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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정국/진국] 어쩌다 결혼 - 3 | 인스티즈



W. 맥스








  외로워도 슬퍼도 아무렇지 않은 척 아르바이트에 나오는 게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습관처럼 굳어진 데는 별 다른 이유가 없었다. 다만, 요즘의 정국은 아주 가끔 현실에 대한 암울한 생각 따위를 하는 횟수가 늘었을 뿐이었다. 조끼에 커다란 이름표를 꽂고 비척비척 카운터로 걸어가는 정국의 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다.  

 심사가 잔뜩 뒤틀렸던 일주일 전 혈육과의 만남 후로 여전히 속이 더부룩했다. 아침 나절 내내 속이 안 좋아서 문자 몇 통 내내 징징거렸더니, 좋은 게 친구라고 재헌이 금세 근처 약국에서 소화제를 바리바리 싸 들고 편의점에 들어왔다.

 재헌에게 뭘 사 줄까 하는 쓸데없이 고민을 하는 것도 잠시, 금세 과자가 줄 세워진 코너에서 간단히 요깃거리를 가져온 재헌은 제 호주머니를 털어 익숙하게 포스기를 찍었다. 마이 셀프. 요상한 뒷 말을 붙이며 말이었다. 재헌의 적응 안 되는 하이 텐션이 10년 동안 한두 번이었을 리도 없다. 흐른 세월이 무색하지 않게 정국은 가볍게 무시하며 건넨 봉지에서 소화제를 꺼내 그대로 위장에 털어 넣었다.

   “뭔 일 있냐? 얼굴이 거의 잿빛이 됐는데.”

  재헌은 손놀림을 보고 있다가 말라 비틀어진 얼굴을 흝었다. 며칠 전엔 그나마 살 만한 거 같드니, 오늘은 죽을 사 자가 이마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분명 뭔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한데. 재헌이 나른히 눈썹을 치켜떴다.

   “지금 기분이 아주 더럽거든. 그냥 구려.”
   “왜, 뭔데.”
   “나 6년만에 형 만났어. 뭐, 만났다기보단 마주친 거지. 예상했지만 배아프게 훨씬 더 잘 살고 있더라.”

  형? 혹시 전 정준? 재헌이 커다랗게 눈을 뜨고 눈치를 봤다.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으니 정준이라면 몇 번 마주쳐서 익히 알고 있었다. 재헌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머리 굴리는 소리가 밖까지 새어 나왔다. 정국이 턱을 괴고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온 몸에 명품이란 명품은 다 걸친 거 있지. 근데 그 상황에서도 옷 보고 저 돈이면 몇 년은 먹고 살겠다 라는 생각이 드는 내가 너무 불쌍하더라. 나는 누구 덕에 빚 갚고 1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한 달을 겨우 살아내는데 말이야. 근데 그것보다 더 비참했던 건,”
   “… ….”
   “… 형이 너무 행복해 보이더라.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거든. 그리고, 부러웠어. 난 육년 전 형 나이를 훌쩍 넘겼지만 아직도 창신동 그 쪽방의 기억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 했는데 말이야.”

  오늘도 찾아온 그 기억은 또 머릿 속을 어지렇게 헤집어 놓았다. 좋은 기억은 쥐뿔도 없는데 자연스럽게 나쁜 고민들은 머리 한 편에 또아리를 틀고 점점 커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한숨이 나왔다. 그런 와중에 훅 들어온 생각은 커다란 파도를 일게 했다.

 무슨 생각이냐 하면,

   “나도 좀 행복해지고 싶다, 재헌아. 지금보다 아주 조금만 더.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정국은 처음으로 든 생각을 꺼내며 혼란스러워 했다. 지옥불에서 빠져 나갈 구멍 하나 없는데 위장에 고급 음식 한 번 채워졌다고 바람이라도 불었나. 이런 생각을 왜 하는지 스스로 도통 알 수가 없어 한참을 입술을 깨물었다. 그냥 잠깐 헛소리 짓껄인 거야. 착잡해진 재헌의 표정을 읽고 입 밖으로 나오는 변명을 집어 냈지만 속은 전혀 편하지 않았다.




















  겨우 한 시를 향해 가는 상황에서, 결국 참고 참았던 잠이 조금씩 쏟아졌다. 집무실 쇼파 한 켠에 기대어 있던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눈감아버렸다. 간만에 찾아온 평화는 참았던 눈꺼풀이 내려 앉기에 충분했다. 안경을 벗고 한 쪽 구석에 널부러진 방석을 턱 아래로 끌어당긴 석진은 깊게 얼굴을 묻었다.

 잠시 눈을 감고 있는다는 것이 잠이 든 모양이었다. 깊은 수마 속에서 뒤척이다 겨우 정신을 불러 깨워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 열기에 비몽사몽한 상태로 핸드폰을 보니 실장의 부재중이 몇 통 채워져 있었다. 잠든 것 같아 저를 찾는 전화는 우선 메모로 남겨 났다는 연락이었다. 솔직히 깜짝 놀랐지만 석진은 태연한 척, 먼저 퇴근해도 좋다고 일렀다. 그리곤 망했다. 라는 생각으로 마저 밀린 일을 끝내버렸다.

 정확한 기한은 없었지만 삼일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신속하게 정리를 마친 비서실은 요청하신 자료를 전달드린다며 말을 전했었다. 그 길로 석진은 목요일 저녁에 보자며 단체 연락을 돌렸다. 어느새 큰 바늘이 7로 향하고 있었다. 한 층 아래로 내려가 코너를 돌면 바로 있는 회의실이었다. 회사 복도엔 어둠이 가득 찼다. 넓은 보폭으로 거닐던 석진이 거대한 갈색 원목 문을 열어 젖혔다.

 이 정도까진 생각을 못 했는데, 책상 위에 놓인 수많은 이력에 대한 자료들과 밀려 들어온 사진들이 어지러웠다. 이미 완성된 파일은 모니터에 띄워져 있었다. 대충 눈으로 흝어도 꽤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된 자료였다. 위로 그림자가 비친다 했더니 낯익은 인물들이 속속들이 인사를 건네며 들어 왔다. 대내외 행사 일정을 조정하는 현진과 활동 보좌를 주로 담당하는 진우였다.

   “전 정국. 스물 다섯, 현재 한국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3학년 재학 중입니다.”

  사뭇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팔걸이에 손을 얹어 턱을 괴고 바라보던 석진의 눈이 서류를 세세하게 읽어 내렸다.

   “가족관계는 2남 중 차남으로, 어머니 김 진숙, 아버지 전 수영, 형 전 정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만, 확인해 보니 어머니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행방을 알 수 없습니다. 형 또한 오래 전 인연을 끊은 것 같은데, 처벌 받은 전력 있는 전과범입니다.”

  조사 내용을 모니터에 띄우며 진우는 차근히 발표했다. 석진은 이 상황에 집중하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좀처럼 이성적일 수가 없었다. 정국의 인생과 연결지어 나오는 최악의 상황 따위가 자꾸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앉았다. 

   “월곡동 인근 달동네에서 월세 15에 살고 있고, 대출 연체액으로 신용 회사에선 이력이 몇 번 공유된 적이 있다 합니다. 공과금 체납 처분도 들어갈 뻔 했고요. 아르바이트 세 개로 겨우 생활비를 충당하는 모양입니다.”

  더 구구절절 하게 듣지 않아도, 정황 상 곤란한 상황인 건 분명했다.  

 그간의 조사 내용이 담긴 서류를 넘기며 진우는 집중했지만 석진은 입술만 짓이기고 있었다. 자료 위로 둥둥 떠다니는 적잖은 당황스러움에 살짝 넋을 놓을 지경이었다. 글자를 읽으려 해도, 그 글자가 곧 뱀처럼 움직여 흐물거리며 튕겨내지고 있었다. 세상 불행은 혼자 다 짊어지고 있잖아? 석진이 한껏 인상을 찌푸리며 자료를 테이블 위로 내려놨다. 

 왜인지 속이 쿡쿡 쑤시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가라앉았다.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만큼 다양한 사정들이 등장했지만 정국의 경우는 뭔가 달랐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지 아무런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씩씩하고 명랑한, 그 나이대에 볼 법한 지극히 평범한 인상이었는데. 

 깨알 같은 글자가 담긴 서류를 유심히 읽으려 했지만 진우가 다음 섹션을 펼치는 통에, 바로 뒷장을 넘기고 시선을 올렸다.

   “그럼, 졸업 후 계획에 대해서는요.”
   “아, 네. 두 장 더 넘기시면 ….”

  석진이 입을 열자 그 한 단어, 한 단어를 듣고자 모두 분주히 움직였다. 말 한 마디에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여실히 느껴졌다. 

   “조각가를 희망하는 것으로 보여지나 아직 확정된 건 아닌 듯 싶습니다. 외국 명문 미대에서 유학 제의도 들어왔는데 당장의 형편 때문에 포기했고요.”

  진우는 석진의 생각에 쐐기를 박으며 다시 한 번 정의를 내렸다. 아, 참 어렵네. 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얼굴을 가리자 못 견디게 현실감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능력은 출중하나, 집안 형편이 안 좋고,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꿋꿋히 살아낸다라. 3연타 홈런 박은 드라마 속 캔디형 주인공을 쏙 빼닮아 있었다. 

 이미 아래로 흩뜨러진 머리를 쓸어넘기는 석진의 미간이 불썽사납게 구겨졌다.

   “밥은 잘 먹고 지낸답니까?”
   “… 네?”
   “가정형편 안 좋다면서.”

  질문의 요점을 찾지 못 하고 헤매는 진우에게 부가 설명을 붙여 넌지시 묻자, ‘하루종일 일하느라 밥 먹는 시간이 따로 없는 것 같았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 왔다. 

 19살 때부터 혼자 쭉 살았다길래 예상은 했다지만 괜히 불편한 부분까지 알아버린 것 같았다. 이제 와서 웬 동요냐 하면, 글쎄. 그냥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안타까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굳이 일깨우려 하지 않아도 이끌리는 본능적인 감정이었다. 
 
   “그 외 더 알아 보려고 했으나 워낙 생활 패턴이 일정하고, 별 다른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아서 일단 마무리 지었습니다.”

  진우는 말끝을 흐리며 석진의 뒤에서 손을 모으고 몸을 숙였다. 확신하건대 온전한 정보를 건네기 위해, 어떻게든 알아내기 위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알아내지 못 했다는 것은 정국이 어디에도 쉽게 속사정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그만큼 감추고 싶은 비밀 같은 것 말이었다. 어쩌면 주변에도 알리지 않거나 극소수만이 알고 있을.

 석진이 상념에 빠졌음을 알아챈 진우는 아무런 말 없이 기다렸다. 어쩔수 없음은 있기 마련이었고, 더이상의 것을 알고 싶은 석진의 호기심도 동이 난 지 오래였다. 만년펜을 톡톡 두드리던 석진은 특유의 나직한 한숨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여기서 마치죠.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펜촉을 꾹 힘을 주어 눌러 몇 글자를 적어 내렸다. 메모지에 금방 잉크가 번졌다. 

   “이건 내일 실장님께 전달해 주세요.”

  「 승낙하면 14일 오후로 전 정국 씨랑 약속 잡아 주세요. 」 한 귀퉁이에 휘갈기듯 적은 메모와 그 중에서도 중간쯤에 자리한 정국의 이름을 의문이 가득하게 뚫어져라 쳐다보던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영문인지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어 궁금해도 차마 묻긴 어려운 눈치였다. 

 회의실은 직원들이 빠져 나가기 무섭게 조용해졌다. 영 껄끄러운 심경이었지만 며칠 동안 오며 가며 정리한 정성을 봐서라도 일단 던져 보기로 했고, 또 무엇보다 돈이 절실한 정국과 거슬리지 않을 만한 상대를 찾는 자신이 상생 관계가 될 수는 있을 것이었다.

 부글거리며 끓는 속을 찬물로 달래며 석진은 푹 고개를 처박았다.




















  작업이라는 것은 없으면 허전하고 있으면 귀찮음 투성이 같은 것 존재지만 하고 나면 매번 하기 잘 했다고 느끼고는 했다. 고학년인 정국의 입장에선 이력서 한 줄 적기용 스펙이었다.


 용접이 떨어져 내내 응급처치에 열중하다 보니 얼추 점심시간 가까이 되었다. 야외 작업을 마친 후 온갖 석고와 폴리가 묻어 딱딱하게 굳은 작업복을 입고 건물로 들어서던 정국은 엘리베이터가 눈 앞에서 닫히려 하길래 간신히 누르고 탔다. 사람이 꾹꾹 눌러진 만원 엘리베이터에 타니 저절로 몸이 압축되었다. 냄새가 배진 않았는지 킁킁 대다 뒷 사람이 코를 팽 하고 푸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몸을 움찔했다. 냄새를 잡아 준다는 섬유탈취제를 써 보아도 찌든 작업의 향기는 늘 골칫거리였다. 

 내리자마자 왼쪽 벽에 붙어 있는 조소과 과실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그나마 빨리 스타트를 끊었던 무리는 목이 빠질 듯이 규칙적으로 고개를 아래로 떨구며 졸고 있었고, 아예 안방 마냥 수면을 취하기도 했다. 그 외의 무리는 졸려 죽기 직전이라는 얼굴을 하면서도 볼기짝을 세차게 내리쳤다. 안 하면 죽음뿐. 지독한 과제의 고통 속에서 함께 하는 전우애였다. 

   “우리 밥 시켜 먹자. 나가긴 글렀고, 다들 중국집 어때?”
   “콜. 지금 아사 직전이야.”

  모두 점심만 기다려 온 것처럼 밝은 톤으로 외쳤다. 행동대장 재헌은 금세 다닥다닥 과실 문에 붙은 사각형의 쿠폰을 챙겨 들곤 전단지를 살펴 보았다. 오른 쪽 상단의 중국집 이름으로 시작해서 단품메뉴와 몇 개의 세트, 가격대까지 조촐하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저렴한데다가 학교 앞이라는 유리한 지리적 위치 덕에 성황리에 운영 중인 곳이었다. 

   “자장면 여섯 개에 탕수육 대자 2개로 통일한다? 쿠폰 서른 개 다 모았으니까 탕수육 하나 공짜로 받고.”

  토시 하나 안 바꾸고 자장면 질려서 더 먹다가는 면발이 코로 나오겠다며 그렇게 싫어하던 동기들도 원체 귀찮은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좋다고 말을 반복했다. 정국은 별 다른 말 없이 푸석한 제 머릿칼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뭐 하루 정도 배부르게 먹는 건, 생일 대신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훨씬 편했다. 

 역시 배달은 빠르게 왔다. 과실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은 익숙한 배달원이었다. 신문이 깔린 넓적한 테이블 위로 저마다의 그릇이 올라가자, 공구를 매만지던 장정들이 개떼처럼 우르르 몰려 들었다.

 다들 피로로 토끼 마냥 뻘건 눈을하면서도 젓가란 한 쌍씩 야무지게 뜯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정국은 주변을 둘러 보다 이내 제 젓가락도 두 개로 가르고는 긴 짜장면 줄기를 크게 떠 입 안에 넣었다. 배가 고프니 불어도 뭔들 다 좋았다. 입 안 가득한 짜장면을 우물우물 씹으면서도 정국의 시선은 대출 이자 납입 문자에 향했다. 한참을 머리로 계산기를 돌리고 있으니 재헌이 그것 좀 그만 보고 제대로 씹어 먹으라며 타박했다. 어깨를 으쓱여 보이곤 한 술 더 뜨려던 순간, 과실 문이 활짝 열렸다.

 갑자기 열린 문에 당황해서 황급히 옆 버튼을 눌러 화면을 어둡게 만들고 딴 짓을 하는 정국의 등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전 정국.”

  시끌벅적한 대화 사이로 얇은 미성이 들려 왔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동기 미나가 금세 눈을 마주치며 검지를 피고는 밖을 향해 손가락질 했다. 왜? 급히 휴지로 입가를 쓱 문질러 닦은 휴지가 휴지통으로 정확히 골인했다.

   “어떤 아저씨가 너 찾아.”
   “아저씨? 누구?”
   “미래그룹에서 왔다고 하던데?”

  정국은 대답할 타이밍을 놓칠 뻔했다. 난데 없는 미래그룹 타령에 너무나도 당황했다. 당황한 나머지 눈만 꿈뻑꿈뻑이다 잘못 들은 것일 거라고 판단해 재차 묻자 미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미래그룹이라니까. 하고 반문했다.

 그쪽에서 나한테 무슨 볼 일이 있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당혹스러움을 다 말로 할 수는 없어서 미동 없이 굳어버렸다. 진짜 공모전 합격 취소인가. 순간, 머릿 속을 스치는 생각에 한 대 얻어 맞은 사람처럼 정국은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일단 불렀다니 나가긴 하지만, 한 발짝씩 내딛을 때마다 정국의 표정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이 각양각색으로 바뀌었다.




















  미나의 말로는 미래그룹 사람이라던 한 남자를 만나기 위해 정국이 도착한 곳은 어느 한적한 카페였다. 3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걸어가면서 머릿 속은 시끄럽게 울렸다. 쉴 새 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댔다. 미래그룹서 날 왜? 내가 뭐 잘못했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옳은 답은 없었다.

 저 멀리 중후한 중년 남성이 반듯이 앉아 있었다. 자로 잰 듯 각 잡힌 검정 수트에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 정확한 자세와 한 치 흐트러짐 없는 눈빛까지. 정국은 기묘한 익숙함에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 숙여 인사하며 여기라는 표시를 보냈다. 정국은 어색한 미소를 띄우며 그 쪽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절 찾으셨다고 ….”

  어색한 대화가 공중에 흩어졌다. 쇼파에 느긋하게 기대 앉은 남자는 미리 음료를 시켜 놨다며 바로 앞으로 정국이 제일 좋아하는 커피를 건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짧은 순간 침묵이 흘렀다. 먼저 말을 튼 건 남자였다.

   “제 소개가 늦었네요. 미래그룹 비서실장 강 호영입니다. 긴장 안 하셔도 됩니다. 나쁜 일로 부른 게 아니니까요.”

  격식을 차리면서도 편안하게 분위기를 주도했다. 정국은 내밀어진 명함을 보며 잠깐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비서실장이라. 자세히 아는 건 없지만, 뉴스에서 가끔 보던 얼굴이었다. 순식간에 긴장한 탓에 쥐고 있던 명함이 살짝 떨렸다. 정국은 재빨리 명함을 쥔 손을 뒤로 감췄다.

 웃는 표정과 무표정의 갭 차이가 굉장히 컸다. 대화가 짤막하게 오고 갔다. 분위기가 약간 풀어졌을 즈음, 실장은 힐끔 쳐다보더니 가방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눈 앞에 들이밀었다.

   “바쁘실 텐데 시간 많이 뺏지 않고 본론만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정국 씨를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정국이 침을 꿀꺽 삼켰다. 목울대가 세차게 움직였다. 침 삼키는 소리까지 이 조용하고 어색한 적막에 울리는 것 같아, 정국이 살풋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김 석진 부회장님께서 정국 씨와 개인적인 식사 자리를 마련하고 싶어 하십니다.”

  이게 무슨 일이지. 피곤해서 이젠 헛소리까지 들리나? 정국은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도 함부로 항변할 수조차 없었다. 뭐랄까, 꿈 같으면서 지나치게 현실감이 느껴지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잘난 대기업 부회장이 뭣 하러 일개 대학생을 만나고 싶어 한단 말인가.

 왜…요? 하고 대답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이어질 말을 기다리는 동안 정국의 가슴은 터질 듯 쿵쾅거렸다. 결코 달가운 의미의 박동은 아니었다.

   “논의하고 싶은 게 있으시다고요.”

  미래그룹 비서실장이 거짓말 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진담이라니. 현실을 마주하자 정국은 그대로 얼어 붙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표정 변화 하나 없이 평안하게 대화를 하는 걸 보자 실장은 정국의 반응을 이미 예상하기라도 한 눈빛이었다. 눈치가 빠른 정국은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뭔가 아주 중요하고 은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을. 무릇 큰 회사에서 직접 찾아올 정도면 매우 중요한 일일 테니.

   “저희 미래그룹은 현재 비상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김 석필 회장님의 건강 이상은 이미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고, 회장님께서는 부회장님에게 후계 구도 체제가 굳혀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계십니다. 하지만, 다른 형제분 또한 만만치 않으시죠. 보수적인 집안에서 결혼은 필수적인 요소라 주로 그 부분으로 문제를 삼으시고, 회장의 충고도 무시하는 부회장의 후계 지위가 공고해지는 게 맞는 것이냐 하면서요.” 

  정국은 호기심 반, 정중함 반을 섞어 실장을 바라보았다. 뜬끔 없는 집안 속사정 타령에, 눈이 동그래졌다. 하지만, 실장은 표정에 별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서류 가방을 올려 놓고 비어 있는 큰 종이를 펼쳤다.

 흰 종이의 중앙을 짚은 실장은 현재 미래그룹의 실정과 가족사에 대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괴상한 분위기에 침묵이 흘렀다. 정국은 고민에 고민을 하며, 말 꺼낼 단어를 한참 골랐다. 그니까 이걸 나한테 왜 보여 주는 거지. 빙빙 에둘러 말한 것이었지만 눈칫밥 경력만 25년인 정국은 금방 촉이 왔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임을 뜻했다.

   “따라서 부회장님은 지금 결혼 상대를 찾고 계십니다. 대신 서로에게 윈윈이 될, 유효기한이 있는 계약 결혼으로요.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현재 정국 씨 형편이 여의치 않다는 걸, 저희가 알게 됐습니다.”

  대체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결혼은 또 무슨 소리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떠봐야 했다. 생각보다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위기였다. 숨을 한 번 고르고 입술을 떼려던 찰나, 먼저 선수를 친 실장이 가로채어 눈썹을 들썩였다.

   “부회장님께서는 정국 씨와의 결혼을 원하십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정국은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듯 했다. 이야기의 맥락이나 정황상 무언가 너무도 갑작스럽단 생각이 들었다. 실장은 그런 정국의 반응을 잠깐 살피더니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정국의 귀에는 사정이 안 좋은 걸 알고 왔으니 빼지 말라는 뜻으로 들렸다.

   “… 아, 아니. 잠시만요. 저기, 죄송하지만 제가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요.”
   “… ….”
   “부회장님이 저와 결혼을요?”
   “… ….”
   “동명이인이라든지 헷갈리신 게 아니구요?”
 
  너무 놀란 정국은 정확하게 뜻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의아함과 벙찜이 공존하는 표정을 단 번에 알아본 실장이 조금 더 자세히 그동안의 일을 전부 털어 놓았다. 재차 확인하는 정국의 얼굴이 점차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석진정국/진국] 어쩌다 결혼 - 3 | 인스티즈



  처음 마주한 실장의 말 사이의 괴리감. 제게 했던 말과의 간극. 그런 것들이 머릿 속을 어지럽혔다. 그가 던진 제안을 승낙하고 약속을 잡은 지금까지도. 정국은 오후 내내 방을 왔다갔다거렸다. 식사도 건너뛴 채였다. 셔츠에 가디건, 그리고 운동화를 신은 제 모습을 새삼 내려다 보았다. 학교 갈 때와 다름 없는 차림이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일방적으로 불러낸 건 그쪽이니 불만을 토로할 거 같진 않았다.

 바쁘게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새 창 밖에는 어둠이 깔려 있었다. 정국은 달력에 써 놓은 할 일 목록에 죽죽 검은 줄을 그었다. 부회장님 뵙는 날. 오늘의 칸은 새까맣게 색칠이 됐다. 자리에서 일어난 정국은 조용히 현관문을 닫고 서둘러 발걸음을 했다.

 30분 정도 가고 가니 어느새 으리으리한 호텔 한 채가 보였다. 핸드폰을 집어 든 정국이 전화를 걸었다. 단조로운 신호음이 들리자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정국의 손가락이 초조하게 셔츠 끝자락을 쥐었다.

 네다섯 번 정도 신호음이 울렸을까, ‘네. 정국 씨.’ 하는 대답이 들려 왔다. 실장의 목소리였다.

   “… 아, 저 도착했어요.”

  며칠 전 학교에 찾아 왔던 실장 호영이었다. 그는 저번과 같이 높낮이가 일정한 목소리로 어디로 찾아 가면 된다고 일러 주었다. 대답하는 입 안이 모래알을 씹은 것처럼 까끌거렸다.

 기다리고 있던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내부를 흘깃거렸다. VIP 전용 통로를 걸으니 아마 평생을 일해도 살 수 없는 값어치를 지닌 물건들이 줄지어 있어서 너무나 현실성이 없어 보였다. 묘한 기분에 고개를 돌리고 뒷모습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세 층을 더 올랐다. 엘레베이터는 빠르게 꼭대기 층을 향해 올라갔다. 얼떨떨 하면서도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실장이 말한 계약 결혼이란 것이 진심인지.

 며칠 전 만났을 때, 실장은 명목 상의 결혼을 필요로 한다며 한 번 김 석진 부회장을 만나 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결국 실장의 제안처럼 되고 말았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한참을 코너를 돌아, 복도 끝으로 가니 커튼이 쳐진 룸 하나가 보였다. 노란 불빛을 품은 구석자리로 가니 국가 기밀이라도 들으러 온 느낌이었다. 걷힌 틈 사이로 석진이 얼른 앉으라며 손짓했다. 푹신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 석진과 나란히 앉은 꼴이 됐다. 

 똑똑, 노크 소리에 정장 차림의 매니저가 공손이 인사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조형 예술품처럼 생긴 서빙 카트를 끌고와 능숙하게 차를 건네곤 다시 방을 떠났다.

 석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는 느긋하게 찻잔에 담긴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며 일단 차를 권유했다. 정국도 마지 못해 따라 한 모금 마셨다. 온기가 온몸 구석구석에 퍼지니 긴장이 녹진하게 풀렸다. 따스한 원두의 향 뒤에는 씁쓸한 카페인의 맛이 났다.

   “나와 줬네요. 고마워요.”

  석진이 먼저 말을 꺼냈다. 얼핏 들으면 안부를 묻는 거 같지만, 정국은 아마도 진짜 와줄지는 몰라 놀란 듯한 그 심정을 알아챘다. 정국이 쭈뼛대며 공손하게 다시금 인사했다.

 석진의 눈은 줄곧 정국을 향해 있었다. TV에서 볼 때보다 훨씬 얼굴선이 날렵하고, 눈매가 생각보다 날카로웠다. 그 서늘한 눈매에 담긴 눈동자가 무언가 하고자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결국 그 입에서는 예상했던 말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정국은 인생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버벅인데다가, 어리버리를 타고 있었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 봐도 카메라 같은 것은 없었다. 하긴 몰래 카메라 하면서 대놓고 설치하진 않겠지. 식은땀을 벌벌 흘리며 어색하게 웃는 정국을, 석진은 그저 진지하게 응시할 뿐이었다.

 설마 현실인가 싶어 눈을 감았다 떴지만 분명했다. 몇 번을 확인해도 마찬가지였다.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 지금 이 상황이 진짜란 거죠?”

  이제야 대화할 수 있는 상황이 되자 석진이 입을 열었다. 드디어 입에서 본론이 나왔다. 정국이 잔뜩 긴장했다.

   “긴 말 하지 않을게요. 난 전 정국 씨와 결혼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 ….”
   “지금 이 상황이 어이 없을 거란 거 잘 알아요. 어이 없는 걸 넘어서 의문이겠죠. 세상의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 왜 하필 전 정국 씨인지에 대해.”

  석진 말대로 기가 차서 턱 끝까지 차오른 말도 뱉기가 힘들었다. 이미 혼이 반쯤 가출한 정국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기계적으로 고개만 끄덕거렸다. 너무 순진하게도 정국은 표정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정국의 목이 녹슨 로봇처럼 삐걱댔다. 

 석진이 서두는 싹둑 자르고 바로 제안을 해 왔다. 금방 정국의 말은 묻혀버렸다.

   “요즘 같이 독신이 판치는 시대에 뒤떨어지긴 하지만, 원래 기업 가문들은 보수적인 성향이 세요. 당장 회장님부터가 결혼을 하고 마음이 편해져야 자연스럽게 회사 경영도 안정될 거라 믿으시고, 반대 세력들은 미혼을 앞세워 어떻게든 쫓아 내려고 하고요.”
   “… ….”
   “사실, 몇 년 전 결혼할 뻔 했어요. 보다시피 잘 안 됐지만.”

  이별을 말 대신 떠남으로 통보 받았던 그날, 크게 앓았다. 그렇게 병인 듯 시름시름 앓다가 1년을 넘겨서야 차츰 잦아들었다. 겨우 되찾은 이성과 함께 돌아온 현실감으로 다짐했다. 미완성으로 끝난 연애지만 이젠 마무리 짓겠다고. 하지만, 그 후 석진에겐 사랑이란 공식은 사라졌다.
 
 석진이 하는 말은 질문이 아닌, 그저 자신이 원하는 바와 그 목적에 대해 변론하는 대사였다. 석진이 건네는 말은 상냥했다. 그러나 좀처럼 정국은 눈을 마주치지 못 했다.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도 정국은 그 호화스러운 공간에 덩그러니 놓인 것처럼 섞이지 못 하고 굳어 있었다. 

   “그래서 현재의 나에겐, 결혼이란 수단이 절실해요. 대신 상대는 거추장스럽게 집안 얽히지 않고, 그저 담백했으면 해요. 기자들이 캐낼 게 없는, 평범한 사람이면 훨씬 베스트고요.”

  일이 년만 형식적인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 그 후엔 성격 차로 인한 이혼으로 기사를 내고, 이미 한 번 갔다온 것을 빌미로 집안의 의심을 사지 않고 독신 라이프를 즐길 수 있었다.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어차피 이젠 결혼 같은 건 수단일 뿐인데, 서류 상 누가 배우자로 기록되든 상관 없었다.

 단어를 순화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으며 석진은 턱에 손을 대고 한참이나 고민했다. 그리곤 띄엄띄엄 한 마디씩 보탰다. 종합하면 석진의 입장에서는 맞선 파토는 이미 써먹을 만큼 써먹은 패이며, 이젠 물러설 수 없어 적당히 몇 년만 유지할 결혼을 하고 싶다는 거였다. 배우자 자리가 비어 있으면 계속 질척거리며 귀찮게 굴 가족들이니까, 정국이 그 자리를 잠시나마 지켜 주면 좋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우리 회사 공모전의 대상을 수상하면서 존재를 알게 됐고, 미안하지만 전 정국 씨에 대해서 조금 알아 봤어요.”
   “… ….”
   “대학 등록금, 생활비, 등등. 필요한 게 많을 텐데.”
   “… ….”
   “결혼 기간은 깔끔하게 딱 1년 6개월. 나에게 중요한 사안인 만큼, 내 옆에 있어 준다면 그만큼의 보상을 할게요. 이혼 후 자립할 수 있는 위자료 및 부동산 지급. 어때요?”

  얼굴을 맞대고 있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딱히 극도로 긴장할 부분은 없는데 아무래도 앞에 있는 사람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영향에서인지 자꾸만 온 몸이 격징되는 게 자연스럽지 않았다. 이러다 유릿잔이라도 깨뜨리는 거 아닌가. 정국은 후들거리는 팔에 집중을 했다. 지금 마시는 커피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이해한 정국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솔직히 말해서 연애는 커녕 돈 벌기 바빠 친구도 몇 없는 처지로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감이 오지 않았다. 상황이 잘 이해도 가지 않아 머리 속이 혼탁해졌다. 

 평범하게 넘어갈 일은 아니다 싶어 최대한 자연스러워 보이게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 보였다. 상당히 경직된 상태라 이상해 보이면 어쩌나 싶었지만 다행이도 자연스럽게 표정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 그러니까, 잠깐 기간이 정해진 결혼을 하면 돈을 주신다는 말씀이시죠?”

  정국은 미간에 힘을 준 채 토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빠르게 이해해 나갔다. 하나한 듣다 보니, 석진이 원하는 결혼생활이 어떤 것인지 대강 그려졌다. 잠깐 옆 자리를 채워주고, 사이는 딱 계약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관계. 어쩌면 향후 1년 6개월 간 한 배를 탄 동료의 느낌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사이가 좋아 보이게 지내되 굳이 석진의 옆에서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정확히 이해했네요. 한 번 생각해 볼래요?”

  석진의 말끝이 정국에게로 향했다. 정국은 석진이 저에게 결코 심심풀이 땅콩으로 가볍게 툭 던진 말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저 철없는 재벌이 아니었으니. 하지만, 정국은 어떤 의도로든 인생에 또 하나의 큰 덩어리의 고민거리가 내려 앉았다. 다행히 석진은 그 입장을 이해했는지 천천히 고민해 보라며, 진정시킬 만한 운을 띄웠다.

   “그럼 핸드폰 번호 교환하죠, 우리.”

  설마 그 귀하디 귀한 핸드폰 번호까지 넘겨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정국은 깜짝 놀라 눈만 깜빡거렸다. 높은 사람이면 당연히 신원이 보장되고, 관계가 확실해질 때까지 직원을 통해서 연락을 주고 받을 줄 알았다.

   “전 정국 씨?”

  다시 한 번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정국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작이 얼마나 컸던지 그대로 의자가 뒤로 벌렁 넘어갔다. 둔탁한 마찰음에 앞에서 대기하던 직원의 괜찮냐는 목소리가 모였다. 당황한 얼굴은 터질 것처럼 빨개졌다. 놀라서 의자를 세우려고 하는데 석진이 빨랐다. 이미 의자는 잡아 세우고, 애매하게 뻗은 손이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누가 봐도 당황한 티를 팍팍 내고 말았다. 그저 신발 끝만 쳐다보면서 입술을 물어뜯는데 어깨를 콕콕 지르는 손길에 고개를 올렸다. 습관처럼 굳은 몸을 풀고 정국이 조심스레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그냥 흔한 핸드폰일 뿐인데, 석진이 들어서 그런지 본새가 달랐다. 정국이 재빠르게 번호를 찍자 그제서야 만족한 듯이 웃음 짓는 석진이었다. 얼떨결에 넘겨주었다만 너무나 급작스런 전개에 의아함만 한 가득이었다.

   “물어볼 게 생기거나, 상의하고 싶은 게 있으면 주저 말고 여기 적힌 번호로 연락 줘요. 기다릴게요.”

  석진이 정국에게 제 명함을 내밀었다. 더 여기선 밀어 붙였다간 지레 겁먹고 거절의 의사를 내비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일단 물러나기로 마음 먹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발을 뺐다. 선택권을 쥐어 주면서, 동시에 똑똑히 본인을 각인시켰다.

 정국은 이름이 새겨진 고급스러운 명함을 받아 들었다. 기다릴게요. 문득 그 입에서 나온 다섯 글자가 낯설었다. 정국은 그저 말없이 입술을 감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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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맥스입니다. 

저번주 개인 사정으로 업데이트를 못 해서 월요일에 바로 찾아 왔습니다!

어쩌다 결혼 속 대한민국은, 동성연애 및 동성결혼이 자연스러운 나라라고 보시면 됩니다.

다만 동성 간 만남이 자유로운 것뿐이지 알파오메가 세계관과는 다른 범주임을 알아 주세요 :)





**문의 관련해서 메일 및 댓글로 다 받습니다.



어쩌다 결혼.

written by. 맥스


2022.03.03~

지독한 클리셰를 담은 계약결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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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드디어 둘이 만났다니!! 앞으로가 더욱 더 기대돼요ㅜㅜㅜㅜㅜ
2년 전
독자2
어떤 결혼 생활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니 그 전에 순탄하게 결혼은 할 수 있을지 ㅠㅠ 너무 기대됩니다 작가님 짱짱이에요
2년 전
독자3
아 벌써 설레요. 개인적으로 정략결혼 클리셰를 좋아하는데 그게 또 진국이라고 하니 더 기대되네요!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작가님💜
2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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