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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어린 사람 같았다. 두 눈을 멀겋게 뜨고서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색함에 쭈뼛거리며 간이용 침대를 꺼내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침대 위에 앉은 사람을 보았다.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 멀겋게 뜬 눈이 드디어 나를 보았다.
"양 한 마리만 그려줘."
어린아이가 떼를 쓰듯 고집 가득 섞인 말투였다. 분명히, 이 사람도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군말 없이 근처에 나부끼던 신문지를 들어 양을 그렸다. 털이 없는, 갓 털을 깎은 양이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그 신문지에 그려진 양을 보고서 말갛게 웃었다. 이거, 맘에 들어. 침대 옆에 위치한 서랍을 열고서 가위를 꺼내 들어 정성스럽게 양을 잘라내는 손길이 섬세했다. 딱딱한 간이침대가 불편해 몸을 이리저리 비트는 나를 가만히 보더니 자신이 옆으로 비키고서는 다시 가위질을 시작했다. 눈치를 보며 슬며시 궁둥이를 붙이고 앉았다. 가위를 잡은 오른손 손등에 남겨진 흉터. 가슴이 이상하게 울렁거렸다. 작은 창 사이로 들어오는 붉은빛이 손등을 비춰 흉터가 더욱더 그 괴기스러움을 드러내었다. 자신이 하려던 일을 다 마쳤는지 가위를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두고서 잘라진 양 그림을 침대 헤더에 붙였다. 손목까지 끌어올려 진 옷 소매는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지 못했다. 궁둥이만 붙이고 앉아있는 내게 또 다시 잠깐의 시선을 던지고서는 내가 쥐고 있던 볼펜을 뺏어 들어 신문지 조각에 이름 석 자를 썼다.
"전 김유권이에요."
말간 웃음을 또다시 보았다. 이태일. 그 석 자가 가슴에 비수처럼 꽂혀 빠지지 않았다. 우리의 처음 만남도 이처럼 어색하고 조용했으며, 서로의 상처를 의도치 않게 보여주었었다. 손목의 날카로운 상처 자국과 손등의 흉터. 붉은빛이 마침내 새하얀 병실을 가득 채워 또 다시 핏빛 전쟁터로 만들었다. 길고 얇았던 감정의 선은 끊어졌지만, 난 다시 그 감정의 선을 이어나가길 원했고, 이태일 또한 내게 그 웃음을 보여줌으로써 끊긴 감정의 선을 다시 주워들었다. 침대 헤더에 어색하게 붙은 털 빠진 양이 자신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었다.
"넌 언제 가?"
입술을 물고서 애써 웃으며 엉덩이를 떼니 내 옷깃을 붙잡았다. 너 가라는 소리가 아니었어. 갑작스레 찾아온 침묵이 벌컥 열린 병실 문으로 인해 깨어졌다. 여전히 이태일의 옆을 지키고 있는 듬직한 동생.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나를 모르는 사람인 척하려는 노력이 눈물겨웠다. 이태일이 잡고 있는 내 옷 소매를 억지로 떼어두고서 내 등을 밀어 병실 밖으로 나왔다. 병실이 어느 정도 멀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세게 벽에 밀어붙이고는 나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손과 바닥을 일정하게 두드리는 발바닥. 그리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그 눈동자도 제자리를 버티고 서 있지 못했다. 어째서 돌아온 것이냐고 쉽사리 묻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달싹이는 입술을 무시하고서 신경질적으로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나는 이태일을 보러 온 것이었고, 이태일과의 만남을 이어나갈 구실을 만들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옷 소매의 한구석이 아직도 따뜻한 것 같았다. 기억은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몸이 가진 기억으로 이태일은 나를 추억하고 있었다.
"지훈아, 난 계속해서 태일이 형을 찾을 거야."
아무리 네가 숨기려고 해도, 난 어떻게든 찾아낼 거야. 쿵 하고 울리는 소리가 등 뒤에서 퍼져 나왔다. 분을 삭이지 못하는 멍청한 아이를 등 뒤에 두고서 병원을 빠져나왔다. 들어오기 전까지는 삭막하기만 했던 병원의 회색 건물이, 이태일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밝은 빛의 색들로 물들었다. 이태일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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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기적이지는 않지만 완결을 향해 끝까지 뛰어간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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