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틴/전원우/김민규] 인생 뭐 있냐?
㈜독고다이
01.
어릴 때부터 나는 또래 여자아이들과는 조금 달랐다. 뭐 돌연변이, 이런 건 아니고. 여자아이들이 화장실을 가도, 옷을 사러 가도 무조건 친구들과 함께. 여럿이 우르르. 이런게 대부분인데, 나는 아니었다. 귀찮게 뭘 우르르 달고가나 싶어서 혼자 옷을 사러 다니고, 화장실 그 냄새나는 곳 뭐하러 같이 가나 싶어서 혼자 벌떡 일어나 갔다오고. 이런 식이다. 그래도 내 성격이 나쁜건 아니라서, 친구들이 많은 편이었다. 내가 워낙 혼자 다녀서 그렇지. 그저 인생 마이웨이로 사는 애, 하는 이미지였다. 아, 그리고 조금 더 덧붙이자면, 인생 뭐 있냐? 하는 마인드로 할건 다 해보는 사람이었다. 나는.
우리 부모님도 나 못지않게 쿨하셔서, 내가 뭘 하고 다니든 법만 어기지 않으면 크게 신경쓰지 않으셨다. 딱 하나, 공부만 빼고. 대학교만 진학하면 공부에도 손을 뗄 테니, 그때까지만 열심히 공부 하라는 말씀을 매번 하셨다. 그래서 마이웨이를 굳건하게 걷는 나도, 공부는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미친듯이 잘하진 않았지만, 평균 이상으로는 유지했다. 대학은 가야지,라고 마음 속 어딘가에서는 항상 생각하고 있어서.
고등학교 2학년이 된 후, 처음으로 맞은 시험기간에 한숨을 푹 내쉬면서도 학교 도서관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우리 학교는 고등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야간자율학습을 위한 교실을 개방하지 않는다. 사교육을 엄청나게 받는 대부분의 학생들을 위해서라던데, 그럴거면 도서관 자리나 넓혀줬으면 좋겠다. 혹여나 자리가 없을까 발걸음을 재촉했다. 평소처럼 숨막히는 침묵만이 도서관을 가득 채우고, 난 기적처럼 발견한 빈자리에 얼른 가방을 내려놓았다. 오늘 평소보다 일찍 왔는데 왜 자리가 없는지 모르겠다. 다다음주가 시험이라 이건가. 주위 눈치를 살피며 살짝살짝 지퍼를 여는데, 내 앞에 앉은 남학생이 고개를 든다. 이렇게 작은 소리에도 시끄럽다고 느낀건가. 못마땅해 입을 삐죽이는데, 남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헐. 난 그순간 욕이 튀어나올뻔 해 입을 급히 틀어막았다. 갑자기 입을 틀어막는 날 잠시 쳐다본 남학생은 아무 표정 없이 다시 고개를 내려 집중하기 시작한다. 미쳤어. 진심 핵. 잘생겼다.
난 혼자서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저 멀리로 날아가버렸고, 내 앞에 앉아있는 잘생긴 남학생과 어떻게 하면 친해질 것인가!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아, 나 원래 이렇게 첫눈에 반하고 그러는 사람 아닌데 얘는 좀 심각하게 잘생겼다. 게다가 그냥 잘생긴게 아니라 진짜 딱 내 스타일대로 생겼다. 조심조심 책을 꺼내놓는 척 하면서 힐끔힐끔 열심히 쳐다봤다. 열심히 집중하던 그 남자애는, 문제가 잘 안풀리는지 샤프를 휙휙 돌리며 잠깐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눈은 책에서 떼지 않은 채로. 그리고 난 봤다. 그 남자애의 명찰을. 학년은 나와 같은 2학년이었고, 이름은,
전원우. 였다.
나는 전원우에게 한눈에 반해버린 뒤로, 열심히 학교를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며 마주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전원우는 원체 움직이질 않는지,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하루종일 뒷모습도 보이질 않는다. 보고싶은 전원우 대신, 선생님들만 엄청나게 만나서 여기저기 꾸벅꾸벅 인사만 해댔다. 에휴, 전원우랑 인사라도 한번 해볼까 했더니. 어제 수학 겁나 복잡한 문제 풀던데, 이과인가.. 힘이 쭉 빠진 상태로 교실로 돌아왔더니, 배주현이 나를 쿡쿡 찌른다. 왜이렇게 힘이 없냐며.
"몰라..보고싶다."
"누구? 너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응."
"..뭐 이렇게 비밀이 없어 얘는."
"그래서, 싫어?"
망설임도 없이 툭 튀어나온 내 대답에 오히려 배주현이 당황한다. 내가 눈을 찡긋거리며 그래서,싫어?하는 물음을 던졌더니 너는 왜 여우짓을 나한테 하냐며 내 양 볼을 꼬집는다. 잔뜩 찌부된 내 얼굴이 그렇게나 웃긴지 혼자 아주 빵 터졌다. 하여간 배추, 날 너무 좋아해서 탈이다. 능글거리는 눈빛을 막 쏴댔더니, 아저씨 같으니 그런 눈빛좀 하지 말라며 나를 퍽퍽 때린다. 아, 진짜 아파.. 내가 아프다며 배추와 투닥대자, 말없이 우리를 한심하게 보고있던 부승관이 배주현의 손목을 잡아낸다. 시끄럽다며.
"뭐래, 니가 훨씬 시끄럽잖아! 평소에 무슨 엠씨 된것마냥!"
"허,뭐?엠,씨? 야. 난 담임한테도 인정받았거든? 와, 진짜 어이없다 너!"
부승관이 어이없다며 시작한 손부채질에 퍽 맞아버린 배주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본격적으로 다투기 시작한다. 어째 이렇게 하루도 조용하지 않은건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있다, 방과후 종이 치자마자 가방을 들고 도서관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제발 빈자리 있어라,하고. 도서관 안쪽으로 들어가도 보일 기미가 없는 빈자리에, 울상을 짓다 순간 나타난 빈자리에 누구보다 빠르게 가방을 내려놓았다. 후. 긴장했던 숨을 내쉬는데, 세상에. 전원우다. 어제는 그렇게 작은 소리에도 고개를 들어 쳐다보더니, 오늘은 꽤 큰소리가 나는데도 인상을 쓰고 문제만 보고있다. 내심 서운함이 느껴졌다. 얼굴 보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하지만 난 내 마인드를 충분히 활용했다. 전원우에게는 어제 잠깐 앞자리에 앉은 이름모를 여자애일 뿐인 나는, 포스트잇을 야무지게 뜯어내 또박또박 글자를 적었다. 그리고, 슥- 내밀었다.
[안녕 전원우.]
처음엔 내가 포스트잇을 문제집에 붙여놓은 지도 모르고 공부만 하길래, 내가 샤프로 톡톡 두드렸다. 그제서야 나를 한번 봤다가, 내가 두드린 곳을 봤다가, 포스트잇을 발견한다. 하, 생긴거랑 다르게 겁나 느릿느릿하네. 모르는 애가 아는척을 하면 의아한 표정을 지을 법 한데, 그 와중에도 무표정을 유지한다. 여러모로 참 신기한 애다. 내가 붙여놓은 포스트잇을 들여다보던 전원우는, 잠시 나를 보더니, 그 밑에 짧은 한마디를 끄적인다. 다시 포스트잇을 받아든 난, 잘생긴 얼굴과는 대조되는 글씨체에 귀여워-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는 내용이 내 입을 부루퉁,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누구]
와, 나랑 어제 거의 다섯시간을 마주보고 앉아 있었는데. 게다가 샤프심까지 빌렸는데! 나한테 적지않은 충격을 주고서도 뭐가 그렇게 태평한지 내 반응은 안중에도 없다. 아까 고민하던 문제가 풀렸는지 찌푸리고 있던 인상도 부드럽게 펴졌다. 그러니까 더 잘생ㄱ..아 아니지. 아무튼 전원우. 친해지는 것도 절대 쉬울 것 같지 않다.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학교 도서관에 남아 자율학습을 하던 학생들도 집에 가야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도 주섬주섬 가방을 싸고, 말이라도 걸어볼까 하는 생각에 앞을 쳐다보면 덩그러니 의자만 놓여있다. 뭐지..? 아깐 그렇게 행동이 느리더니..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잠시 멍하다, 나도 얼른 집에나 가자, 하고 서둘러 학교를 빠져나왔다.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면서도 전원우가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아서, 한숨을 푹 쉬며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중학교때 부터 친구인 김민규. 축 처진 목소리로 야, 잠깐 나와봐- 하니 금세 달려나온다. 이럴땐 참 동네친구가 좋아.
"야. 나 좋아하는 사람 생김."
"뭐?누군데."
"우리학교 앤데. 알아? 전원우라고?"
"전원우? 걔 좋아한다고?"
아, 김민규도 참고로 우리학교다. 남자애니까 알까 싶어 물어봤더니 아는 눈치다. 전원우 좋아하냐는 말에 고개를 폭풍으로 끄덕였더니, 띠꺼운 표정을 짓는다.
"야. 아무리 좀 지났어도 그렇지. 나 너 좋아했거든?"
"근데 뭐. 지금은 아니라며!"
"지금..! 하. 아니다."
"전원우랑 어떻게 친해지지, 응? 좀 도와줘봐. 남자니까 더 잘 알수도 있잖아?"
"아니, 근데 걔는 어쩌다가 갑자기 좋아하게 된건데?"
"첫눈에 뿅-..헿"
첫눈에 반해버렸다고 말하자, 김민규는 못볼 걸 봤다는 눈으로 날 쳐다봤다. 참나, 알았다 알았어. 죄송하다고, 미안하다고 오십번은 사과하고 나서야 표정이 조금 나아졌다. 그래도 김민규를 닦달해 몇 가지는 알아냈다. 전원우는 키가 아주 크다는 것. 자기보다는 작다고 얼마나 으쓱대는지. 한 대 쳐버리려다 말았다. 그리고 전원우는 이과반, 1반이라는 것. 난 문과반인 10반이라서 반을 듣고는 끝과 끝이구나-하고 실망했다. 그리고 전원우는, 여자에게 관심이 전혀 없다는 것. 내가 이 사실을 듣고 내심 좋아하자 뭐가 좋냐며 김민규가 어이없어했다. 그래도, 이여자 저여자한테 다 친절한 것보다 나한테만 친절한 게 낫지 않나. 내 생각을 말하자, 전원우가 너한테도 관심 없다는 생각은 안해봤냐며 내 사기를 팍 죽여버리는 김민규다. 에라이. 꼭 초를 쳐요. 김민규는 내가 계획을 늘어놓을 때 마다 훼방을 놓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꽤 좋은 정보들을 줬다. 기특해서 내 옆에 앉아있는 김민규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 쓰담쓰담 해줬다. 갑자기 자기 머리위에 있는 내 손을 턱 잡더니 그대로 벌떡 일어선다.
"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덕분에 내 팔 빠질 뻔 했다 ^^.. 괘씸한 김민규의 등짝을 몇대 짝짝 때려주고 나서야 헤어질 수 있었다. 집에 들어와서 씻고 침대에 눕자마자 계속 기도를 하며 잠들었다.
'내일도 전원우 앞자리에 앉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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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리는 ㈜독고다이라고 합니다!
잘부탁드려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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