는 학생을 배려해서라나 뭐라나. 차라리 등교시간을 십 분 늦춰주면 정말 열심히 학교를 다닐텐데. 바나나맛 단지우유를 두 개 사고, 빵을 하나 사서 정확하게 반을 나누었다. 김태형은 매점 구석에 재빠르게 자리하고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꽂아 쭉쭉 들이켰다.
"야, 성이름. 원래 부산 애들은 박지민처럼 표정도 없고 말도 없고 그렇냐?"
"몰라. 나도 부산에는 친구 없어서 모르겠는데."
"부산에만 친구 없는 척 쩐ㄷ,아!"
까불거리는 김태형의 정강이를 시원하게 까줬다. 매를 벌어요, 매를. 맞으면서 희열을 느끼는 그런 변태같은 놈이 틀림없다.
야, 근데 너 박지민 부산에서 온 거 어떻게 알아?
어제 야자 짼 거 걸려서 교무실 청소하고 있는데 박지민이랑 담임이랑 얘기하는 거 들었지. 근데 걔 부산예고 출신이던데.
헐, 부산예고?
어. 무용과에 심지어 전체 수석 입학. 내 친구 중에 부산예고 다니는 애 알지? 아침에 톡으로 물어봤는데 학교에서 유명했대. 근데 갑자기 전학 가서 한동안 학교 떠들썩했다던데. 서울 가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더라.
무용? 진짜 의외네.
내 말이 그거야. 현대무용이라던데. 노래면 몰라, 노래 잘하게 생겼던데.
그럼 지금은 무용 그만둔ㄱ,
도른. 야, 종쳤어!!!!! 존나 뛰어!!!!! 담임시간!!!!!
매점에서 빵과 우유를 먹으며 박지민 이야기에 푹 빠져 담임선생님의 수업시간에 늦어버린 우리 둘은 지금 복도에 나란히 서서 벌을 서는 중이었다. 아, 이게 뭐냐고. 아직 추운데! 3월 초봄의 쌀쌀한 봄바람에 김태형이 칭얼거렸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옹알이를 하냐. 여전히 찡찡거리는 김태형의 엉덩이를 톡톡-이라기엔 다소 과격하게- 두드렸다. 오구- 우리 태형이 추워?하며 교실 안으로 시선을 옮겼는데,
나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고 있던 박지민과 눈이 딱 마주쳤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얼굴에서 미소를 싹 지운 박지민이 다시 칠판에 시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내 착각인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나는 한참을 박지민을 쳐다보았지만 수업이 끝날 때까지 그는 단 한번도 나를 쳐다봐주지 않았다. 그냥 우연이었나. 수업시간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박지민이 웃다가 고개를 돌린 타이밍에 때마침 나도 박지민을 쳐다본 것 뿐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삼교시가 마치는 종이 울리자마자 김태형은 추워 죽겠다며 나를 반으로 집어넣었다. 염병, 엄살은. 그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아직 벚꽃이 피려면 적어도 근 한달은 더 걸리겠지, 나는 아직 꽃봉오리만 맺힌 앙상한 벚꽃나무를 쳐다보며 입고 있던 가디건을 벗어 의자에 걸어두었다.
"야, 김태형. 사교시 뭐ㅇ,어?"
분명 방금까지도 내 앞에 앉아있었던 것 같은데 그새 사라졌다. 진짜 지가 홍길동인 줄 아나.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보나마나 옆반 정호석한테 야자 째고 피시방 같이 가자고 꼬드기는 중이겠지. 그럼 정호석은 이제 고3이니 공부를 하겠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다가 컵라면을 쏘겠다는 김태형의 말에 홀라당 넘어가 콜!을 외칠게 분명하지. 그리고 그 다음 날 김태형이 컵라면을 사주기로 했으면서 안사줬다며 나에게 칭얼거리겠지. 고2때부터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반복되는 패턴인데 알면서도 속아주는건지, 아니면 진짜 속아 넘어가는건지 내가 보기엔 김태형이나 정호석이나 거기서 거기다.
"물리."
"응?"
물리라고. 그렇게 말하며 내 책상에 쌓아둔 교과서들 사이에서 물리 교과서를 꺼내어 놔주는 건 분명 박지민이었다. 어...를 연발하며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내가 느껴진건지 박지민은 나와 눈을 맞추며 왜. 몇 페이지인지도 알려줘야되나. 라며 내 교과서에 다시 손을 뻗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아,아니! 말을 더듬으며 여전히 내 교과서로 손을 뻗는 중인 박지민의 손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그대로 삼 초 정도 박지민과 연신 눈을 마주치던 나는 화들짝 놀라며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보나마나 뒷목까지 시뻘겋게 달아올랐을 것이 분명하다. 부끄러워서 죽어버리고 싶다. 감정 하나 제대로 못 숨기는 내가 이토록 원망스러운 순간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입을 꾹 다물고 눈만 도륵도륵 굴리는데 옆에서 박지민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는 것이 느껴졌다. 아, 쪽팔려 진짜. 나는 그대로 책상에 고개를 박아버렸다.
"야. 성이름. 밥 먹으러 가자."
귓가에서 웅웅거리는 정호석의 목소리에 슬며시 눈을 떴다. 헐, 미친. 점심시간? 설마 아까 부끄러운 그 상태로 잠든거니? 욕설이 밖으로는 나오지 못하고 자꾸만 입 안을 맴돌았다. 김태형에게 이 세상에 너보다 바보인 사람이 실재한다면 내 평생 너를 받들며 살겠다고 이야기했었는데 그 바보가 여기있었다니. 김태형에게는 평생 비밀이다. 그나저나 나는 이제 박지민 앞에서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녀야하나. 수업 시간에 늦어서 벌도 서고, 말도 더듬고, 설상가상으로 부끄럽다고 그만큼 티내고 책상에 고개를 박더니 그대로 잠들어서 한시간 내내 꿀잠까지 자버리다니! 여자로서의 단아함과 조신함은 집어치운지 오래라고 하더라도 이건 정말.. 게다가 박지민은 오늘이 전학 첫 날이었다. 첫 날! 첫 등교일! 첫 수업! 이 학교에서는 모든 게 처음이란 말이다. 나는 문득 울고싶어졌다.
"아. 밥 먹으러 가자고! 빨리 가디건 입어!"
으응. 재촉해대는 김태형 때문에 어깨에 걸쳐져있던 가디건을 손에 들고는 급식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순대볶음이 나오는데 성이름이는 순대를 못 먹으니까 밥 빨리 먹고 매점을 가자는 김태형의 말도, 그럼 성이름 순대볶음 내꺼! 를 외치는 정호석의 말도 전혀 귀에 들어오지않았다. 이 넓은 급식실 어디에선가 밥을 먹고 있을 박지민이 나를 쳐다보고만 있는 것 같아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아, 근데 전학 첫 날인데 같이 밥 먹을 친구가 있던가. 아까 일어났을 때 옆에 정호석이 앉아있었던 걸 보면 교실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손에 들고 있던 가디건을 입으며 급식실을 주욱 둘러보았으나 결국에는 박지민을 찾지 못했다.
순대볶음은 김태형과 정호석이 반반씩 가져갔고, 나는 맨밥만 푹푹 떠먹고있었다. 아, 가디건 팔이 원래 이렇게 길었던가? 자꾸만 손등을 덮는 가디건을 한 번 접었다.
"야. 이 가디건 니들꺼야? 내 꺼 아닌거 같은데."
"개소리야. 우리 둘 다 입고 있는데 안 보이냐?"
"됐고, 김태형. 다 처먹었으면 빨리 일어나라. 성이름, 매점 가자. 내가 라면 사줄게."
"호석오빠. 개콜!"
아직 덜먹었는데... 그럼 다 처먹고 오던가. 성이름, 가자. 야, 같이 가! 단호하게 내 식판과 자신의 식판을 들고가버리는 정호석을 소리없이 입모양으로만 씹어대던 김태형이 마지막 순대를 입에 쏙 집어넣고는 허겁지겁 정호석을 쫓아갔다. 그러면서 숟가락은 왜 흘리고 가는건데? 김태형이 흘리고 간 숟가락을 주워 수저통에 집어넣고 나는 앞서 간 두 사람을 쫓아 매점문을 열어젖혔다.
"엄마!!!!!!"
그리고 내가 마주한 건 누군가의 가슴팍. 그대로 뒤로 주저앉아 버린 나는 손을 덜덜 떨며 위로 올려다보았다.
파워에이드를 마시며 매점을 나오려던 박지민이 이 걸리적거리는 건 뭐냐,는 표정으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미친, 또 박지민이야. 또! '이 걸리적 거리는 거'의 정체가 나인 것을 확인한 박지민의 동공에서는 한참 지진이 나는 중이었다. 흔들흔들흔들흔들. 나 또한 다를 바 없었다. 나는 엉덩방아를 찧은채로, 박지민은 한 손에 파워에이드를 들고 어정쩡하게 선 채로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미안. 괜찮ㄴ,"
"성이름!!!!!!!!!!!"
박지민이 겨우 입을 떼며 내게 손을 내민 그 순간에, 빵 봉지를 뜯던 김태형이 이제서야 나를 발견한건지 순식간에 빵봉지를 던져버리고 나에게로 달려왔다. 내 앞을 가로막고 서있던 박지민을 제치고 나를 일으킨 김태형이 내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내가 너 왜 안오나했다. 이제는 걷는 것도 제대로 못하냐? 너 때문에 내 빵 바닥에 구르고 계신 거 보이냐? 폭풍잔소리를 쏟아부으면서도 여기저기 쓸린 곳은 없는지 살펴보던 김태형의 옆으로 알 수 없는 표정의 박지민이 스쳐지나갔다.
라면이고 뭐고 또 다시 창피함이 온 몸 구석구석을 침투하자 입맛이 뚝 떨어져버렸다. 야, 나 안 먹을래. 먼저 교실 간다. 힘 없이 뒤돌아서는 내 어깨를 김태형이 붙잡았다. 새끼, 친구라고 걱정해주기는..
야. 그럼 나 천원만.
개뿔.
박지민은 전학 첫 날이라 아직 처리할 서류들이 많은 듯 오후수업에는 모두 출석하지 않았다. 정규수업이 파하고, 보충수업을 듣지 않는 나는 엎어져 자는 김태형에게 나 오늘 알바. 톡을 짧게 보내놓고는 가방을 챙겼다.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발을 앞뒤로 흔들흔들 흔드는데 누군가 옆에 앉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옆으로 스윽 돌리자
안녕.
입에 잔잔한 미소를 걸친 박지민이 손을 흔들었다. 이번에는 나도 당황하지않고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나에게로 조금 더 가까이 앉은 박지민이 내가 입고있는 가디건을 가리켰다.
"그 가디건 니꺼가."
"헐, 맞다. 아니 내꺼 아니야. 자고 일어났는데 어깨에 걸쳐져있어서 내껀인 줄 알고 계속 입고있었는데 아니여서 주인 찾아줄랬는데. .."
"찾을 필요 없겠네."
"왜?"
그거 내꺼다. 그렇게 말하며 가디건을 더 여매어주었다. 아직 추우니까 계속 입고있어라. 니 주고싶을 때 줘도 된다. 단호한 박지민의 말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박지민이 탈 버스가 도착할 무렵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오전보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봄 바람에 내 머리칼도, 박지민의 머리칼도 흔들렸을 뿐이었다.
"니 김태형이랑 사귀나."
"어? 아니. 친구야. 엄청 오래."
"아, 그럼 됐다. 내 간다."
박지민은 벌떡 일어서더니 뒤도 돌아보지않고 버스를 타버렸다. 박지민을 태운 버스가 출발하고나서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도착했지만 나는 타지 못했다.
박지민이라는 소나기가 나를 심하게 몰아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주인공은 다들 보셨다시피 지민이고, 서브로는 태형이랑 호석이가 아니라 다른 멤버가 한 명 더 등장할 예정입니다ㅎㅎ 작가는 빠른 전개를 매우 좋아합니다..^^
지민이는 부산에서 현대무용을 하다가 서울로 전학 온 설정이며 우선 여기서는 서브에 대한 어떤 언급도 하지 않겠습니다.
많이 사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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