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민은 예뻤다
세 번째 이야기
w. 마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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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처럼 보이는 어두운 공간에 남녀로 보이는 한쌍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화난 지민과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한 손으로 짚고 있는 정국이었다. 지민은 뭐가 그리 화나는지 게속해서 정국에게 고함을 질렀고 정국은 아무런 말도 못한 채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이다. 화가 많이 난 듯한 지민이 앞에 있던 의자를 발로 걷어 찼고 의자는 정국의 옆으로 내팽겨졌다. 지민이 벽을 세게 주먹으로 내리치고 나서야 정국이 지민을 말리기 시작했다.
"박지민...!! 진정해! 지금 손에서 피나잖아..!"
"진정...?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지민이형...."
"그래서 내가 거기로 임무 맡는다고 할 때 그렇게 반대했어? 그리고 우리들에게 이깟 피가 중요했던가?"
"...."
"왜 말 안했어"
"걔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애니깐"
"뭐? 아무런 상관이 없어? 그렇게 똑같이 생겼는데? 적어도.. 나한텐 나한테는 말 했어야지...!!"
"걔는 그냥 일반인이야. 그냥 닮은 사람이라고"
"아... 그래서 그런거야 전정국?"
"....뭐가"
"임무 맡으면 왠만하면 일주일 안에 다 끝내는 애가"
"...."
"벌써 두달이나 버팅기고 있네?"
"....그건 사정이 있어ㅅ"
"걔 때문이지"
"....."
"하... 전정국 미친새끼..."
정국은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지민은 그런 정국을 보며 입을 열다가 이내 다시 입을 다물었다. 지민은 깊은 고민에 빠진듯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눈을 감았다. 왼손으로는 라이터를 켰다 껐다를 반복하며 계속해서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던 지민은 모든 행동을 멈추고 다시 정국의 앞으로 섰다. 정국은 계속 고개를 아래로 떨구기만 했다. 지민이 그런 정국의 머리에 자신의 손을 얹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전정국... 나한테는 말해줬어야지..."
"...."
"나한테 그여자가 어떤 의미였는지 너가 제일 잘 알잖아..."
"....형"
"이렇게 된 이상 일주일안에 임무 끝내고 거기 뜨자"
".....형은 괜찮아?"
"....아니. 우리가 걔 옆에 있으면 위험해지기만 해"
"나는... 나는 못 떠나겠어..."
"...적어도 임무할 동안은 걔 지키자"
"....."
"위에서 알게 되거나 특히 R에서 먼저 알아채면 위험해져"
"....그렇겠지"
"티 내지 말고. 평소대로 해"
벌컥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정장을 입은 무리들이 우루루 들어왔다. 지민과 정국은 당황한듯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다시 자세를 고쳐 들어온 무리앞에 마주섰다. 무리 중 가장 높아보이는 금발머리 남자가 흥미롭다는 듯이 그 둘을 쳐다봤다. 금발의 남자가 손가락을 까닥이자 뒤에 있던 무리들이 다같이 우루루 나갔고 그 공간에는 전정국과 박지민, 그리고 금발의 남자가 함께 있었다. 왠지 모르게 숨막히는 분위기에 셋 중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고 금발의 남자가 의자를 끌어 자리에 앉아 그 둘을 올려다봤다. 숨막히는 분위기가 계속 되고 금발의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둘이서 지금 뭐하는 거지"
"...."
"연애라도 하나? 박지민. 여자처럼 다니더니 아예 취향을 남자로 바꾼 거야?"
"....아닙니다."
"전정국"
"네"
"내가 너한테 임무 내린 날이 언제지"
"...두 달 전입니다"
"지금 반항하는 거야?"
"아닙니다"
"거기 조직 간부 처리하는 게 그렇게 힘들어? 그 좆만한 조직을?"
"...."
"내가 너한테 임무를 맡긴 건"
"....."
"네가 누구보다 임무를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해서야"
".....죄송합니다"
"박지민까지 투입했는데도"
"...."
"성과 없으면 대가리에 총알 박힐 각오해"
"....네"
"박지민"
"네"
"네가 책임져 이번에 성공 안하면 전정국 끝이니깐"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밤에 임무 하나 있으니깐 그렇게 알아"
"네"
말을 마친 금발의 남자는 유유히 그곳을 벗어났다. 지민은 남자가 나가자마자 한숨을 쉬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고 정국은 그런 지민을 바라봤다. 지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에 있는 창고같은 곳으로 향했고 정국은 그 뒤를 따라갔다. 지민이 창고같은 문을 열자 창고 안에는 또다른 벽이 있었고 지민은 벽에 달려있는 인식장치에 자신의 눈을 비추었다. 문이 열리고 그 안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총기와 무기들이 들어있었다. 지민은 거기서 단검과 소형 총을 챙긴 후 그 곳을 벗어났다. 정국은 무기를 주섬주섬 챙기는 지민을 보며 무리하지 말라고 말했고 지민은 정국에게 웃음으로 대답했다.
"몸 조심하고"
"당연하지"
"근데 형은 언제까지 여자인 척하고 다녀야 하는 거야"
"어쩔 수 없잖아. 이젠 여자 아예 조직원으로 안 뽑으니깐. 근데 여자 킬러를 필요로 하고"
"... 마지막 여자 조직원 그여자였지 아마?"
"....그렇지 그 사건 이후로 여자가 여기에 발들이는 것 자체가 아예 금지 됐으니"
"근데... 신기하지 않아?"
"뭐가"
"어떻게 그렇게 똑같이 생겼지... 난 처음 봤을 때 그 여자가 환생한 건 줄 알았어"
"그럴리가 없잖아. 그여자였으면 지금쯤 25살이었을 텐데... 걔는 딱 봐도 19살인데 뭐 그리고... 이미 이세상 사람 아닌 거 너도 잘 알잖아"
"그건 그렇지... 형도 25살이면서 교복입고 참 대단하다. 그것도 여자 교복. 학교도 싫어하면서"
"그러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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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자마자 풍겨오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에 나도 모르게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엌에 다 도착하니 열심히 상을 차리고 있는 김석진이 눈에 보였다. 아무튼 핑크색 앞치마 정말 잘어울린단 말이지. 열심히 상을 차리는 김석진을 방해하긴 싫어서 멀찍이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데코라도 하는 듯 무언가에 집중하여 미간을 찡그리는 모습도 그저 나에겐 애같이 느껴졌다. 완전 애라니깐. 내가 헛웃음을 치고 있을 때 김석진이 뒤늦게 내가 온 것을 알아채고 나에게 달려왔다.
"딸!! 거기 서서 뭐하고 있어! 얼른 앉아!"
"응 오늘은 된장찌개네? 맛있겠다."
"우리 딸이 좋아하는 생선도 구웠지~"
"오.."
"우리 딸 많이 먹어~"
"아빠 근데 아침부터 어디 가?"
"응? 왜?"
"아니 아침부터 양복입었길래, 어디 가?"
"아 맞아 오늘 아빠가 어디 가야 해서 오늘 새벽에 들어올 것 같아"
"뭐 여자라도 만나나 보지? 엄청 힘줬네. 머리도 하고"
"들켰네? 그래도 우리 딸만한 여자는 없더라~"
"제발 연애를 하면 괜찮은 여자를 만나. 이상한 여자 좀 그만 만나고"
".....우리 딸이 시집올래?"
"은팔찌 차고 싶어?"
"헤헤.. 장난이지~ 나한테 딸은 아직도 애긴데~"
우물거리는 내 볼을 콕콕 찌르는 김석진이었다. 맨날 집에서 프리한 모습만 보다가 양복까지 차려입고 머리에 힘준 걸 보니 조금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확실히 저렇게 꾸미니 진짜 다르긴 다르네. 뭔가 나랑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같았다. 김석진이 아니었으면 이런 아침도 맞이하지 못했겠지. 표현은 많이 못하지만 김석진은 내게 항상 고맙고 미안한 존재다. 내가 아니였으면 조금 더 자유로운 삶을 살았겠지. 나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단절하며 사는 것 같아 항상 미안하다.
"너 또 내 생각하지"
"응?"
"또 나한테 고맙고 미안하다고 생각했지"
"....아 진짜 아빠 독심술사지"
"역시 우리 딸은 아빠가 다 알 수 있다니깐~"
귀신 같은 김석진. 그 순간에 또 알아채다니. 아무튼 김석진 앞에선 거짓말은 절대 해선 안되겠다. 밥을 다 먹고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김석진이 뒤에서 나를 조심스레 안아왔다. 김석진의 포근한 비누향이 느껴저서 기분이 좋았다. 김석진은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나를 돌려 세워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를 다시 자신의 품 안에 가두고 조심스레 입을 여는 김석진이었다.
"...딸"
"....뭐야 오글거려 오늘따라 왜이래"
"아빠한테 고마워하지도 말고 미안해하지도 말아"
"...."
"아빠는 우리 탄소 아빠니깐 당연한 걸 하고 있는 거야"
"....응"
"우리 딸이 이렇게 이쁘게 커줘서 아빠는 그 것만으로도 너무 만족해"
"오늘 아빠 새벽에 오거나 더 늦을 수도 있으니깐 문단속 잘하고"
"응 잘갔다와"
"자기 전에 약도 꼭 먹어야 해"
"....알겠으니깐 이젠 나좀 놔주시지? 답답해"
"....칫"
아쉬운 듯 입맛을 쩝 다시는 김석진을 뒤로 하고 방으로 향했다. 괜히 눈에 눈물이 차올라 그 모습을 김석진이 보면 또 알아챌 것이 분명했기에 황급하게 방문을 닫고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아... 학교가야 하는데. 갑자기 학교갈 생각을 하니 막막해졌다. 아프다고 하고 학교 가지 말까. 푹신푹신한 이불 속에 들어가 있으니 왠지 더 학교가 가기 싫어졌다.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 교복을 주섬주섬 갈아입고 가방까지 챙기니 벌써 등교할 시간이 다 되었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맨발로 걸으니 왠지 시원한 느낌이었다. 김석진이 보면 발 시렵다고 바로 뭐라 하겠지만.
"아빠 나 갔다 올게"
"..ㅇ,어? 딸 잠시만!!"
내가 친절히 아빠의 서재까지 가서 문을 빼꼼 열고 인사를 하자 김석진은 황급히 노트북을 닫으며 일어났다. 뭐 야동이라도 봤나? 헛기침을 한 김석진은 어느새 나한테 와서 옷 매무새를 고치며 아빠 노릇을 하고 있다.
"딸 단추는 끝까지 잠궈야지. 넥타이도 더 꽉 매고"
"아.. 답답하단 말이야. 단추 한 개 정도는 봐줘라"
"안돼 우리 딸은 조신해야지. 남자한테 이런 거 은근 위험하단 말이야 안그래도 이쁜데 불안해 죽겠어"
"하... 말을 말자 그래.. 아빠 마음대로 해"
"됐다~ 딸 학교 잘 다녀와!"
"응"
"아, 이거 아빠 카드니깐 오늘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쇼핑도 하고 놀다 와~"
"아 됐어"
"어허! 돈은 쓰라고 있는 거야!"
그러면서 내 가방 앞주머니에 카드를 꾸겨 넣는 김석진이다. 아무튼 엄청 극성이라니깐. 돈 많은 아빠가 좋은 건지 안좋은 건지. 넉넉하게 사는 건 좋은데 예전에도 학교갈 때 가방같은 걸 명품으로 사다줘서 아무 생각 없이 매고 갔다가 전교에 소문이 다 퍼졌다지. 그 이후로는 옷을 내가 사입는 편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무슨 외제차까지 끌고 와서 기사까지 고용해 등하교 했으니 소문이 무성할 수밖에. 내가 강력히 항의하자 합의를 본 것이 바로 택시다. 버스도 절대 못타게 하고 무조건 택시만 탄다. 그것도 김석진이 직접 고용한 회사로. 김석진과 인사를 한 후 밖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김석진을 극구 말리며 현관을 나왔다. 역시나 집을 나서서 밖으로 나가니 택시 한 대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아침은 드셨어요?"
"아, 아직입니다"
"이거 드세요"
"아..! 감사합니다."
택시 기사님께 샌드위치와 주스를 건네고 자연스럽게 뒷자석으로 탔다.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택시 말고 버스나 지하철도 타보고 싶은데. 버스 안에는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가득 차겠지. 오늘따라 정말 대중교통을 이용해보고 싶은 마음에 괜히 택시기사님 눈치를 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택시 기사님은 익숙하게 학교가는 방향으로 운전할 뿐이었다.
"저... 아저씨"
"네"
"죄송한데 저기 저 정류장에서 저 내려주시면 안돼요?"
"아... 근데 절대 중간에 내리지 말라고 하셨는데..."
"...어... 제가 살 게 있어서 그래요! 아빠한테는 제가 말할게요"
"아... 안돼는데"
"이번만요. 부탁이에요"
"... 그러면 어쩔 수 없죠"
택시 기사님은 정류장 앞으로 차를 세웠고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택시에서 내렸다. 이게 얼마만에 타보는 버스냐. 실제로 김석진 몰래 중학교 때 버스를 탔다가 버스를 잘못내려서 엄청 혼났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제대로 내려야지. 버스가 도착하고 앞주머니에서 김석진이 준 카드를 꺼내 카드기에 찍었다. 삐빅- 기계음이 경쾌하게 울렸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아니면 학교에서 아직 먼 지역이라 그런가. 조금 뒤에 있는 좌석으로 가서 창문에 머리를 살짝 기대었다. 덜컹거리는 느낌이 좋았다. 창문 밖을 바라보자 나도 모르게 새로운 풍경에 매료되었다. 내가 처음보는 건물들을 지나칠 때마다 세상이 참 넓은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창문 밖을 구경하다가 버스 안을 구경하는데 이 큰 차에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우리 학교 학생도 몇명 보이고 회사에 출근하려는 직장인. 주부. 어린이 등 다양한 사람이 있었다. 다들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겠지. 뭔가 평범한 삶이라는 것이 부러웠다. 근데 갑자기-
"정국아~ 내 거까지 찍어줘~"
"학생이면 교통카드 좀 만들지?"
"너가 있는데 뭐 어때"
"에휴..."
박지민과 전정국의 목소리가 들렸다. 박지민이 전정국의 팔에 팔짱을 낀 채 버스에 올라탔다. 문이 열리면서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그 둘의 모습과 너무 잘 어울렸다. 박지민은 애교가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뚝뚝한 전정국과 참 잘 어울리는 듯 했다. 박지민의 휘어 접히는 눈웃음이 살짝 비치는 햇살같이 밝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그들의 분위기에 취해있을 때 전정국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박지민이 나를 쳐다봤다. 역시 미묘하게 표정이 굳었다. 왜 나만 보면 표정을 굳히는 것일까. 괜히 민망해서 고개를 창문으로 돌리자 둘이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박지민 여기 앉아"
"오 우리 정국기 레이디퍼스트 해준거야?"
"....시끄러"
박지민이 내 옆자리에 풀썩하고 앉았다. 박지민이 자리에 앉자마자 장미향이 은근히 풍겼다. 뭔가 시중에 나온 인위적인 장미향이라기 보다는 정말로 내가 장미밭에 와있는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또 전정국과 눈이 마주쳤다. 왜 자꾸 쳐다보는 것일까. 이번에도 전정국은 내 눈을 피하지 않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전정국과 눈을 마주치고 있을 때 갑자기 박지민의 얼굴이 훅 들어왔다.
"안녕? 우리 정국이랑 아이컨택 하는 거야? 이거 완전 질투나는데?"
"....어? 아, 미안"
"미안해 할 필요까진 없고~"
박지민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을 걸어왔다. 그래도 날 싫어하는 건 아닌가 보네. 갑자기 박지민의 시선이 조금씩 내려왔다. 뭐 때문인지 그 시선을 따라가자 치마가 조금 올라간 내 허벅지가 보였다. 박지민의 탄탄한 다리와 다르게 내 다리는 하얗고 근육이 없어서 비교되었다. 나도 운동을 해야 하나.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내 다리 위로 가디건 하나가 올라왔다. 훅하고 과일향이 나는 게 전정국의 가디건인 것 같았다. 고개를 들자 전정국이 얼굴이 살짝 붉어진 채로 헛기침을 하고 있었고 한 손으론 박지민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왜 그러지
"어... 이거 가디건"
"....학교 도착하면 줘"
"아... 고마워"
이걸 왜 내 다리에 덮어준 거지. 내 치마는 그래도 긴 편이라 허벅지가 조금밖에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박지민이 훨씬 짧은 치마를 입고 있어 허벅지가 훤히 드러났는데 왜 이걸 나한테 준 걸까. 괜히 옆에 있는 박지민의 눈치를 보다가 박지민의 다리 위에 전정국의 가디건을 같이 덮어줬다. 내 손이 다리에 닿자 박지민은 깜짝 놀랐는지 순간적으로 내 손을 쳐냈다. 나는 민망하게 내쳐진 손을 다시 가져와 다른쪽 손으로 만지작 거렸다.
"ㅁ,미안 내가 깜짝 놀래서"
"아니야. 다리 보여서 덮어주려고 그랬어. 놀라게 해서 미안"
"....어 아니 내가 미안... 어, 너 손.... 빨개졌다"
"아 괜찮아. 하나도 안아파"
"....진짜 미안"
내 빨개진 손을 보고 많이 미안했는지 내 손을 잡고 한참을 요리조리 살폈다. 순간 전정국의 손이 박지민의 팔을 낚아챘고 전정국이 박지민을 째려봤다. 박지민은 그런 전정국을 보며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알겠다며 나즈막히 중얼거렸고 전정국은 뭐가 그리 불만인지 미간이 살짝 꿈틀거렸다. 어느새 학교에 거의 도착한 건지 하나 둘씩 학생들이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박지민과 전정국도 뒷문 쪽으로 향하고 나도 슬슬 일어나자 갑자기 내 뒤에서 사람들이 나를 밀어대기 시작했다. 내가 어리둥절하며 급하게 밖으로 나가려고 문으로 다가서자 문이 열리고 박지민과 전정국이 나가는 것이 보였다. 나도 뒤따라 뒷문을 나가려고 할 때 순간적으로 누군가가 나를 밀어 문 밖으로 몸의 무게중심이 쏠렸다. 이대로 갔다간 바로 자빠질 것 같은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 괜찮아?"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아 눈을 떠보니 박지민이 내 허리를 단단히 고정시켜주고 있었다. 여전히 박지민에게서는 장미향이 났다. 여자치곤 힘이 센건지 팔뚝이 살짝 단단하게 느껴졌다. 앞에선 전정국이 안심한 듯 한숨을 크게 내쉬고 있었고 박지민은 아직도 놀란게 가시지 않은 듯 눈이 한 껏 커져있었다. 나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박지민을 향해 웃어줬고 박지민은 그런 나를 멍하니 쳐다봤다.
"....."
"저기...언니 이제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아! 그래 그래야지"
"고마워.."
"아니야~ 그리고 언니라고 부르지 말고 편하게 지민이라고 불러"
"...그래도"
"불편하면 너 편한대로 불러"
"...."
"근데 난 지민이라고 부르는게 좋던데"
이걸 바로 답정너라고 하는 걸까. 그런 박지민의 대답을 쿨하게 무시하고 교실로 향했다. 내 뒤에서 들려오는 박지민과 전정국의 목소리가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목소리에 묻힐 때쯤 교실에 도착했다. 자리에 앉고 가방을 걸어두자 내 손에 전정국의 가디건이 들려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돌려줘야 하는데 왠지 시선을 끌 것 같아서 이도 저도 못하고 있을 때 다시 전정국과 눈이 마주쳤다. 또 전정국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가디건을 돌려줘야 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전정국이 앉아있는 창가 쪽으로 향했다.
"저기... 이거 아까 고마워"
"...."
역시나 전정국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모든 아이들이 시선이 여기로 쏠리고 박지민은 그런 나와 전정국을 흥미롭게 쳐다봤다. 전정국이 말이 많아지는 건 저 박지민과 얘기할 때 뿐이겠지. 내가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뒤를 돌자 누군가가 내 팔을 잡고 돌려세웠다. 내 팔을 잡은 손의 주인을 바라보니 박지민이 생글생글 웃으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따가 집 같이 가자 정국이도 같이"
"에..?"
"그럴거지?"
"아....응"
얼떨결에 알겠다는 대답을 하고 자리로 향하자 여자애들이 나한테 몰려와 재잘재잘 캐물어댔다. 나는 그냥 오늘 아침에 우연히 같이 만난 일을 이야기 하며 별 일 없었다는 대답을 했고 여자애들은 내가 부럽다며 난리를 쳤다. 딱히.. 부러울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폭풍같은 여자애들의 조잘거림이 지나가고 학교는 평소와 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조금 달라진게 있다면 박지민의 주위로 둘러쌓인 남자들과 이젠 전정국만 날 쳐다볼 뿐만 아니라 박지민도 날 뚫어져라 쳐다본다는 것? 두 시선이 한꺼번에 나에게 향해있으니 적응이 안 돼서 매우 신경쓰인다. 전정국 하나도 모자라서 이젠 박지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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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례를 마치고 집에 갈 준비를 하자 아까 박지민이 집에 같이 가자고 한 말이 떠올랐다. 박지민과 전정국이 앉은 쪽을 바라보니 둘이 어딜 갔는지 방금 까지 있었는데 빈자리 뿐이다. 그 때 여자애 한 명이 나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탄소야 이거 아까 박지민언니가 너 주랬어"
정갈하게 적힌 쪽지를 피자 박지민의 글씨가 보였다.
[탄소~ 나 오늘 급하게 일이 생겨서 나중에 집 같이 가자! 그리고 손 빨개진 거 너 서랍에 약 넣어놨으니깐 발라 아까는 미안]
내용을 보니 왠지 웃음이 났다. 아까 내 손을 뿌리친 사건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나 보다. 쪽지를 가방 앞주머니에 넣고 서랍에 손을 넣자 손에 후시딘통이 잡혔다. 박지민이 준 후시딘을 손에 꼼꼼히 바르고 괜히 기분이 좋아져 신나는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왜 신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뭔가 기분이 좋아졌다. 박지민의 새로운 모습을 봐서인가.
"아빠 나 왔어"
아. 오늘 집에 아빠 없지. 습관적으로 김석진을 찾다가 이내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이 집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그래도 김석진이 있었을 땐 이렇게 큰 집도 크게 안느껴졌는데. 그래도 집에 김석진의 냄새가 남아있는 것 같아서 그렇게 외롭지는 않았다. 침대에서 한참을 뒹굴거리다가 오랜만의 김석진의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전에는 여기서 김석진이 책읽거나 공부하는 모습을 구경하곤 했는데 커가면서 점점 발걸음이 뜸해졌다. 김석진의 서재에는 지하로 가는 통로도 하나 있는데 옛날부터 김석진이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고 말을 해둬서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다. 들어가보고 싶긴 한데 그러면 김석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아예 궁금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책상 앞에 앉아 괜히 영문 책들을 들춰보기도 하고 책상 위에 올려진 나와 김석진이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만지작 거렸다. 그러던 중 책상 위의 김석진의 핸드폰과 메모가 눈에 띄었다.
"아빠는 은근 덤벙이라니깐. 핸드폰 없이 못사는 사람이"
평소에 자신의 핸드폰을 끔찍이 여기는 김석진을 알기에 지금쯤 김석진이 핸드폰을 찾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근데 어디로 갔는지 알아야지 가져다 주던지 말던지 하지.
핸드폰 옆에 쪽지를 보자 김석진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동글동글하니 참 김석진같은 글씨다.
"여기로 가면 되는 건가"
쪽지엔 주소로 보이는 듯한 것이 써져있었다. 이번에 딸 노릇 한 번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집에 박혀서 아무런 도움도 못됬기에 이런 사소한 도움이라도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겉옷과 김석진의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주머니에 김석진의 카드를 넣었다. 오늘 여러모로 요긴하게 쓰이는 카드다. 날씨가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지만 아직 깜깜한 밤은 아니니 가벼운 마음으로 밖으로 나섰다.
그날 내가 예상하지도 못한 사람을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
여러분 안녕하세요 마몽입니다 :)
이번 화 잘 보셨나요?
지민이는 여자가 아니었답니다!!
스토리가 많이 복잡하죠?
아직 멀었으니 기대 많이 해주세요~
그리고 저번 화에 암호닉 신청을 많이 해주셨더라고요~
감사합니다!
부족한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암호닉은 다음화에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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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싸인회에 정국의 바지, 슬리퍼 신고 온 듯한 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