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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Messiah)
봉봉&천월
24 (Click Here!) |
24 "6월 4일. 정오. 대회의실." 긴 복도를 얼마나 뛰었는지, 땀이 송글송글 맺힌 우현이 입꼬리를 씨익- 올린다. 덩달아 성규의 표정도 밝아진다. "진짜... 소장님한테 허락 받은거야?" "엉! 내가 소장형이랑 좀 친하잖아-" 샐샐 웃는 우현의 머리를 쓰다듬는 성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명수는 여전히 못마땅한 듯 짝다리를 짚고 벽에 기대어 서있다. "그렇게 회의만 잡아놓으면 어떡합니까? 설득을 해야지. 센터 연구원들 만만치는 않을건데요?" 한껏 띄웠던 분위기를 다시 가라앉히는 명수를 향해 속으로 종알종알- 욕을 뱉아내는 우현이다. 물론 속으로. "알죠... 알지만-" "반란이니 새 세상이니 떠들어대는데, 말처럼 쉽지 않다는거- 모르는 건 아니겠죠." "아니 안다니까," "정부는." "..." "생각보다 훨씬 강하고 잔인합니다. 알아두세요." 제 할말만 하고 방을 빠져나가는 명수의 뒷통수로 야-! 소리를 지르는 우현이지만 묵묵무답. 성규는 마른 한숨만 뱉았다. 어떻게 겨우겨우 설득을 하긴 했지만, 센터 연구원들 보다 만만치 않은게 명수다. "근데 너 정말 대책이 없긴 해." "왜... 막 울면서 하소연하면 되지 않을까?" "단순하긴... 근데 소장님을 진짜 설득한거야? 도와달라고?" "아니. 그냥 소장 이름으로 연구원들 집합만 시켜달라고 했는데." 뭐가 그렇게 만족스러운지, 우현의 팔자주름이 빛난다. 그에 반해 성규의 찢어진 눈은 더 찢어진다. "이 바보..." "바보아냐! 나 아니였으면 이런 기회도 없었어!" "닥치고 얼음이나 가져와. 더워." 여름이 깊어가고, 그들의 관계도 더욱 깊어져갔다. 우현의 발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눈을 감는 성규다. - 온갖 요란한 소리를 내며 목을 푸는 우현의 뒤로 초조한 표정의 성규와 뚱한 표정의 명수가 나란히 서있다. "센터 내 모든 연구원들은 지금 즉시 대회의실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대회의실 안쪽의 작은 대기실까지 울려퍼지는 안내방송. 우현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부분은 지우면 안됩니까? 전혀 설득성이 없네요. 불필요합니다." "아니, 어딜봐서? 내가 분명히 말했을텐데. 설득에는 감정적인 요소도 필요하다고. 너같은 냉혈한이 뭘 알기라도 하겠냐만은-" 대회의를 2분 남겨둔 이 시점에서도 기어코 투닥거리며 싸움을 내는 명수와 우현이다. 팔짱을 낀 채 둘을 지켜보던 성규가 나서려는 순간,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얀 종이를 한쪽씩 쥔 채 싸우던 명수와 우현도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 알아서 하시죠. 괜히 일만 더 커질 것 같으니." "니가 안그래도 그러려고 했거든?" 유치해라- 끌끌거리며 혀를 차는 성규의 앞으로 우현이 스쳐지나갔다. 철컥- 대회의실로 들어선 우현은 순간 아찔해지는 정신을 바로 잡았다. 날카롭게 저를 노려보고있는 백여명의 눈초리에 절로 소름이 돋았다. 단상으로 올라가는 내내, 떨리는 다리를 감추느라 우현의 표정은 더욱 더 굳어갔다. 단상에 올라선 뒤에도 더욱 말라오는 입술에 부들부들 떨던 우현이 옆을 바라봤다. 대기실 문 틈새로 웃고있는 성규가 보였다. '사랑해.' 성규의 입모양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거짓말처럼 떨림이 멈췄다. 나름 귀엽게 애교도 부려보는 성규의 모습에 웃는 우현. 곧 당당하게 앞을 바라본다. 우현의 옆모습을 바라보던 성규가 미소를 지었다. "저래야 남우현이지." "글쎄-" 말은 그랬지만, 지켜보는 명수도 내심 긴장했는지 곧은 눈길로 회의실을 둘러본다. "제 9회 대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모든 연구원들은 정해진 자리에 착석해주시고..." 구구절절 이어지는 안내방송. 그리고 "안녕하십니까! 이번 회의에 진행을 맡게 된 남우현이라고 합니다!" 우렁찬 우현의 목소리.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잠시 뜸을 들이던 우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다시 한번 말라오는 입술에 하얀 종이를 꽉- 잡아쥐었다. 「6월 6일까지 KIST로. 늦으면 안돼요!」 지금쯤이면 창원으로 내려간 동우와 호원도 고전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살짝 입술을 축인 우현이 입을 뗐다.
"소장님의 허가를 받아 중요한 사안을 상의하려고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넙죽- 단상의 옆으로 비켜서서 절을 하는 우현. 놀란 명수와 함께, 표독스럽게도 노려보던 연구원들의 세모난 눈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우현이 무릎을 탈탈 털며 일어나자 마자, 공격은 시작되었다. "무슨 중요한 안건이기에 우릴 다 불러모은거지? 대회의는 1년에 몇번 열지도 않는데." 고위급 간부로 보이는 연구원이 입을 열었다. 관심은 끌었구나- 그 자체만으로도 반은 성공한 셈이다. "매우 중요한 안건이죠.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무슨 대통령선거 하는 것 같다. 비웃는 명수의 정강이를 세게 걷어차는 성규다. "새파랗게 젊은게... 이번에 들어온 신입이지?" "예! 머리는 모자라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잘 할 자신이 있습니다!" 거봐. 무식하게 목소리만 커가지고- 고개를 저으며 작은 방으로 들어가는 명수를 급히 뒤따라가는 성규, 곁눈질로 흘깃거리던 우현이 금새 시무룩해진다. "그래. 어디 한번 말해보기라도 해봐," "네." 명수와 한창 실랑이를 한 끝에 얻어낸 하얀 종이를 구구절절 읽어내려가는 우현의 앞으로 점점 썩어가는 표정의 고위 연구원들이 보였다. 그에 반해, 뒤로 보이는 젊은 연구원들은 우현의 말에 꽤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고있었다. 우현의 일장연설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위 연구원이 재공격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지금, 정부에 대항하여 싸우자는 말인가?" "저흰 싸우는게 아닙니다. 그저... 바꾸려는 것뿐이죠." "그렇게 세상을 바꾼다한들, 달라지는게 뭐가 있겠는가?" "많은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르죠." "우린 이 전쟁과 무관하네. 전쟁이야 정치인과 군인들이 하는게 아닌가. 우리는 지금처럼 센터에 눌러앉아 평화롭게 한국의 과학을 발전시키면..." "죄송한 말씀이지만, 지금 이곳이 평화롭다고 생각하십니까?" 고위 연구원이 입을 다물었다. 씰룩이는 수염이 그의 당황스러움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 뒤로 통쾌한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 "매일같이 M을 기계취급하며 고통 속에 빠트리고, 정부에게 빌빌기는 것이 정녕 평화입니까?" "..." "지금 이곳은 전혀 평화롭지 않습니다. 위태롭죠. 정부는 M센터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죽는다면," "..." "미친척, 한번 싸워보고 죽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난 찬성! 파란 가운을 입은 한 신입 연구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입 연구원 OT 때, 우현의 옆자리에 앉아서 함께 떠들던 얼굴이 낯익다. 그를 시작으로 파란 가운을 입은 신입들의 목소리가 대회의실 가득 울려퍼졌다. "맞습니다! 언제까지 정부의 핍박을 받아야 합니까? 언제까지 그걸 참겠습니까!" 당황한 듯, 하얀 가운을 입고있는 고위 간부들이 뒤를 돌았다. 일어서서 새로운 세상을 외치고 있는 파란물결 사이에는 얼핏, 하얀 가운을 입은 기존 연구원들도 몇몇 보였다. "항상 M의 출산을 보며 죄책감을 느껴왔습니다. 지금이라도, 그들에게 용서를 빌고 싶습니다. 찬성합니다!" "우리가 일어나야합니다! 세상을 바꿉시다!" 반 정도가 벌써 넘어왔다. 우현이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고위 연구원들이 우현을 한껏 노려봤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인가? 지금 우현군, 자네는 반란을 선동하고 있어!" "그래, 우리가 이렇게 나서봤자 뭘 하는가? 설령 이게 M들을 구원하기 위한 일이라고 해도 M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걸 잊었는가?" 노기가 어린 고위 연구원들의 말에 우현이 비식거리며 웃었다. 새삼 자신만이 알고있는 M의 비밀이 있다는게 뿌듯해지기도 하면서. "과연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M들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엄마- 우현의 부름에 대기실의 문이 열렸다. 일순간 시끄럽게 들썩이던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집중되는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인 성규가 느리게 걸어나왔다. 출산을 앞두고 부담스럽게 부푼 배가 버거웠는지 힘겹게 단상 위로 올라가는 성규를 우현이 겨우 부축했다. 겨우 중심을 잡고 서서 힘들게 심호흡을 하는 성규의 이마에는 벌써부터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다들 아시겠죠. 제가 담당하고 있는 M(17), 아니 김성규입니다. 대한민국 제 1호 M이죠." "아니... 지금 M이 왜 여기에..." 모두가 놀랐다. 고위 연구원들을 비롯한 모두가 믿을 수 없다고 소리쳤다. 여기저기 눈치를 보는 성규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는 우현이다. "직접 M의 말을 들어보시죠. 방금 했던 말들을 후회하게 되실겁니다." 성규의 얇은 입술이 열렸다. 여기저기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자신의 아기를 앗아가던 연구원들. 눈을 질끈 감았다. "안녕하세요. M(17)," "..." "...김성규입니다." 불안한 듯 떨고있는 성규의 손을 꽉 다잡는 우현. 정적속에서 성규는 안정을 되찾아갔다. "...혹시 M(26), 이성열군을 기억하십니까?" 고위 연구원들이 술렁거렸다. 대기실 안에서 모든 내용을 듣고있던 명수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는 실험용 M이었습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거의 모든 약물들의 최종 실험대상이 되어주었죠. 기억나십니까?" "...기억합니다." "또한 그는, 기억상실을 위한 약품 연구에도 도움을 줬습니다." "..." "물론 당신들이 아닌, 저희 M들에게 도움을 줬죠." "...네?" "그 약은 가짜니까." 연구원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감정이 북받친 성규가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M은 오래 전부터 정부와 당신들에 대한 분노를 차근차근 쌓아왔습니다. 모든걸 기억하고요. 정부와 당신들이 우리를 홀대하는 것은 참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 "우리 아기들을... 우리가 낳은 아기들을 데려가는 것. 내가 낳은 아기들을 단 한번도 안아보지 못한 채 뺏기는 것.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우리 M이 쌓아왔던 분노였습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성규가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거센 빗줄기처럼 쏟아졌다.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성규는 다시 입술을 달싹였다. "왜! 우리한테 왜 그래야만 했습니까? 당신들이 만든 이 창조물이 그렇게 두려웠습니까? 모든걸 숨기고 싶을 만큼 두려웠습니까? 단 한번도, M을 인간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에게 줄 조금의 자비도 없었냐는 말입니다!" 뒤로 넘어갈 듯, 숨을 몰아쉬는 성규는 한없이 위태로워 보였다.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분노를 표출하는 그 모습에 몇몇 연구원들은 고개를 돌렸다. "우리도... 우리도 생명이고, 인간입니다. 이때까지 참아온 화는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 "너무 지쳐버렸어요. 그만하고 싶습니다..." "..." "당신들을 모두 용서해요. 도와주세요..." "아..." "함께.. 웃으면서 살 수 있는... 새로운 세상으로 가요, 우리..." 털썩. 그대로 쓰러진 성규를 끌어안은 우현이 소리쳤다. "이제 다들 믿으시겠습니까? 이게 진실입니다. 이게 현실이라고요." "...정말인가?" "방금 보고 듣지 않으셨습니까. 모든게 사실입니다." 고고하게 고개를 들고있던 고위 연구원들이 고개를 숙였다. "사죄하고 싶으십니까." "...그렇지." "M들에게 미안함을 느끼십니까." "...그렇다네." "우릴 도와주십시오." "..." "내일 정오. 과학부 장관이 센터로 오는 것, 다들 아시죠?" "..." "새벽 4시까지. 저희와 함께 하실 분들은 여기로 모여주세요." "..." 쓰러진 성규를 안고 대기실로 들어선 우현에게 명수가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제법이네요." "난 타고났다니까." "인정하죠." "말했지. 진심이 있다면 설득은 100%라고. 이 형님 말 좀 들어." 우리 동갑이거든요. 베시시 웃는 명수의 모습이 낯설다. 놀란 우현을 두고 대기실을 빠져나간 명수다. "성열아. 보고싶다." 허공으로 퍼지는 단어들. 어딘가에서 웃고있을 성열을 생각하며 숙소로 향하는 명수다. - "제발 쓸데없는건 버리면 안됩니까?" 꾸역꾸역. 가방이 터지도록 물건을 집어넣고 있는 우현을 보며 명수가 한마디 잔소리를 했다. "뭐가 쓸데없어. 이건, 위생을 위한 레이징면도기. 이건, 전쟁의 극박함을 담을 아티스트용 카메라..." "...그냥 나노용품으로 다 준비하면 안됩니까? 돈이 모자라면 빌려드릴테니," "정말? 다 장만하려면 진짜 비쌀껄?" 그냥 던져본 말에 죽어라 달려드는 우현을 가볍게 제압한 명수가 다시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가벼운 여벌의 옷과 기본적인 위생용품.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권총 2개와 소에족탐지기까지. 허전하게 빈 가방을 응시하던 명수가 벽으로 시선을 옮겼다. 빽빽하게 들어찬 사진들을 훑는 명수의 손이 뻣뻣하게 굳어갔다. "이것도, 버려야겠지?" "...응?" 쓴 웃음을 지으며 벽에 붙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하나 둘 떼어내는 명수의 거침없는 팔을, 오히려 우현이 붙잡았다. "너... 너 이사람..." "엄마가 말했습니까? 역시. 엄마엄마하니까 진짜 아줌마처럼 입도 헤퍼."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애인이었다며!" 명수의 행동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우현이다. 성규가 해줬던 이야기도 그렇고, 저렇게까지 미친듯 사진을 찍어댔으면 분명 사연많고 애틋한 연인이 분명할 것인데 명수는 그를 너무 쉽게 저버리는게 아닌가. "애인이었으면..." "..." "애인이었으면 뭐 달라지는게 있습니까. 그저 과거형일 뿐인데요." "야-" "지금 이 세상에 없는데. 궁상맞게 사진이나 꺼내보면서 그리워하면 뭐 다시 살아나기라도 하겠습니까?" "... 그건 그런데," "괜히 정신만 흐트릴겁니다. 신경쓰지 마시고 댁이나 잘하시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동안." 말하는 내내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명수의 안색은 급격히 어두워져있었다. 알게모르게 미안해진 우현이 가운 주머니를 부스럭거렸다. "아맞다." 안주머니에 잡히는 매끈한 감촉. "..." "이거... 그럼 이거 한장이라도 가지고가지 그래...?" "염장지르십니까. 정 원하면 남우현씨가 가지고 계십시오." 21970827. 하얀 뒷면을 차마 돌릴 수 없었다. 좁은 가방속 깊이 사진을 집어넣는 우현이다. "보고싶으면 말해라. 참지말고." "하필이면 그 사진이 왜 보고싶겠습니까." "그렇지..." "저도 사람인데. 보면 아픕니다." 모든 사진을 떼어내 차곡차곡 쌓은 명수가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고 냉정하게 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높게 쌓인 사진을 방 구석에 조심스레 밀어넣었다. 가방을 챙겨 방 문을 나왔다. "안녕. 이성열." 구슬프게 중얼거린 명수의 속삭임은, 우현만이 들을 수 있었다. 그날 밤. 간단하게 짐을 정리하고 겨우 찾아온 짧은 휴식에 골아떨어져있는 우현과 명수의 숙소로 누군가 찾아왔다. 바깥에서 들리는 굉음을 먼저 들은건, 침대에 엎어져 허우적거리던 우현이었다. 부서질 듯 문을 때려오는 소리에 놀란 우현이 급히 밖으로 나갔다. "문열어 이 미친놈들아!" 선웅이었다. 우현은 등 뒤로 찔끔-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아...아, 형." 얼떨떨한 표정으로 문을 염과 동시에 얼굴이 잔뜩 붉어진 선웅이 안으로 들어왔다. 왠만해선 잠을 잘 깨지 못하는 명수도 뒷머리를 긁적이며 방을 나왔다. "이게 뭡니까." "하... 남우현 이 씨발!" "소장형.. 형 좀 진정해!" 파득이는 선웅을 겨우 눌러 진정시킨 우현, 그러나 선웅은 가라앉지 않은 화를 내뱉고있다. "미쳤지? 그딴 수작 부리려고 나한테 그런거냐?" "..." "말 못해? 얼른 대답하라고!" 내 이럴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다시 방안으로 들어가는 명수를 겨우 잡은 우현. 산넘어 산이라는게 이렇게 뼈저리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형... 형도 다 들었을꺼 아니야..." "그래 다 들었지. 그 반란이니 뭐니 하는... 새 세상이니 뭐니 하는... 그런걸 지금 말이라고!" "...형도 도와줘." 우현이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말해버리고 말았다. "...뭐?" "우린, M센터 모두의 도움이 필요해. 응?" 자신의 어깨를 누르는 우현의 팔을 거세게 때어낸 선웅이 일어났다. 그리고, "아..." 화끈거리는 왼뺨을 쥔 우현이 선웅을 올려다봤다. "너... 지금 날 무시하는거냐?" "형." "씨발. 너 때문에 내 모든 꿈이 깨지게 생겼는데, 뭐 지금 도와줘? 모두의 도움이 필요해? 잘도 동조하겠어-" "내말은..." 시리도록 차가운 눈물이 선웅의 얼굴을 타고 내려왔다. "내가 스탠퍼드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쌓아왔던 모든 위신과 명예를 다 버리고 떠나왔던 이유가 뭔지 알아?" "..." "난 한국이 좋았어." "...왜?" "내 나라잖아." "..." "미국에서 자랐지만, 단 하루도 한국을 잊지 않았어. 한국으로 명예롭게 돌아오기 위해 미친듯이 공부했고, 그 결과가 지금 이 M센터야." "..." "내 조국에서, 내 나라의 땅을 밟고, 내 나라에 조금의 도움이 된다는게 얼마나 기뻤는지 너흰 모르겠지? 모든 것을 보장해주던 미국을 떠나서, 이제 겨우 한국에 자리잡았는데," "..." "이게 뭐야..." "..." "2년동안 쌓아왔던 모든게 무너지게 되었다고... 너희들의 말 몇마디로 한순간에. 이래도 나한테 더 할말이 있니?" 조금은. 선웅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선웅은 너무 큰 애국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 대한 동경과 갈망. 절대 선웅을 꺾을 수 없으리라 판단한 명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소장님 먼저," "...?"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그대로 선웅의 앞에 무릎을 꿇은건, 그 고고하고 신비롭던 김명수였다. 놀란 우현보다, 더 놀란 선웅이 덩달아 무릎을 굽혔다. "아니..." "뻔뻔하게 도움을 바라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 "적이 되지는 말아주세요." "...무슨 말입니까?" "미국으로... 잠시 돌아가시는게 어떻냐는 말입니다." 무릎을 탈탈 털며 일어난 명수가 뒤를 돌았다. 허탈하게 웃고있는 선웅의 시선이 명수의 뒷모습으로 향했다. "꼭 믿어주십시오." "..." "저희는 성공합니다. 이 세상을 바꿀 것 입니다. 그리고 그때, 다시 오세요." "..." "새로워진 한국으로." "..." "소장님이 그토록 원하던 아름다운 조국으로." 방으로 들어간 명수는 끝끝내 다시 나오지 않았다. 뻘쭘하게 서있던 우현이 선웅과 눈을 맞췄다. 의미심장한 선웅의 마음을 도무지 읽어낼 수가 없었다. "형." "...어" "내일 새벽 4시야. 그때 소장실이 비워져있으면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일게." "..." "우릴 너무 미워하지는 마. 꼭 이룰테니까." "뭘?" "좋은 세상." 선웅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생각에 잠긴 듯 우두커니 서있다가, 곧 방을 나갔다. 우현은 선웅을 믿었다. 절대 자신들을 배신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길게 하품을 한 우현이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밤이 깊어만 갔다. - 6월 5일. 새벽 4시. 센터는 고요했다. 그리고 소란스러웠다. 분주하게 모인 연구원들과 M들로 대회의실이 가득 찼다. "...연구원 112명에 M 89명." "..." "전원출석이네." 성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차갑기만 하던 연구원들이 M들과 함께 싸워준다는 것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눈을 두어번 비볐다. 눈물이 묻어났다. 한편- 대기실에는 멍하니 앉아있는 명수가 있었다. 테이블에 올려진 글록26. 질기도록 이어진 장관과의 악연이 이제야 끊어지나싶은 마음에 심장이 뛰었다. 4년동안 이어진 끔찍한 악몽. 그 중심에는 장관, 최진이 있었다. 갑작스레 떠오르는 성열의 하얀 웃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명수다. 호원과 동우, 성규의 이야기를 듣고 정말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끝내 알 수 있었다. 이미 결론은 정해져있었다는 것을. 명수는 오래 전부터 '복수'라는 두 단어를 단단히 머릿 속에 새겨놓았던 것이다. 조심스레 글록을 집어들어 안전장치를 풀었다. 그리고 하얀 벽에 총구를 겨누었다. "탕-" 괜히 입으로 경쾌한 소리를 내는 명수의 모습이 꼭 개구쟁이 어린애 같았다. 바깥상황을 정리하다가 쉬러 들어온 우현이 그 모습을 비웃으며 다시 나갔다는 건 꿈에도 모르고 명수는 계속 웃었다. 성규와 명수에게 상황정리를 넘긴 우현이 복도로 나왔다. 센터의 끝층, 6층의 중앙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소장실' 이라고 적힌 문패를 보며 침을 꼴깍 넘기는 우현이다. 똑똑- 가벼운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소장실은 깨끗하게 비워져있었다. 선웅이 항상 걸터앉아 책을 읽던 쇼파와 커피를 놓아두던 책상만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책상 위에 노란 쪽지까지. 우리에게 남긴 쪽지이리라- 본능적으로 느낀 우현이 쪽지를 집어들었다. 반으로 접혀있는 얇은 종이를 살짝 열었다. 「Good Luck, Messiahs.」 과연 선웅답다는 생각에 살풋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다시 쪽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우현. "...메시아?" 선웅이 남기고 간 쪽지의 마지막 단어. 메시아. 구세주. 하지만 우현이 그 뜻을 알리가 없었다. "뭐야 이건... 소장형은 꼭 어려운 말만 쓴다니까." 툴툴거리며 쪽지를 가운 주머니에 넣은 우현의 발걸음이 방금 전과는 다르게 가볍다. 낭랑하게 뛰어가던 우현이 소장실 문 앞에서 다시 멈췄다. "소장 형. 꼭 성공하고 다시 부를테니까 믿어줘요!" 다시 발걸음을 떼는 우현. 대회의실로 가는 내내 우현의 머릿속에서는 Messiah라는 단어가 둥둥 떠다녔다. 우현이 다시 대회의실로 돌아왔을때, 201명의 M들과 연구원들이 나란히 줄을 서 있었다. 그 사이에는 손을 꼭 잡고 있는 명수와 성규도 보였다. 단상에 올라선 우현이 노란 쪽지를 꺼내들었다. "자, 제가 방금 소장실에 다녀왔습니다. 소장님께서는 저희의 움직임을 허락해주시고 떠나셨습니다. 이 쪽지를 남기고요." 쪽지를 넘겨받은 고위 연구원이 중얼거렸다. "Good Luck, 메시아. 구원자라...." 그 한마디 말을 놓치지 않은 우현이 입꼬리를 올렸다. "굿 럭 메시아. 쪽지에는 그렇게 적혀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구원자라고요. 이제부터 우리는 구원자입니다. 이 세상의 메시아란 말입니다! 모두 자부심을 가지고 새로운 세상으로 함께 나아갑시다!" 선거톤은 여전하네. 작게나마 빈정거린 명수가 또 한번 성규에게 정강이를 차였다. "그래,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가?" "일단, 선두팀이 먼저 출발할겁니다. 22명의 고위 연구원을 제외한 모두가 선두팀이 됩니다. 한 연구원당 한명의 M을 데리고 어떤 방법이든 들키지 않고 목적지까지 도착하면 되는거죠. 시간은 내일 자정까지입니다. 충분할거고요." "그럼 목적지는..." "우리의 목적지는," "..." "KIST입니다."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이는 89명의 연구원과 89명의 M. 그리고 다시 입을 여는 우현. "정오가 되면 장관이 M센터를 방문할 것입니다. 저를 비롯한 나머지는, 장관을 제거하고 뒤따라가겠습니다."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연구원과 M들이 한쌍 한쌍 센터를 빠져나갔다. 만삭의 가누기 힘든 몸을 이끌고 센터 앞문까지 간 성규가 그들을 하나하나 배웅했다. 그런 성규의 옆으로 명수가 다가갔다. "엄마, 말 안한게 있는데." "응? 뭐-" "KIST 가고나면... 아기 낳고 하는데 힘이 많이 들거야. 관리도 안되고 시설도 여기와는 비교도 안되게 후지거든. 다른 M들을 어젯밤에 전부 해결했는데... 엄마한테는 아직 말을 못했네." 명수가 손을 펼쳤다. 그 위에는 하얀 알약이 있었다. 이미 예상했다는 듯 쓰게 웃는 성규다. "... 이거 실험용 M에 쓰는거 맞지? 기능정지제." "응. 괜찮겠어? 생식기관을 전부 경직시키는거라 엄청 아플거야. 어젯밤에 다른 M들도 정말 고생 많이했거든. 고통이 오래가지는 않는데 그래도..." "명수야. M들이 과연 몸이 아파서 꺼려했을까." "..." "차라리 정부의 개처럼 살바엔 그 약을 먹고 폐기처분되거나 실험용이 되는게 나을지도 모르지. 정부에 조금이라도 손해를 입히는게 좋을테니까. M들이 그 약을 꺼려한건, 마음이 아파서 그런거야. M들이 만들어진 목적은 애초부터 아기를 낳는거였잖아. 평생을 그 일을 하며 살아왔는데, 하루 아침에 그걸 멈춘다는게 쉽지는 않을 거 아니야." "...그렇네." "이제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꺼니까 조금 생각을 바꿔봐 명수야. 남을 조금이라도 배려하고 생각하면서 살아라고." "..." "언제까지 성열이만 생각하면서 그렇게 살래. 이제부터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너랑 나, 호원이와 동우, 우현이와 많은 연구원들 그리고 M. 모두 하나라고 생각하면서 살아." 알약을 빼앗아들고 센터로 들어가는 성규를 조용히 뒤따라가는 명수다. 순식간에 너무나 많은 것이 변했다. 머리가 복잡했다. "내 마음속에는 이성열밖에 없는데." 이렇게 이성열로 꽉 차 있는 마음속에,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넣을 수 있겠어- 엄마. 말하지 못한 몇마디가 나즈막히 입 안을 맴돈다. - "장관은 경호원 열댓 명 정도와 비서를 데리고 올 것이네. 항상 그래왔으니까." 선두팀이 모두 떠난 오전 10시. 센터에 오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남아있던 고위 연구원들의 조언을 들으며 계획을 짜는 명수와 우현의 표정이 비장하다. "센터에 와서는 주로 뭘하죠?" "일단 6층 맨 왼쪽에 있는 특실로 가서 휴식을 취하겠지. 경호원들은 문 앞을 지키고 있을 것이고, 비서는 아래층에서 우리와 얘기를 나눌 것이야." "그럼 특실 안에서 장관은 혼자란 말씀입니까?" "그렇지." 일이 생각보다 쉬워지겠는데? 화색을 띄는 우현을 날카롭게 노려보는 명수다. 우현과 함께 임무를 맡는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우현씨 총은 쏠 줄 압니까?" "아니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내가 한때 그냥 문란하게 놀았겠냐. 총도 좀 만지고 했지." 잠시 대답이 없던 명수가 책상 위로 무언가를 던졌다. "...리볼버?" "그래요. 제일 흔하고 쓰기도 편하니까 괜찮을거에요." "쳇. 근데 숨기기에 덩치가 너무 크다." "남우현씨는 숨길 필요 없습니다. 중거리에서 경호원들 다 죽일테니까." "아니 왜 내가 경호원들을 맡는데? 쉬운일은 혼자 다 해먹을려고?" "쉬워서 그러는거 아닙니다." 글록이 명수의 손을 맴돌았다. 한손에 꽉 쥐어지는 기분좋은 그립감. 벽에다 대고 다시 조준자세를 취해보는 명수다. "..." "복수하자면서요. 이게 제 첫번째 복수입니다." 탕- 경쾌한 소리를 낸 명수가 답지않게 깔깔거리며 웃었다. "장관이 특실로 들어가자마자 6층계단에 몸 숨기고 문 앞에 있는 경호원들 다 죽이십시오." "...너는?" "특실에 숨어있다가 장관이랑 깊은 대화를 좀 나누고 나올겁니다. 남우현씨는 경호원들 다 죽이고 앞마당으로 나가세요. 다른사람들 다 데리고." "..." "내가 아무리 안나와도, 들어오지 마시고요. 위험합니다." 명수의 속은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나름 사교성도 괜찮고, 눈치가 빠른 우현임에도 명수는 정말 알 수 없는 존재였다. "선배님들은 비서 하나만 제거해주시면 됩니다. 총은 쏠 줄 아시죠?" "물론이지. 이제 그만 일어나도 되겠는가?" 고위 연구원들이 나가고 곧 우현과 명수도 자리를 떴다. 폭풍전야의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 정오. 시간에 딱 맞춰 M센터에 도착한 장관이 고위 연구원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특실의 창문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명수가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눌러삼키며 옷장 옆의 빈 공간으로 바짝 붙어섰다. 장관의 징그러운 웃음은 여전했다. 고위 연구원들 사이에 끼어서, 특실로 향하는 장관을 따라가는 우현이 친근한 바보웃음을 짓고 있었다. 연구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계단을 오르던 장관이 문득 우현을 바라보았다. "처음보는 얼굴인데, 누구?" "안녕하십니까! 신입 연구원으로 들어온 남우현 입니다!" "오. 신입이라? 이번 면접에서 들어왔나보군. 신입이 벌써부터 이런 고위 간부들 사이에 끼어다니다니... 특출난게 있나봅니다?" 갑작스런 질문에도 연구원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침착하게 답했다. "아, 이번에 들어온 신입 중에 가장 머리도 좋고 애살도 넘쳐흐르는 청년입니다. 마음에 들어서 데리고 다니고 있지요." 약간 의심쩍게 우현을 바라보던 장관이 눈초리를 거뒀다. 바보처럼 실실거리며 웃고있는 우현의 명품 연기 때문이었을거다. "그래, 이번 신입채용면접은 참 유감이었네. 나도 정부사람들을 설득해보려 애를 썼지만, 그게 잘 안되더라고." "하하- 괜찮습니다. 장관님이 하시는 수고야 다 알고있죠. 감사할따름입니다." 계속 바보처럼 웃고있었지만 우현의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한칸한칸 계단을 오를때마다 입술이 바짝 말라왔다. "그럼 난 이만 들어가겠네. 오후 만찬에서 보도록 하지." 장관이 특실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경호원들이 문 앞에 줄을 지어 섰다. 꼴깍- 마른침을 삼킨 우현이 연구원들을 따라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이 연결된 유리기둥에 몸을 숨긴 우현이 연구원들과 사인을 주고받았다. '작전 시작' 팔랑이는 가운을 걷어낸 우현이 벨트 홀스터에 끼워둔 리볼버를 꺼내들었다. "...씨발" 간만에 잡은 손잡이가 낯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숙하게 소음기를 장착하는 우현의 손이 빠르게 움직인다. 총의 안전장치가 풀렸다. 후- 가볍게 심호흡을 한 우현이 총구의 끝에 신경을 집중한다. 은색 띠가 둘러진 총구가 반짝였다. "3" 초점이 살짝 흔들렸다. "2" 손에서 땀이 베어나왔다. 이를 악 물었다. "1" 방아쇠를 당겼다. 우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샷-" "오랜만입니다, 장관님?"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장관이 고개를 돌렸다. 검은 총구와 올라간 입꼬리. 그리고 김명수. "... 왜 자네가 마중을 나오지 않았나 싶었네만- 이렇게 거창한 환영인사를 준비하고 있을줄은 미처 몰랐군." "장관님의 취향대로 화려하게 준비해봤습니다." "..." "만족하십니까? 아 참, 아직 하이라이트가 남아있으니 놀라기는 이르죠." "오. 하이라이트, 하이라이트라- 자네가 준비했다고 하니 더 기대가 되는군. 어디 한번 지켜보지." 죽음 앞에서도 지나치게 의연한 장관의 모습에 명수가 잘근거리며 입술을 씹었다. 자네는 여전히 어리군- 호탕하게 웃는 장관에게 헛점을 보이지 않기 위해 괜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나 곧 바깥에서 들려오는 총성에 얼굴을 굳히고 땀이 베어나온 손에 힘을 주었다. "... 장난은 여기까지 하시죠." "난 처음부터 진지했는데 자네는 아니었던 모양이지?" "... 참 질긴 악연이죠. 제 손으로 끊게 되어 영광입니다." "과연 그럴까." 바깥이 잠잠해졌다. 한번 믿어보라며 우쭐대던 우현의 말이 빈 말은 아니었나보다. 다시 한번 손잡이를 세게 움켜쥐었다. "시시하네요. 경호원들이 저렇게 쉽게 무너질줄은 몰랐습니다. 이제 장관님을 지켜줄 이는 아무도 없게 되었군요.." "음... 그렇다고 자네가 날 이길 수 있는것도 아니지 아니한가? 매우 실망이야. 기대했는데." "마지막은 제가 승리합니다. 무슨 자신감으로 그렇게..." "유한수. 심창민. 이성열." "..." "아마 곧 다시 보게 될게야. 무려 2년만의 만남인데, 흐트러진 머리라도 빗어두는게 어떻겠는가?" "닥치십시오." 그들의 이름만 들어도 파르르 떨려오는 손을 어쩔 수가 없었다. 방아쇠를 살짝 당겼다. "자네와 나의 악연은 끊나지 않아." "..." "지옥에서 이어지겠지." 탕- 단말마의 총성과 함께 명수의 얼굴에 비릿한 액체가 흘려내렸다. 총장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그리고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순식간에 붉은 불길이 솟아올라 명수를 둘러쌌다. 명수의 기억속에 잠재되어있던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일어났다. 「성열아.」 「그대- 난 이제 가야해요.」 「가지마. 사랑해.」 「안녕.」 「성열아 제발,」 「우리 아주 멀고 먼 내일에 다시 태어나서도 꼭 만나요 그대.」 「이성열!」 「난 영원한 악몽 속으로 갑니다. 정말, 정말 안녕-」 데자뷰. 김명수의 영혼이 죽어버렸던 그 날의 데자뷰. "...이성열?" 짙은 연기와 화염속 저 멀리 성열이 있었다. 여전히 하얗게 웃고 있는 그 모습에 다급히 손을 뻗었다. "이성열!" 우두커니 서있는 성열은 대답이 없었다. 그저 명수를 보며 특유의 바보같은 웃음을 짓고있었다. 성열을 향해 한걸음 발을 내딛은 명수가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지독한 연기가 목을 졸라왔다. "이... 이성열... 너 맞지?" "안녕 그대. 보고싶었어요-" 수줍게 손을 흔드는 성열이 행여 사라질까, 풀린 다리를 끌어가며 성열에게로 기어가는 명수다. 성열이 웃음을 거뒀다. "많이... 뜨겁지? 아프지? 조금만 기다려. 내가 갈게." "그대. 난 괜찮아요." "..." "얼른 가요. 모두가 기다리고 있잖아요." "싫어. 못가. 다신 너와 헤어지지 않을거니까." 온 몸이 딱딱하게 굳어져갔다. 폐 속 깊이 들어찬 가스가 따갑도록 속을 자극해왔다. "안돼요 그대- 난 이제 갈거에요. 그러니까 더이상 오지마세요." "성열아... 이성열..." "..." "갈거면 나 데리고 가. 설령 그곳이 지옥이라도 난 괜찮아. 너 혼자있는거 싫어했잖아. 내가 항상 옆에 있어줄게. 그러니까 제발... " "..." "떠나지마라... 나 혼자 두고 가지마라..." 털썩- 고개까지 꺾여버린 명수가 힘겹게 눈을 떴다. 어느새 눈 앞으로 다가온 성열에게서 달콤한 향기가 났다. 눈물이 났지만 뜨거운 연기에 금방 증발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명수는 그 열기를 느낄새도 없었다. 시리도록 차가운, 하지만 따뜻한 성열의 손이 명수에게 닿았다. "그대... 내가 왜 혼자에요?" "하...하아..." "보이지는 않지만, 나 항상 그대 곁에 머무르고 있어요. 이제껏 쭉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거에요." "성열아... 제발..." "나 이제 울지 않아요. 그대를 위해 씩씩하고 강해졌어요." "..." "이젠 내가 그대를 지켜줄게요. 항상 내가 지켜줄게요. 사랑해요 그대-" "나도 사랑해." 김명수! 아득히 먼 어딘가에서 성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명수는 듣지 못했다. 따뜻한 성열의 입맞춤과 함께 잠들어버렸기에. - "아..." 터질 듯 조여오는 머리를 부여잡은 명수가 눈을 떴다. 팔이고 다리고 칭칭 감겨있는 붕대 속으로 찌릿한 고통이 밀려왔다. "이제 좀 정신이 드냐? 병신같은게." "...?" "불속에서 혼자 생지랄을 떨었잖아, 너. 경화상으로 그쳐서 다행이지. 죽고싶어서 환장을 했어 아주-" "그만해 우현아." 덜컹거리는 차창 밖으로 붉게 저물어가는 노을이 보였다. "이젠 미치다못해 헛것이 보이냐? 참나." "헛것 아닙니다." 「이젠 내가 그대를 지켜줄게요. 항상 내가 지켜줄게요. 사랑해요 그대-」 짧은 순간이었지만 명수는 분명 느꼈다. 자신이 보았던 성열은 헛것도, 환영도, 거짓도 아니었다. 그토록 그렸던 이성열이었다. "그래. 내가 너한테 뭘 더 바라겠냐." "... 센터는 어떻게 됐습니까?" "다 불탔지. 미친 장관놈이 몸에 발화장치 붙여놓고 죽었잖아." 저를 빤히 바라보는 성규가 부담스러웠는지 슬쩍 눈을 피하는 명수다. 그런 명수가 안쓰러워 앞머리를 살살 쓸어주는 성규. 약간 시렸던 성열의 손과는 다르게 성규의 손은 그저 따뜻했다. "...괜찮아?" "괜찮아." 살풋 웃었다. 어딘가에서 지켜볼 성열을 위해. "나 이성열을 봤어." "...응" "그리고 말했어. 사랑한다고." "그래. 잘했어." "참 다행이야. 다시 또 멀어지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해줘서." "응." "그리고 이성열 안죽었어. 내가 죽지않는한 이성열도 안죽어. 정말이야." "알아. 성열이 안죽었어. 그러니까 그만 자. 수고했어." 명수의 눈꺼풀이 서서히 감긴다. 어디선가 달큰한 초콜릿향이 풍겨왔다. 꿈속에서 이성열이 보인다. 「성열아.」 「괜찮아요 그대.」 「가지마. 사랑해.」 「나 그대 옆에 있어요. 어디 안가요.」 「성열아」 「내가 지켜줄게요. 항상 그대만을 바라보며 지켜줄게요.」 「이성열!」 「그대- 사랑해요. 아프지말아요.」 |
안녕하세요 봉봉입니다!
다들 즐거운 설 연휴 보내셨나요? 즈는 설 연휴의 마지막 날... 아련하게... 가족들과 영화를 보러감미다... 지금 옷갈아입는척하고 폭ㅋ풍ㅋ 글쓰기중이에욬ㅋㅋㅋㅋ
아 사담을 많이 적고싶은데 시간이 없네요... 이런...! 대충 몇마디 말만 쓰겠습니다!
ohoh 장관사망 ohoh 드디어... 끈질긴 그분이 죽었네요... 허헣.ㅎ.. 모두 명수에게 닥빙닥빙... 저기 나오는 총 이름은.. 열심히 검색해서 찾았습니닼ㅋㅋ 명수에게 어울릴만한...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권총이라죠 뿌잉뿌잉! 글록이.. 글록이! 여튼 스릉한다 명수야..☆★
메시아는 어째 한편한편마다 최장편을 찍고있네욬ㅋㅋㅋㅋ 이번편이 30.3kb로... 앞에 편들을 재끼게 되었습니다... 참 좋군요 허헣..!
다음 26편은 성종번외로 찾아오겠습니다! 엘성러님들 모두 모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