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1일 오전 10시, D대학 대학병원 내과 31병동. 하얗게 쏟아지는 백열등 아래로 분주한 발걸음이 연신 이어졌다.
카운터를 가로질러가는 6년차 간호사의 걸음 역시 조급했다.
“학생, 가서 306호 2번 베드 환자 IV(정맥주사) 제거하고 리메인(수액 잔량) 확인 좀 해줘.”
“네.”
그녀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한 말에, 한 인영이 조그맣게 대답했다.
D대학교 간호학과 김탄소. 306호로 걸음을 옮기는 여성의 가슴께에 매달린 명찰이 빛났다.
본과 4학년 김태형 X 간호학과 3학년 김탄소
천 시간의 기록
W.타페
어제부터 내리던 봄비가 오늘따라 유난히 병동 유리창을 두드렸다. 병원 4층에 위치한 식당 창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가 아직도 오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벌어질 것 같이. 탄소는 의자를 빼내며 중얼거렸다. 날씨에 대한 관심은 금세 시들해졌다.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기엔, 하루 종일 혹사당한 양쪽 다리가 너무 아렸다. 곧 은색 식판 옆으로 수술 관련 의학용어와 약어가 빼곡하게 적힌 메모장이 펼쳐졌다. 도대체가, 시키는 일이라고는 IV 제거랑 바이탈 재는 것밖엔 없을 거면서 외워오라는 건 왜 이리 많은지. 외과 병동과 OR(수술실) 실습까지 1주일이 남았어도 1분 1초가 아쉬울 만큼 바빴다.
탄소는 올해로 3학년이 된 SN이었다. 내과 병동 1주일, 외과 병동 1주일, 마지막으로 신생아실 1주일로 짜인 실습표가 새삼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브닝 없이 데이로만 편성된 내과 병동 실습은 그 중 단연 최악이었다. 오전 6시50분까지 병원에 출근 도장을 찍고 오후 4시까지 이어지는 실습. 점심시간 30분을 제외하면 앉을 수도 없었다. 5시에 맞춰둔 알람을 듣지 못한 덕에 탄소는 오늘 젖은 머리를 머리망에 밀어 넣었다.
앉아 있는 시간이 그나마 많은, 그리고 출근 시간이 오후1시인, 신생아실 이브닝으로 첫 실습의 스타트를 끊은 다른 동기들이 부러웠다. 어차피 다들 똑같이 겪을 일이긴 하지만 괜히 마음 한 편이 꽁했다. 정갈한 글씨체로 가득한 메모장이 한 장 뒤로 넘어갔다. 탄소는 애매한 맛이 나는 저염식 반찬 하나를 억지로 씹어 넘겼다.
식판을 설거지통에 담구고 막 식당 문을 열고 나오던 탄소의 동작이 우뚝 멎었다. 31병동 수간호사가 식당 문 바로 앞에 있었다. 워낙 예민해서 실습생들이 조금만 실수해도 혼이 쏙 빠지도록 혼내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건너편에, 꽤 훤칠한 키의 남성이 공손히 손을 모으고 서있었다.
“그 정도면 보고를 먼저 하셔야 하는 거예요. 본4잖아. 근데 왜 이래.”
“죄송합니다. 공부해오겠습니다.”
폴리클이나 인턴, 레지던트도 경력 있는 간호사에게 혼나는 일이 있다고 하던데, 그걸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한참을 더 말을 늘어놓은 뒤에야 수간호사는 자리를 떴다. 그제야 남자도 예의 바르게 고정시킨 몸을 움직였다. 남자의 입꼬리가 문득 호선을 그렸다. 그가 턱에 걸친 녹색 일회용 마스크를 끌어올렸다. 의미 모를 웃음은 마스크 너머로 자취를 감췄다.
“공부해도 대답은 잘 못하겠던데.”
남자는 언제 쳐져있었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미친 거 아니야? 방금 혼난 주제에 저런 소리를 복도 한복판에서 해? 어이가 없어진 탄소가 얼이 빠져 쳐다보든 말든, 남자는 그 시선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금세 코너를 돌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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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일기 쓰다가... 이런 소재가 너무 쓰고 싶어졌어요 '-' 간단한 프롤로그 쪄왔습니당.
청춘일기와 천 시간의 기록, 두 이야기 모두 한 번에 진행할 생각이니 걱정은 마세용...
마땅한 제목이 생각 안 나서...그냥...간호학과 임상실습 시간을 끼워 넣어봤어영...(소심
아무튼 이 이야기도 잘 부탁드립니다!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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