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사람인가. 분명 낯선 얼굴인데. 나에게 친한 척을 하며 내 상태를 살폈다. 곧장 간호사에게로 달려갈 그의 손목을 잡고 돌려세우며 나는 말했다. '저.. 안 아파요.' 꽤나 오래 잤다는 것을 증명해주듯 목소리는 푹 잠겨있었다. 남자는 우물쭈물거리더니 다시 보조침대에 앉아 나를 보고 말하였다.
"아프면 얘기해. 그리고 어떤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3개월 동안 많이 생각해보고 반성했어. 미안해.. 지민이 몫까지 내가 사과할게. 네가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몰랐어. 우리 용서해 줄 수 있겠.. 어?"
사과하는 것이 부끄러웠는 듯 고개를 아래로 떨군 채 말을 하다 말이 끝나자마자 나와 눈을 맞췄다. 이 사람이 얘기하는 것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 건 당연한 것이었다. 생전 모르는 사람이 반말을 하며 나에게 사과를 하는 꼴이라..
"그러니까..."
"저기 죄송한데.. 그쪽이 누구시길래 자꾸 저한테.."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내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그와 눈을 마주치는 동안 든 생각이라면 '잘생겼다' 그뿐이었다.
"내 이름 뭐야."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네 이름.. 뭐야..라고 물어보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나는 김탄소. 라 대답하려고 입을 조심스럽게 뗐다. 그렇게 내 위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가 나를 한참 바라보고 있었나. 그 사람은 또 내가 이해하지 못할 말만 내뱉었다.
"아.. 안되겠다. 이번 한 번 만이니까. 봐줘. 나 꽤 오랫동안 참았다"
무슨 말일까. 생각하려던 찰나에 내 입술 위에 그의 입술이 포개져 왔다. 따뜻한 온기에 나는 밀어낼 생각은 하지 않고 정신을 조금씩 잃어감과 동시에 눈을 감았다. 아. 나 지금 지혈도 안 했었지. 깨어난 뒤엔 내 위에 있는 이 사람이 생각나길 바라며 내 눈앞은 검은색 화면으로 바뀌었다.
연습을 마치곤 씻고 왔는지 머리가 젖어있었다. 오랜만에 병실에 얼굴을 비춘 지민이의 손엔 먹을 것들로 가득한 비닐봉지가 쥐어져 있었다. 드르륵-. 소음이 나지 않는 문이라지만 병실이 너무 조용한 탓에 문소리는 꽤 큰소리를 내며 태형의 귓전을 때렸다. 보조침대에 몸을 앉히고 엎드려 자고 있던 태형은 꽤나 크게 들려오는 문소리에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혹시나 탄소가 깰까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지민이가 들고 온 짐들을 건네받으려 움직였다. 왔어? 왜 이렇게 많이 사 왔어. 누가 봐도 방금 일어난 듯 갈라진 목소리로 지민에게 말했다.
"그냥. 많이 먹으라고. 아직.. 탄소 아직 안 일어났지?"
"... ... ... 응. 이제 곧 일어나겠지."
"탄소야. 일어나면 그만큼 내가 아프고 힘들어할 테니까 일어나기만 해줘."
눈을 꼭 감고 있는 탄소를 보고 마음을 졸이는 태형과 지민의 마음을 아직 모르는지 탄소는 그저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둘의 바람 중 태형 쪽으로 기울어 주었는지 지민이 병실에 있을 동안 탄소는 눈을 뜨지 않았다.
태형은 20분 전 잔소리만 늘어놓고 간 지민을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데뷔. 그렇지. 데뷔를 원하고 있었던 연습생인 태형은 여전히 잠을 자고 있는 탄소를 보고 웃었다. 고작 너 하나 때문에 연습을 나가지 않는 자신이 어이없어서 웃는 건지. 탄소를 보곤 좋아서 웃는 건지 태형도 알 수 없었다. 어쩌다가 이 아이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이 아이가 깨어난 후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많은 생각들이 태형의 머릿속을 꽉 채웠다.
'일어나면 어떤 말들을 해야 하지. 아까 있었던 일은..'
생각을 정리하려던 태형은 의자에 앉아 침대에 머리를 박곤 탄소를 쳐다보다 눈을 감았다. 한숨을 쉬며 눈을 살짝 떴을 땐 탄소의 눈썹이 꿈틀꿈틀 움직이며 눈을 뜨고 있었다.
"너 지금 기억 상실이래. 최근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한대. 의사선생님이.."
아. 그렇구나. 괜스레 미안해지는 마음에 미안해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하니 괜찮다고 그가 말해주었다. 덧붙여 그는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와 박지민이란 아이의 사이에 대해서 얘기해 주었다.
"지금 너는.. 이삐고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박지민이랑 같은 회사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박지민은 네 남자친구고 연습생. 나도 연습생이고.. 너랑 불알친구 사이. 불알친구 알지? 엄청 친한 거.. 그래봤자 중학생부터 였지만. 그리고.."
내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는 그가 너무 고마워서 그의 말을 경청했다. 박지민이란 사람이 누구일까 연신 궁금해지기도 했고.. 김태형이란 아이와 내가 그저 '친구'인 사이에 대해 이상하다고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가 이어서 말하였다.
"왜? 왜.. 내가 너랑 그런 사이가 됐어?"
"어.. 어.. 다.. 당연히! 친하니까! 나도 잘 모르겠어. 언제부터 그랬는지.. 이게 이미 몸에 배어 있어서 난 잘 기억이 안 난다, 하하하."
더듬더듬 거리는 그의 말투가 의심스럽긴 했지만 그렇게 기분 나쁘진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너도 기억나면 말해줘-. 그래. 하하. 머리를 긁적이던 그는 어색했는지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따라 나에게 건넸다.
태형의 속마음 |
미쳤어.. 다음에 어떻게 하려구.
걸리면 어떻게 할라구..
바보야!!!!!!!! 으아.. 말도 안된다 정말 말도 안 돼..
그렇게 지민이와 계획을 짜던 태형이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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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X맛 프롤로그 후 찾아온.. 피트입니다.
암호닉은 나중에 정리할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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