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규 대사- 파랑
승철 대사- 보라
[세븐틴/김민규/최승철] 고등학생이 되고싶다
W. 시케
001
고등학생이 되고싶다.
본격적으로 취업경쟁에 입문한 스물 셋의 내가 매일 입이 닳도록 하는 말이었다. 이렇게 힘든 취업에 대한 생각도 전혀 하지 않고, 매일 뭐 입을지 고민하지도 않았던 그 때가 너무나도 그리웠다. 대학 입시에 대한 부담은 있었지만, 취업의 부담보다는 훨씬 덜했고 친구들과 매일 뛰어노는 그 순간이 좋았다. 수업 종이 치면, 가장 친했던 친구와 손을 꼭 붙잡고 담당 선생님을 마중나가기도 하고, 인강을 듣는다고 가져온 핸드폰으로 몰래 사진을 찍기도 하고. 돌아보면 가장 즐거웠던 생활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매일 한숨만 나오는 요즘들어 자주 하는 생각이었다. 고등학생이, 되고싶다.
정말 믿기 힘들게도,
한탄같던 내 소원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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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
귀가 터질 듯 울리는 알람에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일어났다. 찌뿌둥한 몸을 겨우 일으켜 앉아 눈을 떴더니, 처음 보는 교복이 단정히 방 문에 걸려있다. 잠이 덜 깨서 헛것이 보이나 싶어 다시 정신을 차리고 봐도, 그 교복은 그대로였다. 뭐지, 자는 사이에 누가 다녀갔나.. 잠시 멍하게 있다 방을 둘러보니, 고등학교때 부모님과 함께 살던 그 집이었다. 뭐지, 나 진짜 옛날로 돌아온건가. 그럼 저 교복은 뭐지...? 사태파악을 한창 하는 중이었는데, 방 문이 벌컥 열리더니 오랜만에 보는 엄마가 들어온다.
"어, 엄마 언제왔어??"
"뭐라는거야 얘가? 나 매일 여기 있거든? 또 지각이라고 엄마한테 화내지 말고 얼른 씻어 기집애야!"
"어..? 나 오늘 수업 없는 날인데..?"
"얘가 진짜 뭘 잘못먹었나. 고등학생한테 수업 없는 날이 어딨어! 오늘 개학이라며!"
?
고등학생..?
뭔가 더 젊어진 것 같은 엄마 입에서 나온 고등학생이라는 말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정말 내가 고등학생이 된건가..? 볼을 꼬집어보니 정말 제대로 아픈게 꿈은 아니다. 얼른 씻으라고 재촉하는 엄마 때문에 일단 머리를 감고 나왔다. 정말 내가 고등학생때 살던 우리집과 똑같았다. 아직도 머릿 속이 복잡했다. 어벙벙하게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도 한참 생각에 잠겼다. 그렇지만 혼자 생각해봤자 더 나아질 게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엄마에게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엄마. 나 다니는 학교 이름이 뭐지?"
"뭐긴 뭐야, 세봉고등학교지. 작년동안 잘 다녀놓고선 방학 몇달 했다고 학교 이름도 까먹은거야?"
"아..나 2학년 몇반이지?"
"4반이라며, 니가!"
학년은 대충 찍었는데 맞아서 다행이다. 2학년이 아니라면 말을 잘못했다고 변명하려고 했는데. 4반이면 문과반인가. 난 다시 입학해도 이과는 아닌가보다. 그나저나, 세봉고라니 처음 들어보는 학교다. 학교는 어떻게 가지.. 학교 가는 길을 물어보면 엄마가 더 이상하게 볼텐데. 교복을 다 입고 나오니 엄마가 첫 날이니 태워주겠다고 한다. 속으로 십년감수하며 썬크림을 펴발랐다. 음, 오늘 처음보지만 이 학교 교복 참 예쁘다. 엄마 차를 타고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엄마의 말을 듣기는 커녕 길을 외우느라 바빴다.
아직도 갑작스러운 이 상황이 적응되지 않았지만, 언제 돌아갈지는 모르지만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언제 다시 느껴볼 지 모르는 일상의 포근함이 좋았다.
#
어색하게 2학년 4반을 찾아 들어가니, 나를 보고서 여자애 한 명이 나에게 달려왔다. 반가운 듯 내 손을 덥썩 잡아끌며. 속으로 적지않게 놀랐지만, 나랑 제일 친한 친구겠거니-하고 나도 같이 반응을 해주었다. 명찰에 적혀있는 '최유정'이라는 이름을 재빨리 스캔했다. 세봉고에서의 내 절친은 정말 귀여웠다. 웃을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눈웃음이 완전 취저탕탕. 윽. 이러다 친구 덕질하게 생겼다. 시원시원하게 성격도 좋은 것 같았다. 친구 걱정은 덜어두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내가 예전에 다닌 학교는 여고였는데, 여긴 남녀공학이다. 남녀분반이지만 공학이라는 사실에 만족했다. 같은 학교에 남자가 있다..! 하는 변태같은 생각에 실실 웃기도 했다.
몇년 전이나 오늘이나 수업이 지루한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열심히 들어보려고 노력하고, 가끔씩 졸기도 하다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유정이도 먹는걸 좋아하는지 점심시간에 누구보다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햐 취향 한번 나랑 딱 맞네. 너무 마음에 든다. 나도모르게 엄마미소를 지으며 급식실로 향했다. 한 학년에 10반씩, 전교가 총 30반이다 보니 급식실에도 사람이 북적북적했다. 그래도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에 들떠서 유정이를 포함한 친구 무리로 보이는 우리반 아이들과 서로 장난도 치며 순서를 기다렸다.
"와 급식 진짜 쩐다."
"아 돈까스 너무좋아아-"
급식실 들어오자 마자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더라니, 메뉴가 무려 돈까스였다. 이 학교는 급식도 아주 맘에 드는군. 흡족해하면서 오물오물 열심히 먹고 있는데, 조금 떨어져 앉아있는 한 남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먹던 돈까스를 뱉을 뻔 했다. 왜냐면,
"..."
나랑 눈이 마주친 그 남학생이 겁나 잘생겨서. 의도치않게 얼굴만으로 심쿵해버린 나는, 잠시 그대로 굳어있다 다시 급식판에 시선을 고정했다. 맘같아선 다시 쳐다보고 싶었는데 그랬다간 세봉고 대표 변태로 찍힐까봐.. 정말 보는 사람마다 헉 할만큼 시선을 잡아끄는 외모였다. 아, 나 이렇게 외모만 보고 빠지는 그런 얼빠에 금사빠는 아닌데 쟤한테는 좀 그래도 될 것 같다.
"야 대박. 방금 최승철이 이쪽 쳐다봄."
"헐 진짜??"
친구들이 난리를 치며 힐끔거리는 시선을 따라가보니, 미모만으로 날 심쿵시킨 그 남학생의 이름이 최승철인가보다. 이미 학교 내에서는 유명한 듯, 내 옆에서 밥만 열심히 먹던 유정이도 내 팔을 퍽퍽 치며 좋아한다. 그러더니 오늘도 역시 잘생겼네- 한다. 뭐지, 쟤는 만인의 이상형 쯤인가. 그럴만도 하다. 절대 쉬운여자가 아닌 내가 넘어갈 뻔 했으니까. ...사실 이미 넘어간 것 같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을 즐기기도 잠시, 다시 5교시를 알리는 종이 쳤다. 재수없게도 5교시는 한문 시간이었다. 20분은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버텼으나, 그 이후로는 다음 생을 기약하며 잠의 유혹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몰려드는 식곤증은 단언컨대, 가장 극복하기 힘든 증세다.
#
첫날이라고 야자가 없단다. 세봉고는 내가 다녔던 여고와는 다르게 조금 프리한가보다. 속으로 아자!!하고 환호하며 조용히 가방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아직 겨울이라 그런가, 벌써 해가 지려고 한다. 그리 밝은것만은 아닌 하늘에, 집으로 가는 길도 조금 어두웠다.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아침에 봤던 길을 기억하며 걷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쓸데없이 겁은 많아서, 발소리를 죽이고 걸었더니 내 뒤 사람의 발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그냥 같은 방향인 사람이겠지- 생각했는데, 학교 건너편 길에서부터 들리더니 우리 아파트 정문을 지나서도 여전히 들린다. 슬슬 무서워져 걸음을 빨리하니, 내 뒤의 사람도 걸음이 빨라진다. 손에 핸드폰을 더 꽉 쥐고, 서둘러 우리 집인 408동 앞으로 향했다. 경비실이 보이자,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할 생각으로 핸드폰 홀드까지 풀고 확 뒤를 돌아봤다.
"저기요!"
"...?"
엥?학생? 그것도 나랑 같은 교복..? 뭐냐는 듯 나를 쳐다보는 남학생에 나도 덩달아 할 말을 잃었다. 나를 따라온게 아닌가..? 아니지 학생이라고 범죄를 안 저지를 것이란 법도 없지!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다시 정신을 붙잡고 남학생에게 말했다.
"왜 따라와요? 아까부터!"
"..따라왔다고요? 내가?"
"따라왔잖아요! 아까 학교에서부터!"
"...하,참."
뭐가 그렇게 어이없는지 헛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쓸어넘기는 남학생. 이와중에 잘생겼.. 아 이게 아니고.
"야."
"야? 너 지금 야라고 했냐??"
"어. 명찰 색 동갑이니까 말 까고. 내가 누굴 따라와. 너를??"
"마..맞잖아!!"
일단 패기넘치게 대답을 하긴 했는데, 머리 속으로는 설마 얘 집도 여기라던가 뭐 그런건 아니겠지..? 하는 불안한 생각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 불안한 생각은,
"우리 집 여기거든?"
..들어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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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케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