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그 잉크가 좋았습니다. 선물을 받은 일도, 계절이 지나는 산중 같은 잉크의 색도 좋았지만 제가 더욱 기뻤던 것은 그것을 제게 준 이가 문방(文房)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좋아하는 이에게 좋아하는 것을 건네는 법이니까요.
-
선배, 제가 돌절구를 보내드린 일이 있지요. 얼마 후 그것을 받은 선배는 "한참 들여다보고 만져도 보고 쓰기가 아까워서 보고만 있구나"라고 하셨고요. 콩이나 깨 같은 것을 찧고 빻으시라고 보내드린 것이 아니라 선배가 좋아서 보낸 것이었습니다. 사실 돌절구의 원래 값보다 선배가 계신 독일까지의 소포 값이 더 나왔는데, 영수증에 찍힌 숫자를 보며 웃었던 기억도 납니다. 그리고 이렇게 늦은 생색을, 그것도 아주 제대로 내고 있는 지금도 혼자 웃고 있습니다.
-
여리고 순하고 정한 것들과 함께입니다. 살랑인다 일렁인다 조심스럽다라고도 할 수도 있고 나른하다 스멀거리다라는 말과도 어긋남이 없습니다. 저물기도 하고 흩날리기도 하다가도 슬며시 어딘가에 기대는 순간이 있고 이내 가지런하게 수놓이기도 합니다. 뻗으면 닿을 것 같지만 잡으면 놓칠 게 분명한 것입니다. 따뜻하고 느지막하고 아릿하면서도 아득한 것입니다.
-
둘러 적었지만 사실 이 화가의 고민은 곧 저에 관한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저마다 상처들이 점처럼 찍혀 있고 물론 저에게도 숨겨지지 않는 큰 점 같은 상처가 있을 것입니다. 이때의 글은 사람의 상처와 얼마나 마주해야 할까요. 아니 꼭 글을 쓰지 않더라도 말을 뱉거나 생각을 할 때 우리는 자신과 타인의 상처를 어떻게 직면하거나 애써 외면해야 할까요.
만약 제가 화가였다면 그 사람의 옆으로 가서 스케치를 시작했을 겁니다. 점이 보이지 않는 한쪽 얼굴만을 그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소홀이나 왜곡이 되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옆모습을 그리고 있노라면 어느새 바람이 불어와 그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휘날려줄 것입니다.
-
그때 저는 침묵도 부드럽고 다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침묵을 불편해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침묵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참 귀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어떤 말이 침묵을 닮았고 또 어떤 말은 침묵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그때 배웠습니다.
-
네 형편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내가 칠만 원을 줄게. 너는 오만 원만 내. 그러면 십이만 원이 되잖아. 우리 이 돈으로 기름 가득 넣고 삼척에 다녀오는 거야. 네가 바다 좋아하잖아. 나는 너 좋아하고.
-
용서 못할 사람이 잘못이지, 용서 못한 사람이 잘못인가? 노력해서 누군가에게 용서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은 내 노력으로 안 되는 거야. 잘못보다 더 천천히 와야지, 잘못보다 몇 배는 더 어려워야지. 용서라는 것은 말이야.
-
하루의 해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우리의 생이 그러하듯이 삶을 살면서 맺는 관계들도 모두 이렇게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시작은 거창했는데 끝이 흐지부지 맺어지는 관계도 있고 어서 끝나서 영영 모르는 사람으로 살았으면 하는 관계도 있고 끝을 생각하기 두려울 만큼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관계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짧은 기간의 교류든 평생에 걸친 반려든 우주의 시간을 생각하면 모두 한철이라는 것이고, 다행인 것은 이 한철 동안 우리는 서로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잘도 담아둔다는 것입니다. 기억이든 기록이든.
모든 시리즈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인스티즈앱 
우리나라에서 1순위로 없어져야 할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