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로 엑소를 찾아주셨나요?"
세훈이 피식 하고 한쪽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그녀를 사랑했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가 나를 사랑했던가. 그 역시 모르겠다.
첫 만남은 어이없게도 비 내리는 겨울이었다. 전 날 까지만 해도 눈이 왔는데. 그 눈이 다 쓸려 내려 갈 만큼 많은 양의 비였다. 예고 없이 비가 내릴 때 나는 도서관을 막 나오는 참 이었다.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벽에 기대어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자마자 하얀 손이 쑥 튀어나와 입에 걸쳐진 담배를 낚아채 갔다. 이건 또 뭐야. 천천히 고개를 돌리니 짧은 머리. 작은 키.
"너.."
"미안, 입이 심심해서."
남자라기엔 얇은 목소리. 담배 하나를 더 꺼냈다. 귀찮아질까봐 아무 말 안 했는데 계속 쳐다보며 담배연기를 내 쪽으로 내뿜었다.
"뭐."
"왜 화 안 내?"
"절로 떨어져."
"싫은데."
"난 더 싫, 하... 교복에 담배 냄새 베인다고."
"우리 친구 할래?"
"난 여자랑 친구 안 해. 주먹만 한게 어디 담배질이야?"
"지는."
이런 건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지. 비는 아직도 그치지 않았고 답답하고 찝찝했다.
"재미 없어. 집에 가야지. 데려다 줄까?"
"우산도 있으면서..."
"너 심심할까봐."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내 머리 위까지 씌웠다. 팔이 쭉 들렸고 어색하게 웃었다. 한 십 분정도 그렇게 걸었을까. 부들부들 떨면서 들고 있는 게 불쌍해 보여 우산을 빼앗아 들었다. 내 어깨 쯤 오려나. 동그란 정수리를 내려다보는데 고개를 들었다.
"너네 집 어디야?"
"다 왔어."
"가까운데 사네. 아빠!"
"왜 이렇게 늦어... 누구?"
"음... 남자친구. 잘가 오세훈!"
멀어지는 왼쪽 어깨가 내 오른쪽 어깨처럼 젖어 있었다. 세훈아 여자친구야? 다 보고 계셨는지 어머니께서 물어오셨다.
"응."
내 손에 남겨진 노란 우산 같은 이상한 애.
다음 날은 다시 눈이 왔다. 나는 또 도서관에 갔고 같은 시간에 벽에 기대어 담배를 꺼냈다. 30분 쯤 그러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너 어제 나 기다렸지."
"아니."
"에이. 기다릴 줄 알았는데."
"....왜 안 왔어?"
"나 감기 걸렸어. 몸 하난 튼튼 했는데 비 그만큼 맞았다고 몸져 눞냐."
"필래?"
"아니. 나 담배 피면 안 돼."
알 수 없는 애. 이틀 전 보다 안색이 안 좋아 보이긴 했다. 옷을 좀 두껍게 입고 다니면 될텐데 까만 스키니진과 쥐색 가디건은 이 날씨에는 상당히 얇은 옷차림이었다. 추운 지 제자리에서 콩콩 뛰는데 짧은 머리카락이 위 아래로 흔들렸다.
"야."
힘 조절을 잘 못해 얼굴에 패대기치듯 목도리를 던져버렸다. 휘청 하더니 목도리를 보고 나를 한번 보고, 다시 목도리를 보며 웃었다. 목은 허전 했지만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담배를 밟아 끄고 쌓인 눈에 발 도장을 찍었다. 나를 따라 내 발 도장 옆에 발 도장을 찍었는데 엄청 작았다. 신기한 애. 내가 한 걸음 걸으면 노란 우산을 빙글빙글 돌리며 두 걸음을 걸었다. 조금 빨리 걸으면 거의 뛰다시피 해야 했다.
"맞다. 너 내 이름,"
"명찰."
"너는?"
"응?"
"넌 이름이 뭔데?"
"그런데요?"
"걔 죽었어요."
사람들은 이상해. 나는 괜찮은데 다 내가 안 괜찮대요. 나는 걔를 내가 사랑했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는데. 세훈이 다시 한 번 웃었다.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얼굴로. 소중한 사람은 빨리 떠나가 버린다. 어제 오늘 참 안타까운 사람들이 많이 온다. 고 민석은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를 잊고 싶냐는 물음에 세훈은 내일 다시 오겠다며 엑소를 떠났다. 민석은 세훈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무슨 생각해?"
"오세훈. 윽."
"하.. 넌 어떻게 그렇게 이기적이야?"
사정을 하고 민석의 안에서 나온 루한이 민석을 옆으로 밀어버리고 방을 나갔다. 아마 루한은 민석이 있는 방으로 다시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뭐 상관은 없었다. 내일이면 다 풀려 있겠지. 루한이 요즘 들어 짜증이 늘었다는 걸 민석은 눈치 채지 못했다.
세훈이 일주일 째 엑소에 들락거렸다. 분명히 한번이었으면 될 일을 민석은 하지 않고 있었다. 관계를 안 가진다는 게 아니라, 아픔을 가져오지 않았다. 루한은 영영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일주일을 보냈다. 세훈을 배웅하는 민석은 연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다정했다. 한번도. 단 한 번도 루한에게 아무 이유 없이 웃어주거나 다독여 준 적이 없었다.
"언제까지 끌건데.“
"글쎄.“
"이용 하지마."
세훈이 다시 찾지 않는 게 싫었다. 하긴 일주일이나 됐네. 세훈은 민석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치료 이외에 민석에 대한 말은 단 한마디도 한 적이 없었다. 그게 아쉬웠다.
세훈을 영원히 보내고 비어있는 루한의 자리를 무심히 보던 민석이 디오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다. 민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 돌아가야 할 것 같아. 내일 경수가 데리러 온대.“
"돌아가면. 언제 오는데? 내가 붙잡으면 안 갈거야?“
아니. 루한은 헛웃음이 나왔다. 제멋대로야. 돌아오니 이미 짐도 다 싸놓은 상태였다.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어떻게 나한테 간다고 말해? 지긋지긋해.
"민석. 넌 날 사랑하지 않아.“
"또 뭐가 문젠데.“
"난 너에게 중요한 존재이긴 했어?“
"당연,“
"입에 발린 말 집어치워. 역겨우니까. 이제 다른 장난감 찾아봐. 나보다 더 충실한 놈으로.“
병을 고치러 가는 거야. 이 한마디가 나오지 않았다. 치료할 수 있다고. 확신에 찬 디오의 목소리와 루한의 가시 돋힌 말이 뒤섞여 들렸다. 아아. 민석은 숨이 턱 막혔다. 루한의 이름을 부르며 레스토랑까지 맨발로 뛰어가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다. 피가 나는 것도 개의치 않고 다시 일어나 뛰었다. 문은 잠겨있었고 그 곳에 루한은 없었다. 몰라. 루한에 대해 아는 거라곤 레스토랑과 이름, 나이. 원래 살았던 곳이 어딘지, 뭘 좋아하는지, 전화번호는 뭔지. 1년을 함께 살면서 생일도 한번 챙겨 준 적이 없었다. 가버렸다 정말로.
"루한?“
"레이."
"웬일이야?“
"다시 신세 좀 질게.“
루한은 민석을 만나기 전까지 함께 살던 사촌인 레이에게 돌아왔다. 몸에서 나는 진한 술 냄새에 인상을 찌푸린 레이가 루한을 부축해 안으로 들어갔다. 민석을 잊을 수 있을까. 잊기 못하더라도 잊을 것이다. 그 긴 생머리를. 분홍빛 도는 하얀 볼을. 동그랗고 끝이 올라간 눈을. 작은 입술과 손, 발을 잊을 것이다. 루한은 베개에 얼굴을 묻고 민석을 뱉어냈다.
그리고 민석과 지낸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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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지루해집니다 그죠? 이제 끝을 내야 할 것 같아요. 얼른 텍스트로 만들어버려야지. 이것 저것 할 것도 많고 고칠 부분은 더 많고.. 댓글은 바라지도 않아요 흐어
아마 다음주? 에 텍스트를 들고 올 것 같은데 받으실 분들이 있으시려나. 고쳐야 해서 이번주엔 안돼요ㅠ
여자애 어떻게 죽은지 써야되는데 쓰기 싯타. 그냥 상상에 맞겨도 되는 건가;;;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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