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혁은 지쳤다. 질리기도 했다. 이제 정말 이홍빈이란 사람에게 완벽히, 완전히, 지치고, 질려버렸다. 평소엔 저음인 홍빈의 목소리가 비명처럼 하이톤으로 솟으며 상혁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상혁이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시끄럽다. 하늘과 같이 변덕이 심한 저 성격을 더이상 견디지 못 할 것 같다. 버거웠다.
"제발 목소리 좀 낮춰."
"뭐?"
"옆집에 들리겠어."
"야!!"
또 운다. 야! 하고 고함을 친 홍빈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상혁이 그 눈물을 보고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지금, 우는 거야? 아무래도 상혁과 홍빈은 아예 다른 차원의 사람인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상대방을 이토록 완벽히 이해하지 못 할 순 없을 것이었다. 상혁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을 쓸던 손을 앞으로 내밀어 휘저어 보이곤, 울지 말라 한다. 홍빈은 기가찼다.
"헤어져."
"……"
"너란 인간이랑은, 다신 상종하기도 싫어, 개-새끼야."
개-, 새끼야. 상혁이 제일 싫어하는 욕 중에서도 '개'를 길게 늘여 말하는 폼이 적잖이 화가 난 것처럼 보인다. 뒤 돈 홍빈이 빠르게 현관으로 다가가 집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래, 가라. 좀. 상혁은 정말이지 이제 저런 홍빈의 행동을 달래줄 여력이 없었다. 쾅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힌다. 상혁이 주저앉았다. 상종하기 싫다? 그 말을 할 사람이 누군데. 또 얼굴을 쓸고 손을 내린다. 전시회 쇼윈도에 내도 될 것 같은 가면들이 벽면에 즐비하게 붙여져 있었다. 상혁이 그 가면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며 홍빈을 생각했다.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상혁과는 약간 다른 문제였다. 상혁이 시선을 돌렸다. 다른 벽면엔 책장이 있었다. 저자, 이홍빈. 이홍빈. 이홍빈. 이런, 좆같은.
다시 와. 이 좆같은 집에선 내가 뛰쳐나갈 테니까.
나비도 나를 사랑했던가
w. 와르
상혁은 정말 오랜만에 대학 캠퍼스를 걸었다. 낙엽도 안 졌던 거 같은데 이미 나뭇잎들은 다 떨어지고 있었다. 교정을 걷는다. 뒤에서 다리 짧은 원식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다리 길다. 그래서 더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문득. 정말 문득, 몇년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어가며 수를 셌다. 17살과 19살, 18살과 스물. 열 아홉과 21, 20과 22... 7년 째다. 지금은 24와 26을 달려가는 중이었다. 그 중에서도 겨울. 11월 초반. 가을인가.
"개새끼야, 먼저 가냐."
아니다, 겨울이었다. 상혁이 어느새 따라붙은 원식을 쳐다보았다. 뭘 봐. 예의없는 말투에 질렸다는 듯 고개를 돌린다. 원식이 손을 뻗었다. 머리통을 한 대 친다. 이런, 미친. 상혁이 욕을 뱉었다. 안 그래도 심란한데 개새끼라고 하고 지랄이야. 이어선 상관없는 말을 한다. 또 걸음이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원식이 뛰었다.
"뭔 일 있냐?"
"..."
"야, 야."
"시끄러워."
"이놈이, 형한테."
또 한 번 뻗어져 온 팔을 상혁이 확 쳐낸다. 허공에 멈춘 원식의 손가락이 무안함을 대변해 주듯 조용히 접혀졌다. 또 앞서 걷는 걸음엔 더이상 따라붙지 않는다. 개새끼, 술 친구 필요하면 연락하셈! 괜히 건드렸다 피해볼까 원식이 크게 소리쳤다. 대답없이 손만 휘젓는 뒷통수를 훑다 스쿨버스를 타러 뒤를 돈다. 그러다 아차 싶어 다시 뒤돌았다.
"네가 사는 거야!"
이제 됐다. 원식이 흥얼대며 다시 걸음을 뗐다. 제 갈길 간다. 상혁이 저 머저리 같은 형의 모습에 썩소를 지었다. 졸업은 안 하고 왜 뻗대나 몰라. 엿같게 이홍빈 말버릇인 개새끼라는 말이나 내뱉고 말이다. 사람 기분 참 더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처음 봤을 땐 웬 조폭이 대학 강의실에 앉아있나 했는데 이젠 만인의 북이었다. 동네 북. 심심하면 다들 건든다. 그래서 이상한 동정심이 들기도- 아아 됐다. 저 인간만 보면 이홍빈이 떠오른다. 동갑인 나이 하며 빼닮은 말투 하며. 성격은 정 반대지만.
이홍빈 생각이 나니까 이홍빈 얘기 좀 하겠다. 이홍빈과 '또' 싸운지는 벌써 3개월 정도 됐다. 여름의 끝자락에 싸웠으니, 그 정도 될 거다. 뭔 이유에서인지 기억도 안 나는 정말 사소한 싸움에서 다신 상종하기 싫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놈의 감정기복. 방금 싱글싱글 웃고있기에 기분 좋아? 하고 물으면 인상 싹 굳히고 아니, 좆같아. 할 것만 같은 홍빈의 변덕은 어째 익숙해 지지가 않는다. 상혁이 휴대폰을 들었다. 전화할까? 아니, 어차피 안 받을 것이었다.
"... 진짜 안 받네."
근데 안 받을 걸 안다고 전화를 안 할 한상혁도 아니었다. 3개월 마다 하루 한 번 씩 직접 손가락으로 작아터진 휴대폰을 꾸역꾸역 눌러가며 홍빈에게 전화를 건 상혁은 이번으로 92번 정도 퇴짜를 맞았다. '삐 소리후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니-' 하는 목소리가 마치 '아직 화 안 풀렸으까 꺼져, 개새끼야.' 하는 목소리로 들린다. 상혁이 신경질적으로 주머니에 휴대폰을 쑤셔넣었다. 개새끼는 지랄, 지가 더 개새끼같이 생겨놓고선. 혼자 상상한 홍빈의 목소리에 대고 화를 낸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그래,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거야. 근데 내가 왜 더 많이 좋아하는 건데?
'띠링-'
순간이었다. 당연한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상혁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알림음을 울려댔다. 연속으로 두 번 더 울린 알림에 빠르게 휴대폰을 꺼내 본 상혁은 '치질.' 이라고 적혀진 이름에 눈을 크게 떴다. 이홍빈이다. 카카오톡으로 하면 될 것이지 문자를 보내 왔다.
'전화 하지 마.'
'글 쓰는 중이야.'
'개새끼야.'
개새끼야. 아- 화가 좀 풀리긴 했나보다. 문자도 다 보내고. 이홍빈 발전했네. 박수라도 쳐야 할까 싶다. 예전엔 졸졸 미행을 하고 1분마다 전화하고 떼쓰고 집 문 앞에서 문을 계속 두드리는 등 괴롭히고 온 갖 만행을 저질러야 그제서야 '그래 이 시발놈아 용서해 줄게' 라는 식으로 굴고 나왔는데 이젠 먼저 문자를 다 보내셨다. 전화 하지 말랜다. 이유까지 있다. 글 쓰는 중이니까. 그리고 호칭도 불러줬다. 개새끼. 상혁은 답장은 패쓰하기로 하고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이홍빈네 집이나 가야겠다. 거지 같은 게 이딴 문자 보내놓고 혼자 쿨한 것 같다며 실실대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 때. 그 때처럼. 처음 만났을 때처럼.
걸음을 내딛으며 이번엔 오랜만에 추억에 잠겼다. 똑같은 대학 캠퍼스 거리인데 이젠 기억의 거리가 되었다. 추억, 그 깊은 수압에 가라앉는다. 나뭇잎이 서걱였다.
7년 전이다. 입학식이었다. 무릇 그러하듯 정말 시끄러웠다. 돼지우리처럼 꿀꿀대는 녀석부터 오리처럼 꽥꽥대는 놈까지 아주 다양했다. 물론 개중에 인간은 없었다. 다 짐승들 같았다. 저기 저 교장 선생님이 열심히 연설 하시는데 이 짐승새끼들이 바딱바딱 안 처 듣고 뭐 하는 거야. 한 쪽으로만 맨 가방을 바투 잡으며 상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옆에서 성재가 '하여튼 인간들이란-' 하며 장난을 걸어온다. 병신새끼. 샐쭉 찢어진 눈을 손바닥으로 쭉 밀었다. 밀린 성재가 엉덩밯아를 찧었다. 상혁은 속으로 몇 번을 뇌까렸다. 저런, 병신새끼. 호구새끼. 사람이냐. 그냥 기분이 좀 별로였다.
"큼큼. 그래서- 우리 자랑스러운 이 고등학교 특기생들을- 소개하겠습니다-"
말꼬리를 더럽게 늘이는 교장의 말투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게 만드는 데 한 몫 한 것 같다. 상혁이 답답해 뒤질 거 같은 속을 심호흡하며 천천히 진정시켰다. 저 말투도 답답해서 엿같은데, 그냥 처음부터 남고 입학식을 왔다는 것 자체가 엿같다는 거다. 후우 시발 여학생 시발... 상혁이 심호흡을 하느라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교장이 마이크에서 살짝 물러나 있었다. 상혁이 빠르게 눈을 돌렸다. 허옇고, 육성재 마냥 눈이 찢어진 남자가 이상한 상장 같은 걸 들고 마이크 바로 앞에 서 있다. 뭐야.
"에, 이 학생은- 정, 택운 학생으로- 어, 미술, 특기생- 3학년-"
아. 특기생. 그러고보니 어느새 여러 사람들이 단상 위에 올라서 있다. 상혁이 시선을 옮겨 단상 모서리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을 훑었다. 다 고만고만한 덩치들이 모여 있었다. 까만 놈, 코 큰 놈, 잘생긴 놈. 눈에 띄는 건 당근 잘생긴 놈이었다. 얼굴은 조막만해서 눈은 큼지막한게 얼굴에서 목으로 떨어지는 선은 얇고 어깨는 또 넓다. 오, 연예인 해도 되겠다. 무슨 특기생일지 궁금한데, 또 엿같게 맨 뒤에 서 있었다. 오늘은 뭐가 다 이렇게 엿같아.
"자, 이번 특기생은- 차, 학연 학생으로- 육상 특기생- 3학년-"
어느새 순서가 넘어갔다. 근데 어쩜 저리 말투가 똑같을까. 뭐 성우라도 하셨나. 정, 택운. 차, 학연. 까만 놈의 이름은 차학연이었다. 이름이 특이했다. 학연, 학연. 옆에서 성재가 흑연 아니냐며 깔깔대며 웃었다. 뭐가 저렇게 까매. 우스운 말에 상혁이 비식 웃으며 성재의 머리를 한 대 갈겼다. 미친놈아. 육상이면 허구헌 날 운동장 돌 테니까 당연히 까맣겠지. 그 말에 성재가 눈을 한 번 굴리고 스리슬쩍 웃더니 손가락으로 재환을 가리켰다. 그럼 저 코 큰 형은 왜 코가 클까. 몰라 시발. 코 큰 걸로 특기생인가 보지. 단순한 말에 둘다 작게 웃음이 터졌다. 동시에 교장선생님이 입을 크게 열었다. 어느새 또 순서가 넘어가 있었다.
"이 특기생은- 이 재환 학생으로- 성악 특기생- 에, 또 3학년-"
미친 성악이래. 작게 터진 웃음이 단숨에 커져 성재가 깔깔댔다. 그 웃음소리에 상혁도 작게 웃던 걸 참지 못하고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특기생들이 나온 뒤부턴 조용해진 강당에 둘의 웃음소리가 크게 울렸다. 흘긋 재환의 시선이 둘을 향한다. 상혁이 웃음기 다분한 말투로 말했다. 저 코가 노래 주머니 인 거 아냐? 시이발-, 저 형 그럼 코부리영감이야? 미친. 주고 받고 깔깔댄다. 주위 몇몇 학생들도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 그리고 얼마 안 되어 곧 큰 호통소리가 그 웃음소리를 모두 밀고 들이찼다. 야! 이놈 새끼들아! 쌤이다. 성재가 웃음을 뚝 그쳤다.
"푸하하, 코부리 영감이래 와 드립 봐 시-"
바알... 그리고 상혁은 좀 뒤에 웃음을 그쳤다. 말꼬리가 훅 아래로 꺾인다. 근육 빵빵한 쌤이 달려오고 있었다. 이미 자세를 고쳐서선 고개를 45도 각도로 내린 성재를 따라한다. 그리고 성재를 향해 고개를 틀고 조용히 입모양으로 말했다. 이 씨발 개.새.끼.야.
"그건 너야."
그리고 그 말을 함과 동시에 단상 위에서 저음의 목소리가 뚝 떨어지듯이 내려왔다. 그건 너야. 그 목소리에 상혁이 흘긋 시선을 올렸다. 그 잘생긴 놈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또 한 번 큰 목소리로 말한다. 그건 너라고.
"개새끼야."
상혁이 눈을 껌뻑였다. 말투가 띠껍다. 그 잘생긴 놈이 들고있는 상장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문 학 특 기 생
이 홍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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