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왜 이제와 강수영!"
첫교시를 멋지게 날려버리고 두번째 수업시간에 웃으며 등장한 수영을 발견한 윤하가 자리에 앉는 수영이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왜 이제오냐며 꾸중했다. 헐레벌떡 뛰어와 겨우 시간에 맞춰 온 수영이는 제정신이 아니어서 겨우 미소를 띄우는 데도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너가 그렇게 술 처먹고 잠들어서 혹시나 집 비번 안알려줘가지고 그 놈이 어찌할줄 몰라서 결국에는 최승철 그 놈 집가서 잠들었을까봐!"
".........헐. 이윤하. 최소 점쟁이.”
"...뭫?"
"눈떠보니 그녀석 집이더라"
"미..미쳤어. 강수영."
윤하의 말에 수영이는 그냥 잠만잤을뿐이라며 손을 저었다.
수업에 오긴 왔지만 배우는데 욕심 없는 둘은 열심히 연습장에 글로 말을 주고 받았다. 수영이는 뿌듯한 마음으로 최승철은 절대 바람둥이가 아니라며 신나서 이야기 했고 평소처럼 신나게 잡담을 하던 둘이 짧고도 긴 오십분이 지나고 가방을 챙기고 일어나려는데 윤하가 문득 생각났다면서 입을 열었다.
"나 그날 최승철 친구가 집 데려다 줬어."
“....어?"
"홍지수이래. 이름. 혹시 알아?"
"아니.. 나 승철이 친구들 잘 몰라. 헐- 너를 왜 데려다 줘? 너 좋아한대?"
"아니.. 그런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애매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윤하을 보며 수영이 이제 셋다 커플이라며 깐죽거렸다. 윤하는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입은 웃고 있었다. 분명 홍지수라는 녀석이 맘에 들었나보다.
이렇게 그저 행복하기만을 바랬는데-.
-16-
꽤 좋은 날씨의 금요일이었다.
그런 좋은 날씨의 금요일은 개교기념일이자 수영과의 데이트.
승철이 바람둥이라는 말을 듣고 한번 크게 데인 수영이는 취중대화중에 했던 승철의 말만 믿고 그에게 더 푹빠졌다. 승철도 느낄만큼 그녀는 전보다 더 애교도 많아졌고 마음도 훨씬 열린 것 같았다. 승철은 그저 행복했지만-.
찔리는것도 사실이다.
막상 바람이 아니라고 바득바득 우기던 그였지만서도 그는 별명부터가 제우스가 아니던가.
“얍!"
"아 뭐야 강수영.키키킥, 완전 귀여워!"
"누나한테 귀엽다는게 뭐야- 건방진 최승철!"
"으구구구- 그랬쪄요-"
자신을 기다리던 승철을 발견한 수영이 놀이공원에서 파는 동물 머리띠를 두개 사서는 하나는 자신이 쓰고 하나는 손에 쥐고 살금살금 승철에게 다가가 승철을 놀래켰지만 성공하지는 못한 것 같다.
"오늘 딱! 7시 까지만 놀고 완전 열공하기다."
아무래도 공부해야하는 승철과 데이트를 하는게 신경이 쓰였는지 수영이 투덜거리자 승철이 자신과 놀기 싫냐며 인상을 찌푸려 보였다. 승철이 찡찡대기 전에 자신이 사온 동물귀 머리띠를 씌워주고는 "아니지- 맨날 놀고싶은데도 참는거지."라고 대답하고는 팔짱을 끼워 온다.
“사람 진짜 많다.”
아직 여름은 아니었지만 북적이는 사람들과 따듯한 날씨에 온도가 더 올라 후끈함을 느낀 수영이 손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하지만 아직 어린걸 티내는 건지 혈기 왕성한 승철은 수영이의 손을 잡고 이리저리 쏘다니느라 바빴다.
“천천히좀 가아-.”
수영이 투덜거렸지만 승철은 시간이 아깝다며 발걸음을 더 재촉했다. 빨리 안가면 저거 줄 엄청서야해! 라면서 잔뜩 흥분해있었다. 평소엔 애같은 구석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괜시리 나이의 차를 느끼며 수영이는 다시는 승철과 놀이동산에 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손을 놓던가-.”
“…”
“아니면 이리 좀 오던가!”
“응?”
커진 수영이의 목소리에 승철이 뒤돌아보자 수영이 지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쉰다.
“이리와.”
그제야 알아들었는지 승철이 수영이의 곁으로 온다. 팽팽하게 겨우 손 끝만 잡고 있던 둘의 손가락이 더 깊게 겹쳐졌고, 승철의 시선이 수영이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 더 이상 가까이 오지 않아도 되는데- 라고 생각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승철의 얼굴은 점점 더 가까워져 왔다.
이녀석은 중간이 없어.
너무 가까운 얼굴에 눈을 감아버리자 곧이어 입술에 승철의 입술이 닿는게 느껴졌다. 심장이 두근거려서 그대로 몸이 굳어버린게 아닐까 걱정하던 순간, 입술이 떨어지더니 이번엔 그의 입술이 수영이의 볼로 가서 쪽, 소리를 내고는 떨어진다.
얼떨떨한 수영이의 표정에 승철이 언제나 처럼 눈웃음을 지어보인다. 저 놈의 눈웃음때문에 최승철에게 한번을 이겨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오라길래.”
-.
즐겁게 놀던 승철과 수영이는 아직 신나게 놀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시계가 여덟시를 가리키고 있는것을 발견했다. 일곱시까지만 놀기로 했는데-. 즐거운 시간은 왜 항상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거지.. 시간을 확인하던 승철이 새로온 카톡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윤서였다.
[내일 볼거지?]
답장을 쓰려던 승철이 손가락을 멈추고 다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그녀가 무슨말을 할지 조금은 예상이 되어버리는 것같아서 마땅히 해줄 답이 없었기 때문이었기도 했고, 지난번에 그녀와 헤어질까 걱정할때 지수가 해준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불알친구.
좀 저렴한 단어선택이긴 했지만, 지수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사랑이란 감정을 알기엔 조금 어린 나이 일수도 있지만 수많은 여자친구들을 만나온 것에 비해서 승철은 딱히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보진 못했다. 윤서에게는 미안하지만 윤서도 같았다. 단지 어렸을때 부터 봐 온 사이이고, 편했고, 그를 이해해주었으며, 집착하지 않았던 그녀를 ‘친구’ 로서 아끼고 있는것 같았다. 게다가 ‘제우스’의 본처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윤서는 승철이 다른 여자들과 헤어질때 좋은 핑계거리가 되어주었으니까.
윤서와 그만 만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생각을 마친 승철이 수영을 바라본다.
“데려다줄게."
"괜찮아. 어서 가서 공부해야지.”
“난 공부보다 누나가 좋단말이야.”
“열심히 공부해서 내가 다니는 대학교는 와야지. 나 너 다른 대학교 못보내.”
“왜?”
“집착할거야. 내 시야안에 있어야 해.”
장난식으로 승철을 살짝 째려보는 수영. 하지만 승철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쁘게 웃어보이고는 한다는 말이-.
“와 진짜 좋다.”
“뭐가”
“강수영이 나 집착하는거.”
-17-
다음날 저녁, 승철은 윤서의 집앞으로 찾아갔다. 집앞에 도착했다는 카톡에 1이 사라지고 곧 윤서가 밖으로 나왔다.
"여기서 말하긴 뭐하니까, 다른데 들어갈래?”
"...아니. 괜찮아. 긴말 할것도 아니거든."
다른 곳으로 가서 이야기 하자는 승철의 말에도 괜찮다며 윤서는 냉랭함으로 일관했다.
예상은 했지만 기분은 예상한 것 보다 더 별로였다. 승철은 그녀의 이야기를 막으려다가 그냥 들어주기로 했다. 익숙한 윤서의 동네 풍경에 승철은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 "이야기 해봐."라고 말했다.
"나 오빠가 바람둥이 인거 알고 있어."
“....”
"그런데도 오빠랑 사귀는 거야. 오빠가 좋아서. 바람둥이여도 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응."
"오빠가 나 버리기 전에 내가 오빠 버리려고 해."
"윤서야."
"오빠한테 버려지는 여자 마음 조금이라도 좀 느껴봤으면해.”
윤서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던 승철이 이럴줄 알았다는 듯 머리를 짚었다. 그리고 복잡한 마음에 고개를 돌렸을 땐-.
윤서의 집 쪽으로 걸어 오는 수영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익숙했던 윤서의 동네가 왜 이 날 따라 더욱 익숙해 보였는지 알수 있었다. 윤서와 수영이의 집이 한 동네였다는 것을 왜 바보같이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수영이는 어딜 들렀다 오는지 짐을 들고 윤서와 승철이 있는 쪽으로 걸어 오고 있었다. 마주칠텐데- 라고 생각한 승철이 수영이의 말을 떠올렸다.
믿겠다던 그녀의 말.
승철이 윤서를 와락- 안아버린것은-.
순간이었다.
"쉿."
"...왜 이래. 주위에 딴여자라도 있어?"
"제발. 윤서야..."
"왜이래 최승철!"
그저 이 밤에 남녀가 껴안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아니 어쩌면 있는지 의식도 못했을 수영이의 발걸음이 멈춘것은 윤서의 외침, 그 뒤였다. 승철이 조용하게 "너 진짜 왜이래." 라고 울것 같이 말했으나 윤서는 아랑곳 하지 않고 오히려 "왜, 최승철?" 이라고 말했다. 마치 그가 한번 더 벌받기를 바라는 것 처럼.
수영이 어둠속에서 승철쪽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지고, 그 시선을 느낀 윤서가 승철의 품에서 빠져 나왔다.
"나도 오빠한테 이러기 싫어."
"..."
"아직도 오빠 좋아하니까."
말을 끝낸 윤서가 집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혼자 남은 승철이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수영이의 시선을 받아내다가 천천히 뒤로 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바라보고있다. 이미 잔뜩 상처받은 그녀의 표정앞에 승철은 할수있는 말이 없었다. 그렇게 당당하게 말했는데. 바람같은거 안피운다고-.
네가 나 좋아서 만난거잖아, 라고 할 수도 없었고,
나 원래 이런 사람인거 알잖아, 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해도 승철은 수영이의 앞에서 당당할 수가 없었다. 왜 평소처럼 뻔뻔하게 그녀와의 인연도 여기서 끝내버릴 수 없는 걸까. 여자는 새로 만나면 되는데.
짧은 순간이였으나 온 갖가지 복잡한 생각을 마친 뒤에 잘못을 깨달은 승철이 수영과 시선을 마주쳤다. 다른 것 보다 혹시나 그녀가 울까, 걱정이 되었다.
진심으로 그를 믿었던 그녀가 그 믿음을 져버리는 순간이 너무 두려웠다.
"최승철이야?"
"..."
"네가 내가 아는 최승철 맞아?"
"...누나."
"나중에 이야기 하자. 머리가 아픈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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