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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은 꽤 풀린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조끼와 목도리까지 챙겨 몸을 친친 감쌌다. 

자기 나름대로의 방어막을 형성하고 단단한 준비를 끝냈다. 

현관 앞에 쪼그려 앉아 신발을 신던 태연은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몹시 가슴이 떨렸다. 

손과 발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일어설 힘 조차 없어 가만히 현관 앞에 주저 앉아 멍하게 있었다. 

그토록 생각하던 아이템 강화도 가방을 뺏긴 후로는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다. 

 

가방만 돌려받고 얼른 빠져나오자, 별 일 없겠지. 하고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 깊숙한 곳에 있어 아이들 조차 발걸음이 끊긴 이 곳은 해영아파트 놀이터이다. 

다른 말로는 이 일대 중, 고등학교 양아치들의 담합 장소로 볼 수 있다. 

해영 공터, 줄여서 해공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아니, 지금 우리 해공이라고. 븅신아." 

"야, 전화 줘봐. 아, 줘 봐." 

 

벌써부터 그들의 음성이 들리자 태연은 소름이 끼쳐오기 시작했다. 

 

"야, 쟤 뭐야." 

 

이순규. 우리 학교는 아니지만 우리 학교 이사장의 손녀이다. 

꽤나 유명한 또라이 중 하나다. 

 

"아니 븅신아! 니가 여기로 오라.. 어?" 

 

권유리. 아까부터 말을 잘 못 알아듣는 전화 상대에게 열을 내고 있는 애. 

우리 학교에서 임윤아와 진상 싸이코 투톱인 애. 

평소에는 평범한 애, 찐따, 가리지 않고 놀아주지만 한 번 기어오르면 곧바로 머리채를 잡는 것이 주특기이다. 

 

유리가 저 쪽 끝에 누워 있는 사람을 한 번 쳐다보더니 전화를 끊었다. 

 

"야. 너 가까이 와 봐." 

 

태연은 그 말에 순응하지 못했다. 발이 얼어 붙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리 오라고." 

 

역시나 발이 움직이지가 않았지만, 유리의 눈매가 점점 뾰족해지자 태연은 그제서야 발을 떼 다가갔다. 

 

"어디 살아?" 

"..." 

"친구야, 어디 사냐고." 

"저, 저기, 사거리, 거," 

"아, 존나. 야! 임윤아! 일어나봐." 

 

사자후로 소리를 질러 윤아를 깨우는 유리의 숨이 끼쳐오자 태연은 깨달았다. 

쟤가 임윤아구나, 그리고 얘네 담배를 폈구나. 

 

누워있던 애가 짜증을 내더니 벌떡 일어났다. 

윤아는 짜증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태연을 발견했다. 

 

"어? 탱구 와써?" 

"쟤가 탱구야?" 

"탱구가 누군데." 

"아, 그 있잖아. 수만중." 

 

수만중학교 출신인 태연의 별명, 탱구. 

빡구처럼 말을 더듬거린다고 해서 태연을 괴롭히던 양아치들이 지어준 별명이었다. 

이 동네 양아치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퍼졌는지, 윤아 또한 태연을 그렇게 불렀다. 

태연은 그 별명을 다시 듣게 되자 잊고 있던 것을 깨달은 듯, 멍하니 서있었다. 

 

"아~ 걔야? 어쩐지 말을 더듬더라." 

"응. 존나 거의 옹알이야, 걍." 

"야, 닥쳐. 탱구야, 여기 앉아봐." 

 

윤아가 자신의 옆을 탕탕 쳤다. 태연은 천천히 다가가 앉았다. 

윤아가 태연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물었다. 

 

"탱구, 왜이렇게 싸매구 왔어?" 

"야, 하바나 가자. 거기 걍 뚫려." 

"그래? 야, 임윤아. 가자." 

 

유리가 윤아의 무릎을 툭 차며 얘기했다. 윤아는 유리를 쳐다보다가 물었다. 

 

"얘는?" 

"걔 뭐? 가방 주고 보내." 

"안되지. 내기했잖아, 벌써 까먹었냐? 

"뭔 내... 아 맞아, 아 맞다. 아 , 미안." 

"븅신, 붕어년." 

 

저들끼리 뭐가 좋다고 낄낄대지만 태연은 웃을 수도 없었다. 

태연은 딱 지금이 타이밍이라고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가, 가방." 

"뭐?" 

"가방, ㅈ, 줘." 

 

푸흡, 하고 순규가 웃었다. 윤아와 유리도 뒤이어 큭큭대고 웃었다. 

유리는 한참을 웃더니 태연을 보며 물었다. 

 

"아니, 태연아. 너는 애가 멀쩡하게 생겨서 왜 말을 못해?" 

"그니까, 생긴건 졸라 멀쩡해." 

"탱구야, 가방을 우리가 어떤 가게에 맡겨놨거든?" 

"..." 

"거기 갈건데 같이 가자. 알겠지?" 

"안, 아니." 

 

윤아가 태연이 목도리로 감싼 턱을 조금 세게 쳤다. 

 

"같이 가자. 알겠지?" 

 

넷은 함께 택시를 잡아 탔다. 

 

 

 

 

 

강남으로 향한 택시는 한 건물 앞에서 넷을 내려주었다. 

멋스러운 필기체로 '리틀 하바나' 라고 적힌 클럽이었다. 

태연은 그 모양새에 겁을 먹고 우뚝 멈춰서 버렸다. 

 

"나, 나느," 

"괜찮아, 괜찮아.아, 빨리 들어가. 추워!" 

 

유리가 태연의 등을 떠밀어 넷은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클럽 안 룸 하나를 소개 받은 넷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처음 보는 여자애 세명이 더 있었다. 

 

"올- 수만고 무뇌들!" 

"닥쳐." 

 

그들만의 눈빛 교환, 아마 태연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듯한 귓속말이 오고 갔다. 

태연은 눈 앞이 아른거려 두통을 잠시 느꼈다. 

이대로 지구가 터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들만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만이 즐기는 노래. 

소음이 울려퍼져도 태연은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었다. 

 

"안 더워?" 

"...." 

 

윤아는 마저 태연의 의사를 묻지도 않은 채 태연이 맨 목도리를 강제로 풀어냈다. 

 

"와, 쟤 진짜 하얗다." 

"그니까, 임윤아랑 삐까뜨는데?" 

"삐까 뜨는데가 뭐냐, 존나 싼티나게." 

"닌 뭐라고 하는데 그럼." 

"고급지게 영어를 써야지. 쌤(same)- 쌤(same)-." 

 

분명히 고딩임이 틀림 없지만 금발로 염색한 단발머리의 여자애가 한 말에 다들 웃었다. 태연은 목도리가 없어진게 썰렁해서 목을 연신 문질렀다. 

 

"야, 태연아. 아까 택시기사 아저씨가 너 쳐다보던거 봤어?" 

"맞아. 존나 거의 눈으로 만지던데."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존나 싸맸는데 뭘 봐." 

"진짜라니까? 개 변태같았어. 진심." 

"태연아, 위에 조끼 좀 벗어봐." 

 

아무 말도 없이 술을 따르고 있던 윤아가 태연의 몸을 강제로 잡아 돌렸다. 

그러고는 의사를 묻지도 않은 채 조끼의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팔." 

"..." 

 

태연은 조금 망설이다가 순순히 팔을 들어 빼냈다. 

윤아는 조끼를 벗기고 잘 접어 옆에 두었다. 

 

"쳐다볼 만 하네. 존나 말랐어." 

"가슴이 없잖아." 

"지랄, 니가 어떻게 알아." 

"딱 보면 나오지." 

"야, 가슴은 나정도 돼야 하지 않겠냐?" 

"지럴하네. 니는 작다 못해 파였어. 알아?" 

 

서로 태연의 몸을 구경하며 얘기하는 애들 사이에서, 윤아는 태연에게 가까이 몸을 젖히고 얘기했다. 

 

"가슴 크냐?" 

"..." 

"응? 사이즈 몇이야?" 

"..." 

"75? A?" 

 

당혹스러움에 태연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때, 윤아의 손이 덥석 태연의 왼쪽 가슴 위에 올라왔다. 

태연이 화들짝 놀라며 윤아의 손을 쳐버렸다. 

윤아의 손이 양주병을 치고, 양주병이 쓰러지는 것을 순규가 겨우 잡았다. 

모두가 말을 하지 않아 정적이 흐르고, 손을 부딪힌 윤아만이 손을 주무르며 움직였다. 

윤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만지자 태연이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분명 윤아의 잘못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태연은 이내 잔뜩 긴장하며 윤아 옆에서 안절부절 떨기 시작했다. 

말이 없던 윤아는 손을 벌벌 떠는 태연을 한 번 훑어본 뒤, 양주잔 가득 술을 따르며 입을 열었다. 

 

"태연아, 추워?" 

"...." 

"왜 그렇게 떨어." 

"...ㄱ, 그." 

"마셔. 그럼 안 추워." 

 

태연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윤아는 조용히 한 잔을 더 가득 술을 채워 그 옆에 놓았다. 

 

태연이 잔뜩 겁을 먹고 말했다. 

 

"나, 난, 한 번도 안먹, 안먹어 봤어." 

 

윤아는 또 한 잔 더 옆에 세우고 술을 가득 채웠다. 

태연은 표정이 울상으로 변해 잔들을 쳐다보았다. 

옆의 무리들은 그 광경을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윤아가 빈 잔 하나를 더 집어들자 태연은 결국엔 첫번째 잔을 집어 들었다. 

 

 

 

 

 

양주 세잔을 연거푸 마시고, 무리들이 건네준 술을 강제적으로 퍼마신 태연은 달아오른 몸과 정신을 주체하지 못했다. 

룸 쇼파에 몸을 의지하고 겨우 정신을 잡고 있는 사이, 무리들 사이에 또 눈빛이 오고 갔다. 

유리는 그 눈빛의 의미를 알아채고 정신이 몽롱한 태연에게 물었다. 

 

"태연아, 너 남자랑 해봤어?" 

"...으... 응?" 

"남자랑 자봤냐고." 

 

유리는 태연에게 물으며 킥킥댔다.  

태연은 역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몽롱한 정신을 잡으려 애썼다. 

 

윤아가 흥미롭게 바라보다 태연의 등 뒤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선 태연의 옷 위에 손을 올려두었다. 

 

"왜 모르는 척 해, 태연아." 

"......" 

"우리 다 알아. 그치?" 

"그럼, 잘 알지." 

 

태연의 등허리 위에 손을 올리고 있던 윤아는 천천히 태연의 허리를 주물렀다. 

술기운 탓에 감각이 둔해진건지, 태연은 저항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 

"보현 오빠가 다- 얘기 해줬어." 

".....어....?" 

 

임보현. 태연이 수만중학교에 다닐 시절, 가장 태연을 끈질기게 괴롭혔던 양아치이다. 탱구라는 별명도 그가 지었다. 

 

"너랑 잤다던데?" 

 

태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사이 윤아의 손은 태연의 옆 쪽 골반에까지 이르렀다. 

꾹꾹 눌러대고, 만지는 손길이 점점 진해지기 시작했다. 

 

태연은 그제서야 손길을 느끼고 윤아의 팔을 잡았다. 

내내 묵묵히 손만 움직이던 윤아가 입을 열었다. 

 

"임보현이 그러더라?" 

"..." 

"너가 여기를 그렇게 잘 느낀다며." 

 

골반 뼈 아래 살이 들어간 곳을 꾹 누르자, 태연이 하윽, 하며 입을 벌렸다. 

윤아의 팔을 저지하던 태연의 손이 덜덜 떨렸다.  

태연은 두 손으로 골반을 놔주지 않는 윤아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윤아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더 세게 누르며 웃었다. 

다른 무리들도 와, 맞네 맞아. 하면서 낄낄댔다. 

 

"거 봐. 내가 맞댔지? 임보현이 구라를 치진 않아." 

"아, 존나. 난 이거 돈 못줘." 

"뭐? 아, 내기를 했으면 지켜야지." 

 

태연이 잔뜩 울상이 되어 팔을 덜덜 떨었다. 

윤아가 태연의 골반 밑을 누르던 손가락을 빙빙 돌리자 태연은 저도 모르게 윤아를 퍽 하고 밀쳤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태연의 얼굴은 어느샌지 눈물을 잔뜩 흘려 눈물에 범벅이 되어있었다. 

 

"아, 야, 태연아. 장난이야, 장난." 

"그래- 장난이야." 

"태연아, 뚝." 

 

유리가 휴지를 들고 태연의 얼굴에 범벅이 된 눈물을 닦아주었다. 

태연은 그 손을 확 쳐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선 조끼와 목도리, 핸드폰도 모조리 놔둔 채 룸을 뛰쳐 나갔다. 

 

 

 

 

 

 

 

건강상의 문제로... 글을 쓰지 못하게 되는... 

그런 일 없이... 누구나 언제든지 편하게 보러올 수 있는... 

그런 팬픽쟁이가 되는게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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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209.157
재밌어요ㅋㅋㅋ 작가님의 꿈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건강하세요. 제발!!!!!
8년 전
독자1
ㅋㅋㅋㅋ유스케인가요 작가님 건필하세요!!
8년 전
독자2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네요!! 재밌어요! 사담을보니 작가님 센스가 넘치시네요!ㅋㅋㅋ
8년 전
독자3
너무 재밌어요!!담편도 기다릴게요!
8년 전
독자4
보는데 왤케 화가나짘ㅋㅋㅋㅋㅋㅋㅋ 진심 너무 잘쓴닼ㅋㅋㅋㅋㅋㅋㅋㅌ
8년 전
독자5
계속 보고잇는데 진짜 재밌어요ㅋㅋㅌㅋㅋ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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