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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세준] 쓰레기 | 인스티즈



시작은 미미했음에 불과했다. 사건 이후 시원했던 차가운 물이 시리기 시작하고 붉은 잎들이 바람에 나뒹굴고 있음에도 형은 언제나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우리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어. 라고 그리고 다음 단어는 그가 입을 열기 전에 먼저 튀어나왔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메아리처럼 뇌리에 울려퍼졌다. 우리는 복잡한 오선지의 삐뚤어진 음표일 뿐이였지만 형은 계단을 내려갈 때 중력이 이끄는 것을 느끼고 싶은지 음표를 억지로 지워내려 했다. 그의 손을 멈추고, 겹쳤다. 불규칙한 박동 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했다. 그의 입버릇이 튀어나올 때면 나는 항상 말하곤 한다. 상관 없어요. 바보 같은 말이다. 주머니 속의 사탕을 꺼내 물어내서야 쓰디 쓴 침이 조금은 나아 진다. 사탕 껍데기는 항상 형의 손에 쥐어져있다. 바닥에 떨어지는 쓰레기는 누군가의 땀이 떨어지게 만든다는 잔소리와 함께. 지하는 복잡한 발걸음 소리와 시끄러운 경적 울림 소리가 꽤 가까웠지만 멀었다. 창문을 열고 손을 뻗어 곱게 쌓인 눈을 손가락으로 훑자 그제서야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이 가까이 느껴졌다. 사건의 실마리는 형이었고, 돌파구를 만들어준 것도 형이었다. 그리고, 나를 멈추게 만든 것도. 그가 여태껏 말해온 것은 모든 것의 반대였다. 내가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나 역시 그에 따라 행동했다. 우리는, 이루어질 수 있어. 손가락을 거두고 차가운 침대에 누워 천장 위에 묘연한 흔적을 되짚어본다. 검은 화면이 나오고, 잠시 오류가 난 듯 요란하게 깜빡이더니 이내 정상적으로 돌아오자 하얀 화면 위에 웃는 형의 모습이 보인다. 가파른 정상에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알고도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지만, 화면이 다시 깜박이고 우는 형이 자신을 맞이했다. 상반되는 두 화면이 겹쳐지면서 터져버렸다. 마음 속이 조금은 먹먹하다. 깨끗한 도화지 위에 하얀 발자국이 이어져있는 대로 걸었다. 이 또한 내 추억이 만들어낸 허상일까. 조금은 낡고 담쟁이 덩쿨이 예전보다 더 뒤덮였지만 학교 본래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발자욱이 멈춘 곳에는 자신이 했던 것과 같이 한 폭의 그림을 쳐다보고 있는 형이 곧게 서있다.

 

"오랜만이네."

 

나 역시 허상임을 알고 있다. 우리는 복잡한 회로 끝을 지나 과거로 돌아왔다. 시린 날씨에 붉어진 그의 코 끝을 조심스레 훑었다. 입술로 눈길이 머물고, 그때처럼 코를 겹치고. 벅차오른 가슴을 부여 잡고 눈을 뜰 때 즈음에야 어두운 암흑이 나를 감쌌다. 그래도 제일 행복했던 때를 두 번 겪었다는 것은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 것이다. 웃음을 짓고 주머니에 있던 사탕을 찾아 입에 물었다. 쓰레기는 이미 바닥에 난잡하게 어질러진 것들 중 일부가 됬고 이제는 무감각해진 가슴으로 또다시 누군가의 눈물이 떨어지겠지, 라며 생각한다.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대표 사진
독자1
홀 분위ㅣ기 너무 좋아요ㅠㅜㅠㅜ
12년 전
대표 사진
독자2
와 진짜 분위기 대박이다
12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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