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민윤기와 비밀연애 02
w. 블랙체리
민윤기와 난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 하지만 내가 민윤기의 존재를 인지한건 고3때 같은 반이 되고 난 뒤였다. 활발했던 난 그다지 낯을 가리지 않아 금세 반 친구들과 친해졌지만 유독 민윤기와는 친해지지 못했다. 아니 나 뿐만이 아니었다. 민윤기는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민윤기가 왕따 같은 부류였다고는 말하기가 애매한 게, 그는 그 스스로가 혼자이길 원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랬기에 혼자임에도 마치 고고한 한 마리 학처럼 우리를 향해 선을 긋고 넘어오지 않았다.
창가쪽 맨 뒷자리, 그 곳이 그가 그어놓은 그만의 영역이었다.
그런 그가 공부를 잘했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하루 종일 누구와 말 한마디 섞지 않으면서 무언가에 몰두를 하긴 했지만 그게 공부는 아닌 듯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 역시 그 누구에게도 자신이 무얼 하는 지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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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내 별명은 해피였다. 그 별명이 지어진 이유는 단순했다. 맛있는 거 사준다고 그럼 쪼르르 따라가고, 잘 웃고 수다스러운 내 성격 탓이었다. 말 그대로 멍멍이라 부르고 싶은 걸 친구들이 그나마 예쁜 애칭으로 순화시켜준 것이 해피라는 별명이었다.
뭐 나쁘진 않았다. 날 해피라고 부를 때 친구들 역시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되었고, 찡그린 얼굴로 날 부르는 이들은 없었다. 해피라는 단어가 입 밖으로 내 뱉어 지는 순간, 나쁜 마음들은 모두 사라지게 만드는 것 같았다.
첨엔 내가 개새끼냐, 고 투덜거리며 싫다고 했던 별명이었지만 점점 난 그 별명이 맘에 들었고, 손 하면 가끔 장난스럽게 친구의 손바닥에 내 손을 올려주기도 했다. 티 없이 밝기만 했던 순수한 내 고3 시절, 그렇게 민윤기와 처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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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딸기 덕후인거 모르냐? 딸기맛 내거라고!"
"해피주제에 맛을 가리다니! 교육을 다시 시켜야겠네! 딸기는 이 언니 거란다?"
앞자리 애가 준 츕파춥스 2개를 가지고 서로 딸기 맛을 먹겠다고 짝인 지은이와 아웅다웅하다 결국 지은이에게 딸기맛을 뺏기고 말았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여자인 난, 지은이의 손에 쥐어진 딸기맛을 다시 쟁취하겠다고 파닥파닥 거렸고, 지은이는 뺏기지 않으려고 팔을 위로 쭉 뻗어 달려드는 날 방어했다. 결국 둘이 티격태격하다 중심을 못 잡은 내가 팔을 휘저으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결국 내 책상위에 있던 노트는 물론이고 뒷자리인 민윤기 책상위에 있던 것까지 동시에 떨어져버렸다.
서둘러 내 노트를 쥐어 드는데, 민윤기가 굳은 표정으로 바닥에 떨어진 또 다른 노트를 주웠다. 그의 기에 눌린 난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마냥 작은 소리로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지만, 그에게선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의 노트와 내 노트가 같았다. 하지만 뭐, 흔하디흔한 단색 노트였고, 신 학기 때 문제집을 살 때 서점에서 하나씩 나눠줬던 노트였다. 하긴 우리 반에 이런 노트를 가진 애는 수두룩했다. 그와 내 노트가 같다고 신기할 건 없었다.
곧 다음 시간인 국어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셨고, 잠깐 소란스러웠던 쉬는 시간의 해프닝은 그렇게 끝이 나는 듯 했다.
책을 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책도 펴고, 노트도 펼쳤다. 그런데 노트가 좀 이상했다. 알록달록 색색의 볼펜으로 정성스럽게 한 내 필기들은 다 어디가고, 지렁이 기어가는 이상한 글자만 있는 걸까. 다시 눈을 감았다 떴지만, 노트는 여전히 지저분하기만 했다. 그제야 난 민윤기의 노트와 내 노트가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살짝 고개를 돌려 뒷자리를 보니 민윤기 역시 이 상황을 조금 전 파악한 것인지, 펼쳤던 노트를 다시 덮고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노트 바꼈어, 하고 책상위로 노트를 줘도 됐을 텐데 어쩐지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난 지은이가 눈치 채지 못하게 책상 아래로 그에게 노트를 전달했다. 그러자 그 역시 내게 바뀐 노트를 건네주었다.
마치 보면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느낌이었다. 민윤기가 그어놓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내가 무단침입 한 기분이 들었다. 의도한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난 그가 공부대신 몰두하는 그 무언가를 알아버린 것 같았다. 노트에 빼곡히 적힌 건 노래 가사들이었다. 몇 번을 지우고 다시 쓴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의 정성이 깃들었다는 게 여실히 보였다. 고3이 공부는 안하고 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확고한 그의 꿈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그걸 내가 봤다는 사실이 뭔가 잘못한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괜스레 민윤기에게 미안함이 일었다.
수업 시간이 끝나고 나자 민윤기가 자리에서 일어서 교실 밖으로 나갔다. 난 그런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뒤를 쪼르르 따랐다. 내가 따라오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학교 건물 뒤로 향했고, 다른 학생들의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자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걸음도 멈췄다.
천천히 돌아선 그가 조용히 내 눈을 응시하더니 굳게 닫혀 있을 것만 같던 그 입을 열었다.
"봤어?"
"어? 어. 조... 조금? 하핫..."
어색하게나마 웃는 나와는 달리 그의 표정은 여전히 차갑기만 했다. 그리고 다시 입도 다물어버려 침묵만이 흘렀다. 어색한 분위기를 바꿔보려 내가 다시 억지로나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좋더라? 너 재능 있는 거 같아. 그, 웃을 때 반달눈이 되는 긴 생머리... 또 뭐더라? 올려 묶을 때의 아찔한 목선과 흘러내린 잔머리? 좋은 거 같아. 그러고 보니 이거 나 같다, 그치?"
바보처럼 배시시 웃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한말이 참 어이가 없어 머쓱해지려는 그때, 민윤기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맞아, 너."
"어?"
갑작스런 그의 말에 내가 당황하는 사이, 그는 이미 발걸음을 옮겨 내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그가 자리를 뜨고 나자 난 그의 말을 다시금 곱씹어 천천히 생각해볼 수 있었다.
가사 내용이 나라니? 날 보고 가사를 썼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지? 저거 고백인가? 내가 너무 앞서 나간건가? 혼자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데 예비종이 울렸다. 그 덕에 난 그마나 정신을 차리고 교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이후 난 민윤기가 계속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잠깐 대화를 나눴던 그 전과 후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으며 내게 이후 그 어떤 말도 걸어온 적이 없었다. 여전히 그는 교실 속 자신만의 영역속의 고고한 한 마리 학이었다.
예술 하는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도 예술 소재를 찾는다더니, 그저 앞자리 학생이 나여서 그가 날 보고 가사를 썼나보다, 그렇게 결론이 지어졌다. 그렇게 고백일지도 모른다고 조금 설레 했던 내 마음도 어느새 점점 옅어져갔다.
그리고 아무런 일 없이 1년이 흘렀고, 우린 졸업을 하고 각자의 길로 한걸음씩 더 나아갔다.
-
민윤기는 대학을 가지 않았다. 그에 반해, 대한민국의 그저 흔하디흔하고 평범한 여학생인 난 대학에 진학했다. 그렇게 서로의 생활 영역이 아예 달라지고 나자, 대학이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바빴기에 난 이제 민윤기라는 존재를 완전히 잊어갔다.
그런데 고3때 그런 애가 있었지, 정도의 기억만 남았을 무렵, 그가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때 그 가사가 실린 노래의 저작권을 들고서.
그 가사의 반은 내 소유라며, 저작권에 내 이름도 같이 올렸다는 말과 함께.
MM, 그게 날 뜻하는 이름이라 했다.
그리고 그 저작권을 내게 주며, 그가 이번엔 내게 직접적으로 고백해왔다.
사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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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추천 넘넘 고마워요♥
암호닉은 댓글에 [암호닉] 으로 신청해주시면 제가 찾기가 편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전 암호닉은 글삭으로 인해 다 사라졌으니 ㅠㅠ
이전에 암호닉 신청하셨던 분들도 다시 새로 신청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ㅠㅠ
♥사랑둥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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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방탄 찐팬이 올린 위버스 글인데 읽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