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 조각글
W. 깔로레
어디가 아래고 위인지도 구별이 안갈 만큼 세상이 온통 새하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고 오직 나 혼자만 동 떨어져 있다는 자각에 두려워 손끝을 떨었다. 불안한 눈동자를 빠르게 굴리며 이리저리 걷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나는 누굴 찾고 있는 거지? 분명 입으로 부르고 있는데도 알수가 없었다. 한동안 앞으로만 내달리다, 갑자기 흰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불안했다. 벽이 천천히 갈라지더니 발밑에서도 쩍쩍 갈라져 그 안에 검은 내벽이 보였다. 저 속으로 떨어 질 것 같아 금을 피해 뒷걸음질 치다가 땅을 박차고 반대편으로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목이 터져라 이름을 불러 뎄다. 제발..어디 있니. 엉망인 내 정신 상태와 같이 얼굴은 언제 흐른 지도 모를 눈물로 엉망진창 이였다. 그 이후로도 정신없이 얼마나 달렸을까 눈물로 가득찬 흐릿한 시야에 멀리서 어떠한 형체가 보였다. 그것을 의심할 세도 없이 가까이 빠르게 다가갔다. 눈 안에 완전히 들어올 때 즘 달리던 발을 멈추고 천천히 다가가 그 옆에 살며시 무릎을 내렸다.
그래..너였지. 내가 애타게 부르던 사람. 내가 애타게 찾던 사람.
"영재야.."
공포감과 불안감은 눈 녹듯 사라진 체 평온하게 누워있는 영재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손으로 쓸었다. 보드라운 감촉이 손끝을 에서 느껴졌다. 이번엔 가지런히 정돈된 머리를 한 번 더 손으로 정리해 주었다. 행여나 놀랠까 손짓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지만 어째서 인지 영재는 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영재야? 여린 가슴을 토닥거리며 깨워 봤지만 손끝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쩐지 아까 느꼈던 불안감보다 지금이 더 불안한 것 같다. 어째서 그 동그란 눈으로 날 봐주지 않는 걸까.. 파르르 떨리는 숨을 뱉고, 영재의 얼굴을 향해 가슴위로 귀를 올렸다. 깊은 잠에 빠졌다면 어서 깨어나길 바란다. 너가 꾸고 있는 꿈이 아무리 달콤해도 깨길 바란다. 간절한 마음과 함께 잠시 내 숨을 멈춰본다. 공기가 지나가는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는 정막 이였다. 내 귀와 영재의 가슴은 평온하기도 했지만 심란하기도 했다. 왜..너가 이러고 있는 건데. 고개를 들고, 너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보니 얼굴이 창백하기만 하다..안쓰러워 내 체온이라도 나눠주려 볼에 손을 갖다 대는데 순간 티비가 지직 하는 것처럼 시야가 어긋나더니 깨끗하기만 하던 영재의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모습이 보였다. 말도 안 돼는 모습에 눈을 질끈 감고 뜨며 시야를 고쳐 보려했지만 지직거리며 평온한 모습의 영재와 피투성이의 영재가 번갈아 가며 보였다. 영재야! 영재의 몸의 내 손이 닿자 지직 거리던 것은 사라졌지만 어째서 인지 피를 온몸에 뒤덮고 있는 영재의 모습이었다. 벙한 상태로 얼굴만 바라보다 영재에게 닿았던 내손에도 피가 흥건히 묻어져 있는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랬다. 어떻게 된 거지? 한곳에 두진 못한 시선은 영재의 배에서 꿀렁꿀렁 새어나오는 피를 발견했다. 시뻘건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어떻게, 어떻게 영재야.. 피를 어떻게 멈춰야.. 그때 다시 한 번 시야가 어긋나더니 지직 거리며 영재의 모습이 보다 끔찍하게 보여졌다. 피가 새어나오던 곳에선 선명한 칼이 꽂혀져 있는 것이 보이는 과 동시에 귀를 틀어막고 소리를 질렀다.
"아악!!"
괴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식은땀을 뻘뻘 흐리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생경한 꿈에 한손으로 머리를 쥐어뜯곤 몸을 말았다. 영재..영재..영재야..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와 토닥거려주었다.
왜 그러니 아가?
"....꿈을 꿨어요."
무슨 꿈을 꿨니?
"영재가 나왔어요."
영재가 꿈에 나오는 게 괴롭니?
"아니에요.."
그럼 왜 몸을 떠니?
"영재가 예쁜 눈으로 바라봐 주지도 않고, 맑은 목소리로 절 불러주지도 않고, 그냥.."
평소랑 달랐니?
"피투성이였어요.. 전 불안해요.."
영재가 죽은 건 아닐까 가?
"아뇨"
그럼 무엇이?
"제가 그 아이를 죽였을까봐요."
누군가의 토닥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넓고 아무것도 장식되지 않은 썰렁한 방에 형과 마주본 체 조그마한 등받이 의자에 앉아 두 다리를 올려 무릎을 모았다. 언제나처럼 카메라가 나를 비추고 있었고, 형은 책상위에 흰 종이와 녹음기를 켜둔체 올려놓았다. 그리고 서른번째 상담시작. 이라 말하고 언제나와같은 첫마디를 연다.
"오늘 기분은 어때?"
"....나빠요"
평소와는 다른 대답에 형이 잠깐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다가 표정을 고치고는 나긋나긋하게 이유를 물었다. 이유? 무어라 말해야 될까.. 꿈? 영재? 아니면 나?
"나쁜 꿈을 꿨어요."
"어떤 꿈?"
나는 꿈의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면서 눈을 찡그렸다. 살짝 토기가 올라오는 것 같아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반대편에서 아무 소리도 없다가 종이자락이 넘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말하기 힘들며 억지로 말 안 해도 돼 라고 조용히 말을 했다. 정말 안 해도 되는 거야? 살짝 고개를 들어 형을 쳐다보았지만 그저 미소만 짓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어?"
"아직 더 할애기 남았잖아"
형은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짓곤 손에 쥐고 있던 볼펜을 이리저리 돌렸다.
"오늘 대현이 좀 다른 것 같아"
"그런가요? 전 딱히.."
"그래? 근데 형이 아까 우연히"
우연히? 이곳에 우연이란 없다.
"우연히 너가 방에서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거야?"
"...나쁜 꿈을 꿔서 그 꿈에 대해 애기 하고 있었어요."
"누구랑?"
"악몽을 꾸면 항상 달레주시는 분이예요"
"언제나 같이 계셔? 그게 누구니?"
"누..구..?"
누구? 그 사람이 누구냐고? 날 항상 다독여 주던 사람. 거의 매일 같이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인 것 같은데 막상 생각하려 하니 내 머릿속에서는 그 사람의 손끝조차도 그려지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퍼즐조각이 흩어지고 혼자서 열심히 떠들고 있는 그동안의 나의 모습이 빠르게 지나갔다. 다리를 내리고 머리카락을 살며시 쥐고 쓸어내렸다. 혹시 그 사람이. 형의 말 따윈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혹시 그 사람이 영재니?"
정신없게 돌아가던 테잎이 뚝 끊긴 것처럼 머릿속 회로가 잠잠해졌다. 그리곤 무서울 정도로 침착하고 올곧은 눈으로 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영재는..없잖아"
"왜 없다고 생각..해?"
형이 쥐고 있던 볼펜을 책상위에 내려놓았다. 꿈에서의 나만큼이나 불안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어? 형의 말에 이번에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한동안 마주한 시선은 어느 한쪽이 굉장히 울 것 같은 눈이었다. 형은 시선을 먼저 돌리며 아까와 같이 대답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볼펜을 쥐고 종이에 무언가를 열심히 끄적였다. 그런 형의 볼펜 쥔 손을 슬피 보다가 이로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말해? 형의 손이 멈추었다.
"내가 말하면 형이 편해져? 형은 내가 영재를 죽였다고 말하길 바라는 거야?"
형은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나를 비추고 있는 카메라를 황급히 끄고 책상에 올려 두었던 녹음기를 들어 끄려 긴장한 손으로 손톱으로 긁듯이 이것저것 눌러보았지만 뭐가 안 되는지 결국 녹음기를 바닥으로 내던졌다. 굉장한 파열음과 함께 녹음기는 산산조각이 났다. 형은 가쁜 숨을 씩씩 몰아쉬곤 나에게 다가왔다.
"방금한 애기는 없던걸로하자..오늘 상담은 여기까지 하자..이거 풀어줄게"
내 두 손에 달린 수갑을 풀어주려 가운 주머니에서 조그만 은색열쇠를 꺼냈다. 열쇠를 들고 가까이 다가온 손을 차랑거리는 수갑 소리를 내며 형의 손을 잡았다.
"진짜 내가 죽인거야?"
"..."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거야. 나도 이제 내 기억을 어디까지 믿어야 되는 건지 모르겠어... 언제부터인가 영재가 내옆에서 사라졌어.. 도중에 기억이 끊겨버린것처럼 가운데가 백지장이야.."
"대현아.."
"결국 그 아이를 죽인거야? 그 여린 애를 죽였어.."
"그만해"
"지금도 죽였다는 것도 실감이 안나..기억이 안 나거든. 근데 그 애는 많이 아팠을 거 아냐? 엄청 괴로웠겠지? 근데 정작 나는 아무 기억도 못하고 살고 있어..진짜 뻔뻔하지? 응?"
의자가 뒤로 넘어간 채로 서있는체로 손이 부들부들 떨릴만큼 형의 손을 세게 움켜쥐고 엉엉 소리 내며 울어댔다. 밝았던, 행복했던 날의 영재가 아닌 차갑게 식어갔을 영재가 떠올라 너무 서러웠다. 꿈에서의 모습이 정말로 그날의 너라면, 너는 얼마나 아팠을까..얼마나 무서웠을까. 가슴이 사무쳐 온다. 기억도 못하는 죄책감과 너를 향한 그리움, 서러움, 미안함, 그리고.. 너의 대한 내 연정에 때문에.. 가슴이 사무쳐 왔다.
앞뒤 내용 전개 없는 조각글입니다 ㅎㅎ;
그냥 머릿속에서 파박 떠오른 글이라 건성건성 끄적여 봤습니다~
대영이들...해,,행쇼 ㅠ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